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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새로운 일상 (5) (300/301)

〈 300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새로운 일상 (5)

* * *

초심자인 내가 처음부터 낚시에 성공하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가령 뭐든지 먼저 준비하는 선생님이 좋은 낚시 포인트로 나를 데려왔다거나 낚싯대가 좀 비싼 메이커라거나.

하지만 그 이유가 뭐든 성공했다는 게 중요하다.

나이를 먹어가며 이런 식의 자극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은 별로 접하지 못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낚시에 빠져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난 20분간의 기다림을 넘어 1시간의 기다림이 와도 불평 없이 낚시를 즐겼다.

혼자였다면 지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옆에 있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차를 마시고 장난을 치니 그 지루함도 즐거움이 되었다.

그렇게 낚시를 하다 보니 어느새 대청호의 호수가 붉게 물들어있었다.

“슬슬 정리할까?”

“네, 그래요.”

우리는 짐을 정리하고 양동이에 담긴 배스 한 마리를 들고 캠핑카로 향했다.

다른 배스들은 잡는 족족 다시 놓아주었지만 내가 최초로 잡은 녀석은 먹기로 했으니까.

손질은 선생님이 직접 한다고 했으니 그냥 즐기기로 했다.

“오, 힘도 세구만.”

선생님은 양동이에 담긴 배스를 꺼내 목을 쳐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빼냈다.

그리곤 익숙한 동작으로 지느러미를 없앤 다음 비늘을 처리했다.

제법 손이 많이 가는 행위였는데도 선생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즐거워 보이는 미소였다.

“재밌어요?”

“으음… 글쎄?”

“얼굴은 웃고 있는데?”

“아, 떠나간 친구 놈들이 떠올라서.”

왜 갑자기?

“너랑 결혼할 당시의 내 나이대 남자들은 뭔가 신내림이라도 받았는지 취미가 비슷해지거든. 낚시하러 다닌다는 놈들이 절반이었어.”

선생님은 손질한 배스에서 나온 쓰레기를 처리하곤 말을 이어갔다.

“놈들이 항상 툴툴거리던 게 그거였거든. 낚시를 혼자 하니 쓸쓸하다~ 이런 거.”

매운탕을 끓일 물을 올린 선생님은 손의 물을 행주로 슥슥 닦은 다음 나를 돌아봤다.

“난 이렇게 신부가 옆에서 같이 즐겨주니 좋구나~ 싶어서.”

“재밌잖아요, 낚시.”

“이게 의외로 호불호가 심하답니다, 부인.”

그런가?

“아무튼 즐겨준 거 같아서 다행이네.”

선생님은 매운탕에 넣을 재료들을 준비하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캠핑도 글램핑도 많이 다니긴 했잖아? 우리가 집에 있기 적적하다 싶으면 여행이나 캠핑, 글램핑을 했었으니까.”

“그렇긴 했죠?”

“그러니 캠핑카가 있더라도 캠핑이나 글램핑이 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도 하고 그랬거든.”

그러니 변화를 주기 위해 낚시를 하자고 했는데 내가 즐기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선생님과 만나기 전의 나라면 지루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마 낚시도 즐겁게 받아들이는 건 선생님과 함께해서 그런 거겠지.

“생각해보면 낚시도 좀 편의를 봐주는 걸지도 모르겠네.”

“뭐가요?”

“우리가 의자에 앉아서 제법 웃고 떠들고 했는데도 상당히 잘 잡힌 편이잖아? 원래 배스 낚시는 좀 이리저리 많이 돌아다녀야 하거든.”

낚시 방송을 보면 배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좀 긴 장화를 신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 사람들이 즐기는 낚시가 배스 낚시라고 설명하였다.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물고기가 잘 낚시는 포인트가 있으니까 그러는 거겠지.”

오히려 그렇게 몸을 움직여서 재밌는 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겐 좀 허들이….

“그래도 좀 편한 게 좋기는 하지. 우리 같은 초보가 거기까지 하기는 좀….”

물이 끓고 선생님은 매운탕의 재료를 넣었다.

