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파멸을 불러온 자들 (3)
* * *
벼락이 눈앞에서 떨어진 것을 본 일이 있는가.
한순간의 번쩍임 만으로 대상을 불태우듯 박살 내는 번개.
고막을 찢을 듯이 터져 나와 천지를 뒤흔드는 뇌성.
인지도 제대로 못 할 한순간의 천둥이 신들의 심판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의 위용을 보인다.
바위에 떨어지면 바위를 부수고, 거목에 떨어지면 거목을 쪼갠다.
그 맹목적 파괴의 현상 앞에서는 천년의 거성(巨?)도 의미가 없다.
수십 수백의 벼락이 끊이지 않고 몰아쳤다.
“조금 더 힘내봐라!! 그 마법구가 깨지면 더러운 데모니안들이 도살당하잖나!! 지켜야지!!!”
아직도 대피하지 못한 헤모니겐트의 주민들이 많았다.
지금 마왕성을 나누는 거대한 마력 장벽을 유지하지 못하고 깨버린다면 그들은 반드시 학살당한다.
그렇기에 마왕은 결코 마법구를 놓칠 수 없었다.
현자와 성녀는 방어 마법과 방호의 기도를 간신히 유지하며 흉포한 뇌성벽력으로부터 동료를 지키는 데에 전력을 쏟고 있었다.
용사의 일행이라는 그들이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버거워할 정도였다.
이토록 강력한 마법 공격을 오로지 마력 장벽으로만 견뎌내는 일은 제아무리 신화적 인물인 마왕일지라도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대로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마왕은 오른손을 마법구에서 떼어내 케르디하크를 향해 뻗었다.
쿠우웅!!
“크윽!”
마법구를 짚고 있는 왼손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휴미안의 마도거병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마력 장벽을 깨부수려 포격을 유지하고 있기에 버티기가 힘들었다. 빨리 제압을 끝내고 방벽을 유지하는데 다시 신경을 써야 했다.
마왕은 마왕성 전체를 반으로 갈라 헤모니겐트의 주민만 지나갈 수 있는 거대한 마력 장벽을 휴미안 군대의 화력에 버텨가며 유지를 하고 있고, 케르디하크의 인피니트 라이트닝을 막아낼 또 하나의 마력 장벽을 만들어 그 공격을 버텨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두 개의 마력 장벽을 운용해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력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 위기 속에서 마왕은 세 번째의 마법을 준비했다.
주먹을 쥐고 집게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상대를 향해 펼쳤다.
펼쳐진 두 손가락 사이에 작은 마법진이 발동되었다.
제8위계, 죽음의 광선.
“데스 레이(Death Ray)!!!”
“크아윽…!!!”
극히 국한된 범위의 점 공격이지만 관통력이 극대화된, 살상만을 위해 만들어진 마법 광선.
순식간에 생성된 자줏빛 광선은 그대로 케르디하크의 머리를 꿰뚫었고, 케르디하크의 마법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마왕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손을 대야 한다면 이 기회에 아예 일어설 수 없게 만들어야 했다.
언제까지고 공격을 받아내며 버티고만 있을 수는 없기에 반격한다면 철저히 해야 했다.
지금 머리를 꿰뚫리고도 살아있는 것이 드래곤이라는 존재.
확실히 짓밟아놔야 했다.
“데스 레이! 데스 레이! 데스 레이! 데스 레이! 데스 레이! 데스 레이!”
“커으으윽…!! 칵!! 크아아악!!!”
“데스 레이!”
쩌어엉!!
전신에 새까맣게 탄 구멍이 늘어나고 있던 케르디하크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흑갈색 머리의 소녀.
지금껏 마왕을 지켜만 보고 있던 용사였다.
용사가 신왕에게 부여받은 성검은 마법으로 만든 광선 같은 것은 간단히 갈라버렸다.
그 앞에서는 마법의 위계 따위도 상관이 없으니.
