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파멸을 불러온 자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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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패가 부서져 못쓰게 될 정도의 타격을 입은 중장기사와 마나소드를 파괴당하고 심장에 타격을 받은 전사.
이들을 회복하는 데에 주력하는 성녀.
말없이 마왕을 바라만 보는 용사.
잠시의 소리 없는 대치 상황.
현자는 주변을 둘러보며 인상을 쓰다 마왕을 향해 비아냥거렸다.
“우리 같은 휴미안 따위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건가요? 마법구만 들여다보느라 우리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으시는군요. 대단하신 마왕님께서는 자신의 성과 백성들이 불타더라도 별 상관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원수들이 눈앞에 있음에도 옥좌에서 일어나질 않으시니…”
식은땀을 흘리며 강한 척 뱉은 이죽거림이었으나 마왕은 현자의 놀림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현자로서는 최대한 자신의 공적을 키워야만 했으나 시간이 촉박했다.
원군이 오기 전에 여기 있는 동료들 선에서 마왕을 처치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용사 일행이 마왕의 목을 쳤노라고 당당히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이쪽을 좀 보란 말입니다!!!”
수십의 마법진이 공중에 발동되고 헤아리기 힘든 수의 아이스 스피어가 마왕을 향해 쏟아졌다.
협곡의 거대한 폭포가 쏟아지는 듯 무자비하게 퍼부어지는 아이스 스피어.
비산하는 얼음 조각들과 살을 에는 듯 시린 운무가 옥좌의 방 전체를 가득 메웠다.
마왕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될 정도로 퍼부어댔으나 겨우 이 정도로 마왕이 어떻게 되리라는 안일한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현자는 곧바로 다음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방대한 양의 마법폭격으로 이목을 흐리게 했으니 이번에는 강대한 한 방의 마법을 날릴 차례.
현자를 중심으로 바닥에 거대한 마법진이 발동되었고, 현자는 빠른 속도의 영창을 통해 마법 술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콰삭!
“커윽…!!”
마법진이 부서지고 당혹감에 젖은 채 피를 토하는 현자.
은빛의 서늘한 운무가 흩어지며 그 사이에서 드러나는 마왕의 붉은 안광.
그 살벌한 안광이 번뜩이자 현자는 마치 자신의 목이 날아가는 듯한 살기를 느꼈다.
그런 살기 따위는 무시하려 애썼으나 더욱 그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것은 마왕이 자신의 마법 술식을 파훼했다는 사실이었다.
‘마력 간섭이라고…? 아냐… 마력 간섭 정도에 깨질 내 술식이 아니다. 내가 술식에 쏟아 넣은 마력보다 상회하는 마력을 쏘아내서 마법 술식 자체를 파괴한 거야…!!’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현자는 머리에 피가 모두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법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방해가 들어오는 것에 대비하여 방어 술식 기동이 동반된다.
하물며 고위계 마법일수록 강대한 마력이 동반되기에, 사소한 마력 간섭으로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마력은 그 자체만으로 물리력을 행사하기는 힘들기에 마법 술식을 이용하여, 실현된 마력적 현상인 마법을 만드는 것이다.
마력 그 자체만을 이용하여 상대의 마력을 흩어놓는 방법도 있긴 있으나, 그것은 마력 간섭이라 불리는 마법적 기술이며 기껏해야 1위계 정도의 마법밖에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몹시 권위적인 마법사들이 행할 수 있는 상위 기술.
그런데 6위계의 마법을 그런 식으로 파괴해버린 마왕은 도대체 얼마나 되는 마법적 권능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인가.
여유를 가장하기 위해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 애썼으나 이미 눈빛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시야마저 흐려지는 듯 현기증이 아찔하게 몰려왔다.
식은땀이 온몸을 적시고 양손은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발동한 건 6위계 마법이라고! 그걸 단지 마력을 쏘아내는 것만으로 파괴할 수 있다고!?’
