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1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새로운 일상 (完) (301/301)

〈 301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새로운 일상 (完)

* * *

캠핑카가 생긴 다음부터 우리의 일상은 변했다.

우리는 꼭 일반적인 가정처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진 집에서 일상을 보냈다.

선생님은 이 시간 동안 소설을 썼고 난 그런 선생님을 본받아 일기를 썼다.

낚시에 제법 재미를 들여서 그런지 낚시에 관해 찾아보는 것도 제법 즐거웠다.

그리고 주말이 찾아오면 우린 캠핑카를 끌고 밖으로 향했다.

향하는 곳에 제약은 없었다.

그저 낚시를 즐길 수 있으면 어디든지 향했다.

낚시를 즐기고 독서를 즐기고 들고 간 노트북으로 소설도 썼다.

이제는 제법 물린 바비큐를 해 먹는 경우도 있었고 캠핑카에서 평범하게 집밥을 해 먹는 경우도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캠핑카가 생김으로서 우리가 이전보다 더욱 활동적으로 변했다는 거겠지.

캠핑카가 없을 땐 무조건 집에만 있었다면 지금은 주말만 되면 목적지가 없어도 일단 캠핑카에 올라타고 보니까.

목적지가 없는 여행이라도 괜찮았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캠핑카에 올라 저녁노을이 떠오를 때까지 달린다.

그러다 밤이 찾아오면 그곳이 곧 캠프장이 되기도 했다.

그게 캠핑카가 갖는 작은 이점이었으니까.

“카메라 하나 사길 잘했어요. 그죠?”

“그러게. 제법 좋구만.”

선생님은 거실의 벽에 붙어있는 큼지막한 크로크보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캠핑을 하며 찍은 사진을 이곳저곳에 붙여놓고 적당히 익숙해졌다 싶으면 앨범으로 옮기며 추억을 쌓았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러다가 전국을 다 다녀보겠어.”

“그럴까요?”

“좋지.”

우리는 아예 캠핑카도 있는 겸 한국의 방방곡곡을 다녀보기로 했다.

우리의 캠핑카는 좀 특별한 녀석이라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테니까.

우린 동그란 보름달 때문에 별이 잘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11월도 거의 끝나가는구만.”

“그러게요.”

이제 밤공기가 싸늘해서 이렇게 모포만 덮는 걸로는 부족한 계절이 찾아왔다.

우린 서로의 몸을 딱 붙인 상태로 따뜻한 차를 마셨다.

찬바람에 식었던 몸이 조금은 부드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에요.”

“응?”

“만약에 이것도 질리면 어떻게 할까요?”

“질린다고?”

“네. 결국 전국을 다 돌면 질리지 않을까요?”

선생님의 친구분들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낚시를 즐겼다고 했다.

하지만 난 그 정도로 낚시에 푹 빠져버리진 않을 것 같았다.

물고기가 낚이면 재밌고 즐거웠지만 난 나를 잘 안다.

난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면 쉽게 질려버리는 유형의 인간이었으니까.

선생님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보았다.

“질리면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선생님은 약간 시무룩한 느낌으로 그리 말했다.

그리곤 머그컵을 들지 않은 손을 하늘로 뻗었다.

무언가가 거기에 있다는 듯이 손을 죔죔 해보기도 했다.

그리곤 뭔가 깨달은 바라도 있는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땅이 질렸으면 바다라도 가볼까?”

“네?”

“캠핑카로 전국을 돌아다녔으면 이번엔 배로 항해를 해보는 거지.”

선생님은 바다까지 질리면 이번엔 하늘을 날아보자고 했다.

하늘을 나는 것도 질렸으면 이번엔 저 밤하늘에 떠오른 달까지 가보자고 했다.

여긴 현실과 닮은 듯 하면서 다른 곳이다.

그러니 현실에서 해보지 못했던 것도 할 수 있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도 분명 방법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으려니 가슴이 조금 두근거리는 느낌이었다.

뭔가 좀… 기대된다.

“우리가 해본 것보다 못해본 게 더 많아. 아직 질리기엔 한참 남았잖아?”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머그컵을 잡지 않은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괜찮겠지?”

“네. 재밌겠네요.”