케르디하크는 순식간에 쏟아진 공격의 충격으로부터 채 헤어나오지 못하고 쓰러져 거친 숨을 불규칙하게 몰아쉬었다.
용사는 성검을 들어 마왕을 경계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마왕은 저 성검을 상대로 마법구를 쥐고서 대항한다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알고 있었다.
“저는 베르카디아 벨 거트루드(Berkadia belle Gertrude). 빛과 정의의 신이자 신들의 열두 권좌 중 가장 드높은 권좌에 앉아 계신 신왕 오드볼그(Odvolg)님의 선택을 받아 용사가 된 자입니다.”
“데스 레이! 데스 레이!”
쩌엉! 쩌엉!
다가오는 걸음을 조금이라도 늦추고자 마법을 쏘아 봤지만, 용사가 무심히 휘두르는 성검 앞에 모조리 막혀 버렸다.
그리고 마왕의 앞에 드리워져 있는 그녀의 마력 장벽.
현자와 드래곤의 공격을 모두 막아낸 견고한 마력적 철옹성도 용사의 성검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카창!!!
용사가 성검을 꽂아 비틀자 마력 장벽은 맥없이 박살나 버렸다.
그리고 또다시 마왕을 향해 걸어가는 용사.
마왕의 옥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검은 셀레스티아(Celestia). 신왕께서 만들어주신 성검. 당신 같은 부정한 존재들의 마나, 루이나를 흩어내는 신들의 은총.”
“신왕이 만들어줬다고…? 웃기는 소릴 하고 있어….”
가증스러운 오드볼그의 얼굴이 떠오르고 격노에 몸이 떨리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그 존재를 애써 지웠다.
지금은 그런 것을 떠올리고 있을 틈이 없었다.
시시각각 용사와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잠시라면 괜찮을까.
잠시나마 마법구에서 손을 떼어 마력 장벽을 해제하는 그 얼마 안 될 시간 동안 용사를 저지할 수 있을까.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더 안전하고 좋은 방법이 없을까 모색해보나 답은 정해져 있었다.
“데우스 엔시스!”
쿠우우웅!!
자신이 죽어버리면 헤모니겐트의 민중들을 지킬 수 있는 방도 자체가 사라지고 만다.
마력 장벽을 해제함으로써 늘어날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지금은 맞서야만 했다.
마왕은 디멘셔널 스토리지(Dimensional Storage)를 불러내 자신의 최강 무기인 데우스 엔시스를 꺼내 휘둘렀다.
데우스 엔시스(Deus Ensis).
대형방패로 이용해도 될 만큼 크고 넓으며 거대한 대검.
본래 마왕의 보물고에 잠들어있던 다른 무기들과 달리 이 대검은 네로멜티아 스스로가 직접 명하여 만들어낸 본인만을 위한 무기였다. 길이가 260멘톨에 육박하며 손잡이를 제외한 검날만 해도 200멘톨. 가로의 너비가 50멘톨에 달하는 거대한 무기였다. 마력의 저장과 발산에 탁월한 스타더스트를 녹여 만든 뼈대에 역사상 가장 단단한 금속인 아다만티움을 뒤덮어 외관과 검날을 만들었다. 거대한 아다만티움 덩어리이기에 마나 소드를 발동하며 검을 보호하지 않아도 결코 망가지지 않으며, 그렇기에 당연히 따라오는 막대한 무게는 단지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파괴한다.
쿠우우우웅!!!
“크으으으윽…!!!”
쿠구구구구국!
용사는 갑작스럽게 휘둘러진 데우스 엔시스를 막기 위해 성검 셀레스티아의 손잡이와 검 끝을 잡고 막아내었다.
손바닥이 크게 다칠 수 있지만 괘념치 않았다.
용사는 본능적으로 저것을 평범한 공격을 막듯이 막으면 안 된다고 간파했다.
그 예측은 정답이었고, 검과 검이 부딪쳐 난 소리라고는 절대 생각되지 않는 육중한 굉음이 반파된 옥좌의 방을 진동시켰다.
