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마왕성의 하수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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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의 모든 오수가 모여드는 곳.
웅장한 마왕성과 그 성벽 내부 아름다운 거주지의 이면에 자리한 더러운 장소.
과거 헤모니겐트의 백성들이 향유하던 행복하고 부유한 삶의 아래, 그 지하에는 온갖 생활의 잔해와 찌꺼기가 흐르는 하수도가 존재했다.
본래 그 누구도 발을 들이길 원치 않는 기피의 장소였기에 관리 대상의 철저한 최하위에 머무는 장소였고, 어딘가 망가지거나 무너져내려 오수가 넘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관리하지 않는 방치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윤택한 생활 여건에 신경을 쓰던 네로멜티아가 마왕으로 집권하던 당시에는 그녀가 스스로 도안을 설계해 개수(??) 공사를 진행했고, 그녀 본인이 직접 나서서 시찰하거나 주기적인 관리를 명하는 등 신경을 쏟은 부분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왕성 일대의 하수도는 어느 한 곳이라도 무너지거나 망가진 구간 없이 잘 유지되고 있었다.
현재 수원지인 아스타즈 티어즈 강을 통해 상수도로 진입한 네로멜티아와 러스테리아는 그 내부의 연결통로를 이용해 하수도로 진입한 상황이었다.
행여 폭우나 역류사태에 하수도의 오수가 상수도로 넘쳐 수원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이유로, 연결통로는 상당히 긴 거리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내려가는 깊이 또한 상당했다.
하수도 역시 물이 흘러야 했기에 상수도의 물을 끌어오는 구조였으나 그 연결통로로 인해 오수가 상수도로 혼입되거나 쥐나 해충 따위가 유입되지 않게 하기 위한 방책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낭떠러지가 구성되어 쥐나 해충이 기어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구간도 여럿 존재한 까닭에 네로멜티아와 러스테리아는 몇 번이고 비행 마법을 사용해야만 했다.
“여기는 생각보다…”
“… 괜찮은데요?”
하수도의 내부는 오히려 아스타즈 티어즈 강의 오염수가 유입되지 않고 잘 마른 채로 존재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수도를 타고 흘러들어온 물들이 큰 중앙통로를 따라 일직선으로 바로 빠져나가고 있었으며, 물이 나누어지며 사방으로 퍼져 나가게 하는 온갖 갈림길들은 수로가 토사로 철저히 막혀 있어 오염수의 진입을 원천차단하고 있었다.
더는 가장자리의 보도를 고집하며 걸어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잘 마르고 깨끗한 하수도의 내부.
오염수가 흐르는 중앙수로만 제외하면 이동에 거칠 것이 없었다.
“누군가 공사를 한 것 같은데.”
“흙탕물이 유입되어서 막힌 건 아닌가요?”
“중앙수로의 유속이 빠른 편이지? 본래 영지 곳곳으로 수류가 나누어지면서 유속 또한 느려지기 마련인데, 물이 일직선으로 흐르기만 하니까 유속이 빠른 거야. 그리고 이런 유속에서 평범한 토사 따위가 버틸 수 있을 리 없지. 누군가 일부러 쌓았더라도 반나절이면 전부 물에 깎이고 무너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걸.”
“그, 그럼…”
“자세히 봐.”
토사로 만든 벽을 유심히 들여다본 러스테리아.
흙벽의 사이사이에 나무로 만든 뼈대의 끄트머리가 드러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도 흙벽의 뼈대를 나무로 만든 격자 구조물로 만든 모양이었다.
그리고 흙벽과 물이 닿는 부분은 회백색의 단단한 석재로 이루어져 있었다.
“물이 닿는 부분은 석회를 이용해 단단하게 굳혀 내구성을 높인 거야. 그것만으로는 수압을 버티기에 힘드니까 그 뒤로 토사를 덮어 무게를 실어 준거고, 이렇게 하면 틈으로 새어드는 물 또한 막을 수 있겠지.”
“누가… 이런 일을 한 걸까요?”