그걸로 일단락됐는지 선생님은 이마에 손등으로 훑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매운탕 레시피는 또 언제 조사했어요?”

“유비무환이라고 했소, 부인.”

처음부터 낚시에 성공하면 매운탕을 해먹을 생각이었구나?

이렇게 낚시에 진심인 편인데 지금까지 잘도 참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운탕이 보글보글 끓으며 매콤하면서도 어딘가 감칠맛이 느껴지는 냄새가 풍겨왔다.

“준비할게요.”

난 식탁을 꺼내고 식사 준비를 마쳤다.

“자, 오늘은 낚시의 신 수진이가 잡은 배스로 만든 매운탕입니다!”

선생님은 그리 말하곤 커다란 그릇에 매운탕을 덜어 식탁 중앙에 놓았다.

““잘 먹겠습니다.””

우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매운탕으로 수저를 넣고 국을 떠 맛을 보았다.

“오….”

“으음~”

맛있다.

정말로 맛있다.

남이 만들었다거나 여기가 밖이거나 하는 그런 이유가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맛있었다.

얼큰한 국물은 분명 고추장과 고춧가루의 맛이다.

선생님은 감칠맛을 더해준다며 라면스프를 조금 넣었는데 그 맛도 있겠지.

어쨌든… 맛있다.

매운탕 안에 들어간 청양고추와 고추장, 고춧가루가 몸을 따끈하게 데워주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낚시를 즐기고 낚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해 먹으니 정말 즐거웠다.

이런 거라면 당분간 질리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좋네요.”

“그러게.”

나와 선생님은 어느새 오늘 있었던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끝냈다.

밑반찬은 집에서 먹던 그대로인데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식사가 즐거웠던 것 같다.

***

식사를 끝내고 우린 차를 마시며 여운에 잠겼다.

주위는 이미 해가 저물었고 띄엄띄엄 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달이 안 뜨겠네요.”

“그러게.”

“별이 예쁘겠죠?”

“그럼 그거 해볼까?”

“그래요.”

선생님은 싱글벙글 웃으며 리모컨을 눌렀다.

그 순간 철컥 소리가 나며 캠핑카의 루프로 올라갈 수 있는 구멍이 생겨났다.

우린 바로 그 아래에 자리를 잡았고 선생님이 다시 한번 버튼을 누르자 우리가 서 있던 공간이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캠핑카 내부에 리프트를 설치해서 캠핑카에 루프로 올라갈 수 있는 그런 장치였다.

캠핑카의 루프도 제법 튼튼하게 만들어서 이렇게 밖으로 나와 주변 경치도 구경할 수 있는 옵션이었다.

나와 선생님은 캠핑카의 루프에 돗자리를 깔고 그대로 누웠다.

“이게… 인생이고 삶이지.”

언제나와 같은 선생님의 헛소리.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을 헛소리라고 생각하긴 좀 그랬다.

선생님의 말이 너무나 공감 가는 순간이었으니까.

돗자리를 깔고 누운 상태로 올려다본 밤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달이 떠오르지 않은 밤이라 그런지 주위는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근처에 있는 선생님만 어렴풋이 보이는 그런 밤이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자신들만을 바라보라며 세상에서 빛을 지워버린 것 같다.

난 선생님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밤하늘은 자주 보았다.

캠핑이나 글램핑의 마지막은 항상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었으니까.

로마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도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정말 자주 보았는데… 오늘은 뭔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름답네.”

“그러게요.”

선생님도 평소에 입에 잘 담지 않는 아름답다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

평소엔 잘 보이지 않는 흐릿한 별도 듬성듬성 빛을 내는 상태라 밤하늘은 온통 별로 가득했다.

이렇게도 밤하늘이 아름다웠나?

“그래도 우리 신부는 이길 수 없는 것이제.”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작게 웃었다.

방금까지 흐르던 묘한 긴장감이 옅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은 매번 그러네요.”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

선생님은 내 손을 놓고 내 어깨를 슬쩍 안아왔다.

난 그 손에 거스르지 않고 선생님의 몸에 몸을 기댔다.

