소설리스트

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39화 (39/216)

〈 39화 〉 카디스텔라 문 나이트 (1)

* * *

어둡고 긴 복도는 마치 인적이 모두 사라진 폐허를 걷고 있는 것처럼, 걷는 이들의 발걸음 소리가 울리는 것을 제외하면 무척이나 고요하였다.

지하 깊은 곳에 존재하는 동굴을 걷고 있는 것처럼 서늘하였고, 기억하는 이 없는 고대의 묘지를 걷고 있는 것처럼 음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스름한 촛불의 빛을 받으며 고풍스러운 성의 모습을 여실히 과시하는 것으로 동굴 따위의 누추한 장소가 아님을 알게 했으며, 망자들의 성임에도 불쾌한 시체의 냄새는커녕 은은한 향기마저 감돌아 묘지 따위의 허름한 장소가 아님을 알게 했다.

오히려 바닥을 가득 메운 긴 카펫, 복도의 벽면과 천장을 빈틈없이 덮고 있는 태피스트리와 몰딩이 고상함마저 보여주고 있어 성의 주인이 가진 고귀함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진홍빛의 색상에 금실로 장미 문양이 수놓아진 고급스러운 카펫과 태피스트리.

그리고 장미의 줄기와 함께, 줄기가 품고 있는 날카로운 가시들이 양각된 예술적인 몰딩.

천 년 전에 존재했던 마왕성도 이 정도로 고고하지는 않았다.

“섀도우 왈츠 홀(Shadow Waltz Hall)에 도착하셨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어슴푸레하기만 했던 복도가 끝나고 나타난 문.

성의 정문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 문은 충분히 거대했고 그 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은 몹시 환하고 화사했다.

문의 앞에 다다르자 스켈레톤 하인 둘은 복도의 양측으로 갈라져 고개를 숙였고, 네로멜티아는 태연하게 그들을 지나 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홀의 문이 저절로 열리며 환한 내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잘 왔어, 마왕. 천 년 만이네.”

“그래, 잘 지냈어?”

거대한 홀의 중심.

한 번 불이 붙으면 전부 타버려 재가 될 때까지 영원히 타오른다는 발화석들이 넓은 금속 그릇에 담겨 홀의 곳곳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광활한 규모를 지닌 이 홀은 천장까지의 높이 또한 평범한 성의 감시탑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드높았고, 그 천장에는 수많은 망자의 대군이 신들을 향해 용맹하게 진군하는 거대한 천장화가 그려져 있었다.

우람한 가고일 석상들이 홀의 드높은 기둥들을 받치고 있는 모습은 이미 그 자체로 예술품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홀의 중심에 서 있는 여성.

칠흑의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를 보는 듯 반짝이는 은발을 바탕으로 진홍빛이 선명하게 드러나 선혈을 떠올리게 하는 적발이 조금 섞여 있었다.

그녀의 독특한 빛을 가진 긴 머리는 허리까지 찰랑거리는 우아한 커튼이었고, 그녀가 가진 핏빛의 눈동자는 그 어떤 이들이라도 경외에 물들어 시선을 피하지 못할 심연의 마력을 품고 있었다.

네로멜티아와 비견할 수 있을 정도의 장신이지만, 어느 누가 봐도 가녀리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을 정도의 빈약한 상체를 가진 탓에 그 가냘픔이 더욱 도드라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빈약한 상반신과는 다르게 그녀의 하반신은 크고 탄력이 넘치는 둔부와 도톰하고 탐스러운 허벅지를 가지고 있어 부드럽고 포근한 여체의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신체에 달라붙는 타이트한 형태의 오프 더 숄더 드레스는 특히 네크라인이 깊게 파여 있었고 소매가 존재하지 않았다.

네크라인 중앙에서 뻗어 나가며 거미줄의 구조로 짜인 정교한 형태의 끈이, 선명한 쇄골을 지나 목을 감고 있는 초커와 만나고 훤히 드러나 하얀 피부를 과시하고 있는 어깨까지 감싸며 드레스를 지탱하고 있었다.