“우습게 보고 있어…!! 사악한 데모니안 주제에에에에!!!”
다시 한번 강대한 마법을 발동하기 시작하는 현자.
한 번의 마법 술식 파괴로 심장에 타격을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큰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현자는 자신의 술식에 집중하면서도 다급하게 동료의 도움을 요청했다.
“에이미! 마왕이 마력을 이용해서 내 마법 영창을 강제로 파괴한다! 방호의 기도를 부탁해! 한스! 게르딘! 전방의 물리 방어를 부탁한다!”
용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려 했으나 이내 고개를 젓고 마법 영창에 집중했다.
용사는 현재 마왕을 바라만 볼 뿐, 전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마법만 완성하면 되기에 굳이 생각 없는 동료를 독촉할 마음은 없었다.
결국 그녀도 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인이 내키지 않더라도.
“이게 제7위계 마법! 스콜라스 크러시(Squallas Crush)다!!!”
콰우우우우우우!
성녀 에이미의 방호 기도에 의해 마력적 공격은 피해갈 수 있었다.
혹시 모를 마법 공격에 대한 술식 파괴에 대비해서 전위인 전사 한스와 중장기사 게르딘을 방어를 위해 배치했다.
그리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자신의 가장 강대한 공격 마법인 7위계 마법 스콜라스 크러시를 성공할 수 있었다.
드래곤의 이름을 딴 바람의 마법.
여러 다발의 돌풍이 고도로 압축되어 하나의 충격파를 발사한다.
옥좌의 방 내부의 많은 창을 통해 몰려드는 대기의 흐름이 살벌한 울음소리를 만들며 작은 구 형태로 압축되었다.
주변의 산소가 희박해진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대기를 빨아들여 압축한 그 마법은, 술식이 완성되자 가득 억누르고 있던 대기의 반력(反力)을 그대로 상대에게 폭사했다.
그것은 이미 전방을 향해 터지는 하나의 폭발.
두쿵!!!
순식간에 전면 전체가 폭발하며 산산이 부서졌고, 흙먼지가 주변을 가득 메운 채 휘몰아쳤다.
눈 깜빡할 짧은 순간에 짧디짧은 굉음을 한번 내며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박살낸 바람의 폭발은 곧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의 세계를 가져왔다.
그리고 밀려났던 대기가 순식간에 빈 공간을 찾아 다시 휘몰아쳐 밀려오며 거센 폭풍이 주변을 휘감게 되었다.
쿠오오오오오오오!!!
“꺄아아악!!!”
“크으윽!!”
스콜라스 크러시는 이미 발사가 끝났건만, 그 뒤에 몰아치는 후폭풍만으로 이미 하나의 폭풍 마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위력을 과시했다.
성녀가 위태롭게 흔들리는 방호의 기도를 유지하며 비명을 지르고, 어떻게든 전면에서 불어닥치는 대기의 흐름을 막아보려는 게르딘이 버티길 버거워하며 안간힘을 썼다.
현자는 자신이 만들어 낸 천재지변의 가운데에서 흡족한 미소를 띤 채 자신의 걸작을 감상했다.
내가 만든 것은 재앙이다. 천재지변이다! 감히 살과 뼈로 이루어진 생명체가 이 노도와 같은 힘에 대항할 수는 없다! 휴미안의 몸으로 신과 같은 기적을 행했노라!
현자는 깊은 환희에 도취 되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낄낄대며 두 팔을 벌려 자신이 불러온 바람을 만끽했다.
후폭풍은 길지 않았고 잦아들었으며 주변을 가득 메운 분진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을 뿐이다.
현자는 자신이 이룩하고야 만 위대한 결과를 감상하기 위해 미소를 짓고 분진을 치웠다.
“윈드(Wind).”
현자가 만든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와 분진들을 치웠다.
그리고 머지않아 현자는 미소를 잃고 경악하며 표정을 흉하게 일그러뜨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눈앞의 모든 것이 박살나 허공만이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현자의 눈에 비치는 것은 여전히 자신의 옥좌에 앉아 마법구를 감싸고 있는 마왕의 모습이었다.
