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마왕성 재건 계획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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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기가 무섭게 광장으로 인파가 몰려들었다.
마왕성을 되찾은 날 이후 재건을 위한 공사가 나날이 지속되었고, 그중에서도 주요 목표가 되는 것은 헤모니겐트의 주민들이 머무를 수 있는 각자의 주거지 건축과 광장의 중심에 공사 중인 대형 마법진 설치였다.
크로포드는 모든 주민들의 관리를 맡는 한편, 공사 진행에 관련된 일들도 모두 총괄했다.
데모니안 주민들의 관리를 천년이나 해온 그이기에 주민들의 관리에 대해서는 그가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고, 공사 역시 그가 관리하는 주민들이 진행하니 자연스럽게 재건 업무의 진행 총괄도 그가 맡게 된 것이었다.
아티스는 고블린의 관리와 감독 그리고 교육을 맡았고 하수도에 있는 과거 거주지에 물건들을 이전시키는 일도 진행하고 있었다.
고블린들은 열악한 환경의 하수도에서 평생을 지내며 교육이 등한시된 생활을 해왔었기에, 아티스는 박식한 그의 지혜를 나눠 그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지식을 교육하는 걸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있었다.
네로멜티아는 도시 건축의 전반적인 설계 업무에 한창이었고 중요 인사들이 모이는 국무회의 시간이 아니라면 대체적으로 자나 각도기, 컴퍼스 따위를 들고서 설계도와 씨름 하는 것이 대부분의 업무였다.
모든 일에서 계획과 설계는 시작과 근간이 되기에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동시에 어렵고 복잡한 일이기도 했다.
그나마도 아티스나 러스테리아가 조언을 해주거나 함께 도안을 구상해 주는 등, 많은 도움이 되었기에 업무의 진척은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러스테리아는 주로 네로멜티아의 명령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새로 입수된 정보를 네로멜티아에게 전달하는 업무를 맡았으며, 바쁜 네로멜티아 대신 대인(?人)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뛰어난 머리와 지식을 가지고서 주인의 여러 가지 업무를 적재적소에 보조하는 것이야말로 비서관의 본업이나 다름없었다.
베아트리스는 대인 업무로 바쁜 러스테리아의 빈자리를 채우며 주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녀의 식사부터 목욕, 청소 등의 대대적인 시중 업무를 수행했고, 더 나아가 손이 모자란 네로멜티아가 지시하는 대로 설계도나 도안을 그리는 일 또한 도왔다.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에고 돌이어서 그런지 각도기나 컴퍼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펜을 움직이는 손놀림이 정밀하기 그지없었고, 한번은 그것을 목격한 러스테리아가 갈채를 보내기도 했었다.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움직였고, 일을 허술하게 대하는 모습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그냥 열심히만 일하는 것이 아니었고, 언제나 철저한 우선순위대로 일을 처리했으며 업무 방향을 정확하게 지정하고 실행했다.
빠르게, 그러나 가장 절실한 것을 먼저.
그것은 이미 과거 기억 속 마왕성의 재건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삶의 터전을 건설하는 일이라 봐야 했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이 찬연한 미래의 초석이 되어 돌아왔다.
“주군.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 나가도록 하지.”
많은 백성들이 본인들 하나하나가 모여 이룩한 결실을 눈에 새기기 위해 광장에 모였다.
광장 옆의 가설 건물 안에서 의식의 시작을 기다리던 네로멜티아는 크로포드가 이끄는 대로 백성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백성들이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는 가운데, 그 인파의 중심으로 걷기 시작한 네로멜티아와 측근들.
헤모니겐트의 지배자 네로멜티아가 모습을 드러내자 웅성대던 군중의 소리는 씻은 듯 사라지고 정적과 고요만이 남게 되었다.
오로지 그들의 가운데를 걸어 지나가는 조금의 발걸음 소리뿐.
얼마 되지 않는 수의 발걸음 소리였으나 헤모니겐트의 백성들은 거대한 드래곤의 맹진보다도 크고 드높은 위용을 느꼈다.
신들의 권능에 필적하는 강대한 힘을 지녔으면서도 그 누구보다도 자애로운 마왕.
천년의 시간 동안 백성들을 지켜낸 헤모니겐트의 소드 마스터.
마왕에 의해 지옥에서 소환되어 주인의 곁을 지키는 아름다운 악마.
과거 헤모니겐트의 첨단 마도 공학이 집약된 마왕의 친위대.
고블린의 수명이라는 것이 부여한 적은 나이에도 현자라 일컬어지는 지혜의 집대성.
그들 하나하나가 부여하는 위세는 이 세상 어떤 존재를 끌고 와도 견줄 수 없는 거대한 존엄이 있었다.
