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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28화 (28/216)

〈 28화 〉 한 공학자의 유산

* * *

누군가의 열정과 노력이 담긴 연구 기록들.

그것은 분명 소실된 기술들을 되찾을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었다.

세세한 원리조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서술한 문서의 산은 천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 헤모니겐트의 재건에 도움을 주는 기반이 되는 것이었다.

마도 공학, 화학, 금속 조형, 인공 인격, 마력 운용 등등 헤아리기 힘든 방면의 기술들이 집약된 그의 연구는 가치를 따지기 힘든 막대한 유산이었다.

네로멜티아는 천년이나 지난 낡은 서류들이 조금이라도 훼손되지 않게 조심히 그것들을 들어 자신의 디멘셔널 스토리지에 보관했다.

후에 기술 연구에 자원할 이들을 선출해서 각 방면의 부서를 창설한 뒤, 본격적인 연구 개발이 시작되면 맡길 생각이었다.

개발 중에 방치된 인형들이나 부속품, 연구 시설은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자신이 임의로 그것들을 옮기는 것보다 연구의 직책을 맡은 이들이 이 장소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예기치 못한 변수도 생기지 않고 더 나아 보였기 때문이다.

마왕성이 재건되고 이 연구실을 다시 개방할 때까지의 기간 동안 문서를 받은 연구원들이 기초지식을 습득한 뒤 연구실 전부를 이어받으면 될 일이었다.

“더 챙길 것은 없어 보이네요. 그래도 연구에 관련된 문서들을 얻은 것은 엄청 이득이었죠?”

주변 조사를 마친 러스테리아가 손을 털며 이야기를 하는 중, 네로멜티아는 조용히 연구실의 구석으로 다가갔다.

연구원들이 입는 하얀 가운 하나가 세월을 버티지 못해 누더기로 변한 채로 걸려 있던 옷걸이.

마치 이파리 하나 없는 겨울의 앙상한 나무와 같은 모양새를 한 옷걸이 앞에 선 네로멜티아는 그것의 가지 하나를 붙들고 아래로 꺾었다.

평범한 걸이로 위장된 레버였던 그것은 곧 마력이 운용되며 발생하는 구동음을 냈고, 그에 따라 벽으로 위장하고 있던 숨겨진 문이 열리게 되었다.

“완성된 인형들이 하나도 없어. 그럼 숨겨진 방에 뭔가 있겠지.”

숨겨진 방의 문이 열리자, 방의 내부에도 마력이 흘러들어 조명이 환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온갖 책과 노트들이 꽂혀있는 원형의 방.

그 가운데에 놓인 긴 책상 위에 가루가 되어가고 있는 백골의 시체가 한 구 누워있었다.

그리고 책상의 아래에 기대어 눈을 감은 채 잠들어있는 메이드 여성이 하나.

에메랄드 빛의 긴 머리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전혀 가려지지 않는 광택과 윤기는 너무도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흑과 백의 구분이 뚜렷한 하녀복은 삭을 대로 삭아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헤지고 구멍이 난 의복의 틈으로 신체의 은밀한 속살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전신에 잿빛의 먼지가 쌓여 있었음에도 그녀의 피부는 매끄러운 광택을 유지하고 있음이 확연해 보였고, 그 상반된 부조화의 모습은 마치 오래된 유적에서 발견한 천사의 석상을 보는 느낌이었다.

먼지를 가득 뒤집어쓰고 누더기나 다름없는 의복을 입고 있으나 그 매혹적인 자태는 결코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어느 한 군데 상한 부분조차 없었다.

“이… 이 분은…!!”

“로널드 거트만이 그 일생 단 한 번 유일하게 자신의 창조물을 타인에게 준 적이 있었지. 그리고 나는 그 선물을 받았고.”

네로멜티아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책상에 기대어 잠들어있는 여성에게 다가가 그녀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맨살에 손을 얹기 위해 상의의 천을 조금 건드렸을 뿐인데, 삭을 대로 삭은 천은 그 가벼운 손길조차 버티지 못하고 바스러져 떨어져 나가 버렸다.

가슴에 손을 얹은 네로멜티아는 자신의 루이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여성의 피부를 타고 전해진 마왕의 루이나는 그녀의 내부로 흘러들어 마력 회로를 따라 상체의 중심부에 위치한 마력석까지 전해졌다.

여성의 전신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며 은은한 빛이 내부에서부터 피부를 넘어 드러났고, 그 빛의 형태는 그녀 전신에 각인된 마력 회로의 모양이었다.

“로널드가 내게 준 창조물. 그 일생 최고의 걸작. 내 소중한 전속 메이드.”

“어떻게 잊을까요……. 한시도 주인님 곁을 떠나지 않던 분인데.”

이 여성이 누구인지 모를 수가 없었던 러스테리아.

러스테리아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고,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의 반응이었다.

머지않아 빛이 사라진 뒤, 네로멜티아는 여성의 가슴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여성이 부스스 일어나며 눈을 떴다.

밝게 빛나는 푸른 빛의 눈동자.

스스로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는 그 아름다운 눈동자의 내부에 새겨진 복잡한 마력 회로.