타이트한 검은빛 실크 재질의 초커는 중앙에 진홍빛 루비가 박혀 빛을 발하고 있었고, 그것은 온통 검은빛 일색인 그녀의 의복에 선명한 인상을 남겨주고 있어 몹시 매력적인 장식이었다.

길고 타이트한 스커트의 우측이 둔부 근처까지 깊게 트여있어 그 길고 매끄러운 다리가 훤히 드러나고 있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은밀한 부위까지는 드러나지 않도록 그 틈을 은빛의 가느다란 사슬이 양측을 엮어 내려가며 고정하고 있어 더 벌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었다.

네크라인을 비롯해 스커트의 밑단과 갈라진 틈 사이까지, 은빛 실로 수놓아진 장미 줄기 문양이 존재해 고풍스러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여제라는 이름이 더없이 어울리는 고결을 지니고 보는 이들에게 경외를 받는 절세의 미녀.

특히 크림슨 캐슬에 존재하는 망자들에게 그녀는 종교이며 신앙이었다.

스스로의 의지로 죽음을 딛고 일어선 시조 흡혈귀이자, 테라리스의 모든 망자들 위에 군림하는 정점.

카디스텔라 문 나이트(Cardistella moon Night).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홀이라지만, 그래봤자 비천한 것들이 사용하는 하층의 홀. 마왕에게는 수준이 맞지 않으니 올라가도록 하지.”

짧게 말을 마친 카디스텔라는 뒤를 돌아 나아가기 시작했고, 네로멜티아 일행은 그녀의 안내에 따라 홀을 가로질러 걷기 시작했다.

양측으로 늘어선 스켈레톤 하인들이 고개를 숙여 예를 다했고, 그들의 극진한 예우를 받으며 홀에서 빠져나갔다.

카디스텔라가 뱉은 말은 굉장히 고압적이며 오만했으나 하인들은 일말의 부정도 없이 그저 자신들의 지배자에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일 뿐이었고, 러스테리아는 그런 카디스텔라의 모습에 대해 자신의 주인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라 느꼈다.

홀의 후방에 위치한 문 중 하나를 열어 들어선 복도의 끝에 문이 없는 작은 방 하나가 있었다.

화려한 금장(??)의 벽과 바닥이 인상 깊은 그 방에 카디스텔라가 먼저 들어섰고, 뒤를 이어 네로멜티아가 태연하게 들어섰다.

그에 따라 베아트리스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방에 들어서서 네로멜티아의 뒤에 섰는데, 러스테리아만이 잠시 당황하며 머뭇거리다가 뒤늦게 방에 들어섰다.

대체 이 작은 방에는 왜 들어온 것인가 러스테리아의 머릿속에 의문이 들 때 즈음.

우우우우우웅

“꺅!”

갑자기 회로에 마력이 흐르며 작동하는 기계 장치의 구동음이 들려오기 시작하며 바닥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러스테리아는 잠시 느껴진 작은 압박감에 놀라 짧은 비명을 질렀다.

현재 일행이 들어선 방은 상층을 향해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그에 따라 문 없이 훤하게 뚫린 출입구를 통해 다른 계층의 모습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네로멜티아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 카디스텔라를 바라보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대단한걸? 이건 뭐야?”

“대단하지? 이건 UAD라는 건데, 이게 있으면 계단이 필요 없다는 말씀. 후후후. 지난 천 년 동안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성에만 처박혀있으려니 영 심심해서 말이야. 소일거리로 성을 조금 개조해 봤지.”

“편리한걸? 이번에 마왕성 재건해야 하는데, 우리 성에도 만들어 줄 수 있어?”

“당연하지! 어려운 것도 아닌걸? 거기다 편리할 뿐만 아니라 빠르다구? 언제 하나하나 계단을 올라가고 있어, 이거 한 번 타면 끝까지 한 번에 올라가는데!”

자신의 발명품이 칭찬을 받자 으쓱해진 카디스텔라는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자기 자랑과 발명품 자랑이었는데, 발명품의 성능이 너무 뛰어난 까닭에 오히려 그녀는 피해를 보고 말았다.

순식간에 목적지인 최상층까지 도달해버려 자기 자랑을 더 이어갈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아쉬워하며 UAD에서 내린 카디스텔라는 기회를 봐서 자신의 획기적인 발명품들을 잔뜩 자랑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크림슨 캐슬의 최상층.

