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34화 (34/216)

〈 34화 〉 마왕성 재건 계획 (2)

* * *

여전히 설계 도안을 붙들고 머리를 싸매고 있는 네로멜티아.

현재 도시 재건 계획의 도안은 상당수가 진척된 상황이었으나, 워낙 중요한 안건이 많아 손을 놓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얼마 전 있었던 마왕성 일대의 대규모 정화 마법진 완공식에 많은 이들이 환호하고 축배를 들었으나, 그것 외에도 중요한 안건들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쌓여 있었다.

자신이 거주할 본성의 건축은 기약 없는 뒷일로 미룬 지 오래였고, 모든 중요 행정을 처리하고 실행할 시청의 건물이나 군대를 양성할 병영, 도시에 필요한 모든 철기와 도기를 만들 공방과 마도학적 기술을 개발하게 될 연구소 등 시설 건축에도 힘을 쏟아야만 했다.

대충 벽과 지붕만 달린 허술한 건물이어선 제대로 된 기능이 나오기 힘들고, 도중에 건물을 다시 짓는다고 해당 부서의 업무를 중단시킬 수도 없는 일이니 처음부터 제대로 된 건물을 지어야만 했다.

가장 중요한 건축물들부터 최적의 장소에 위치를 지정하고, 조금이라도 유용하고 편리한 이동을 위해 최적의 형태를 지닌 도로망을 설계했다.

그 이후 견고한 방어를 위한 외벽의 설계가 이어졌고, 현재 네로멜티아가 양손에 잉크를 가득 묻혀가며 애써 머리를 굴려 설계하고 있는 도안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후에도 외벽 너머에 예정된 농경지와 목축지, 경계초소와 군 주둔지, 다른 지역의 왕래를 위한 도로 정비와 그에 따른 경비 관문 등등.

마왕성의 내부에 자잘한 사안들도 다 마무리가 안 된 상황인데 외벽 밖의 문제 또한 사방에 산재해 있었다.

거기다 이것은 모두 시설 건축에 관련된 일일 뿐, 국가 운영에 필요한 다각적 문제는 지금 현재의 사안들은 일부라고 치부할 수 있을 정도로 방대했다.

그 문제들 중 하나가 이제 막 도착했다.

“흐으아아아아아…!!”

“다녀왔어?”

“흐으… 네에에….”

터덜터덜 힘이 풀려 헤롱대는 모습으로 막사에 들어오는 러스테리아.

항상 막사 앞에서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인사를 올리며 조심스럽게 들어오던 모습은 사라졌고, 인사는커녕 막사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풀썩 드러눕는 글러 먹은 태도만이 남아있었다.

“비서관님, 주인님의 앞입니다. 예의를 지켜주세요.”

“괜찮아, 베아트리스. 그런 예의 같은 거 개의치 않는 사이이기도 하고, 러스가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오히려 마음 편히 쉬는 시간도 가져줬으면 좋겠어.”

러스테리아의 노고는 익히 알고 있었고, 마음에 계속 담아두고 있었던 바였다.

현재 그녀는 전날 여러 건축 공사현장을 돌아다니며 바쁜 네로멜티아 대신 시찰 임무를 수행했고, 날이 저물고 나서는 현장 안전시설 점검과 식자재 수량관리, 더 나아가 인사 배치와 관리 서류작성까지 밤새 진행했다.

그리고 날이 밝자마자 언더 바르커스의 해안 절벽 입구에서 공중 부양마법을 사용해 마왕성까지 밀 포대, 사과 상자, 식수통, 감자 자루 등등 대량의 식량을 운송해야만 했다.

언더 바르커스의 경작지에 의존해야 하는 식량 사정은 출입구가 가파른 해안 절벽의 동굴밖에 없는 상황에서 육로로 운송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누군가가 운송해야 한다는 문제를 야기했고, 결국 그 문제는 대량의 식량을 동시에 옮길 수 있을 정도의 일정 수준 이상 마법 능력을 지닌 인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발전했다.

결과적으로 이 일은 네로멜티아나 러스테리아, 베아트리스 정도의 인원밖에는 수행하지 못하는 일이 된 것이었다.

데모니안 백성들 사이에서도 마법사들이 존재했으나, 그들은 언더 바르커스에서 인공 태양을 띄우는 일로 자리를 비울 수 없었으니 지상의 마왕성에 관련된 마법 지원은 모두 세 사람의 몫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 업무는 현재 대부분 러스테리아가 처리하고 있었고, 오늘 역시 그러한 것이었다.

이토록 많은 일들이 러스테리아를 끊임없이 짓누르고 있었기에 그녀는 점점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

러스테리아 역시 수명이 정해진 이들이 보기에는 많은 것을 초월한 강자였고, 계약에 의해 지옥에서 올라온 순혈 악마이니 그녀의 권능이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익히 알 정도였다.

