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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16화 (16/216)

〈 16화 〉 언더 바르커스 (4)

* * *

언더 바르커스(Under Barkus).

이는 이 공동에 거주하기 시작한 생존자들이 붙인 마을의 이름이며, 바르커스 화산의 지하 깊은 곳에 존재하기에 붙은 이름이었다.

그 단순한 작법의 이름이 어느새인가 생존자들에게는 희망의 상징이 되었고, 그들은 언제든 때가 되면 찬란한 태양의 아래로 나가 자유로이 세상을 거닐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네로멜티아의 귀환으로 인해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자유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고 생존자들은 환희에 물들어 있었다.

“그래, 그간 고생이 많았다. 백성들에게 모자람이 없게끔 하기 위해 쏟은 너의 노력이 보이는구나. 너의 기나긴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제가 한 일은 변변치 않습니다. 주군께서 목숨을 바쳐 저희를 지켜주셨기에 가능한 일들뿐이었습니다.”

크로포드의 거주지에 도착한 네로멜티아 일행은 언더 바르커스를 지나오며 많은 것들을 보았다.

인공 태양의 아래 풍족한 작물들을 내어주는 경이로운 규모의 농경지.

작지만 안정적으로 육류와 그 부산물들을 공급해 줄 수 있는 축사.

자재가 없어 어설프지만, 각종 도구와 무기를 제작해내는 대장간.

농경지에 필요한 흙이나 생활에 필요한 소금, 광석 등을 채취하는 광산.

백성들의 식수부터 세탁, 공업, 청소, 목욕 그리고 농경지와 축사의 수분 공급을 모두 책임지는 수원.

인공 태양의 유지와 관리를 비롯해 마을 유지에 필요한 마법 지원을 책임지는 마법 관리소.

언제든 치료나 간병을 받을 수 있는 치료소.

생활에 필수품을 관리하는 재봉소, 잡화공방, 약방, 양조장 등등.

이토록 다양한 시설들을 마련하여 철저히 운영한 덕에 언더 바르커스가 윤택한 생활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계획하여 잘 운영해온 크로포드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느낌이 들었다.

“아둔한 신하가 주군께 가르침을 청해도 괜찮겠습니까.”

“너는 더없이 유능한 신하이고 예나 지금이나 나는 너에게 기대는 바가 크다. 너는 좀 태도를 편하게 할 필요가 있어.”

“제가 어찌…”

“잘 안되고 불편해도 노력해라. 이건 명령이다.”

네로멜티아는 다소 단호하게 크로포드의 태도를 지적했다.

천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으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바뀌지 않는 그의 태도를 고칠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주군을 무조건 떠받들고 자신을 하찮게 여기기까지 하는 그의 태도는 거의 네로멜티아에 대한 신앙에 가까웠다.

네로멜티아가 크로포드를 대할 때 사용하는 권위적인 지배자의 말투 역시 크로포드의 부담스러울 지경으로 열렬한 충성심에 대응해주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었다.

크로포드가 그녀에게 무한정 충성을 다하니 적어도 권위를 세워주지 않으면 그의 입장이 우습게 되는 일이었고, 그의 헌신적인 충성에 정중히 보답하는 하나의 예의였다.

그러나 네로멜티아의 본성은 그러한 권위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있었다.

신하라는 입장의 이들이더라도 동료나 친우로서 허물없이 대하는 것이 편했던 네로멜티아는 위엄있는 주군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영 껄끄러웠다.

물론 네로멜티아가 오늘 내린 명령의 가장 큰 이유는 크로포드 본인을 위해서였다.

자신을 깎고 하찮게 여겨서 좋을 것은 결단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런 태도라면 아무래도 곤란했다.

물론 그 문제의 근원이 과도한 충성심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 앞으로 진행하실 계획에 대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나름대로 최대한 예의를 배제하고 던진 단도직입적인 질문이었다.

네로멜티아는 일단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여겼고, 미소를 띤 채 그에게 대답해 주었다.

“마왕성의 확보를 우선으로 한다. 그리고 확보된 마왕성을 기점으로 우리의 영토를 빠르게 수복해 나아갈 것이다.”

“받들겠습니다.”

“그러나 대놓고 마왕성에 진입하진 않는다. 현재 이 공동은 마법 관리소의 마법사들에 의해 정화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는 모양인데, 외부는 온갖 독소와 오염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기에 휴미안들이 자신들의 땅으로 대거 물러난 모양이다.”