이 장소는 카디스텔라 그녀만을 위한 장소였고, 그 누구도 허락 없이는 들어올 수 없는 금지된 장소였다.

하다못해 시중을 드는 하인들조차 드나들 수 없었고, 최상층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아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성의 면적은 상당히 광활했으나 최상층은 그다지 넓은 면적이 아니었고, 카디스텔라 본인을 위한 방으로 쓰이기에는 적합한 수준이었기에 그녀는 이곳을 자신의 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밖에서 내리쬐는 햇볕이 환하게 들어오고 주변의 풍경까지 감상할 수 있는 커다란 창문.

그 창문이 사방에 가득했고 심지어 발코니마저 존재하고 있는 풍경.

금빛의 장미 문양이 가득 새겨진 진홍빛 태피스트리가 벽면 전체를 화사하게 뒤덮고 있었고, 체리목으로 이루어진 기품 넘치는 테이블과 옷장, 그리고 침대가 화려함을 뽐내며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리고 핑크빛 실크 원단으로 제작되어 귀여운 곰돌이가 수놓아진 침대 시트.

테이블에 놓인 의자 둘 중 하나를 차지하고 앉은 콧수염 달린 턱시도 곰돌이 인형.

벽면에 가득 붙어있는 액자에는 온통 네로멜티아와 카디스텔라가 함께 있는 유화 일색이었다.

점점 예상외의 취향이 눈에 들어오자, 넋을 잃고 주변을 구경하던 러스테리아의 시선이 천장으로 옮겨갔을 때 즈음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버렸다.

“아아아앗!!!”

“흐갹!! 윽!! 아니!! 저기!!!”

천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경악하는 러스테리아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온갖 해괴한 소리를 내며 당황하는 카디스텔라.

천장 전체에 그려진 낯뜨거운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장미의 꽃잎이 가득한 침대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누워있는 네로멜티아의 모습.

젖가슴을 한 손으로 살짝 가리고 다리 하나를 들어 탐스러운 허벅지로 은밀한 부위를 가리고 있는 그림 속 네로멜티아의 모습은 몹시 매혹적이면서도 음란해 보였다.

거기다 붉게 물든 표정을 하고서 남은 손 하나를 앞으로 뻗어오는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이 키스를 원하는 듯 살짝 오므린 선홍빛 입술과 맞물려 상대를 적나라하게 유혹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 속 네로멜티아가 손을 뻗으며 바라보는 방향에는 카디스텔라의 침대가 있었다.

“이 침대에 누우면 그림 속 주인님과 눈빛 교환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으아아아악!! 아니야!!!”

이 당혹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두리번거리며 우왕좌왕하던 카디스텔라는, 베아트리스의 확인사살이나 다름없는 말에 이성을 잃고 안면을 감쌌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안면을 가리고, 소리를 지르며 애써 현실을 부정하는 카디스텔라.

평범하게 벽에 장식되거나 장식장에 걸린 그림도 아니고, 천장 전체에 그려진 천장화였으니 어떻게 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 심심해서 장난삼아 그려본 거지?”

“… 으응!! 마, 맞아!!! 친구의 부끄러운 낙서를 그리면서 킥킥대고 놀았다구!! 이야, 나도 참 짓궂지!? 처, 천 년이 너무 길어서 말이야!!”

장난이라는 말을 언급한 네로멜티아의 한마디를 덥석 물어 변명에 급급했던 카디스텔라.

그녀는 정신없이 떠들며 네로멜티아의 말대로 장난이었던 것처럼 상황을 꾸미려 들었으나, 이내 떨떠름한 표정을 한 네로멜티아의 모습을 보았고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 끝났다……. 누가 봐도 안 믿는 거잖아 이거…….”

“아니야! 믿어! 너를 믿어 카디스!”

“후… 후후후후……. 일광욕이라도 하면서 죽고 싶다…….”

창문이 가득한 방에서 사는 주제에 일광욕으로 죽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나 하는 카디스텔라.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카디스텔라의 허망한 웃음소리가 크림슨 캐슬 최상층의 방에서 한참이나 울려 퍼졌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