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마왕(?王)과 사신(死?)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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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은 마신이라고도 칭해진다.
중간계에 그 실체를 두고 물리적인 신체도 가지고 있는 존재이지만 신이라 칭할 수 있을 만큼의 권능을 가진 것이다.
그렇기에 실제 신들도 해당 마왕이 얼마나 강대한가에 따라서는 함부로 대하거나 적대하지 못하기도 한다.
마왕은 파괴의 성질을 가진 마나 루이나(Ruina)를 다스리며 마왕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파괴라는 존재를 세상에 흩뿌린다.
그렇기에 마왕이 마음만 먹는다면 세상은 독기로 가득 차 생명들이 시름시름 앓고 죽어가기도 하며 만물이 붕괴하거나 그 형체를 잃게 되기도 한다.
마왕의 힘이 강대하면 강대할수록 그 현상은 더욱 강해지나, 마왕이 원치 않으면 결코 그런 재앙은 세상에 퍼지지 않는다.
반대로 마왕이 사망하면 세상은 생명의 마나 비타나(Vitana)로 가득 차게 되며, 세상 만물은 열매를 맺고 풍족해지며 건강해진다.
그러나 생명이 있으면 죽음도 있는 법이 이치이니, 마왕 또한 자연 현상과 다름이 없어 마왕은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100년이 지나면 다시 부활한다.
마왕 본인이 완벽히 죽을 수 있는 것은 다른 데모니안에게 패배해 마왕의 자리를 빼앗겼을 때, 혹은 스스로가 마왕의 권좌를 포기하고 다른 데모니안에게 그 자리를 이양했을 때뿐이다.
결국 마왕이라 칭해지는 데모니안이 어떠한 방법에서든 사라지더라도, 새로운 마왕이 그 자리를 차지하니 마왕이라는 존재 그 자체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악한 마왕은 그 지배를 넓히기 위해 거침없이 자신의 권능을 방출해 영역을 넓히지만, 선량한 마왕은 루이나를 통해 살아가는 자신의 권속들이 거주할 수 있는 땅만큼만 영역을 유지할 수 있게 그 힘의 방출을 제한하기도 한다.
생명과 파괴의 섭리, 저자 루이스 핸더슨.
태양이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밤의 도시.
천상에도 지옥에도 도달하지 못한 영혼들이 머무는 죽은 자들의 나라.
생명을 가진 존재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차원의 벽 너머에 드리워진 거대한 묘지.
그러나 거리는 오색 빛의 아름다운 등불들로 치장되어 활기가 있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썩은 시체와 낡은 백골이 함께 어깨동무하고 거리를 거닐며, 광장에서는 아름다운 밴시가 저절로 연주되는 유령 피아노의 음악에 맞춰 노래하는 곳.
칠흑의 밤이 영원불멸 이어지는 망자들의 세계.
명계(??).
“이놈들아, 허튼수작 말고 다른 데로 꺼져!”
흉측한 매부리코 마귀의 얼굴이 달린 박쥐 떼가, 사신의 성 입구에서 낄낄대며 서성이다 경비병에게 쫓겨났다.
핼버드를 들고 요사스러운 박쥐 떼를 쫓아낸 경비병은 재수 없다는 듯 침을 뱉는 시늉을 했지만, 뱉어낼 수 있는 침은 하나도 없었다.
그 옆에 서 있던 좀비 경비병이 코웃음 치며 한마디 했다.
“다 삭아 빠진 해골 주제에 뱉을 침이 어디 있다고 퉤퉤 거려?”
“아니 저 재수 없는 언실리코트(Unseelie Court) 놈들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릴 줄 아냐 이거야! 고약한 장난질하는 걸 최고로 아니 원. 지난번에는 성에서 쓰는 와인통에 똥오줌을 싸 갈겨 놔서 주방장 목이 잘릴 뻔했다고!”
“그 양반 듈라한(Dullahan)이라 애초에 목이 잘려있잖아?”
“아니, 이게… 듈라한인데 머리가 잘린다고… 그러니까… 음. 됐다. 아무것도 아니다.”
자기 농담 설명하려다가 이마를 짚고 포기해 버리는 스켈레톤 경비병.
좀비 경비병은 고개를 까딱이며 의문을 표하다가 척추뼈가 썩어 부실한 탓에 머리가 떨어질 뻔했다.
좀비 경비병은 황급히 자신의 머리를 잡고 다시 끼워 맞추려 애를 쓴다.
“아이구, 듈라한 될 뻔했네!”
“큭큭큭큭, 농담은 네가 더 잘하는구나. 하여튼 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죄다 책임은 우리 같은 것들이 지는 것이다. 너 척추 수술받아야 한다면서 감봉당하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
“말도 하지 마라! 그런 말 하면 재수 없어! 영력이 강한 분들이야 좀비여도 몸이 썩을 리가 없으니 모르겠지만, 나같이 별 볼 일 없는 좀비는 철심을 박아서라도 몸 관리를 해야…”
자신의 반쯤 부러진 목뼈를 다시 끼우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돌려보던 중, 옆으로 비틀어진 머리 덕분에 누군가 접근하는 것을 발견한 좀비 경비병.
구시렁대던 불평을 끊고 한 손으로 핼버드를 집어 들며 침입자를 향해 경계의 태세를 갖췄다.
그러던 중 임시로 세워졌던 머리가 몸이 들썩이자 다시 툭 기울었고, 머리를 다시 제대로 세우려다 핼버드를 잘못 휘둘러 스켈레톤 경비병의 머리를 때려버렸다.
그에 따라 스켈레톤 경비병의 두개골은 그대로 목뼈에서 분리되어 데굴데굴 굴러가 해자(?子)에 빠져 버렸다.
“누, 누구냐! 정지하고 신원을 밝혀라!!!”
