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서큐버스 비서관 러스테리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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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나이트(Black Knight).
마왕의 직속 친위대이자 마왕군 최고 무력집단 중 하나.
흑철이라 불리는 금속 코르니움으로 제작된 풀 플레이트 아머와 카이트 실드, 롱 소드를 들고 전투에 임하는 이들은 마왕의 견고한 방패이다.
그리고 블랙 나이트의 단장은 마왕군 최고의 검호(??) 중 하나였다.
“혹시 크로포드도 거기 있어?”
“네! 헤모니겐트의 가장 큰 생존자 은신처니까 크로포드님께서 직접 지켜주고 계세요!”
블랙 나이트의 단장, 크로포드 반 에이하르트(Crawford van Eihardt).
네로멜티아의 가장 가까운 측근 중 하나로 강직하며 정의감과 주군에 대한 충의가 확고한 인물이었다.
또 하나의 가까운 인물의 생존 소식에 네로멜티아는 격하게 화색이 돌았다.
영영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과거의 소중한 인연들을 다시 복구할 수 있다는 희망이 네로멜티아에게 더없는 기쁨을 주고 있었다.
“혹시 다른 녀석들 소식 더 아는 거 없어?”
“에… 죄송해요. 다른 종족들을 사로잡아 노예로 삼기 시작한 휴미안들이 눈에 불을 켜고 아스타리스 대륙을 들쑤시고 다니다 보니… 그나마 가까운 위치에 크로포드님 외에는 소식을 알지 못해요. 뭉치면 뭉칠수록 식량 확보도 힘들고 은신도 힘들고… 거기다 휴미안의 군대를 피해서 워낙 뿔뿔이 흩어져버린 터라…….”
“아니야. 괜찮아. 남아있는 이들이 있다면 이제부터 찾으면 될 일이지. 이제 내가 있잖아.”
“마왕님…!!”
당당하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네로멜티아에게 적잖이 감동하여 눈물마저 글썽이는 러스테리아.
자신의 주인이 보여주는 당찬 모습에서 희망을 느낀 러스테리아는 벅차오르는 감정에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천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휴미안들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기고 제대로 먹고 자는 일조차 여의치 않았던 고통의 나날들은 비로소 끝이 보이는 듯했다.
사실 측근의 배신과 계획된 기습, 헤모니겐트의 백성들을 인질로 삼은 대규모 공습만 아니었더라면 결코 자신의 주인이 패배하거나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믿을 수 있는 주인이 비로소 돌아왔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러스테리아.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블랙 나이트와 생존자들이 거주하는 은신처를 향해 나아가며 자신의 주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현재 네로멜티아와 러스테리아가 위치한 바르커스 화산 일대는 굉장한 면적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스타리스 대륙 두 번째로 높은 산이라는 위명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고, 화산에 해당하는 면적만 따지고 놓더라도 공국 하나 정도는 가볍게 들어설 대지를 소유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은신처가 있다고 이야기는 했으나, 해당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꽤 시간이 필요했기에 이제 반절 정도 다다른 때에 날이 저물어 버렸다.
천년의 세월 동안 명계에 박혔던 네로멜티아와는 달리, 헤모니겐트의 변화한 지리에도 익숙한 러스테리아에게 공간이동 마법을 요청했으나 러스테리아의 단호한 이야기에 그 생각을 접고 두 다리로만 이동해야 했다.
“현재 두 개의 달에는 각각 드래곤들과 휴미안들이 이주한 상황이에요! 위계 낮은 간단한 마법이라면 모를까 공간이동 마법 같은 고위계 마법을 사용하면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들에게 바로 들킬 수밖에 없어요, 주인님…….”
“세계가 오염되었기 때문인가.”
“맞아요. 휴미안들이 개발한 마도 공학의 산물들은 그들에게 우월한 무력과 윤택한 삶을 가져다주었지만… 반면에 그것들이 뿜는 오염물질과 독소가 세계를 뒤덮었어요. 농작물들은 말라 죽고, 물은 썩어 버리고… 이제는 숨도 쉴 수 없어서 생명들이 죽어가는 땅이 되어버렸어요.”
이는 네로멜티아가 주변의 환경을 바라보며 추측한 결론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네로멜티아의 10번째 부활 당시에는 왜 이전과 달리 열다섯의 휴미안 병사들만이 파견된 것일까.
휴미안의 시신들은 저마다 안면을 보호하는 마도구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전면이 투명한 유리로 구성되어 시야 확보가 가능하게 하며, 합성 고무로 이루어진 테두리가 외부의 공기를 원천 차단하는 구조.
거기다 공기 정화 마법진이 부여된 원통형 마도구가 하단에 꽂혀있었다.
이는 하나의 가설을 현실이라 증명하는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휴미안들은 현재의 파괴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없었다.
