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29화 (29/216)

〈 29화 〉 고블린 장송곡

* * *

성에서 들려온 지축을 울리는 굉음에 놀란 이들이 달려와 목격한 것은 자색 항아리를 소중히 안아 들고 폐허에서 나오는 네로멜티아의 모습이었다.

눈가가 상기된 채 촉촉하게 젖은 그 모습에서 무슨 일인지 의문을 표할 만큼 눈치가 없는 이는 없었다.

그저 양측으로 나뉘어 길을 터준 채, 고개를 숙여 묵념하는 이들뿐.

그날 저녁은 마왕성의 외벽 너머 외곽으로 나가 무덤을 만드는 일이 한창이었다.

천년의 세월 동안 썩어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어 발견되는 유골은 사실 흔치 않은 일이었겠으나, 그 수가 이백이 넘었으니 휴미안의 습격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망자가 나왔는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모든 이들의 무덤을 정성껏 만들고, 향후 마왕성의 재건 공사가 진행되며 발견될 유골들의 자리까지 미리 다져놓은 뒤에서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늦은 저녁 식사이건만 그에 불만을 표한 이들은 한 명도 없었고, 그저 희생자를 기리며 침묵을 지키거나 가라앉은 분위기를 애써 환기하기 위해 일부러 떠드는 이들뿐이었다.

뇌성벽력보다 강렬한 것은 고요와 침묵이었다.

그것은 그나마 일부러 떠들던 이들의 말소리조차 이내 집어 삼켜버렸고, 이따금 그릇이 달각거리는 소리나 겨우 들릴 정도의 무거운 정적을 끌고 왔다.

모두가 함께 만든 군중의 정적이 오감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해도

살아만 있으면 좋은 날이 올 거라

말했던 내 친구여

광장의 중심, 스튜를 끓이기 위해 마련된 큰 화톳불 앞에 선 아티스가 조용히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예고나 언질도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된 그의 노래.

많은 이들이 모인 장소였음에도 무거운 적막이 흐르는 와중에 그의 노래는 드넓은 광장의 곳곳에 앉은 이들 모두가 듣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렇게 멀리 떠나갈 거라면

찬란한 태양 아래 나아가

자유로이 걸으며

일생을 즐겨 볼 것을

고블린들이 일제히 아티스의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익숙하지만 데모니안들에게는 생소했던 노래.

고블린이 동료를 보낼 때 부르던 장송곡이었다.

언제 생겨나 전해져왔는지 모를 그 오래된 노래는 모르는 고블린이 없을 정도로 익숙한 것.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을 행복한 저승으로의 여행이라 여기는 고블린들에게 장례는 결코 비통한 의식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떠난 친구여

아무런 걱정 없이 돌아볼 생각 말고

좋은 길 행복한 곳으로 가시게나

아티스의 앞에 모인 고블린들이 모두 입을 모아 아티스의 장송곡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더욱 커진 노랫소리와 가슴에 전해지는 울림.

데모니안들은 먹던 스튜의 그릇을 하나둘 내려놓기 시작했고, 저마다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아티스가 자리한 화톳불의 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다시 만나거든

오랜만에 만난 나와 술이나 한잔 하지

못다 한 이야기 밤새도록 나눠보세

합창하던 고블린들이 무언가에 홀린 듯 모여든 데모니안들의 손을 잡아주기 시작했다.

자신의 손을 잡아오는 고블린을 눈물을 흘리며내려다보는 데모니안.

고블린은 슬픔에 몸살을 앓는 데모니안에게 힘껏 웃어주고, 데모니안은 가슴 깊이 전해지는 따스한 감정에 울면서도 웃었다.

처음 들어보는 알지 못하는 노래였음에도 어눌하게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 데모니안들이 잘 따라올 수 있도록 더욱 크게 소리높여 노래를 부르는 고블린들.

기름진 고기와 따끈한 빵!

싱싱한 야채와 달콤한 과일!

뜨거운 스튜에 따끈한 브랜디!

행복한 만찬을 함께 하세!

끝이 없는 반복 구절이 시작되었다.

두어 번쯤 같은 구절이 반복되자, 금방 익숙해진 멜로디와 가사에 마음껏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데모니안들은 어느새 고블린들과 하나가 되어 밝은 음률의 장송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고블린 장송곡에는 끝이라는 것이 없었다.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이 온 마음을 다해 부르는 노래.

하나둘 내킬 때 그만두기 시작하다가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노래를 마치기 전까지는 결코 끝이 아닌 노래.