아직 고정되지 않아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자신의 머리를 한 손으로 붙들고, 침입자에게 경고하는 좀비 경비병.
자신의 머리를 잃은 스켈레톤 경비병은 허둥대며 자신의 두개골을 찾아 넙죽 엎드려 바닥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비 경비병의 경고에도 신원 미상의 인물은 멈추지 않았고, 성큼성큼 다가와 좀비 경비병의 앞에 당당히 섰다.
성을 지키는 경비병들의 앞에서도 태연자약하며 오히려 조금이라도 막아서는 기세가 모자랐다면 그들을 무시한 채 지나쳐갔을 거라 여겨질 만큼 고고(高高)한 태도의 여성.
칠흑같이 검은 긴 머리가 선명한 빛을 발하며 허리까지 닿는다.
자이언트 필드 바이슨(Giant field bison)같이 앞으로 뻗어 자란 한 쌍의 뿔은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임에도 그녀를 호전적으로 보이게 했다.
길게 뻗은 속눈썹과 선홍빛의 매끄러운 입술이 순수한 소녀의 것과 같지만 붉은빛을 발하는 눈동자와 자신만만한 웃음, 그것에서 보이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패왕에 어울리는 위압감을 준다.
몹시 크고 탄력이 넘치는 가슴은 대지의 어머니라 불리는 여신 아스타(Astar)의 모성마저 느끼게 하고, 그럼에도 그 가늘고 아름다운 허리가 선명히 보이는 것은 그녀가 입은 의복이 그 신체에 맞게 달라붙는 드레스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다이아 모양과 같은 구멍이 그녀의 늘씬한 복부를 길게 드러내고 있으며, 더욱이 그 가슴에 비견될 만큼 탄력적인 둔부는 더더욱 그녀의 모습에 농염한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너 새로 왔냐?”
“뭐, 뭐라는 거냐!!”
“모양을 보아하니 신입은 아닌 거 같은데. 나 몰라?”
굉장히 당당하고 익숙한 태도로 좀비 경비병을 대하는 여성.
그녀의 태도에 따라 좀비 경비병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으나, 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시에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동료에게 들은 터라 경계를 결코 느슨히 하지 않았다.
“나는 외벽 경계를 하다가!! 성으로 근무 발령을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당신이 누구인지는 잘 모를 수 있지만! 성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신원을 밝혀야 한다는 규정만은 안다!! 누구인지 신원을 밝히고 그에 따른 증명을 제시하도록!!!”
좀비 경비병 스스로는 굉장히 또박또박 근엄하게 말했다고 생각했으나,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뭔가 어벙하고 모자라 보이는 말투였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상대 여성은 긴장감 따위는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고 있었고, 그저 미간을 찌푸린 채 좀비 경비병을 당당히 쏘아볼 뿐이었다.
물론 그녀의 태연자약한 태도는 좀비 경비병의 어설픈 태도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여성은 좀비 경비병을 쏘아보는 자세 그대로 물이 가득 담긴 해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해자에 빠진 스켈레톤 경비병의 두개골이 물속에서 떠올랐고, 그대로 날아올라 여성의 손아귀에 덥석 쥐어졌다.
“야, 제레미.”
“네, 네! 네!!”
“쟤한테 내 설명 안 해줬어?”
“아, 저놈이 여기 발령받은 지 나흘도 안 된 데다가 좀 둔한 구석이 있어서 말이지요! 제가 잘 일러두겠습니다요!”
여성은 스켈레톤 경비병인 제레미의 두개골을 그의 신체에 친절히 올려두어 주었고, 그의 어깨를 팡팡 두드린 뒤 지나가 버렸다.
그녀의 다소 거친 손길에 제레미의 쇄골이 잠시 꺼지는 듯 삐걱댔으나 제레미는 자신의 두개골을 그녀가 직접 건져준 것에 감동을 느낄 뿐이었다.
제레미와 여성의 익숙해 보이는 대화와 성에 내려진 규칙조차 무시하는 여성의 태도에 얼이 빠진 좀비 경비병.
“저, 저건 누구냐?”
“야! 규정이라는 것도 눈치껏 해야지! 사신(死?)님께서 귀중한 손님으로 대우하고 친구로 맞이하신 분인데 앞을 막으면 어떻게 하냐!!”
“그, 그런 중요한 건 재깍재깍 알려줬어야지!!!”
“네놈이 그 핼버드 간수만 똑바로 했어도 다 알려줄 셈이었다! 두개골이 해자에 빠졌는데 어떻게 알려준단 말이야!!”
큰 위기를 모면했다는 듯 깊은 한숨을 쉬는 제레미.
좀비 경비병은 명백한 자신의 잘못이 있으니 뭐라 대꾸도 하지 못하고 여성이 들어간 성문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있지도 않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네.”
“아니, 그래서 누군데 저 여자!”
앙상한 뼈로 이루어진 손으로 다급히 좀비 경비병의 입을 틀어막는 제레미.
두개골의 공허한 안와(??) 안의 시퍼런 두 안광이 유독 서늘한 한기를 뿜어냈다.
제레미는 눈치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자신의 멍청한 동료에게 명백한 위압으로 경고를 주고 있는 셈이었다.
“아가리 함부로 놀리지 마라. 턱주가리 뽑히고 싶으냐? 저분은 명계의 망자들이 모시는 사신님께서 동등한 예우를 약속하신 친구이신 분. 이계(??) 테라리스의 마왕.”
그토록 친근하고 친절하기만 했던 동료의 냉담.
좀비 경비병은 마른침을 삼키며 사태를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네로멜티아 디 이시스(Neromeltia de Isis)님이시다.”
마왕 네로멜티아 디 이시스의 사망 이후 1000년.
그녀는 현재 명계에 머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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