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9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새로운 일상 (4)
* * *
캠핑카의 내부 인테리어를 고르는 건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로 보였지만 이상하게 자꾸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생겨났다.
그래서 아예 샤워기 모델부터 탁자 모델까지 하나하나 전부 따로 선택해서 배치한다는 극단의 선택을 취해버렸다.
그렇게 캠핑카의 내부 인테리어를 정하는 데 무려 3일이나 걸려버렸다.
“캠핑카에 진심인 편….”
“시끄러워요.”
어느새 선생님보다 캠핑카에 더 진심이 되어있던 것 같다.
“이것도 하나의 집이니까 그런 거예요.”
“예, 부인.”
“….”
난 헛기침을 하고 딴청을 피웠다.
캠핑카의 모델링이 끝났으니 이제 캠핑카가 올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우선 어디로 갈 거예요?”
“글쎄…?”
그렇게 캠핑카 캠핑카 노래를 불렀으면서 어디로 갈지 생각해두지도 않았던 걸까?
캠핑카는 캠핑을 즐기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닌데….
하지만 저렇게 들떠서 싱글벙글거리는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캠핑카가 목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저러다가 캠핑카에 질렸다고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선생님은 서로소를 다 쓰곤 기지개를 켜고 스트레칭을 한 다음 노트북으로 뭔가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키보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마우스만 사용하는 모습이 웹서핑하는 느낌이었다.
“뭐해요?”
“캠핑카가 오면 가볼 곳 찾아보는 중이야.”
행동도 빠르셔라.
난 커피를 마시며 그런 선생님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캠핑카를 산다는 일이 끝나고 나니 다시 조금 한가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역시 뭔가 할 일을 찾는 편이 좋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선생님의 미간에 주름이 지기 시작했다.
뭔가 고민거리라도 생긴 것일까?
“왜 그래요?”
“음… 혹시 낚시엔 관심이 없나 싶어서.”
“낚시요?”
“어.”
이건 그때 그 이야기의 연장인가?
캠핑과 글램핑만 하다 보면 어느새 질려서 다른 걸 찾게 된다던 그 이야기.
소설을 읽는 것도 지겨워져서 나중엔 낚시를 하게 되는데 그게 제법 재밌다던 그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80년이 지나고서야 낚시를 해보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솔직히 낚시라고 해봐야 잘 모르겠다.
낚시를 해본 적도 손에 꼽고 재미를 느껴본 적도 딱히 없는 것 같으니까.
그래도 저렇게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선생님이 좀 귀엽게 느껴져서 해보자고 했다.
“조아쓰~!”
선생님은 큰맘 먹고 비상금을 사용하는 남편 같은 느낌으로 낚싯대를 주문했다.
그리곤 뭔가 해낸 듯한 표정으로 만족스럽다는 느낌의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곤 의자에 등을 맡기고 그대로 축 늘어졌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구만.”
선생님은 그 잠깐의 기다림도 즐길 수 있는 즐기는 자 모드가 되어버렸다.
선생님의 활기는 캠핑카가 도착할 때까지 쭉 이어졌다.
***
1주일의 시간이 흘러 우리 앞엔 캠핑카가 도착했다.
역시 폴리곤 덩어리라 그런지 현실 세계보단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느낌이었다.
“허어….”
선생님은 입을 살짝 벌린 상태로 멍하니 캠핑카를 바라봤다.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고 눈이 초롱초롱해서 제법 귀여웠다.
선생님은 얼른 내부를 확인하고 싶어서 몸이 들썩거리면서도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마치 선물의 포장을 조심스럽게 뜯어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가보자.”
“네.”
나와 선생님은 우선 차의 외형을 살펴보기로 했다.
시계방향으로 캠핑카를 확인해본 우린 어딘가 어깨가 들썩이는 기분이 되었다.
우리가 주문했던 것과 똑같은 외형의 차가 있다는 건 어딘가 좀 가슴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꼭 레고 같은 블록으로 쌓은 장난감이 실체화한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우린 외형을 확인한 다음 차량의 운전석과 조수석으로 향했다.
