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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35화 (35/216)

〈 35화 〉 마왕성 재건 계획 (3)

* * *

온 세상을 뒤덮은 독소와 분진 탓에 시커멓게 물든 하늘도 날이 밝으면 은은한 빛을 머금기 마련이었다.

막사의 출입구를 막는 가림천의 틈으로 미세한 빛줄기가 들이치고, 막사의 내부는 점차 태양광의 은은한 빛이 가득해져 갔다.

주변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오기 시작하자, 푹신한 침대와 포근한 이불에 파묻혀 달콤한 잠에 빠져있던 러스테리아가 부스스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직 잠이 덜 깨어 몽롱한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는 주변의 모습들을 하나씩 담아내기 시작했고, 잠에 취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그녀의 머릿속에 하나씩 가벼운 정보를 전달했다.

거의 다 타서 짤막해진 양초.

천막의 밖에서 들이치는 햇볕.

부스스하게 헝클어져 자신의 시야를 살짝 가리는 머리카락 조금.

책상의 앞에서 서류의 작성이 한창인 주인님.

정무에 몰두하는 모습이 너무나 늠름하고 멋진, 사랑하는 주인님.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러스테리아는 화들짝 놀라,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파악!

“아아앗!!”

순식간에 상체를 일으키고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하는 러스테리아.

그녀의 눈이 주변 상황을 뚜렷하게 인지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정신은 상황을 파악하면 파악할수록 하얗게 물드는 느낌이었다.

몹시 절망적인 상황이었고, 이런 결과는 찾아오면 안 되는 일이었다.

“일어났구나, 러스. 잘 잤니?”

“하으으으으… 이럴 순 없어요… 주인니이이이임…….”

두 손으로 자신의 낯을 가리고서 이불에 고개를 파묻는 러스테리아.

일어나자마자 무슨 일인가 의문을 가질 만도 한 모습이지만, 네로멜티아는 이미 답을 알고 있으니 그저 잔잔하게 웃을 뿐이었다.

자기 주인에게 충실한 비서관은 현재 전날의 자신을 책망하고 자신의 행동에 후회하는 중이었다.

“아티스님이 만들어주신 귀중한 휴일이었는데에에… 주인님하고 더 좋은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에에에… 히이이이잉…….”

“어제라면 러스가 씻고 오자마자 같이 시간도 보냈고, 저녁도 함께 했잖아. 나는 좋았는걸?”

“주인님께서 정무를 보시는 동안 옆에 머물렀을 뿐이잖아요! 저녁 이후에는 시간을 내주시겠다고 하셨으면서… 깨워주시지…….”

크나큰 안타까움에 아이같이 칭얼대는 러스테리아가 몹시 귀여웠던 네로멜티아는 그녀에게 살며시 다가가 침대의 한편에 앉았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시작했다.

울먹거릴 지경이었던 러스테리아의 부스스한 머리에 주인의 손가락이 머리카락의 사이사이로 들어와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니 현실의 실망감과 관계없이 기분 좋아지기 시작했다.

“저녁 먹고 든든해지니까 조금만 눕겠다면서 그대로 잠들었었지? 나도 베아트리스를 만난 그날, 셋이서 함께 잠자리에 들었던 밤 이후로는 지금까지 너무 바빠서 사랑을 나눌 기회가 도통 없었으니 많이 기대하고 있었지만…….”

“… 그럼… 깨워주셨어도…….”

“아끼고 사랑해 마지않는 신하가 바쁜 업무에 시달리다 피곤해서 잠이 들었는데. 그걸 굳이 깨워서 섹스하자고 조르는 주인이 과연 좋은 주인일까. 나는 아닌 것 같은데.”

“… 그치만…….”

납득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지우지 못해 젖어 들어가는 러스테리아의 목소리.

사실 식사를 마치고 식곤증이 돌아 몸이 나른해져 그대로 주인의 침대에 누워버린 것은 러스테리아였다.

이후 네로멜티아가 크로포드의 업무 보고를 받으러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따뜻하고 부드러운 재질의 이불이 선사하는 유혹에 넘어가 그것을 덮기까지 한 것도 러스테리아였다.

위장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든든함과 충실함.

푹신한 침대에 누워 편안해진 발과 다리.

포근한 이불의 따뜻한 온기에 풀어지는 신체.

그리고 시트와 베개에 배어든 사랑하는 주인님의 향기로운 체취.

그 모든 안락을 느끼며 잠에 빠져든 것 역시 러스테리아였다.

오히려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동안 오늘 밤은 꼭 오붓하게 단둘이 보내자는 둥, 그간 주인님의 사랑을 받지 못해 외로웠다는 둥 그럴싸한 말은 다 늘어놓고 잠들어 버린 자신의 잘못이었지 그런 자신을 깨우지 않은 상냥한 주인님은 결단코 잘못이 없었다.

차마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버린 러스테리아.