나이를 먹어가면 사람은 점점 활기를 잊는다.

우리 역시 그건 다르지 않았다.

이제 아이들도 컸으니 뭔가를 해볼까 싶다가도 몸이 무겁게 느껴지니 도전하기 꺼려졌다.

그래서 살아오던 삶을 관성처럼 이어나갔다.

하지만 여긴 그럴 필요가 없다.

질리면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하면 된다.

우리에겐 그럴만한 시간도 있고 자유도 있으니까.

“우리 이 캠핑카를 만들 때 말이야… 진짜 재밌었지?”

“그러게요.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었으니까요.”

선생님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걸 조금 더 확장해서 해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확장이요?”

“예를 들어서 그걸 직접 해본다든지?”

무슨 소린가 싶어 잠깐 생각을 해보니 선생님은 DIY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그게 될까요?”

“되기야 하겠지. 어려워서 힘들긴 해도.”

어려우니까 보람이 있는 것이다.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활활 타오르는 눈빛을 보내왔다.

“…어쩌면 그것도 도움을 주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죠. 한번 찾아보고 생각해요.”

“그러자.”

새로운 목표를 찾은 선생님은 그 외형에 어울리는 열정을 선보였다.

아마 당분간… 우리가 지루하다고 느끼는 시간은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

12월 31일.

에덴에도 연말이 찾아왔다.

우린 캠핑카에 이런저런 짐을 밀어 넣었다.

“엄마, 짐은 다 챙겼어~?”

“우리가 캠핑을 한두 번 해보니?”

“이런 말 하는 사람은 꼭 뭔가 두고 가더라.”

“내가 체크해봤어요, 공주님.”

“아빠가 체크했으면 인정이지~”

선생님과 희진이가 웃고 떠들며 장난을 치고 있으려니 진수가 스윽 내 곁에 다가왔다.

“괜찮으시겠어요?”

“응? 무슨 일이니?”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맞는 새해잖아요. 아버지랑 단둘이서 보낼 시간을 저희가 뺏은 건 아닌가 싶어서요.”

진수는 어린애 같은 외형으로 찾아왔으면서도 여전히 사려가 깊고 어른스러웠다.

“그랬으면 저이가 저리 웃고 있지도 않겠지.”

선생님은 희진이랑 장난을 치며 웃고 있었다.

결코 꾸며낸 웃음으로는 보이지 않는 환한 웃음이었다.

“이번엔 캠핑카도 있으니까 편하겠다~”

“그게 캠핑카의 좋은 점이지.”

선생님과 희진이는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재밌게 놀았다.

진수도 저 정도는 아니어도 조금은 무게를 덜어내면 좋을 텐데 말이야.

나와 처음 만났을 때의 조금 무거운 선생님에게서 칙칙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뺀 차분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가자.”

“네~!”

선생님을 시작으로 우린 캠핑카에 올라탔다.

우리를 태운 캠핑카는 전기차답게 부드럽게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새해에 가는 건 처음이네요.”

“애초에 아직 이곳에 온 지 1년도 안 됐잖아?”

“그렇죠.”

“뭔가 시간이 엄청 빨리 흐르는 느낌이야.”

선생님과 이곳에서 만나 떠오르는 새해를 보며 새 삶을 약속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지내고 서로를 아끼자고 맹세했다.

그로부터 당분간 조금 지루했던 일상도 있었지만 즐거웠다.

설마 이 나이에 결혼식을 또 올리게 될 줄 몰랐다.

선생님과 신혼여행을 떠났다.

우린 가족여행으로 찾아갔던 로마에서 휴일을 보냈다.

나는 공주님이 되었고 선생님은 기자가 되어 정말로 영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아… 그래서구나.

그렇게 재밌게 보냈는데 시간이 느리게 갈 리가 없지.

“그만큼 재밌게 보냈다는 거겠죠.”

“앞에 무야호가 빠진 느낌인데….”

“언제적 무야호에요?”

“그만큼 TV를 잘 안 보셨다는 거겠지~”

정말 여전한 사람이다.

우리를 태운 차는 아무런 막힘도 없이 나아가 이윽고 하조대에 도착했다.

“으응~ 캠핑카가 최고야!”