사실 캠핑카의 가장 큰 묘미는 내부겠지만 우린 어딘가 바로 들어가는 건 아깝다는 생각에 다른 부분부터 둘러보고 있었다.
“오오… 진짜 선택했던 그대로야.”
캠핑카의 운전석과 조수석은 굉장히 좋은 재질의 시트가 있었다.
선생님이 선택했던 것처럼 제대로 사륜구동이 있어서 조금 험지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AI가 운전하는 건 똑같네.”
“그건 법이니까 어쩔 수 없어요.”
우린 그렇게 운전석과 조수석을 확인해보다가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은 운전석에서 조수석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작은 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가볼까?”
“가보죠.”
우린 이상한 나라로 향하는 엘리스보다 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 작은 문을 열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기대했으면서 내가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양보해줬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캠핑카의 내부를 살펴보았다.
“아….”
내가 그렇게 캠핑카를 둘러보고 있으려니 선생님이 따라 들어왔다.
“오….”
내가 선택했던 인테리어 그대로의 캠핑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뭔가… 감동이었다.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싱크대도 냉장고도 있어서 조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공간.
화장실도 있어서 샤워하는 것도 세수하는 것도 문제없을 것 같다.
침실도 공간이 넉넉해서 진수와 희진이가 와도 문제없을 것 같다.
차량에 달려있던 버튼을 누르니 벽에 달려있던 모니터에 차체의 모양이 떠오르고 차량이 어떤 식으로 변하고 있는지 모형이 떠올랐다.
그 모형엔 차체의 천장에 있던 태양광 패널이 펼쳐지는 모습이었다.
이걸로 외부에 나가도 전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좋네.”
선생님은 멍하니 그저 좋다는 이야기만을 꺼낼 뿐이었다.
우린 어딘가 달아오른 기분으로 캠핑카의 침실에 누워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가자.”
“가죠.”
우린 거의 동시에 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건… 가야 한다.
마침 얼마 전에 낚싯대도 도착했으니 가야지.
“일단 쇼핑이죠.”
“그래.”
우린 집안에서 챙겨야 할 물품들을 챙겨서 캠핑카에 밀어 넣은 다음 식재료를 찾아 근처의 마트로 향했다.
물론 캠핑카를 운전해서 말이다.
“어디로 갈 거예요?”
“낚시는 대청호지.”
그리 말한 선생님은 안전벨트를 매라는 이야기를 꺼내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었다.
차량은 그저 조용히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서스펜션도 좋아서 떨림도 없고 전기차라서 조용한데 마력도 끝내주고….”
선생님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나도 즐겁긴 한데 선생님은 좀 어나더 레벨이었다.
그렇게 좋은 걸까?
“그렇게 좋아요?”
“캠핑카는 말이야… 남자의 로망이야.”
“그렇게 좋으면 생전에 사지 그랬어요.”
“그러게나 말이야.”
선생님은 로망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을 좀 했다며 사지 않은 이유를 털어놓았다.
현실이 바쁘고 아이들이 커가는 속도가 빠르니 캠핑카를 사더라도 많이 쓰지 못할 것 같아서 포기했다는 이야기였다.
하긴… 그랬지.
진수와 희진이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커버려서 결혼하고 집을 나갔다.
우린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없는 삶을 보냈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우리만 남아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캠핑카를 살 수는 없었겠지.
선생님은 로망이라는 꿈과 가정이라는 현실 앞에서 현실을 택한 것이겠지.
“잘 낚이면 좋겠는데 말이야.”
선생님은 캠핑카에 실은 낚싯대를 떠올리는지 조금 불안하면서도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흥얼거렸다.
난 그런 선생님을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잘 안 낚이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괜찮죠.”
“그래?”
“어차피 캠핑카는 한두 번 쓰고 주차장에 박아둘 건 아니잖아요.”
캠핑카니까 언제든지 캠핑을 떠날 수 있다.
그러니 언제든지 낚시를 할 수 있다.
