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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11화 (11/216)

〈 11화 〉 서큐버스 비서관 러스테리아 (3)

* * *

하나하나 주워온 유목의 무더기가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었다.

별 하나 보이지 않고, 하나 못해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시커먼 밤하늘에는 그저 빛의 부재라는 사유뿐만 아니라 실낱같은 밤의 이정표조차 허가하지 않는 분진이 층을 이루어 모든 세계를 덮고 있었다.

오로지 의지할 빛은 눈앞에 놓인 모닥불 하나가 다였으며, 그나마도 모아온 유목의 양이 다한다면 꺼져버릴 빛이었다.

그러나 모닥불 주변에 앉은 둘에게는 전혀 걱정거리가 되지 않았다.

주변으로는 은은한 광휘의 장막이 펼쳐져 오염된 대기의 독소나 해안에서 밀려드는 부패한 악취 따위를 완벽히 밀어내고 있었다.

막대한 분진 층에 의해 테라리스에 태양의 빛이 들어오지 않게 됨에 따라 몹시 냉랭해진 기온은 밤이 되자 더더욱 떨어졌으나 광휘의 장막 안은 몹시 포근하고 따스할 뿐이었다.

네로멜티아의 가벼운 손짓에 형성된 마력의 결계는 혹독한 환경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안락한 장소를 만들고 있었다.

이들은 현재 바르커스 화산의 해안 절벽에 자리한 굴 안에 머무르고 있었다.

성인 남성이 일어서도 천장에 머리가 닿지 않을 정도로 큰 굴이었으나, 열 사람 정도 들어서면 가득 찰 것 같은 얕은 굴.

그러나 내부는 벌레 하나 웅덩이 하나 없이 마르고 쾌적했으니, 하룻밤 머무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인 셈이었다.

“호흡도 편해진 것 같구나.”

“마왕님 덕분이에요. 이렇게 따뜻하고 깨끗한 공간을 만들어주실 줄 알았다면 유목은 괜히 모은 것 같아요……. 괜히 필요도 없는 데 매캐한 연기만 나서 불편하실 테니…….”

“아니다. 분위기 또한 중요하지. 정신적인 안락함 또한 잊어서는 안 되는 거야.”

“정신적인… 안락함이요?”

“그래, 명계에서 끊임없이 추구하던 거지. 그곳은 식욕이나 수면욕 따위는 없는 곳이니. 덕분에 삭막하지 않고 단둘이 나들이 야영이라도 나온 것 같아 마음이 풀리는구나.”

“음… 잘 모르겠지만 도움이 되셨다니 저는 행복해요!”

순수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어주는 러스테리아를 바라보며 네로멜티아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계약자 네로멜티아가 사망함에 따라 천년이나 마력을 보급받지 못했던 러스테리아는 점차 신체를 구성할 수 있는 여유가 바닥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작아지기 시작한 신체를 어떻게든 유지하며 버티던 러스테리아가 편한 호흡과 안락한 환경을 위해 조금 전 마왕이 펼쳤던 것과 같은 정화 결계를 사용하거나 유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에 따른 괴로움을 버티며 천년이라는 세월을 강림의 신전 주변을 떠돌며 기약 없는 기다림을 지속했었던 것이다.

점차 작아지고 무너져가는 신체를 버리고 지옥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러스테리아의 소중한 애정과 충성을 느껴 안쓰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더욱 커져만 갔다.

“이토록 괴로운 천년을 보내게 해서 미안하다. 이제는 네게 다시는 가혹한 일이 없게 하겠어.”

잔잔한 음성으로 속삭이는 네로멜티아의 손길은 다정히 러스테리아의 머릿결을 스쳐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붉게 물들어가는 상기된 뺨과 취한 듯 기분 좋게 감기는 그녀의 눈.

주인의 손길을 황홀하게 느끼면서도 러스테리아는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말을 선뜻 꺼냈다.

“… 그런 말씀 마세요…. 저는 주인님을 떠나보내고 스스로에게 무력감을 느끼며 천년을 기다렸어요…. 다시 돌아오시는 날까지 도움이 되는 종자가 되기 위해 마법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마했어요…. 마력이 없어서 실제 써본 것은 얼마 전 휴미안들을 습격할 때가 다였지만요. 그래도 이제 저는 쓸모 있는 아이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러스테리아…”

“그러니 사과하지 말아 주세요! 저를 보호하겠다는 말도 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주인님을 지키고 싶어요… 더는 주인님을 잃고 혼자 지내고 싶지 않아요…….”

이천이백 년 전, 네로멜티아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옥에서 악마를 소환하였다.

주로 영혼이나 신체의 일부, 타인의 피와 육신 등의 희생을 제물로 하는 것이 악마를 소환하는 방법이기에 어떤 것을 제물로 삼던 몹시 큰 대가가 따르는 일일이었으니 어렵고 난해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네로멜티아는 단지 계약으로 현세에 머무르는 동안은 마력이 모자라지 않게 해주고 현세의 삶을 영락(??)하는 데에 있어 윤택한 조건을 보장하겠다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지옥으로 가져갈 보상은 단 하나도 없는 가벼운 조건으로 악마를 소환했었다.