네로멜티아는 비서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당겨, 기가 죽어버린 귀여운 비서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

“다음을 기약하자. 나라고 이렇게 예쁜 미인 비서가 있는데 건드리고 싶지 않았겠니? 다음에는 날이 밝을 때까지 실컷 즐기자.”

“… 맞아요! 여자를 엄청나게 좋아하시는 주인님께서 더 괴로우실 텐데 제가 너무 생각 없이 굴었어요.”

납득하고 순순히 넘어가며 주인의 심정까지 헤아려 주는 비서의 마음이 몹시 기특했지만, 그녀의 말에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러스테리아의 마음속 자신은 대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 것일까.

네로멜티아는 그 불편한 의문을 애써 지우고 장난스러운 말로 이 순간을 넘겨버렸다.

“부끄러움 많고 수줍은 러스는 어디 가고 이렇게 음란한 러스만 남은 거지?”

“… 주인님이 이렇게 만드셨으면서…….”

주인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가슴에 고개를 묻는 러스테리아.

풍만한 여체의 감촉과 향기로운 체취에 안락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자애로운 주인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며 한동안의 여유로운 안식을 만끽했다.

“들어가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부디.”

자신의 막사 밖에서 들려온 주군의 음성에 크로포드는 급히 자신의 옷매무새를 살피며 주군을 맞이했다.

크로포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막사 안으로 들어선 것은 그의 주군인 네로멜티아.

그리고 네로멜티아의 뒤로 그녀의 비서관인 러스테리아와 전속 메이드 베아트리스가 따라 들어섰다.

“주군께서는 제게 굳이 허락을 구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저 내키시는 대로 하십시오.”

“흐음. 그래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는데 주의를 안 할 수 있겠나. 혹여 친애하는 나의 기사가 자신의 레이디와 함께 사랑을 속삭이고 있던 중이라면 큰 실례일 테니.”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흐응. 지금은 그럴지라도 앞일은 모르는 거지.”

의미심장한 어조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린 네로멜티아는 막사 한편에 의자를 가져와 크로포드의 자리 맞은 편에 두고 태연하게 앉았다.

이후 네로멜티아의 손짓에 크로포드는 살짝 묵례를 한 뒤, 자신의 본래 자리에 가서 앉았다.

둘 사이에 놓인 책상 위에는 온갖 다양한 글씨체로 이루어진 서류들이 산이 되어 쌓여 있었다.

네로멜티아는 그 중 유독 악필로 작성된 서류를 한 장 집어 들고 그것을 팔랑거리며 말했다.

“이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필기를 연습하라고 일러둬. 보고서가 이래서야 읽기도 힘들어서 네 업무 시간이 두 배로 늘 것 같아. … 그래. 이 자가 제법이군, 가장 뛰어나게 잘 썼어. 마치 어딘가의 왕족이나 유명한 대문호가 쓴 글 같잖아? 아주 멋스럽고 고풍스럽게 잘 적었는걸?”

“악필은 현재 폐허의 잔해 정리를 맡은 토목단의 단장이 보낸 현장 보고서이고, 가장 뛰어나다고 언급하신 서류는 고블린 킹 아티스 T. 페인터님의 고블린 토목단 업무 평가 보고서입니다.”

“… 그런가…….”

유독 뛰어난 글씨체와 유려한 문체를 기품있게 보여주던 서류.

서류에 금박으로 이루어진 테두리를 추가하고 붉은 촛농을 떨어뜨려 큼지막한 도장을 찍어준다면 왕실에서 보내온 칙서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훌륭한 보고서.

그것이 아티스가 작성한 문서라는 이야기에 뭔가 심경이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림의 내용만 건전했다면 역사에 길이 남았을 그림 실력을 뽐내던 그가 글씨마저 명필이라니.

그림의 내용만 건전했다면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예술이라는 것을 마음껏 펼치게 해줬을 텐데.

그림의 내용만 건전했다면 재건하는 헤모니겐트에서 예술가를 양성할 예술원의 원장직도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림의 내용만 건전했다면…….

“내가 바쁜 너의 시간을 빼앗아가며 이곳에 자리한 이유는, 향후 일정에 관해 지시를 내리기 위함이다.”

“하명하십시오, 주군.”

“앞으로 진행할 많은 건축과 공사의 과정에서 목재와 석재가 터무니없이 모자라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나는 내일부터 그것을 찾아 마왕성 밖으로 나갈 예정이다.”

“주, 주군!”

다급히 주군을 저지하려는 크로포드를 손짓으로 만류하고 그의 말을 끊은 네로멜티아.

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운 뒤 까닥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굳이 농담 같은 이야기를 추가해서 크로포드의 곤두선 신경을 풀어주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서류작업은 질렸다. 자원을 수색하는 김에 주변을 둘러보며 탐색 작업도 진행해야겠어. 가는 김에 ‘크림슨 캐슬(Crimson Castle)’도 들러 나의 박쥐 친구가 건강히 지내고 있는가도 확인하고 싶고.”