가장 앞에 서서 걷는 네로멜티아의 양옆을 러스테리아와 크로포드가 한 걸음 뒤에서 따라 걸으며 채웠고, 그들의 뒤로 아티스와 베아트리스가 따라 걸었다.
그리고 잠시 뒤, 미리 대열을 갖추고 서 있던 블랙 나이트들이 마왕과 측근들의 뒤를 따라 발을 맞춰 행진하며 위엄을 드높여 주었다.
척! 척! 척! 척! 척!
코르니움 갑옷을 입은 기사단이 일제히 내는 행진 소리는 지면을 울렸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고 있던 백성들의 가슴속에도 그 강렬한 울림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왕을 비롯한 측근들은 광장의 중심에 설치된 건조물 하나에 다가갔다.
광장의 중심에 자리한 마력석.
언더 바르커스의 광산에서 캐낸 희귀한 보물이었던 그것은, 직경 일백 멘톨에 달하는 거대한 마력석이었다.
깊고 깊은 지층에 묻혀있던 것이라 오염된 부분도 없는 태고의 순도 그 자체.
마력 전도력이 높다는 미스트릴을 녹여 주조한 작은 기둥이 광장의 중심 지면에 꽂혀있었고, 그 기둥의 위에 마력석이 고정되어 있는 형태였다.
그 마력석의 앞까지 다가선 네로멜티아는 잠시 그 푸르고 커다란 마력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의 손을 짚어 마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구
루이나의 주인이자 근원인 마왕의 손에서 전해지는 압도적인 마력의 흐름.
그 방대한 마력을 흡수한 마력석은 환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하며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산산이 부서지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세게 진동하던 마력석은 이내 그 기세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잠시의 침묵에 모두가 익숙해졌을 무렵, 이번에는 발아래에서 거센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크고 둔중한 공명음과 함께 광장의 지면 아래에서 빛줄기들이 쏘아지듯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광장에 위치한 하수구 뚜껑들 아래에서 쏘아져 올라오는 강대한 빛.
광장의 아래 하수도 내부에 설치된 거대한 마법진이 뿜어내는 찬란한 광채.
그 빛은 강렬하게 쏘아지는 듯하다가 점차 희미하게 점멸하였고 이내 완벽히 소멸하였다.
그와 동시에 잠잠해졌었던 마력석과 그것을 지탱하고 있던 미스트릴 기둥이 요란한 기계장치의 구동음을 내며 지면 아래로 내려앉아 사라지기 시작했고, 이내 마력석의 가장 상단의 끄트머리만 남긴 채 나머지는 전부 지면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마력석을 지면 아래로 내리기 위해 미스트릴 기둥 아래 지면이 벌어지면서 생성되었던 구멍은 마력석을 반쯤 집어삼키자마자 마력석의 돌출된 부분 규격에 꼭 맞는 크기로 다시 다물어졌고, 마력석이 지면에 박혀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쩡!!
순간 지면에 반 이상 파묻힌 마력석을 중심으로 돔 형태의 마력장이 발산되었고, 그 투명하면서도 강대한 힘이 느껴지는 반구형 마력벽은 광장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훑으며 그 기세를 키우고 점점 넓게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뭔가 물건을 부수거나 생명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었던 마력장.
그것은 순식간에 마왕성 전역 일대로 퍼져 나갔고, 마왕성의 외벽 너머 농경지 건설 예정지마저 뒤덮을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확장되었다.
“친애하는 백성들이여 듣거라!”
네로멜티아는 뒤를 돌아 백성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고, 다른 측근들 역시 네로멜티아의 뒤를 따랐다.
그 이후 마왕의 앞에 일렬로 서서 호위의 의무를 다하는 블랙 나이트.
그들의 기세는 상당했고, 이는 얼마 전부터 그들에게 지옥의 형벌과도 같은 훈련을 시켜댄 크로포드의 작품임이 틀림없었다.
백성들은 그들 지배자의 위엄있는 음성과 그 행동에 따라 갑작스러운 마력장을 보고 어지러워졌던 정신을 바로 하고 마왕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그대들이 완공하고자 나날이 땀 흘려 노력해왔던 거대 마력 회로! 광장 전체의 지하를 아우르는 그 거대한 마법진이 있었기에 저 광활한 규모의 마력장을 만들 수 있었다! 짐은 그대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마왕의 치사에 일제히 고개를 숙여 답하는 백성들.
그들의 가슴속에는 작지만 뜨거운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일궈낸 무언가가 저토록 거대한 마력장으로 되돌아오다니.
이만큼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는 좀처럼 없는 것이었다.