“제가 휴미안 병사를 사로잡아 캐낸 정보이니 확실해요!”

네로멜티아의 말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러스테리아의 발언.

그녀 특유의 유순하고 순수한 태도에 잊기 쉬웠으나, 그녀는 본래 유혹과 현혹을 특기로 하는 악마인 서큐버스였다.

일개 휴미안 병사 하나가 2200년이나 살아온 서큐버스인 러스테리아의 매혹을 견뎌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나, 대놓고 마왕성에 진입하지 않는다는 이유가 존재한다. 휴미안들은 천년 전의 마왕성 습격 당시에도 마도 거병이라 불리는 거대한 기계들을 앞세웠었다. 그들의 마도 공학은 충분히 찬란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고, 현재는 그 기술력으로 레드문에 이주까지 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그들이 후퇴하긴 했으나 남겨놓은 마왕성에 어떤 장치가 숨겨져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백성들을 이끌고 마왕성에 들어설 수는 없다.”

“그럼, 블랙 나이트를 중심으로 정찰대(???)를 구성하겠습니다!”

“아니. 결단코 너의 노력을 비하하는 것이 아님을 먼저 이야기하겠다만, 현재 블랙 나이트들은 교전 경험이나 임무 경험이 전무한 어린 데모니안들이 많은 것으로 보였다. 검의 실력은 둘째다. 중요한 것은 다수의 경험에 따른 노련함이며 사소한 흔적 하나조차 놓치지 않는 철저함이다. 무언가 특수한 함정이 하나라도 배치되어 있다면,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럼 제가…!!”

“너는 여기서 언더 바르커스를 지켜라. 나는 휴미안이라면 몰라도 케르디하크같은 드래곤들이라면 언제든 나의 존재를 발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게 철저한 방비를 가능하게 하니까. 그러니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습격에 대비할 수 있게, 이 언더 바르커스를 설립하고 운영해오면서 누구보다 이 장소에 익숙한 네가 방어의 임무를 맡는 것이다. 정찰은 나와 러스테리아 둘만 간다.”

급히 사색이 되어버리는 크로포드.

그는 복귀한 지 하루도 되지 않은 자신의 주군이 위험에 처할 것을 염려하여 마음을 놓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언급하거나 내색하지는 않고 있으나 천 년 전 네로멜티아의 죽음은 그에게 크나큰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하수도를 공략할 계획이니까.”

의기양양하게 미소를 띠고 설명을 이어나가는 네로멜티아.

그녀는 크로포드의 걱정을 가볍게 읽어낼 수 있었고, 그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 있는 태도로 향후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네로멜티아가 가진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언더 바르커스의 백성들이 얼마나 잘 지내고 있었는가를 끊임없이 어필한 크로포드의 행동은 자신의 주군에게 보이는 따뜻한 배려였다.

크로포드가 가진 주군의 상실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계획이 얼마나 철저하고 안전한지 설명해주는 네로멜티아의 행동은 자신의 신하에게 보이는 따뜻한 배려였다.

주군과 기사의 서로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회의를 지켜보던 러스테리아는 그 따스함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누추해서 죄송합니다, 주군. 이런 장소에 머무르시게 하다니 제 불찰입니다.”

“됐다. 사치를 좋아하지 않는 너의 청렴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백성들을 위해 아끼며 지냈다는 증거 아니냐. 오히려 이 정도로 넓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으니 더 바랄 것은 없다.”

현재 네로멜티아와 러스테리아는 본래 역병이 돌아 대량의 환자가 발생할 것에 대비하여 건축해 둔, 마을 한편의 구호소(???) 건물에 머무르게 되었다.

언제 사용할지 알 수 없는 기약의 장소이기에 침대를 비롯한 각종 가구 및 시설들을 미리 준비하여 배치해 둔다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일에 무리를 하는 셈이었기에 건물 하나만 달랑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거주에 필요한 물건들은 어차피 네로멜티아의 디멘셔널 스토리지에 가득했기에, 그저 장소가 넓기만 하면 윤택한 거주 환경을 이룰 수 있어 택한 건물이었다.

그나마 크로포드가 마왕이 머물 거주지인데 더러워선 안 된다며 청소 인원들을 모집해 대동해왔으나, 네로멜티아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물의 마법을 이용해 건물 전체의 청소를 순식간에 끝내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청소를 하기 위해 모집되어 온 인원들은 마왕의 위대함에 감탄하며 찬사를 쏟아냈다.