무한히 반복되는 후렴구(???)는 그들이 내려놓은 스튜가 식어 빠질 때까지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깊고 공허한 밤하늘에 모든 감정들을 쏟아내겠다는 듯이.

“주인님,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와.”

막사 밖에서 들려오는 러스테리아의 조심스러운 음성에 네로멜티아는 작성하던 설계도를 한편으로 치우며 말했다.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고 출입구의 가림막을 들추며 내부로 들어선 러스테리아.

그리고 그녀의 뒤로 깨끗하게 목욕을 마친 베아트리스가 따라 들어왔다.

“늦은 시간까지 정무를 보고 계시는데, 제가 방해한 걸까요?”

“아니야. 노래를 듣고 있었어.”

“아, 아티스님이 부르고 계신 노래 말씀이신거죠?”

막사 밖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장송곡은 광장에 자리한 모든 이들이 함께 부르고 있었기에, 광장과 거리를 두고 다소 떨어진 위치에 세운 막사의 내부까지도 선명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따라 부르는 일을 할 수는 없었으나, 멀리서 들려오는 노래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네로멜티아의 가슴 속에도 각별한 감정을 전해주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아티스에게 고맙다고 해야겠어. 침울해진 백성들을 이런 식으로 위로하다니, 나로서는 생각도 못 한 일이야.”

“그분도 어쨌든 왕이시잖아요. 백성들에게 생색 한 번 안 내시고 위엄 한 번 세우지 않으시며 홀로 정무를 보고 계신 주인님과 방식은 달라도 백성을 위하는 행동이라는 것만은 같은 거죠.”

“그래, 그렇구나.”

네로멜티아는 아직까지도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있는 장송의 노래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슬픔에 차서 울먹이는 소리로 노래를 따라하던 데모니안들은 어느새 그 음성이 활기차고 밝게 바뀌어 있었고, 이제는 축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떠들며 즐기기까지 하고 있었다.

슬픔을 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조리 쏟아내게 하고, 그 자리를 기쁨과 즐거움으로 채운다.

눈물짓던 자를 자연스럽게 웃게 만들며, 마음속 깊은 응어리를 풀고 감정을 밝게 물들인다.

고블린의 장송곡은 그런 것이었다.

네로멜티아는 자연스러운 애도와 따뜻한 위로가 배어있는 이 노래가 퍽 마음에 들었다.

“역시 함께할 이들이 많이 필요해. 나 혼자서는 벅찬 일이 많아.”

혼잣말같이 중얼거린 네로멜티아의 말은 결국 그 자리에 함께한 러스테리아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기에 러스테리아는 고개를 숙여 주인의 말에 경청했다.

허공을 바라보며 무심히 하는 이야기 같았으나 그 심경은 많은 상념들로 인해 파문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러스테리아가 없었더라면 생존자들을 곧바로 찾는 일은 요원했겠지. 크로포드가 없었더라면 생존자들이 안전한 삶을 살며 천년이나 버텨냈다는 상황은 없었을 거야. 아티스가 없었더라면 마왕성이 안전한지 조사하는 일도 시간이 걸렸을 테고, 나아가 오늘 백성들의 슬픔을 달래준 것은 누가 뭐래도 아티스 그가 만든 업적이야.”

“주인님…….”

“신하가 필요하고 동료가 필요하고 친구가 필요하다. 과거 헤모니겐트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도 많은 이들의 도움과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현재로서는 인력이 부족해. 나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힘만 세고 무능한 마왕이 될 수는 없어.”

러스테리아는 뭔가 말하고 싶은 바가 있었으나 한 번 참으며 삼켜냈다.

그리고 신중히 다시 생각을 정리한 뒤,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이야기를 전하는 자세에 신경을 썼을 뿐, 그녀가 전하고 싶은 생각과 마음에는 결코 변동이 없었다.

“인력이 모자라다는 말씀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과거 헤모니겐트에 비하면 인재도 터무니없이 모자라구요. 휴미안의 공습이나 드래곤의 습격이라도 벌어진다면 전력이 될 수 있는 것은 주인님과 저, 크로포드님, 그리고 여기 계신 베아트리스님 정도겠죠.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 하지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지?”

“… 역시 제 마음 같은 것은 훤히 들여다보고 계시네요. 주인님께서 계셨기에 제가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고, 크로포드님과 생존자분들이 안전을 보장받아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으며 아티스님과 고블린분들 또한 이끼와 탁한 물을 먹는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베아트리스님 또한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되셨죠.”