“저 마력장이 존재하는 한! 마왕성 일대에 독소나 오염물질이 유입될 일은 없을 것이다! 마왕성의 대기는 항상 맑을 것이며, 내리는 비는 더없이 깨끗할 것이다! 금속가루가 섞인 모래폭풍도 깨끗한 바람만이 남을 것이며, 역병을 옮기는 변이된 해충도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광장의 모두가 기뻐하며 저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언더 바르커스와 하수도에서 나와 마왕성의 폐허를 일구며 지상에서 지내게 된 지 한 달이 조금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어떤 날의 아침도 마왕에게서 정화마법을 부여받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날마다 정화마법을 걸어야 할 정도로 오염된 환경에서 잘 살 수 있을까, 산다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마왕을 비롯해 정화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인물들이 하루라도 자리를 비운다면 큰일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고, 매일 아침 마왕이 일일이 백성들에게 정화마법을 걸어줘야 하는 일상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로 그 걱정들이 모두 해소된 것이었다.
이제 적어도 호흡을 하는 일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게 되었다.
“그대들의 노고를 잊지 않겠노라!!!”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마왕의 연설, 마지막 한 마디는 광장을 힘껏 뒤흔들 정도였다.
길지도 않았고 오히려 속전속결로 할 말만 하고 바로 끝나버린 가벼운 연설에서, 자신의 공은 한 마디도 꺼내지 않고 백성들의 공만을 치사한 마왕.
백성들은 자신들의 땀과 노력이 자신들의 생활을 바꾸고 미래를 바꾸는 큰 힘으로 돌아온 것에 대해 감동하여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다.
그 환호와 함성 속에서 네로멜티아와 측근들은 유유히 광장을 빠져나왔다.
“다들 많이 좋아하셔서 다행이에요. 모두가 환호하고 서로 끌어안고 웃을 때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마나 스캔으로 세 차례 검사해 봤으나 마력장의 어느 부분에서도 이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주인님.”
마법진 완공식의 연설이 끝난 뒤, 아직도 광장에는 환호성이 들려오는 가운데 마왕과 측근들은 막사에서 회의를 시작하고 있었다.
각자 안도와 축하를 전해오는 비서와 메이드에게 애정을 담아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네로멜티아.
그녀들의 말대로 대규모 정화 마법진의 완공은 무척이나 성공적인 행보였고, 축하할 만한 일이었다.
명백한 희사(??)였으나, 언제나 여러 가지 의견은 존재하는 법이었다.
“그러나, 숙녀분들. 축하도 중요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이제 시작이라는 거지요. 아직 토양의 오염과 수원의 오염. 더 나아가 해양의 오염이나 식량 확보, 건축, 자재 생산, 채굴, 벌목, 경제 구축 등등 구상할 것이 천지랍니다!”
“아티스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대로 느슨해질 수는 없는 법입니다.”
“… 으응……. 느슨해지자고 한 적은 없다구요. 그저 주인님도 고생 많이 하셨구, 다들 힘내셨으니까…….”
그저 좋은 일이 생겨 좋다고 했을 뿐인데, 썩 동조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심지어 지적을 하는 이야기까지 나오자 러스테리아는 저절로 볼멘소리가 나와버렸다.
확실히 아티스의 선에서 끊었더라면 기분이 나쁠 일은 없었겠으나, 눈치 없는 크로포드가 더 나아간 말로 쐐기를 박아버렸으니 러스테리아만 철부지 어린애로 보이는 모양새가 된 것이었다.
물론 기분이 나빴던 것은 축하의 말을 건넨 베아트리스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의 무미건조한 표정 속에 미약한 변화가 일어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져 있었다.
즉시 분위기를 읽은 네로멜티아는 조금 토라진 모습을 보이는 러스테리아의 허리를 감싸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러스테리아는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아오는 주인의 팔에 급속도로 심장이 두근대고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다소 당황한 러스테리아를 마주하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던 네로멜티아는 그녀에게 싱그러운 미소를 띠고 말했다.
“고마워, 러스. 난 역시 네 이야기가 기쁜걸?”
“하읏…!”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기쁨을 느낀 러스테리아는 묘한 신음을 흘리고서 얌전히 네로멜티아의 품에 안겼다.
주인의 어깨에 기대어 그 따뜻한 체온과 향기로운 체취를 느끼며 눈을 감는 모습은, 마치 잘 길들여진 한 마리의 고양이를 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베아트리스는 그녀 특유의 무미건조한 표정을 띠고 조용히 러스테리아를 응시하더니, 아직 비어있는 주인의 반대편 어깨에 기대어 러스테리아와 똑같은 자세를 취하며 자신 역시 주인에게 기대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애정을 과시해오는 비서와 메이드를 어찌할까 생각하는 도중, 네로멜티아는 고블린 킹의 흡족하고 유쾌하다는 듯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양손에 꽃이로군요! 오호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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