심지어 서큐버스나 아름다운 여성 악마에 한정한다는 까다로운 조건까지 내세웠었다.

모든 악마들이 고개를 젓고 나서지 않는 소환의식이었으나 태어난 지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서큐버스 러스테리아는 현세의 삶에 호기심이 동하고 깊은 흥미를 느껴 유일하게 계약을 수락하였다.

그렇게 소환된 어린 악마 러스테리아는 마왕 네로멜티아의 유일한 비서관 자리에 임명되었다.

그녀가 하는 일은 단지 시중을 들거나 주인의 곁에 머무르는 것뿐으로, 그나마도 내키지 않으면 마음대로 돌아다니거나 놀러 다녀도 좋다는 허가마저 떨어진 상황이었다.

네로멜티아가 악마에게 바라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강한 신하들과 병사들이 있어 국토 수호에는 근심이 없었고, 그나마도 힘든 상황이라면 마왕 본인이 나서서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역대 마왕 중 가장 강하다고 칭해지는 네로멜티아의 힘이 있다면 그 어떤 적이 나타나도 충분히 저지할 수 있었다.

루이나로 인해 황폐한 조건의 헤모니겐트였으나 데모니안과 마물들은 어떻게든 환경적 악조건을 해결할 방안을 연구해낸 뒤였기에 식량이나 물자, 경제 조건 등 모자람이 전혀 없는 국가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굳이 무언가 모자람을 느껴 악마를 소환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단지 유희를 위해 소환한 것이었다.

그 어떤 자도 유혹해내어 정기를 취한다는 음마(??).

아름다움이 극에 달한다는 서큐버스라면 그 미색과 육체가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네로멜티아는 단지 여색(?色)을 즐기고 싶어 악마 소환의식을 감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소환된 러스테리아는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몽마들의 여왕이자 어머니이며 대악마 중 하나인 ‘릴리트(Lilith)’에게 서큐버스로서의 교육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고, 그녀의 성격은 몹시 유순하며 순수했다.

잠자리의 기술은커녕 유혹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아이.

아무리 여색을 좋아하는 네로멜티아여도 꼬마 아이를 더듬는 취미는 결단코 없었기에 마음대로 놀러 다니거나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도 된다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잘 키운 뒤에 아름다운 미녀로 성장하면 그때 만끽해 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비서관이라는 높은 지위를 만들고 소중히 키우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를 소중히 하는 마왕의 따스한 성격도 큰 이유였지만.

‘아이는 마음껏 놀고 배불리 먹고 실컷 자면서 커야지!’

네로멜티아의 육아 원칙은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러스테리아는 자신의 주인이자 계약자를 관찰하면서 그 주변의 인물들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덩치 큰 오우거는 마왕의 힘이 되었고 흑철의 기사는 든든한 방패가 되었다.

인자하고 아름다운 마녀는 마왕의 지혜가 되었고 밤하늘을 누비던 뱀파이어는 마왕의 지략이 되었다.

마왕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를 들려주는 자, 머리를 맞대며 고민을 나누는 자, 충실히 임무를 이행하여 마음을 놓이게 하는 자.

모두가 마왕의 곁에서 저마다의 색을 가지고 빛나고 있었다.

보호만 받는 어린아이였던 러스테리아는 자신에게만 없는 그 빛을 동경하게 되었다.

러스테리아는 그 모습들을 보며 자신도 주인의 힘이 되겠노라고 다짐했고, 모자람이 없는 보좌관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래. 너는 언제나 노력하는 아이였었지. 내 유일한 비서관이잖아?”

어느새 울먹이는 러스테리아의 눈에 손길을 가져가는 네로멜티아.

러스테리아의 글썽이는 눈물이 잔잔한 모닥불의 빛을 받아 보석같이 빛나고 있었다.

소환한 목적이 달랐기에 같은 신하였어도 러스테리아에게는 업무나 전력(戰力)으로 그다지 의지하지 않았었다.

그저 곁에 머물러 주기만 해도 만족했었다.

그것이 천년을 기다린 러스테리아에게 사무치는 한이 되었을 줄은 몰랐었다.

“내가 너에게 바란 건 단지 내 곁을 지키면서 시중을 들어주고 사소한 기록의 관리를 맡아주고 적적하지 않게 해주는 게 다였는데 말이야.”

“이제 저도 다른 분들처럼 싸울 수 있어요! 고위계 마법도 엄청 외웠는걸요!”

“그래, 알았어. 앞으로는 네게 더 의지하도록 할게. 알겠지?”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 러스테리아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힘껏 대답했다.

촉촉한 눈가에는 더 이상 상실의 슬픔에 대한 눈물은 없었고 기쁨에 대한 눈물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네! 잘 부탁드려요, 주인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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