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번 부활 끝에 마왕님은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9화 (9/216)

〈 9화 〉 서큐버스 비서관 러스테리아 (1)

* * *

평범한 생명체가 살아가기 힘든 척박한 환경의 헤모니겐트.

이는 마왕과 그 권속들에게 필요한 루이나가 이루어내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들은 결코 루이나가 이루어낸 결과물이 아니었다.

생명의 마나인 비타나를 통해 살아가는 평범한 생명체들 뿐만 아니라 루이나에 얽힌 생명체들 또한 살아가기 벅찬 명백한 오염.

호흡하기 버거울 정도의 오염된 공기가 주변을 짙게 짓누르고 바다에서는 썩어가는 부패의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본래 다량의 금속 물질이 가득했기에 철분이 산화되어 붉은빛을 띠는 바다라 하여 레드 오션이라 불리던 헤모니겐트 인근의 바다였으나, 현재 띠고 있는 짙은 붉은색은 결코 금속 물질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적조(赤?)가 해역 전체를 뒤덮고 있었고, 파도조차 점성이 가득해 끈적거리며 넘실대고 있을 뿐 물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였다.

숨을 쉬는 일조차 힘겹게 하는 부취(??)는 휴미안들의 시체 탓만은 아니었다.

대륙의 환경은 결국 대지에서의 일일 뿐.

루이나로 인한 척박한 환경은 헤모니겐트를 독으로 물들일지언정 드높은 하늘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맑고 푸르름이 가득했어야 할 창공이었으나, 현재는 시커먼 장막이 드리워져 실낱같은 빛줄기조차 보기 힘들었다.

저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두컴컴한 하늘은 시커먼 연기 같은 것들이 가득했는데, 폭풍을 몰고 오는 비구름조차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고 어두웠다.

그것의 형태는 수증기가 모인 구름이라기보다는 아스타리스 대륙 중앙에 위치한 광활한 사막지대, 배스트 샌드(Vast Sand)에서나 볼 수 있는 대규모 모래폭풍의 것과 비슷했다.

그러나 시야가 닿는 모든 하늘이 뒤덮어진 것으로 보아 그 모래폭풍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규모를 가진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독한 냄새 또한 이것이 더욱 심각한 현상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생성된 독소를 머금은 분진 따위가 세계의 하늘을 뒤덮은 것이다.

네로멜티아는 세계가 멸망한 듯한 파괴적인 참상에 몹시 당황하여 바르커스 화산을 올려다보았다.

헤모니겐트의 수호룡 바르커스가 거주하는 바르커스 화산.

이미 그 화산의 주인은 자리를 비운 듯 보였고, 그 건너의 마왕성 또한 어찌 되었는지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때 네로멜티아의 뒤에서 누군가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년이나 지났지만 잊히지 않은 반가운 목소리.

“마, 마왕님이신가요!?”

실낱같이 작은 목소리였으나, 네로멜티아는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잊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네로멜티아의 시야에는 아름다운 여성 하나가 다소 긴장한 듯 우물쭈물 서 있었다.

정갈하면서도 정중한 검은색 정장에 앙증맞은 붉은 보타이.

색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예스러운 복장이지만, 그 사무적인 의복으로도 가리지 못할 만큼의 풍만한 여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가슴과 둔부가 많이 끼는 모양이었고, 이미 그녀의 신체에 맞춰 제작된 의복이었음에도 하얀 드레스 셔츠의 단추들은 다소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보랏빛 눈동자에는 육망성의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고, 그 동공 안에 은하계를 수놓은 듯 신비로운 빛무리가 은은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의 보랏빛 긴 머리는 언뜻 봐도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매끄럽고 화사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으나, 목덜미를 향해 둥글게 말아 묶는 것으로 거추장스럽지 않게 정돈하고 있어 그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굳이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장 큰 종족적 특징.

산양과 같이 둥글게 말려진 뿔을 가지고 있으며, 뾰족한 하트 모양의 끝이 특징인 꼬리와 박쥐와 같은 검은 피막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러스테리아 서비 아브노아(Lusteria servie Avenoah).

지옥에서 태어나 계약에 의해 현세로 소환된 서큐버스.

마왕 네로멜티아 디 이시스의 유일한 비서관이었다.

“러스!!!”

“마, 마왕니이이임!!!”

천년만에 이루어진 둘의 극적인 재회는 당황하는 네로멜티아와 울며 달려오다가 지면에 넘어지는 러스테리아의 모습으로 이루어졌다.

조약돌 하나에 다리가 걸려 넘어져 우는 러스테리아.

“우에에에엥…”

“너 왜 이렇게 작아졌어!?”

러스테리아는 본래 네로멜티아보다 조금 작은 수준의 키를 가지고 있었다.

네로멜티아 본인이 여성치고 장신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러스테리아 역시 그리 작은 편의 여성은 아닌 셈이었다.

그러나 현재 그녀의 모습은 작고 크고를 떠나서 아예 형태가 달라진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손가락 정도로 작아진 러스테리아가 땅바닥에서 달려오다가 조약돌이라는 하찮은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흑흑. 계약자인 마왕님께서 사라지셔서 더 이상 마력을 공급받을 수가 없었어요…. 신체를 유지할 마력이 없으니까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어요…. 최대한 마력을 쓰지 않고 온존하면서 지냈는데도 이렇게나 작아져 버렸어요…….”

“왜 릴리트에게 돌아가지 않은 거야? 천년이나 이러고 기다렸어?”

“평생 마왕님의 곁에서만 지냈는데, 어떻게 어머니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어머니와는 고작 열 살까지만 같이 지냈고, 그 이후에 마왕님 곁에서 천이백 년이나 지냈는걸요. 천년 그 이상이 걸리더라도 이 몸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마왕님을 기다렸을 거예요!”