검 끝을 잡은 오른손은 절대적인 압력을 악력만으로 버티지 못해 성검의 예리한 검날이 그 손바닥을 짓이겨 피가 터져 나왔고, 신체 또한 바닥을 부수며 내려앉아 뒤로 사정없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오드볼그의 신력을 이어받아 신의 힘을 부여받은 신체이건만 순수한 힘 싸움에서 밀려나는 것이다.
용사의 강건한 두 다리는 마왕성의 강고한 돌바닥에 파묻혔고, 그녀가 뒤로 밀려남에 따라 돌바닥이 마치 해변의 모래가 갈라지듯 두 개의 긴 구덩이를 만들며 박살났다.
“호오, 버텨냈나.”
“네. 그래도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용사는 거의 반으로 갈라져 피를 뿜고 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한 번 휘둘러 가득 흐르는 피를 털어 내었다.
그리고 성검의 날에 처참히 갈라진 오른손이 아물아물 다물어지며 순식간에 회복을 끝마쳤다.
휴미안의 약한 신체이기에 방어의 능력은 탁월하지 않지만, 그 몸에 깃든 신왕의 힘은 기적과도 같은 재생력을 부여했다.
즉사만 하지 않는다면 용사는 절대 죽지 않는다.
그리고 용사는 다음의 충돌에 대비하여 신력이라 불리는, 신족들의 마나인 디바나(Divana)를 최대한 발동하여 신체의 힘과 마나소드를 최대한도로 강화했다.
“하아아아아!!”
“미안하지만 내게 시간이 많지 않다. 서두르는 것을 용서하도록.”
카아아아앙!!
지금은 용사와의 전투를 위해 마력 장벽을 발동하는 마법구에서 손을 뗀 상태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휴미안군은 피난하는 데모니안들을 악랄하게 추격할 것이었다.
촌각을 다투는 때이기에 마왕은 공격을 서둘렀다. 그러나 디바나를 이용해 신체 능력과 마나소드를 강화한 용사는 방금 전처럼 쉽게 밀려나지 않았다. 양손으로 성검의 손잡이를 쥔 상태로도 그 강대한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마왕의 노도와 같은 파상 공세가 연이어 고막을 찢을 듯한 파공음을 동반하며 이어진다.
기습적인 공격에 방어 태세를 유지하던 용사는 눈을 번뜩이며 반격했다.
스으으
잔잔히 흐르는 듯하지만 평범한 이들이라면 결코 반응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
그 고요하지만 섬전(??) 같은 몸놀림으로 용사는 데우스 엔시스를 피하며 마왕의 품에 파고들었다.
잔상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그 움직임에 마왕은 당혹감을 보였으나 이내 이를 악물었다.
쿠슉!!
하나의 폭풍과도 같았던 강대한 마왕의 신체를 꿰뚫은 하나의 검.
마왕의 복부를 꿰뚫은 성검은 터져 나오는 피에 붉게 물들었고, 검은 연기가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마왕의 루이나가 성검의 힘에 철저히 파괴당하며 타들어 가는 것이었다.
용사는 그대로 성검을 올려 베어 마왕의 신체를 양단할 심산으로 올려다보았다.
마왕은 그녀 본인이 느끼는 극렬한 고통이 표정에 짙게 배어 나오고 있었으나 그와 동시에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입가에 선혈을 머금고 짓는 확신에 찬 미소.
그 눈빛.
용사는 그 순간 깨달았다.
마왕은 일부러 자신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쿠우우웅!!
데우스 엔시스를 놓아버린 마왕.
마왕의 대검이 바닥에 떨어지자 돌바닥이 무게를 못 이겨 부서졌다.
마왕은 자유로워진 양손을 이용해 그대로 용사를 감싸 안았다.
용사는 급히 벗어나려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으나 이미 마왕의 양팔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다.
우드드드득!!!
“크아아아아아악!!!”
“포기해라 용사여.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