“어… 어떻ㄱ…”
마왕의 앞에 세워진 마력 장벽.
그 앞으로는 모든 것이 파괴되었으나, 장벽의 안은 무엇이 지나갔냐는 듯 적막한 평화만이 감돌고 있었다.
마왕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적을 인식하고 노려본다.
그 시선의 끝에 닿고 있는 것은 현자 같은 미력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보다도 더 뒤에, 이제 막 옥좌의 방에 도착한 존재.
푸른 빛의 긴 머리에 왕관을 쓰고, 금실로 자수가 놓인 학자 로브를 입은 해괴한 인물.
“마왕을 단죄하는데 그 정도로 되겠습니까, 현자 라미드.”
현자 라미드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가 도착하기 전에 끝냈어야 하는 일이었는데.
이제 도착한 학자 로브의 남성 때문에 마왕을 처치해도 오롯이 용사 일행만의 공적이라고 칭송할 수 없게 되었다.
당장 손아귀 안에 들어온 보물을 빼앗긴 기분.
진작 용사가 나서서 함께 싸워 주었다면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용사 또한 꼴 보기 싫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학자 로브를 입은 남성은 마왕이 세운 마력 장벽의 앞까지 유유히 걸어가 귀족적인 예법의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마왕. 제 이름은 지혜의 케르디하크…”
“네가 꾸민 일이군, 드래곤.”
스카이 드래곤, 지식의 케르디하크(Kerdihak).
세상 모든 지식을 탐하며, 오만한 자존심을 가진 드래곤.
그렇기에 헤모니겐트의 수호룡이자 스카이 드래곤의 로드인 파멸의 바르커스(Barkus)를 질투한 가여운 드래곤.
그 등장에 지금껏 말 한마디 하지 않던 마왕이 입을 열었다.
“지식이다.”
“…??”
“지식의 케르디하크. 다른 이들이 모두 지식이라 칭하는데, 네 스스로 자칭한다 하여 다른 이들이 인정하는 이명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지혜의 케르디하크입니다.”
“지식이다. 아는 건 많을지 어떨지 모르겠다만 결코 지혜롭게 보이지는 않는다.”
케르디하크의 역린이라도 건드린 모양인지, 우아하고 신사적이었던 그의 태도가 삽시간에 변하여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주변의 공기가 흉악하다 싶을 정도로 무겁게 변했다.
케르디하크의 주변에 마력이 광포하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같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가공(??)할 살기의 기세에 눌려 용사를 제외한 인간 모두가 몇 걸음이고 물러서야만 했다.
특히 마력을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현자 라미드와 성녀 에이미는 폭풍과 같이 몰아치는 마력에 숨이 막혀오는 느낌마저 들었다.
“네로멜티아. 이제 곧 죽을 목숨이라 예를 좀 차려 주었더니 눈에 보이는 것이 없나?”
“이딴 것이 예를 차린 것이라면 너를 가르친 어미도 알만 하구나.”
이제는 눈에 핏발이 가득 설 정도로 분노한 케르디하크.
그러나 마왕은 오히려 경망스럽게 히죽 웃으며 이죽거렸다.
“아, 미안하구나. 너에게는 어미가 없는 것을 내 실언을 했구나.”
“인피니트 라이트닝(Infinite Lightning)!!!”
더는 격노를 참지 못하고 케르디하크의 두 손이 벼락을 뿜어내었다.
마력을 쏟는 만큼 무한정 끊이지 않고 벼락을 뿜어내는 7위계의 마법.
심지어 마력을 강하게 쏟는 만큼 강대해지는데, 드래곤이 전력을 쏟아 시전하고 있으니 그 위력은 현자의 스콜라스 크러시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현자와는 달리 이 정도 규모의 마법은 영창을 생략하고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급격한 수준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꽈르르르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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