그러나 며칠이고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잠마저 부족하면 아무래도 지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으으… 끈적거려요오… 씻고 싶어요오…”

“그럼 언더 바르커스에 내려가서 씻고 한숨 자다 오지 그래? 그러게… 잠도 못 자고 일했으면 베아트리스를 보내지 그랬어.”

“안돼요! 주인님 곁에는 항상! 반드시! 기필코! 누구 하나는 있어야 한다구요! 기습이라도 당하시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드릴 분이 필요해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다시는 주인을 잃을 수 없다는 생각에 러스테리아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선을 하나 그었고, 그것이 바로 24시간 밀착 호위였다.

크로포드, 러스테리아, 베아트리스 총 3인의 믿을 수 있는 강자가 누구 하나는 꼭 마왕의 곁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의견.

그것은 주인을 과보호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러스테리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 동의한 사안이었기에 네로멜티아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따라주고 있었다.

심지어 그 3인에 포함되지 않는 아티스조차 그들의 의견에 긍정을 표하며 힘을 실어주었을 정도.

결국 베아트리스가 언더 바르커스의 식량 운송 업무를 보러 가고 자신이 씻고 쉬러 가면 주인이 혼자 남게 되니 자신이 운송 업무까지 도맡아서 끝내버리고 온 것이었다.

모든 공사 업무와 주민 관리에 총괄을 담당하고 있는 크로포드를 부른다는 것은 생각도 해볼 수 없는 일이었으니, 더더욱 선택의 폭은 좁아지는 것이었다.

“괜찮아요, 주인님! 조금 쉬다 와서 베아트리스님과 교대하면 주인님과 오붓하게 단둘이 있을 수 있는걸요!”

“물론 저녁부터는 인사 행정 업무에 한창이시니 얼마 안 있어 또 저와 교대하셔야겠죠.”

“역시 불공평해요, 베아트리스…….”

“러스테리아님은 비서관, 저는 메이드. 당연한 겁니다.”

베아트리스 역시 러스테리아와 교대하면 급양 부서에 가서 요리를 담당하는 인원들에게 음식의 조리와 식자재의 취급법에 대해 강습하고 그들의 업무를 관리해주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넘치는 능력이 있으니 마왕의 곁에만 세워둘 수는 없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그녀의 능력을 이용해보고자 네로멜티아가 직접 제안한 업무.

조금 짓궂게 놀리는 듯이 이야기했어도, 베아트리스 역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호호호호! 그건 제가 조금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넉살 좋은 웃음과 함께 막사에 들어선 이는 아티스였다.

그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띤 채 러스테리아와 우호적인 눈빛을 교환했고, 이내 네로멜티아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의 신사적인 행동이 익숙해진 네로멜티아는 자연스럽게 그 손에 자신의 손을 내밀었고 아티스는 마왕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마음이 간지러워지는 인사를 건넸다.

“모든 백성에게 평등한 사랑과 은혜를 나누어 주시는 자애로운 여신께 존경과 경애를 바칩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마의 여신 곁에서 그 의지를 행하시는 분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근간, 루이나의 여신을 몸 바쳐 수호하시는 분을 칭송합니다.”

네로멜티아 뿐만 아니라 러스테리아와 베아트리스에게도 손등에 입맞춤을 선사하며 상당히 예스러운 신사의 인사를 보여준 아티스.

자신을 여신이라고까지 칭하는 극존대의 예법에 네로멜티아는 그나마 익숙하게 받아넘겼으나, 러스테리아는 뭔가 부끄러운 듯 낯을 붉혔고 베아트리스는 그의 손길이 불편하다는 듯 조금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아티스는 네로멜티아의 앞에 번듯이 서서 자신이 가져온 희소식을 보고했다.

“이제 저의 현장 지휘 없이도 고블린들이 알아서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각 부서마다 그들을 관리할 관리자들 또한 특출난 고블린들을 선발해서 임명해 둔 상태이지요. 이제 저는 각 고블린 관리자들이 전달하는 진행 상황을 보고받고 그에 따른 업무 지시를 내리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고, 그 외에는 정해진 시간에 진행하는 고블린들의 교육 업무뿐이니 시간이 많이 남습니다.”

“… 그럼…….”

“당장 오늘부터 비서관님의 과중한 업무를 대신 짊어드릴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오호호호호!”

“와아아아아!! 아티스님 최고!!!”

아티스의 말에 눈물을 흘릴 듯이 기뻐한 러스테리아는 제자리에서 깡충깡충 뛰었고, 그러고도 벅차오르는 기쁨을 못 이겨 아티스를 힘껏 끌어안았다.

그녀의 커다란 가슴 계곡에 파묻힌 아티스는 숨이 막힐 것이 분명한데, 그는 이상할 정도로 움직임 없이 서 있기만 했다.

