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21화 (21/216)

〈 21화 〉 고블린의 왕 (1)

* * *

의기양양하게 앞장서며 길을 안내하는 고블린들은 근본을 알 수 없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하며 기쁜 마음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고블린들의 가운데에서 그들이 부르는 괴상한 콧노래를 함께 부르며 걷고 있는 러스테리아.

고블린들은 러스테리아를 둘러싸고 노골적인 친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어미를 따르는 강아지 무리와도 같이 보이는 고블린들의 모습을 보며 퍽 재미있다고 느낀 네로멜티아는 당장 만날 고블린의 무리를 비롯하여 훗날 만날 다른 종족들과의 접선과 관리도 러스테리아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지능이 낮은 고블린 몇을 길들였을 뿐이니 차후 조금 더 그녀의 재능을 지켜보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여기다! 여기!”

“옆길로 가면 쓰레기 구역이 나온다! 여기로 가야 한다!”

방향을 이리저리 틀어가며 이동했기에 방향감각이 상실되기 쉬웠고, 갈림길 또한 많아서 길을 외우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고블린들은 지리를 외운 것인지 숨겨진 표식을 읽는 것인지 거침없이 길을 나아갔고, 러스테리아는 어느새 생각을 비운 채 그들이 이끄는 대로만 걷게 되었다.

“이 방향은… 그렇군.”

“어머, 주인님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시는 건가요?”

“이 하수도 지역에서 가장 큰 공간을 가지고 있는 구역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고블린들 규모도 꽤 될 것 같은데?”

러스테리아 자신은 위치를 파악하는 일을 관둔 채 고블린들만 따라다닌 지 오래인데 자신의 주인은 현재 위치의 파악을 넘어 목적지까지 예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애와 존경이 끓어오른 러스테리아는 그 보랏빛 눈에서 별이라도 쏟아질 듯 반짝이는 시선으로 네로멜티아를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도 아시는 거네요?”

“그럼. 지금 우리는 ‘노움의 눈물정(?)’ 아래를 지나고 있지.”

“우와! 거기 정말 그리워요! 크리스프(Crisp)나 소시지가 정말 맛있었는데!!”

천년 전의 행복한 추억에 잠겨 스르르 눈을 감는 러스테리아.

반면에 문득 떠오른 과거의 화제에서 피어나는 추억에 네로멜티아는 마냥 행복감을 느낄 수는 없었다.

애틋한 과거의 기억 속에는 지나간 행복의 감미가 존재했으나, 지금 이 순간까지 이어지는 아픔 또한 존재했다.

“맥주는 꽝이었는데 말이야.”

“에… 그래도 음식은 맛있으니까 괜찮았어요!”

“맥주 장인이 되고 싶다고 그토록 떠들고 다녔는데, 결국 맥주 외에 다른 것만 잘했었지 아마?”

천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당장 눈앞에 그려지는 드워프 주인의 모습.

웅장한 풍채에 어울리지 않는 흰 드레스 셔츠와 검은 베스트.

네로멜티아의 애검을 만들 정도의 명장이었으나 본인은 시끌벅적한 여관 술집에서 맥주 장인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했던 아이러니한 괴짜.

그 정겨운 모습을 그리며 씁쓸한 미소를 짓던 네로멜티아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고 애써 상념을 지워냈다.

“여기가 우리들의 집이다!”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들어선 장소.

이곳 역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깊은 어둠이 자리해 있었으나 라이트 마법으로 생성된 빛의 구체가 어둠을 흩으며 그 내부를 드러나게 하고 있었다.

러스테리아는 다소 감탄하며 이 드넓은 공간의 중앙에 빛의 구체를 날려 고정해 두었다.

“우와… 여긴 대체 어디길래 이렇게 큰 공간으로 이루어진 거죠?”

“외벽 내부에 자리한 마왕성과 그 일대 중 가장 큰 하수도가 필요한 장소는 어디일까?”

“… 으음… 역시 성이 아닐까요!? 주인님께서 머무르시는 가장 중요한 장소니까!”

사소한 대답에서조차 주인에 대한 경애의 감정이 뚝뚝 묻어나는 러스테리아의 모습이 몹시 예쁘고 귀여워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네로멜티아.

마왕은 귀여운 비서의 보랏빛 머리를 포근하게 쓰다듬으며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마왕성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상하수도가 있어. 거기다 물을 그렇게 많이 쓰지도 않고 빗물은 해자로 흘러드니까 그리 크지도 않지.”

“으응… 그럼… 혹시 광장인가요?”

“정답이야. 가판(??) 상점도 많았고, 음악회나 연극 공연이 열리기도 했던 그 광장.”

성의 외벽 내부에서 마왕성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장소는 그다지 꼽을 곳이 많지 않았다.

러스테리아의 말은 정답이었고, 현재 나타난 이 큰 규모의 하수도 공간은 광장의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었다.

큰 경기장 따위를 지하에 건설해 놓은 것만 같은 드넓은 공간.

본래 광장 곳곳에서 빗물을 모아 흘려보냈을 하수구 통로들이 높은 곳의 사방에 뚫려있었고, 우기(雨?)에 많은 하수를 감당해야 했기에 그 규모는 상당한 것이었다.