“재료가 없어서 그랬겠지만, 이런 엉성한 벽은 사실 길어봐야 몇 년 못 버티고 무너지게 되어있어. 누군가 끊임없이 보수하고 있다는 거지.”
그리고 네로멜티아는 의미심장하게 하수도의 내부를 바라보았다.
물이 흘러들지 않는 마른 하수도의 시커먼 내부.
마치 미궁과도 같은 복잡한 내부구조의 광활한 장소.
“누군가 자신의 거주지에 더러운 물이 들어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이야.”
한창 하수도의 내부를 걷기 시작한 네로멜티아는 발걸음이 가벼운 러스테리아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더럽고 징그러운 것을 싫어하는 러스테리아라 할지라도 주인이 진지하게 명령한다면 조금의 불평도 없이 따를 것이었다.
그러나 귀엽고 소중한 비서에게 굳이 싫어하는 일을 맡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더라도 언더 바르커스에 연락이 닿을 수 있도록 데려온 것이었으나, 러스테리아가 계속해서 괴로워할 일만 생긴다면 돌아가라고 할 생각도 있었다.
하수도의 내부는 의외로 악취는 나지 않고, 흙냄새나 밀폐된 공간 특유의 먼지 냄새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하수도에 쌓여 퇴적(??)되었을 많은 오물들은 천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진작에 다 썩어서 흙이 된 지 오래였고, 오히려 습기에 의해 물방울이 맺히는 구간이면 건강한 모습의 연녹색 이끼마저 발견되는 등 상황은 좋아 보였다.
찌익 찌익 찌익
“어머, 귀여운 생쥐예요!”
“아, 쥐는 괜찮아?”
“네?”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귀엽네. 응응.”
러스테리아의 기준에서 쥐 정도는 괜찮은 모양이었다.
지금까지의 모습으로 보건대 마냥 싫어할 줄 알았던 쥐를 오히려 귀여워하는 모습에 잠시 당황했었다.
대충 의문을 얼버무린 네로멜티아는 문득 천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유독 동물을 좋아하던 러스테리아는 농장에 나들이를 가는 일도 좋아했고, 승마 또한 좋아했다.
헤모니겐트에서는 볼 수 없고 정화된 환경에서만 서식하는 다람쥐나 사슴 같은 것들을 도감에서 볼 때면 헤모니겐트 밖의 세계를 동경하곤 했었다.
그런 그녀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휴미안들의 위협이 심상치 않았기에 같이 지낸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헤모니겐트 밖을 구경시켜주지 못했었다.
네로멜티아는 이번에야말로 러스테리아에게 세계를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오염되기 전의 생명이 넘치던 테라리스 또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기껏해야 하수도에서 살아가는 쥐 따위나 보며 감탄하는 일은 없게 만들고 싶었다.
“맛있니? 후후.”
찌익! 찌익!
어느새 러스테리아는 자신의 식사로 챙겨온 빵의 일부를 뜯어 쥐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쥐들은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몇 마리가 더 몰려들었고, 러스테리아가 나눠주는 빵 조각을 두 발로 일어서서 두 손으로 받아드는 영리한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아직 빵 조각을 못 받은 쥐들도 두 발로 일어서서 두 손을 뻗은 채 까맣고 둥근 눈을 반짝이며 애타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이따가 배가 고파도 난 모른다.”
“후후. 그렇게 되면 맛있는 거 또 꺼내주실 거잖아요?”
“거기까지 생각하고 빵을 나눠주고 있었던 건 아니지?”
“설마요! 아앙, 팬케이크 정말 맛있었는데에~”
정겹게 담소를 나누던 도중, 네로멜티아는 고개를 돌려 측면에 난 통로를 바라보았다.
시커먼 어둠만이 자리했기에 무엇하나 보이지 않던 그 통로는 라이트 마법의 빛조차 깊게 들어가지 못해 칠흑 같은 암흑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네로멜티아는 그 어둠 깊은 곳에서 작게 들려온 소음을 감지했다.
그것은 몹시 가벼운 존재의 숨죽인 발걸음이 작은 자갈 따위를 디뎌 난 소음이었고, 차라리 바로 옆에 자리한 러스테리아의 숨소리가 더 크게 들릴 정도였다.