그녀가 조금 상체를 움직였을 뿐임에도 전신에 수북이 쌓인 잿빛의 먼지가 희뿌옇게 날아올라 시야가 가려질 지경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지가 피어오르는 상황에서도 여성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고, 재채기나 기침 따위는 기미도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여성은 자신의 앞에 선 네로멜티아와 러스테리아를 확인한 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신체를 일으킴에 따라 말라비틀어져 볼품없이 헤진 하녀복이 완전하게 바스러져 지면에 조각조각 떨어졌고, 그에 따라 의복이 감추고 있던 여성의 나신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성은 일말의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는 듯, 무표정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여 예스러운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베아트리스 더 매직 돌(Beatrice the Magic Doll). 주인님의 전속 메이드. 인사 올립니다.”

“옆에 있는 건 로널드인가?”

에고 돌(Ego Doll)의 권위자이자 손꼽히는 학자이며 손재주 또한 따라올 자가 없는 장인이었던 공학자 로널드 거트만의 모든 기술과 미학이 집약된 최고의 인형.

네로멜티아에게 전해진 뒤,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던 날까지 그녀의 곁에서 시중을 들던 에고 돌 메이드.

베아트리스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놓인 책상의 백골을 바라보다가, 다시 네로멜티아를 바라보며 답을 전했다.

“맞습니다. 주인님께서 저의 호위를 거절하시고 아버지를 지키러 가라고 명하셨기에 아버지의 곁으로 향했습니다만, 저는 아버지를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미 로널드가 사망했을 거란 사실은 네로멜티아도 짐작하고 있었다.

확신이라고 해야 맞을 정도로 필연히 정해진 일이었다.

로널드는 마왕의 다른 측근들과 다르게 권속의 계약을 맺지 않아 영원한 수명이 보장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네로멜티아가 사망했던 과거 당시만 해도 평범한 데모니안이 가질 수 있는 평균적인 수명의 그 이상을 살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노인이었던 로널드 거트만.

그 이후 천년이나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어떤 식으로든 사망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 최후는 맞이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메이드를 창조자의 곁으로 돌려보냈던 것이다.

메이드가 그녀 본인의 아버지를 지켜낼 수 있기를 바라며.

“아버지께서는 본인을 지키러 온 제게 자신보다는 다른 이들을 구하라 명령하셨고, 한낱 에고 돌에 불과한 저는 명령을 거스를 수 없었습니다. 인식할 수 있는 범위 내의 피난민들을 모두 구한 뒤, 돌아왔을 때는 이미 습격을 받으셔서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네로멜티아는 차원의 공간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내 베아트리스의 먼지투성이 얼굴을 다정하게 닦아 주었다.

잿빛의 먼지가 지워지며 화사하게 빛나는 그녀의 피부가 더욱 선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네로멜티아는 그녀의 먼지를 닦아주는 데에 열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무심히 다른 질문을 건넸다.

“그의 최후는 어땠지?”

“자신의 모든 아이들을 사용해서 피난민을 추격하는 휴미안 병사들을 끝까지 막아내셨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망가지고 나서는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네로멜티아는 차원의 공간에서 부드러운 담요 하나를 꺼내어 베아트리스에게 덮어 주었다.

먼지투성이의 여체가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일이 없도록 그녀의 신체에 잘 둘러주었다.

정성스러운 주인의 손길에도 베아트리스는 무감정한 표정만을 보인 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서 있을 뿐이었다.

담요를 둘러주고 나서도 한동안 손수건으로 베아트리스의 눈과 입술 등을 닦아주던 네로멜티아는 그 손수건이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어 더는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손길을 멈췄다.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돌려 로널드의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조금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러져 가루로 흩날릴 것 같은 말라빠진 백골.

이미 반쯤 가루가 되어 본래의 형체조차 잃어버린 뼛조각.

그가 생전 입었던 하얀 연구복 또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삭아 바스러져 백골의 바스러진 가루와 한데 뒤섞이고 있었다.

네로멜티아는 디멘셔널 스토리지에서 고급스러운 자색 항아리 하나를 꺼낸 뒤, 공중 부양마법 레비테이션(Levitation)을 사용해 최대한 유골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옮겨 담았다.

결국 티끌만한 가루 한 톨조차 남기지 않고 모두 옮겨 담은 네로멜티아는 유골이 담긴 자색 항아리를 소중하게 끌어안고서 바로 방 밖을 나가려 걸음을 떼었다.

“러스. 베아트리스에게 이상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잘 보살펴서 데리고 나와 줘.”

“네, 주인님.”

러스테리아는 주인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여 대답했고, 베아트리스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에 남은 먼지를 정성껏 털어주었다.

스스로 먼지를 뒤집어쓰는 일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하녀를 소중하게 대해준 주인의 모습에 러스테리아는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거기다 천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만난 베아트리스의 변함없는 모습에 감격하는 마음 역시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의 어른거리는 눈망울과 상반된 그 입술은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러스테리아가 베아트리스의 먼지를 털어주기 시작할 때, 네로멜티아는 방을 나서던 몸을 멈춰 세운 뒤 그대로 출입구에 섰다.

무언가 할 말이 있었던 네로멜티아는 한 마디를 건네되 결코 고개를 돌리진 않았다.

“… 나는 네 아버지가 너무나 자랑스럽구나.”

그 한 마디를 더 남긴 뒤, 방을 나선 네로멜티아는 끝내 베아트리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직한 그녀의 목소리가 촉촉하게 젖어있는 듯 느껴진 것은 그저 한순간의 착각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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