“이렇게 큰 장소가 광장 아래에 파묻혀 있을 줄은 몰랐어요… 여기가 무너졌으면 큰일이었겠는걸요?”

“광장과 하수도 사이에는 단단한 화강암 지층이 버티고 있어서 괜찮아. 운석 마법이라도 몇 발 떨어지지 않는 이상 지층이 무너질 일은 없을걸?”

적당한 담소를 나누는 마왕과 비서의 주위로 고블린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이종족 여성 둘이 자신들의 거주지에 나타나자 경계심과 호기심을 동반한 채로 머뭇머뭇 다가서는 것이었다.

개중에는 가냘픈 창이나 녹슨 단검 따위의 빈약한 쇠붙이를 들고서 극도의 경계심에 부들부들 떠는 고블린도 존재했고, 노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엄지를 빨며 다가서는 호기심 많은 고블린도 존재했다.

네로멜티아나 러스테리아는 고블린들이 결코 해를 끼칠 수 없는 절대적인 강자이자 하늘 위의 존재들이었기에 고블린들에 대하여 일말의 경계심도 없었고, 그로 인해 그녀들이 보이는 태연자약한 모습은 고블린들에게 의미 모를 경외(??)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어느새 그녀들을 둘러싼 고블린들은 어림잡아도 삼백.

네로멜티아는 그들의 숫자에 다른 의미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오염된 환경과 모든 것이 말라죽거나 괴이하게 변해버린 이 땅에서 이토록 많은 수의 고블린들이 생존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왕을 잃고 천년의 세월 동안 휴미안들의 눈을 피해 살아남아 온 고블린들에게 감격과 감탄만이 들 뿐이었다.

그리고 후방의 고블린 무리가 일제히 갈라지며 한 고블린이 유유히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오호호호호! 고블린의 짧은 일생에 이토록 아름다운 여성분들을 만나 뵙게 될 줄이야! 저의 일생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군요!”

카드뮴 레드(Cadmium Red) 컬러의 플랫 캡에 파이프를 물고 있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고블린.

밝은 갈색의 코트를 입고 있으며 하얀 드레스 셔츠에 코트와 같은 색의 크라바트를 두르고 있는 그의 모습은, 그가 녹색 피부에 노란 눈을 가진 고블린임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예스러운 귀족으로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거기다 서로가 이어져 있는 하얗게 센 콧수염과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 연륜마저 느껴지는 모습.

그 덥수룩한 수염을 오히려 잘 빗질하여 단정히 정리한 모습을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그의 외견을 더욱 고풍스럽게 만들어주는 소재가 되고 있었다.

기품이 넘치는 노신사의 모습을 한 고블린.

“너는 누구지?”

“오, 이런. 숙녀분들을 앞에 두고 무례를 범하고야 말았습니다! 용서해 주시길.”

네로멜티아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능숙하게 받아넘기고 너스레를 떨며 예의를 갖추는 모습은 다른 고블린들과 현격한 차이가 있어 보였다.

심지어 그가 행한 인사의 자세는 품격이 절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고개를 숙이며 한쪽 팔을 가슴에 얹는 예스러운 인사는 군더더기 없는 귀족의 예법 그 자체였고, 헤모니겐트가 무너진 지 천 년이 지난 현재 하수도에서 숨어지내는 고블린의 모습이라고는 보기 힘든 것이었다.

“이 늙은이의 이름은 아티스 T. 페인터(Artis T. Painter). 미력한 가운데 부끄럽게도 고블린 킹(Goblin King)의 자리에 추대되어 이들을 이끌어가는 자이지요.”

능수능란하게 굴러가는 아티스의 말솜씨는 들으면 들을수록 그가 다른 고블린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지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로멜티아는 그의 앞에 다가갔다.

여러모로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그가 가진 월등한 지능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묻고 싶었던 것이다.

어눌하게 말을 하며 단순한 지적 능력을 보이던 다른 고블린들을 보면 현재 고블린 사회의 교육이 얼마나 참담한 수준에 이르렀는지 엿볼 수 있었다.

심지어 천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대를 거친 지식의 승계에서도 상당한 양의 정보가 누락 되거나 소실 되었음을 유추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고블린 만큼은 다른 고블린들과는 차원이 다른 독보적인 지능을 가졌다.

더욱 명확히 표현하자면 지혜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그의 능력은 분명 그 근원이 과거 헤모니겐트에 있음이 분명했다.

누군가 그에게 지식을 전파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천년의 세월을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틀림없는 상황이었다.

네로멜티아는 자신의 측근 중 살아남은 누군가의 발자취가 아닐까 싶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티스는 한 손을 펼쳐 네로멜티아를 멈춰 세운 뒤, 정중한 손짓으로 안내를 하며 그녀를 정식으로 초대해 손님으로 대했다.

“뭔가 하실 말씀이 많으실 거라 사료됩니다만, 이렇게 레이디를 마냥 세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안으로 드시지요. 누추하고 보잘것없으나 최선을 다해 접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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