러스테리아는 살며시 주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두 손을 꼬옥 감싸 안았다.

네로멜티아는 그에 따라 포근하고 따스한 러스테리아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보랏빛의 매혹적인 눈동자가 네로멜티아에게 가까이 다가와 눈빛으로 마음을 전하려 하고 있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고 있었다.

“이 헤모니겐트에서 가장 높으신 분. 가장 큰 힘을 지니신 분. 그리고 가장 큰 자애를 가지신 분. 주인님께서 계시지 않으시다면 마왕성이나 헤모니겐트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인재가 필요하시면 그저 명령해 주세요. 인재가 필요하니 다른 이들을 찾으라구요. … 주인님의 존재를 깎아서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으세요…….”

네로멜티아는 자신의 손을 꼬옥 쥐고 있는 러스테리아의 손을 맞잡았다.

보드라운 피부와 여린 손결이 느껴지고, 그녀가 얼마나 강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지도 전해지고 있었다.

온갖 근심과 상념들이 씻은 듯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녀의 마음만으로도 몹시 든든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알겠어. 고마워 러스.”

“인재가 필요하시긴 하네요! 주인님은 제가 꼭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러스가 없는 생활은 생각도 해본 적 없는걸?”

“주인님도 참…….”

어느새 자신의 손을 감싸온 러스테리아의 손을 역으로 붙들고 그 고운 손결을 매만지며 감상하기 시작한 네로멜티아.

오히려 러스테리아가 부끄러움에 손을 빼려고 시도하는 듯했으나, 네로멜티아가 오히려 놓아주지 않는 상황이었고 러스테리아 역시 진심으로 손을 뺄 생각은 없었기에 그녀의 짧은 저항은 귀여운 애교 수준에서 끝나버렸다.

“볼일이 생기신 모양이니 저는 나가 있겠습니다.”

점차 농익기 시작하는 분위기에 여전히 막사의 한편에 서 있던 베아트리스가 그녀 특유의 감정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작별을 고하려 했다.

그에 따라 네로멜티아와 러스테리아는 너무 본인들의 세계에만 빠져있었다는 생각에 조금의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네로멜티아는 베아트리스의 말을 짐짓 모르겠다는 듯 꾸며진 의문을 던졌다.

“볼일이라니…. 무슨 말이야 베아트리스…?”

“주인님께서는 비서관님과 함께 지금부터 ‘★Viva★ 쌔끈 빵빵한 미녀와 뜨거운 ♥Sexual Party Tonight♥’을 즐기실 계획 아니셨던가요.”

“너…!! 너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1205년 전 주인님 방을 청소하다가 주인님께서 책장 뒤에 숨겨 두신 ‘나의 폭유 서기관은 음탕한 성노예’라는 소설을 우연히 발견해 읽어보았었습니다.”

“너!! 그거!! 우측 최상단에 책으로 위장한 레버를 당기고 암호를 누르고 마력 인증까지 해야 나오는 금고 안에 들어있던 거잖아!! 우연히 찾은 게 아니잖아!! 대놓고 기를 쓰고 뒤져 봤구만!!!”

수치심에 달아올라 낯을 붉게 물들인 네로멜티아의 흔치 않은 모습에 러스테리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숨겨져 있던 주인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무표정한 모습을 고수하는 베아트리스를 바라보며 어떠한 생각에 잠겼던 러스테리아.

네로멜티아가 부끄러움에 언성을 높이고 베아트리스는 특유의 무미건조한 어조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해대는 가운데, 문득 어떤 답 하나를 도출해낸 러스테리아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베아트리스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혹시 베아트리스님도 관심이 있으셨던 건가요?”

“… 무슨 말씀이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찾기도 열기도 어려운 금고를 굳이 노력을 들여가며 살펴보시고, 그 안에 들어있는 소설도 문장을 외우실 정도로 몰두해서 읽어보시고.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실 것 같은걸요?”

“…….”

자신의 비서와 메이드가 무슨 대화를 주고받는지, 자신에게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모습에 의문이 들었다.

굳이 듣고자 한다면 청각에 집중해서 들을 수도 있는 대화였으나, 애써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하는 이들의 대화를 훔쳐 듣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잠시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러스테리아는 눈을 크게 뜨고 놀라거나 입을 가린 채 키득키득 웃거나 하는 등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동안 대화를 나누던 러스테리아는 머지않아 고개를 돌려 자신의 주인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모습으로 말을 전했다.

“아까 말씀드린 상 있잖아요, 주인님. 그거 베아트리스님하고 같이 받아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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