평범한 이라면 결코 잡아내지 못했을 미약한 대기의 떨림 정도였으나, 명색이 마왕이라는 존재가 가진 능력 앞에서는 우스운 위장에 불과했다.
“먼저 해를 끼칠 마음은 없으니, 이리 나와라.”
네로멜티아의 갑작스러운 말에 러스테리아는 쥐들에게 빵 조각을 나눠주던 손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측면 통로 너머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네로멜티아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가 자신들 근처까지 당도했음을 깨달은 러스테리아는 여차하면 공격 마법을 사용할 기세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노란 안광들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키익…!! 맛있어 보인다! 갈색 덩어리!”
“뱃속이 꼬륵꼬륵한다! 먹고 싶다!”
“누구냐! 처음 보는 녀석들!!”
아무래도 러스테리아가 꺼내든 빵의 냄새를 맡고 몰려든 것 같은 존재들.
녹색의 피부에 기껏해야 허리 정도 올 것 같은 작은 키.
샛노란 눈과 매부리코가 몹시 이질적이고 괴상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마른 지푸라기 따위를 얼키설키 대충 엮어 만든 옷으로 그 작은 신체를 겨우 가리고 있는 와중에도 손에 쥔 창만큼은 열심히 관리하는 모양인지 깨나 예리하게 날이 서 있었다.
그들은 향기로운 빵의 냄새에 침을 뚝뚝 흘리면서도 자신들의 소중한 무기를 꼬옥 쥐고서 경계를 느슨히 하지 않고 있었다.
타락한 요정이라고도 불리던 마물, 고블린(Goblin).
“왕께서 오실 때까지 움직이지 마라!”
“먹을래?”
“허윽… 우, 움직이지 마라!”
“이거 되게 맛있는데?”
“우, 움직… 움직이지…….”
능구렁이 같은 태도로 빵을 들고서 고블린들을 현혹시키는 러스테리아.
단호한 기세로 경계하던 고블린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갈색 덩어리의 향기로운 냄새에 현혹되어 그나마 어눌하던 말조차 제대로 끝내지 못할 정도로 눈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너무나 간단하게 고블린들의 경계심을 무너뜨린 러스테리아는 쥐들에게 나누어 주던 모습 그대로 빵을 조각내어 고블린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천천히 먹으렴.”
“와아아아아!!”
“나도!! 나도!!!”
쥐들이 보이던 모습과 동일한 모습을 보이는 고블린들.
작은 키에 까치발까지 들어 두 손을 힘껏 뻗고서 빵이 건네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빵을 받아든 고블린은 냉큼 입안에 빵을 밀어 넣었고, 머지않아 사르르 녹으며 고소하고 달달한 맛을 내는 빵이라는 존재에 잔뜩 흥분하기에 이르렀다.
“안 씹어도 녹아버린다!!”
“쓴맛도 안 나고 썩은 내도 안 난다!!”
“눈물이 난다!!!”
저마다의 어눌한 감성을 늘어놓으며 감탄하는 고블린들의 의견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 것이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다는 것.
그 모습에 러스테리아는 다른 빵을 마저 꺼내 고블린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그들의 눈빛에서 더는 경계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선망과 존경의 대상으로 러스테리아를 우러러보는 느낌마저 들고 있었다.
그렇게 고블린들은 러스테리아에게 말 그대로 조련되어버렸다.
“자, 너희 집으로 안내해주지 않을래? 빵은 아직 많이 있거든. 다른 아이들에게도 나누어줄 줄 알아야 착한 아이지?”
“우리! 안내한다! 좋은 사람! 안내한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네로멜티아는 러스테리아에게서 새로운 면을 보게 되었다.
그녀의 존재가 무엇인지 잊고 있었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모습.
유혹과 현혹이라는 전문 분야를 가진 악마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단지 빵 하나를 들었을 뿐인데 창을 들고 날카롭게 경계하는 고블린들을 순한 강아지로 만들어 버린 무서울 정도의 수완.
네로멜티아는 새삼 감탄하여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역시 서큐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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