체구가 성인 데모니안의 반밖에 되지 않는 고블린의 특성상, 안 그래도 큰 러스테리아의 풍만한 가슴은 그에게 있어선 가공할 만큼 거대한 것이었고 아티스는 안면이 파묻히는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가슴의 사이로 머리가 사라질 정도로 파묻혀 버린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조금의 저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아티스.

그 모습에 뭔가 수상한 낌새를 느낀 베아트리스가 이성을 잃을 정도로 기뻐하는 러스테리아에게 가벼운 주의를 주었다.

“비서관님. 고블린의 왕께서 조금 불편하실 것 같습니다.”

“아앗…! 죄, 죄송해요, 아티스님! 씻지 못해서 땀 냄새도 많이 날 텐데… 저도 모르게 기뻐서 그만…!”

“스읍… 아, 아니. 저에게는 오히려 포상… 아아아, 아닙니다! 땀 냄새 그런 건 하나도 나지 않으시는군요! 으허허허허!!”

뭔가 음흉한 본심이 나온 것 같지만,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러스테리아는 그저 땀 냄새가 나지 않았다는 말만 믿고 안도하는 모양이었다.

반면에 뭔가 과하게 웃어댐과 동시에 코를 연신 씰룩이는 아티스의 모습은 분명 그가 몹시 기분 좋은 무언가와 마주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이었다.

베아트리스가 의심의 눈초리를 쏘아오자 아티스는 애써 분위기를 바꿔 대화를 다른 논제로 넘겨버렸다.

“어차피 마왕님의 마왕성 재건 설계 업무도 어느 정도는 진척되었으니, 한동안은 펜대를 더 잡지 않으셔도 될듯하고… 오히려 당장 급한 업무가 있으시니 멀리 나가보실 계획이실 것 같습니다만.”

“알고 있었나?”

“오호호호호호! 헤모니겐트에 파묻힌 지식의 유산을 모조리 습득한 제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무슨 이야기이신가요?”

무언가 알고 있는 듯, 의미심장하게 이야기하는 아티스.

그의 말이 정확하다는 듯 놀라움을 가지고 되묻는 네로멜티아.

러스테리아는 본인만 모르는 그 대화 내용이 퍽 궁금해, 자신도 설명을 듣고 싶어 아티스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건축 자재가 모자라겠지요. 아무래도 마왕성 인근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폐허의 돌무더기 외엔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목재와 석재. 이것이 확보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건축은 진행할 수 없어. 러스, 너도 알고 있겠지만 현재 폐허에서 그나마 멀쩡한 석재들을 긁어모아 언더 바르커스에서 채굴해온 석회를 가지고 임시 가택을 짓고 있지? 당장 기거할 장소를 짓는 일은 상관없지만, 이런 식으로 끝까지 갈 수는 없어.”

“아, 맞아요! 토목 부서의 보고서에 근방에서 벌목한 나무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나와 있었어요!”

“그래, 오염물질을 잔뜩 머금은 채 썩어 버린 나무뿐이고 그것들은 건축 자재는커녕 독성 연기가 가득 나오니 땔감으로도 쓸 수 없어.”

과중한 업무에 치였던 러스테리아는 본인이 주로 맡고 있는 업무인 인사 행정 외에는 아무래도 깊게 생각할 여력이 없었던 듯했고,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간다는 듯 손뼉을 치며 주인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현재 건설에 투입된 인원들도 폐허에서 쓸만한 석재를 모아 도로를 깔거나 임시 가택을 짓는 일만 하고 있을 뿐, 그 이상으로는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당장은 이 업무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에 상관이 없었으나, 그 이후 건물을 올리고 성벽을 건설하기 위한 준비는 미리 끝내두어야만 했다.

어느 정도 사회의 기반이 다져져야 외벽 밖의 농경지와 목축지에도 더 신경을 쓸 수 있을 것이었다.

결국 손을 떼지 못할 만큼 중요한 국무들이 많더라도, 당장 끄지 않으면 안 될 급한 불이 생겼으니 만사 미뤄두고 나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아티스의 말대로 네로멜티아가 갖은 애를 써서 상당한 일을 처리해 두었으니, 남은 일들은 조금 미뤄두어도 괜찮은 일들이 대부분인 상황이기도 했다.

“우선 데카스트라스 산맥(Dekastras Mountains)으로 향할 거야. 그곳 대부분은 숲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목재 조달의 시찰을 하기도 용이하고, 더 내려가면 드워프들의 거주지도 있으니 석재의 조달이나 장인의 영입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

“와아! 좋은 생각이세요!”

주인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며 기뻐하는 러스테리아.

그런 귀여운 비서를 바라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보내는 네로멜티아.

그러나 마왕의 머릿속은 그렇게 희망적인 생각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최악의 상황은 염두에 두어야만 했고, 현재의 분위기를 볼 때 최악의 예상은 사실로 다가올 확률이 높았다.

속으로만 한숨을 지을 뿐, 자신만 바라보는 이들에게 불안감을 내비칠 수는 없었다.

‘제대로 남아있는 게 있기는 할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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