그저 청소를 했을 뿐인데 역시나 마왕이라며 칭송받는 입장이 되니 무언가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으나, 아무래도 순수한 호의인 모양이라 뭐라 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청소를 했다고 칭송받는 마왕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우습고 이상했다.

“러스테리아 비서관님의 거주지도 따로 마련해 드릴 수 있습니다만…”

“내게서 떨어져 지내서야 어떻게 비서의 의무를 다할 수 있겠나. 그러니 같은 장소에 머무를 필요가 있다.”

“맞아요! 마왕님께서 불편함이 없으시도록 제가 철저히 모실게요!”

크로포드와 네로멜티아와 러스테리아의 생각과 의도는 각자가 전부 다른 모양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의견은 일치했기에 네로멜티아와 러스테리아는 같은 거주지에 머무르게 되었다.

철저히 모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결국 건물의 청소와 가구의 소환 및 배치는 전부 네로멜티아가 마법으로 끝내버리는 상황이었고 러스테리아는 그저 구경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크로포드에게는 영 믿음직스럽지 않게 보였다.

그러나 네로멜티아는 러스테리아에게 자신의 시중을 맡기기 위해 그녀와 함께 머무르겠다고 한 것이 아니었고, 설령 러스테리아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녀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네로멜티아가 러스테리아에게 바라는 것은 따로 있었으니.

“주군. 저녁 식사 전에 목욕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바라신다면 온천을 비우도록 하겠습니다.”

“온천!? 그래! 온천이 있었지!!”

아무래도 화산지대에 발생한 공동이기에 지하수가 뜨겁게 달궈진 채로 쏟아져나오는 일은 흔했고, 온천욕이라는 것은 언더 바르커스에서 꽤 보편화 된 문화이자 유흥이었다.

이 설명 역시 앞서 크로포드의 거주지에서 들은 바가 있었고, 네로멜티아는 뭔가 바라는 부분이 있어 몹시 마음 설레며 설명을 들었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드디어 고대하던 그 순간이 온 것이었다.

“좋아! 내 비서관과 함께 목욕부터 하도록 하지! 내 시중은 비서관 한 명이면 충분하니, 다른 인원들은 모두 물려줬으면 좋겠다.”

“어찌 마왕이신 주군께서 몸을 씻으시는데, 그리 조촐하게 진행하려 하십니까.”

“조촐하다니. 러스테리아의 시중이 크로포드에게는 조촐하게 보이는 건가?”

“…!! 실례했습니다!”

다급히 고개를 숙이는 크로포드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간 네로멜티아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마치 전설 속에 나오는 아스타 여신의 자애로운 사랑을 보는 것 같은 모습이었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한 대지의 어머니가 지닌 모성마저 보이는 듯하였다.

“너의 마음은 충분히 알고 있다. 내게 충의를 다하려다 무심코 한 이야기이니 너를 칭찬할지언정 탓할 마음은 전혀 없다. 심려치 마라.”

“하오나…”

“마왕과 비서관이 모든 이들을 물리고 둘이서 무얼 하겠나. 누군가 보고 들으면 곤란한 것이 있기 때문이겠지?”

“…!! 아둔한 신하를 일깨워 주신 은혜 더없이 감사하나이다 주군!!”

무언가 향후 계획에 대한 중요한 밀담이 오고 갈 예정이기에 사람들을 물리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여긴 크로포드는 자신이 주군의 깊은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했다.

네로멜티아가 언급한 ‘누군가 보고 들으면 곤란한 것’이라는 건 결코 거짓말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크로포드가 이해하고 받아들인 의미는 명백히 틀린 것이었다.

물론 네로멜티아는 그의 오해를 정정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감동하는 그의 등 뒤로 지나쳐가는 네로멜티아의 표정은 뭔가 기대감에 벅차 잔뜩 상기된 모습이었다.

대지의 어머니라 불리는 여신 아스타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자애로웠던 미소는 사라지고, 온천에서 맞이할 무언가에 대한 환희만이 남아 몸을 바르르 떨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누르는 모습만이 남았다.

그리고 온천으로 향하는 네로멜티아를 급히 따라나선 러스테리아는 천년 만의 온천 목욕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비누는 어떤 것이 있을지, 향유는 어떤 향기가 날지, 수온은 어느 정도일지.

온갖 기대를 하며 발걸음마저 가벼워져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셋의 마음은 모두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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