이토록 깊은 애정과 충성심을 보이는 미녀 비서관에게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던 네로멜티아.

즉시 손을 뻗어 러스테리아를 향해 막대한 마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순간 러스테리아의 신체는 시커먼 마력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무럭무럭 자라 천 년 전과 같은 온전한 모습이 되었다.

네로멜티아와 비슷한 키를 가지고 있는 러스테리아는 여성치고 꽤나 장신이었다.

더욱이 그녀의 신체는 색기가 넘치고 누구에게나 욕정이 솟게 만드는 풍만한 미녀의 농밀한 매력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그 농염하고 성숙한 매력을 지닌 신체에 극히 대비되는 밝게 빛나는 눈망울과 작고 귀여운 코, 붉고 생기가 넘치는 입술.

거기에 보드랍고 말랑말랑하게 감촉이 좋을 것 같은 볼까지 더해진 오밀조밀 귀여운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애정이 마구 솟게 만드는 미소녀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두 가지의 양극적 요소가 공존하는 묘한 이미지였으나, 하나 확실한 것은 러스테리아 본인이 몹시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러스테리아를 바라본 네로멜티아는 천년이나 억누르고 있던 욕구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비서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날이 진정 다시 돌아온 것인가.

저도 모르게 네로멜티아는 자신의 신체를 보며 감격하는 러스테리아를 향해 음흉한 손을 뻗었다.

마왕의 욕망을 가득 품은 손가락이 상스럽고 음란하게 물결치고 있었다.

“마왕니이이이임!!!”

“허윽…!!”

러스테리아는 드디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기쁨과 자신의 주인과 천년만에 재회했다는 행복에 가득 물들어 네로멜티아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어찌나 격렬하게 뛰어들었는지 네로멜티아의 폐에서 바람이 빠질 정도였다.

“흐에에에에…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흐아아아앙!!”

아른거리는 눈망울이 끊임없이 눈물을 흘려대고 있었다.

네로멜티아의 가슴을 타고 러스테리아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내 네로멜티아는 하려던 일을 포기하고 이 순간만큼은 그저 소중히 보듬어 주자는 생각을 했다.

천년 만의 재회에서 눈물을 흘리는 귀여운 비서에게 분위기를 깰 정도로 제멋대로이지는 않았으니까.

네로멜티아는 조용히 러스테리아를 안아주었고, 그녀의 들썩이는 등과 머리를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주인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은 러스테리아의 눈물은 한동안 그치지 않았다.

“저 휴미안들을 처치한 게 너였어?”

“네. 이전과는 다르게 휴미안이 얼마 오지 않았으니까,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저들을 처치하고 나면 마왕님의 부활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없다는 말이잖아요.”

다른 마왕군의 일원들이나 헤모니겐트의 주민들이 전부 피난 간 상황에서 러스테리아는 홀로 강림의 신전 근방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했다.

어떻게든 그 근방을 떠나지 않고 네로멜티아의 부활에 대한 기회를 엿보기 위해 끊임없이 상황을 살폈다고 했다.

다른 마왕군 간부들도 이 역할을 바라고 있었으나, 그들은 지켜야 할 병사들이나 백성들이 있었기에 어딘가에 소속되거나 지켜야 할 누군가를 거느리지 않은 러스테리아가 이 역할을 맡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열 번째의 부활에서는 평소같이 휴미안의 군대가 파견 오지 않았고, 고작 열다섯의 병사들만이 나타났기에 싸워볼 수 있겠다고 여겼던 것.

“가뜩이나 작아졌던 몸이었는데 남은 마력을 최대한 쥐어짜서 가까스로 적을 섬멸하고 나니까 더 작아져 버렸던 거예요…….”

조금만 실수를 했거나 마력이 조금이라도 모자랐더라면 러스테리아는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적의 섬멸에 성공했더라도 마력 부족으로 인해 지옥으로 강제 송환 당했을 수도 있었다.

러스테리아가 정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네로멜티아를 지키려 했다는 것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네로멜티아는 러스테리아의 머리를 인자하게 쓰다듬었다.

자신의 귀여운 비서를 쓰다듬는 주인의 손길에는 따스한 애정이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고마워, 러스. 네 덕분에 이렇게 다시 테라리스로 돌아올 수 있었어.”

“흑! 마왕니이이임…….”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망울이 아른거리는 러스테리아.

그녀가 네로멜티아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때, 네로멜티아는 희망을 보고 있었다.

러스테리아의 말에 따르면 아직 생존한 마왕군이 남아있고, 백성들 또한 생존한 이들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현재 상황이 어찌 되었든 그들을 구출하고 규합해 다시 마왕성과 헤모니겐트를 재건해야만 했다.

결국 생존과 안전을 위해서는 무력을 쟁취할 수밖에 없으니.

자신의 첫 번째 죽음 당시에 보았던 압도적인 규모의 휴미안 군대와 드래곤 케르디하크의 존재로 미루어 보았을 때, 강대한 힘을 가진 간부들은 모르더라도 일개 병사들이나 백성들은 모조리 잃었을 수도 있겠다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러스테리아의 이야기를 통해 생존자들은 꽤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마왕군과 간부들이 얼마나 사력을 다해 그들을 지켰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목숨을 걸고 전력을 다해 백성을 지켜준 그들에게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한참 주인의 손길을 만끽하던 러스테리아는 자신을 쓰다듬던 손을 와락 쥐고는 네로멜티아를 마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조금만 더 가시면 블랙 나이트와 생존자들의 은신처가 있어요!!”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