“솔직히 새 삶이라고 해도 좀 불안하긴 했어.”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걸까?

“내가 소설을 쓰고 있을 때마다 네가 조금 지루해하는 느낌이 들었거든.”

모니터에 흡수라도 당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니터를 노려보던 선생님이었는데….

그런 상태에서도 내 상태를 살폈던 걸까?

“그래서 좋네. 역시 안 해보던 것도 해보고 그러고 살아야지.”

이렇게 특별하고 즐거운 경험이 계속되면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

선생님은 그리 확신하는 느낌이었다.

밤바람이 불었다.

대청호의 수면을 따고 불어온 바람은 11월에 걸맞게 제법 쌀쌀한 느낌이었다.

난 온기를 찾아서 선생님의 몸에 조금 더 파고들었다.

선생님은 그런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린 밤하늘을 이불 삼아 그렇게 한동안 누워있었다.

딱히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 시간 자체가 아름답고 특별하다고 느껴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하는 기분이었으니까.

“저쪽 세상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별자리가 된다고 했었잖아?”

“응? 아, 그랬죠.”

아이들에게 종종 그런 식으로 표현하고는 했지.

“그럼 이 세상에 있는 별도 그러려나….”

선생님은 오늘따라 감수성이 풍부해진 느낌이었다.

어쩐지 목소리도 조금 축축해진 느낌이었다.

“아버님이랑 어머님… 생각하고 있어요?”

“어. 왠지 떠오르네.”

아버님과 화해를 한 선생님은 아주 가끔 경상도로 내려가곤 하셨다.

아버님의 친가를 찾는 것이다.

선생님은 아버님과 함께했던 이야기를 종종 입에 담았었는데 그때 나왔던 이야기가 저 밤하늘의 별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버지랑 함께 있을 땐 이상하게 말이 잘 나오지 않아서 말이야.”

선생님은 아버님과 함께 경상도를 찾아 성묘하곤 당일에 올라오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종종 밤하늘을 같이 올려다보는 시간이 생겼단다.

“왠지 어색해서 그런 이야기를 꺼냈었거든. 죽으면 저 밤하늘의 별이 되어 후손들을 굽어살핀다고.”

평소라면 꺼내지 않을 이야기를 하셨구나….

“그런데 여기는 저기랑은 다르니까 말이야. 굽어 살펴주실지 모르겠네.”

“살펴주시겠죠.”

“그럴까?”

“그게 부모 마음 아니겠어요?”

우리가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고 했으면서도 매번 진수랑 희진이를 떠올리는 것과 같다.

아버님도 어머님도 그리고 우리 엄마도 분명….

“그러니까 우린 양가 부모님이 굽어살피는 중인데 이렇게 야한 짓을 하는 부부라는 거지.”

그리 말한 선생님은 그 못된 손을 뻗어와 자연스럽게 내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흣.”

선생님의 못된 손이 아주 자연스럽게 내 유두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샜다.

“이 변태가.”

난 선생님의 머리를 콩하고 때렸다.

“밤하늘을 이불로 삼아 와이프와 사랑을 나눈다. 이거 못 참거든요?”

“좀 참아요.”

왜 같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같은 은유를 떠올렸으면서 하는 행동은 이렇게 다른 걸까?

밤하늘에 달도 떠오르지 않았는데 선생님은 어느새 늑대가 되어 내 몸을 희롱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외로워서 그러는 걸지도 모르지.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상처에 딱지가 앉고 아픔에 무뎌져도 그 흔적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나중에 돌이켜보고 딱지를 건드리면 다시 피가 스며 나오고 아픔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이미 잊었다고 지난 일이라고 말하지만, 선생님은 아직 그때의 그 아픔을 완전히 잊지는 못하신 거겠지.

아무리 내가 잘했다고 좋은 아들이었다고 해도 선생님은 그걸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리라.

그 죄책감과 부모님의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이 선생님을 이리 만들고 있는….

“오! 오늘도 모유가 바나나맛 우유네. 좋구만.”

…아니, 그냥 선생님은 변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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