언제든지 낚시를 할 수 있으면 언젠가는 낚시를 잘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도를 담아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도 내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는지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우리를 태운 캠핑카는 그렇게 대청호에 도착했다.
***
“일단 점심부터 먹자.”
“네.”
캠핑카를 타고 대청호에 도착한 우리가 가장 먼저 한 건 점심을 차리는 일이었다.
메뉴는 집에서 먹는 메뉴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참치를 넣은 김치찌개와 밑반찬을 꺼내놓고 메인으로 불고기를 준비했다.
집에서 먹는 것과 똑같은 메뉴인데 그래서 더 특별했다.
솔직히 말해서 캠핑에서 먹는 바비큐도 조금 질리는 느낌이었으니까.
매번 캠핑을 할 때마다 바비큐를 하다 보니 이런 집밥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우린 캠핑카에서 식사를 마치고 낚싯대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11월이 되어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 대청호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양 손가락으로 사람을 셀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사람들은 전부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었고.
“낚시는 진짜 의외로 많이들 하나 보네요.”
이런 날씨에 대청호까지 찾아와서 저러고 있다는 건 그만큼 낚시에 진심이라는 뜻이겠지.
“하다 보면 재밌대.”
그러니까 죽어서도 즐기는 거겠지.
선생님은 그런 조금 이게 맞나? 싶은 말을 하곤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어디로 가야 하는 줄은 알고 가는 걸까?
…의외로 잘 아네?
선생님은 이번에도 철저하게 대청호를 조사해온 느낌이었다.
어디가 초보자가 낚시하기 좋은 곳인지 미리 찾아둔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낚시용 의자를 내려놓고 접이식 테이블까지 차려놓은 다음 낚싯대를 설치했다.
그 동작이 굉장히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난 그저 걸어가서 선생님이 준비한 의자에 앉았다.
“자, 해보자.”
선생님은 배스 낚시에 대한 TMI를 들려주며 내 낚싯대를 세팅해주었다.
…지나치게 편했다.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알아서 해주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면 나름 즐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세팅을 끝낸 우린 선생님이 가져온 보온병에 담긴 뜨뜻한 커피를 마시곤 낚시찌를 던졌다.
줄이 풀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제법 먼 거리를 날아간 낚시찌를 멍하니 바라봤다.
“오, 잘하는데?”
처음치고 이 정도면 멀리 잘 던진 거란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선생님이 인터넷으로 조사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본은 알아야겠다는 느낌에 자세나 방법을 좀 찾아보긴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잘 된 걸까?
나와 선생님은 의자에서 일어나 조용히 낚시를 시작했다.
심심하면 선생님은 배스 낚시의 TMI를 시작했고 그걸 듣는 것도 의외의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20분가량이 지나자 의외로 내 낚싯대에 뭔가 감촉이 느껴졌다.
“서, 선생님…!”
난 목소리를 낮추고 선생님을 불렀다.
그러자 선생님은 서둘러서 본인의 낚싯대를 거치대에 거치하곤 내 근처로 다가왔다.
그리곤 내 뒤에 서서 내 손과 낚싯대를 부드럽게 잡았다.
“천천히 무리하지 않고 당기면 되는 거야.”
물고기가 발광하며 도망치기 위해 용을 쓰는 느낌이 낚싯대로 전해졌다.
뭔가 생각보다 엄청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라 물에 빠지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하지만 선생님이 뒤에 서니 든든한 느낌이었다.
선생님의 조금 당황한 듯한 지시에 따라 릴을 당기니 어느새 물고기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선생님은 어버버하면서도 그물망을 꺼내 들어 물고기가 난리를 치는 곳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리에게 물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법 큰 배스네.”
얼마나 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낚시로 물고기를 낚은 건 처음이었다.
뭔가… 짜릿했다.
배드민턴이나 테니스, 배팅센터에서 야구공을 때릴 때의 그 묘한 손맛.
그 손맛이 정말 짜릿하게 느껴지는 그런 순간이었다.
낚시… 의외로 재밌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