마왕 정도 되는 네로멜티아야 공기가 탁하고 역겹다고 여기는 정도에서 그칠 수 있으나, 태생적으로 나약한 휴미안들에게 이러한 오염된 공기는 독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은 드래곤들에게도 그리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강대한 힘을 지닌 드래곤들이야 어떻게든 독성에 버티면서 살아갈 수는 있으나, 괴로운 독기를 마셔대며 생활할 수는 없으니 자신이 정화한 한정된 공간 안에서만 살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 장소에서 살 바에야 깨끗하고 드넓은 달에 올라가서 사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달로 향하는 일 정도야 강대한 드래곤들에게는 어려운 일도 아니니.
휴미안들이 목숨의 위협을 느껴 달로 이주했다면, 드래곤들은 더럽고 괴로운 환경을 기피 해서 달로 이주했다고 봐야 했다.
이러한 사실은 열다섯의 휴미안 병사라는 이야기와도 퍼즐이 맞춰진다.
“그래… 이런 독성이 가득한 아스타리스 대륙을 가로질러 바르커스 화산까지 도착하는 일이 결코 쉽진 않았을 테지.”
“맞아요, 마왕님! 거기다 현재 아스타리스 대륙에 남아있는 휴미안들도 거의 없어요. 이전과 같은 수준의 군대를 파견할 여력이 안 되는 거예요! 그들은 지금 아스타리스 대륙 최남단의 에스테로난(Esteronan) 공국에서만 거주할 수 있거든요!”
“최북단인 바르커스 화산과는 양극단이네.”
“아무래도 오드볼리스와 가까운 곳에 최후의 영지를 마련하려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해요.”
생명들이 거주하는 아스타리스 대륙과 달리, 오드볼리스 대륙은 신들이 거주하는 대륙이었다.
신왕 오드볼그(Odvolg)의 이름을 딴 신들의 대륙, 오드볼리스(Odvolis).
굳이 아스타리스 대륙 마지막 영지를 정하자면 신들의 땅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머무르고 싶은 나약하고 의존적인 성격이 엿보이는 선택이었다.
“그들은 왜 굳이 마지막 영지를 남겨두고 거주하는 거지? 대부분의 휴미안들이 달로 떠났다면 그들 역시 떠나면 되는 일 아닌가.”
“드래곤들이 이주한 블루문은 명백히 따지면 스카이 드래곤의 일부만이 건너간 상황이라 공간의 여유가 많아요. 그러나 휴미안들이 이주한 레드문은 그 많은 휴미안들이 심지어 이종족 노예들과 가축들까지 거느리고 이주한 상황이라 공간이 몹시 협소한 상황이래요. 그러니 일부 휴미안들은 아스타리스에 그대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던 거고… 그들은 그 지경이 되어서도 더 많은 노예를 원했어요! 지금 에스테로난에 거주하는 휴미안들은 아스타리스 대륙에 아직 생존하고 있는 이종족들을 사냥해서 레드문으로 올려보내는 노예거래가 목적이에요!”
휴미안들의 끝이 없는 탐욕에 네로멜티아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세계가 모조리 파멸하는 가운데 아직도 그들은 더 많은 노예를 탐하고 있다니.
끌려간 노예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떤 결말을 맞는지 눈앞에 선명히 그려졌다.
테라리스의 멸망이 코앞까지 도래한 마당에 아직도 노예를 원해 이종족들을 사냥하는 휴미안들이 사로잡은 노예를 제대로 대우할 리 없었다.
그들의 가혹한 노예 대우는 천년 전에도 익히 보아서 알고 있었으나, 휴미안들의 세상이 된 현재는 더욱 가혹할 것이 분명했다.
탄광 노예, 건축 노예, 농업 노예 등등의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죽는 노동 노예들.
온갖 가학적 유희를 견디며 몸을 내어주다 끝내는 한낱 놀잇감으로 죽고 마는 성노예들.
마도학 연구나 약품 연구 따위에 이용되어 산화하는 실험체들.
폭력적 유희에 떠밀려 서로를 죽이다 끝내 자신마저 죽음을 맞이할 뿐인 투기장 노예들.
스스로의 시간은 조금도 없이 주인의 곁에서 시중을 들다 그들의 기분이 나빠지면 화풀이 대상으로 죽임당하는 사용 노예들.
네로멜티아가 보았었던 천년 전 노예들의 처우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좋은 일은 없을 것이었다.
이 잔혹한 현실에서 네로멜티아는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오며 자신 있게 평화의 약속을 내걸었던 용사가 떠올랐다.
그 약속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덧없는 허상인지 잘 알고 있었으나, 이처럼 참담한 비극이 눈앞에 드리워지니 내심 현실에 무지하고 정의만 앞세웠던 그녀에게 원망이 솟아나는 것이었다.
“피를 흘리거나 고통받는 이가 없을 거라고…? 그날의 약속은 어떻게 하고 어디서 뭘 한 거냐 신왕의 용사여…….”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네로멜티아의 분노에 러스테리아는 슬픔을 느낄 뿐이었다.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을 제 몸같이 아낀 성군이 현재 느끼고 있을 분노는 한낱 비서관에 불과한 자신이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네로멜티아가 바르커스 화산 너머를 바라보며 복잡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러스테리아는 조용히 불을 지피고 잠을 청할 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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