전기차라 엔진음도 조용하고 서스펜션도 가장 좋은 옵션으로 달았다.

그러다 보니 캠핑카 내부가 상당히 쾌적했던 모양이다.

희진이가 이 정도면 캠핑카에서 살아도 되겠다는 헛소리를 할 정도로는.

우린 캠핑카를 세울 수 있는 공터를 찾아 주차하고 조금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캠핑카는 편했다.

그냥 집에서 식사하던 것처럼 준비하면 됐으니까.

“아버지랑 어머니는 쉬고 계세요. 이번엔 저희가 하겠습니다.”

“응응, 아빠는 좀 쉬고 있어~!”

“괜찮겠어?”

“몸은 어려도 머리는 어른이니까 문제없지~”

희진이랑 진수는 싱크대 앞에 발판을 깔고는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린 그걸 조금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희진이의 말대로 외형은 어려도 그 속에 연륜이 담긴 동작이었다.

희진이와 진수가 차린 밥상은 우리가 차린 밥상과 큰 차이는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

우린 가족이니까.

““““잘 먹겠습니다.””””

캠핑카는 넓지만, 집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 분위기만큼은 집으로 느껴졌다.

***

캠핑카가 있으니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해도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우린 캠핑카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트럼프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AI가 아닌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도 해돋이 보는 사람이 있구나.”

희진이의 말마따나 해돋이를 보러 오는 사람이 아직까지 있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여기만큼은 많이들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이다.

그러니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겠지.

희진이의 말을 시작으로 주위에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자 하조대에 찾아오는 차량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좋은 자리를 잘 잡았네.”

“그러게요.”

우린 캠핑카에서 잠깐 선잠을 자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선생님의 휴대폰이 울기 시작했다.

“자, 다들 일어나.”

선생님은 진한 커피를 우려내 보온병에 담고 모포와 돗자리를 준비했다.

마치 소풍이라도 나가는 느낌이었다.

우린 두꺼운 패딩을 몸에 걸치고 캠핑카의 루프로 올라갔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한층 높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밤바다는 뭔가 색다른 기분이었다.

“캠핑카… 진짜 잘 샀네.”

희진이는 돗자리에 앉아 모포를 두르고 선생님이 따라준 커피를 마시며 그리 평했다.

“그지?”

선생님의 얼굴에 웃음이 깊어졌다.

“감사합니다.”

“그래.”

진수는 언제나처럼 묵직하게 선생님에게 커피를 받았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선생님은 내게도 커피를 따라주곤 내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우린 김이 솔솔 올라오는 커피를 호호 불어가며 해가 떠오르길 기다렸다.

바람이 불지 않는 새벽녘.

서서히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하며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린 멍하니 그걸 바라봤다.

수평선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은 서서히 주변의 어둠을 밀어냈고 온화한 빛을 사방으로 뿌렸다.

하조대에 몰린 제법 많은 사람은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도 그 사람들처럼 카메라를 꺼내 수평선에 떠오른 태양을 찍었다.

카메라를 내려놓으니 멍하니 해돋이를 바라보던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요?”

“저승에서 진정한 의미로 마지막 소원이 이뤄지는 순간이잖아.”

“아… 그러네요.”

100살까지 해돋이를 보러 오자는 그 소원.

내가 조금 일찍 죽는 바람에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던 그 소원.

그게 지금에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요, 부인.”

“저도 잘 부탁해요, 서방님.”

내게 해돋이는 시작과 끝을 암시하는 행사였다.

내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근처에서 웃어주던 선생님이 한 걸음씩 멀어지는 기분이 드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도 올해도 무사히 올 수 있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해주는 그런 행사였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선생님에게 말했듯이 우리에게 이곳은 더는 끝과 이별을 암시하는 곳이 아니다.

저 태양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의 이 행사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테니까.

나와 선생님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영원을 약속했다.

앞으로도 이 온화하고 따뜻한 일상이 계속되기를 빌었다.

선생님은 내가 원했던 모든 약속을 이뤄줬다.

그러니 이번 약속도 분명 이뤄주겠지.

우리의 일상은 서로소라는 이름의 소설에 담겨도 소설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겠지.

앞으로도 영원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