“그래도… 위험하십니다! 차라리 블랙 나이트에서 정찰대를 차출하심이…”

“마음 같아서는 러스테리아나 베아트리스 둘 중 하나를 두고 가고 싶다. 그렇게 되면 설령 드래곤 케르디하크가 습격해온다 해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겠지. 그러나 둘 중 누구도 내 곁을 벗어나지 않겠다고 완강히 요구하니 둘 다 데려갈 생각이다. 이래도 걱정이 되나?”

과거에는 나약했을지언정 현재는 천년의 시간 동안 고위계의 마법들을 섭렵한 러스테리아.

지옥에서 소환된 순혈 악마이자 원초적 대악마 릴리트의 딸.

과거 헤모니겐트의 첨단 마도 기술이 집약된 에고 돌 메이드 베아트리스.

하녀로서의 완벽한 시중의 기능보다도 우선시 개발되었던 것은 압도적 살상 능력.

크로포드와 함께 둘 중 하나만 나서서 대처해도 케르디하크 정도의 드래곤은 대처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토록 강한 두 사람을 다 데려가겠다는 말을 굳이 꺼낸 것은 크로포드의 안심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두 분이 주군과 함께 하신다니 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근심을 덜 수 있겠습니다만…”

“걱정하지 마라. 거기다 정찰대를 파견하면 석 달도 걸릴 일을 마법 능력이 뛰어난 우리가 행한다면 일주일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나. 이동 속도에서부터 확연한 차이가 있고, 더 오랜 시간을 활동할 수 있으니 소요되는 시간으로는 비교가 불가하지. 거기다 안전을 위한다고는 하나 거점에만 틀어박혀 있는 건 능사가 아니다. 위험을 부담하고서라도 자원의 빠른 확보를 진행하고 마왕성의 외벽을 재건해 방어능력을 높인다면 그것이 더 안전한 길 아닐까.”

“…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주군.”

간신히 주군의 선택을 납득한 크로포드는 고개를 숙였다.

네로멜티아는 현재 크로포드가 침울해진 이유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이 요령 없는 기사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 주군이 고생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무력함을 자책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언더 바르커스의 마법 관리소에 연락해 마법사 몇을 차출하고 그들을 지킬 병사들도 차출해. 마법사 하나에 병사 넷 정도의 경계 분대를 여럿 구성하도록. 내일 우리가 떠나거든 마왕성에서 조금 떨어진 요충지 곳곳에 그들을 파견해 경계망을 구축하고, 혹여 적이 발견되거든 마법 ‘메시지(message)’를 통해서 네게 즉각적으로 위험을 알릴 수 있도록 해라. 위기 상황이 벌어지거든 백성들을 이끌고 언더 바르커스로 대피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거든 아티스의 협조를 구해 하수도로 피신하도록.”

“받들겠습니다.”

“유능한 네가 있기에 마음 놓고 나가는 것이다. 네가 없었더라면 나는 러스테리아와 베아트리스를 둘 다 떼어놓고 혼자 나갔을 거야. 그러고도 안심하지 못해 멀리까지는 나가지도 못하겠지. 나는 너를 의지하고 있다, 크로포드 반 에이하르트.”

“… 주군…!”

자신이 경애해 마지않는 주군이 자신을 의지한다고 말하자 감격을 감추지 못하는 크로포드.

이로써 네로멜티아는 기가 꺾인 충성스러운 기사의 기세를 드높여 주는 일에 성공했다.

물론 유능한데다 매사에 진중하고 근면하기까지 한 크로포드라면 웬만한 일은 알아서 잘 처리해 줄 거라는 믿음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신뢰뿐만 아니라 네로멜티아를 마음 놓을 수 있게 하는 요소는 또 한 가지 더 있었다.

큰 규모의 마력이 사용되면 블루문에 머물고 있다는 케르디하크가 이를 감지해 쳐들어올 수도 있다는 예측 때문에, 워프(warp)나 포털(portal) 같은 고위계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왕성 일대에 펼쳐진 대규모 정화 마법진.

그것은 이미 워프나 포털의 수 배에 해당하는 마력을 소모하는 고위계 마법이었다.

그럼에도 케르디하크는 현재 감감무소식이었다.

드래곤이 행하는 기나긴 잠에 빠졌던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렸던지, 머나먼 블루문에서는 이 정도로 큰 마력의 흐름도 감지하기 힘들던지.

혹은 지난 천 년 동안 어떤 사건이 발생해 죽어버렸던지.

분명한 것은 현재 마왕 네로멜티아의 부활과 헤모니겐트 재건의 움직임은 어느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신왕 오드볼그라도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신탁으로 용사를 즉시 파견하거나, 용사의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다른 신들을 대신 보내서라도 공격을 감행했을 것이었다.

마왕군이 제대로 신설되지 않아 제대로 방비가 되지 않는 상황의 네로멜티아가 조금이라도 힘을 더 끌어모으기 전에 속히 처리하려 들었을 테니.

‘케르디하크나 휴미안들이 침공할 확률은 극히 적어서 안심하고 나갈 수 있다는 말을 굳이 꺼낼 필요는 없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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