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8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새로운 일상 (3) (298/301)

〈 298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새로운 일상 (3)

* * *

21세기에 들어서선 3D프린터라는 물건이 등장해 여러 물건을 입체적으로 찍어낼 수 있었다.

그 시대로부터 자그마치 100년이 흘러 22세기에 들어섰는데 못할 것도 없었다.

나와 선생님은 트럭 캠퍼처럼 제법 험지를 다닐 수도 있으면서 모터홈처럼 움직이는 집을 컨셉으로 직접 차를 만들기로 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3D프린터로 물건을 찍어내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걸 원한다고 주문을 넣으면 알아서 만들어져서 배달되어 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일단은 밴이 좋을 거야. 일반버스나 마을버스는 너무 크니까.”

아까까지 선택 장애가 왔던 선생님은 그 자리에 없었다.

선택에 자유를 주니 선생님은 본인이 머릿속에 그리는 길을 착착 나아가기 시작했다.

“밴이지만 제법 험지를 다니는 경우도 있을 테니 사륜구동을 넣을 거야.”

“그래요.”

선생님은 사륜구동을 선택하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타이어 종류부터 타이어 개수도 선택이 가능하네….”

밴을 차체로 한다고 했는데 그조차 여러 가지 변경이 가능했다.

가령 15T짜리 대형 트럭처럼 바퀴가 4개가 아닌 보조 바퀴가 여러 개 달린 형태로 말이다.

“이러면 모터홈이 좀 무거워도 타이어에 부담이 없겠는데….”

“그럼 그렇게 해요.”

선생님은 결국 사륜구동이 가능한 형태에 중간엔 보조 바퀴가 달려있어서 차의 무게를 분산시켜주는 형식을 골랐다.

타이어도 일반적인 타이어보다 조금 내구성이 높고 마찰력이 높은 모델로 주문했다.

다음은 차체의 옵션이었다.

“전기차니까 전기를 쉽게 수급할 수 있으면 좋겠지?”

“그렇겠죠?”

선생님은 옵션으로 자가 발전을 선택했다.

캠핑카의 루프에 태양열 발전기를 옵션으로 선택하곤 제법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기 시대는 21세기 중반 정도면서 태양열 발전기는 22세기에 한없이 가까운 모델이네.”

덕분에 그리 크지 않은 크기면서도 전기 발전량에 도움이 될 거 같다며 선생님은 환하게 웃었다.

아마 그런 부분은 좀 배려를 한 게 아닐까 싶다.

이 정도면 이쪽 세계관을 어지럽히지 않는다고 판단한 거겠지….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그 마찰을 사용해 전기의 충전이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선생님은 자동차의 전력 수급을 상당히 신경 쓰는지 평소보다 더 꼼꼼했다.

한참을 그렇게 고민한 선생님은 캠핑카의 외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깔끔한 디자인이 좋겠지?”

“네.”

“으음~ 어디 보자….”

선생님은 마음에 드는 외형을 하나씩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북마크를 해놓은 다음 북마크로 이동해 내 의견을 물어왔다.

우린 그 이미지 파일들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이건 이렇게 하자.”

그렇게 말한 선생님은 이미지 파일들을 섞고는 뭔가를 켰다.

그 순간 화면엔 두 장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왼쪽 오른쪽?”

“으음… 오른쪽이요.”

“좋아, 나도 오른쪽이었어.”

선생님은 이미지 파일들을 이지선다로 만들어버렸다.

확실히 이거라면 선택 장애가 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요 며칠 캠핑카로 고민하며 끙끙거리던 선생님은 어디로 가고 착착 진행하는 모습이 엄청 듬직했다.

우린 한참 동안 모니터와 씨름해서 외형까지 결정했다.

“조아쓰!”

선생님은 제법 기분이 좋아졌는지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좋아요?”

“좋지. 생각해보니까 21세기 초도 아닌데 왜 그때를 기준으로 생각했는지 모르겠어.”

“이게 다 저 덕분이죠?”

“그렇지. 역시 우리 부인이 최고지!”

선생님은 우리가 선택한 자체 생산 캠핑카의 옵션을 늘어놓으며 웃었다.

사륜구동이 가능한 밴이며 엔진도 튼튼하고 좋은 놈이며 타이어도 6개나 달려서 하중 걱정도 없다.

그래서 제법 험지도 다닐 수 있는데….

선생님은 그리 설명하며 아주 즐거워했다.

좋아하는 소재가 나오면 말이 많아지는 건 여전했다.

난 선생님의 이야기에 작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이렇게 좋아하니 괜히 뿌듯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부터가 문젠데 말이야….”

“뭐가요?”

“캠핑카는 내부가 진짜 중요하다고?”

선생님은 캠핑카 외형과 옵션은 잘 달렸지만,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캠핑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부 인테리어겠지.

이건 차면서도 동시에 이동하는 집이니까.

우린 같은 모니터 앞에 앉아 다시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

“거기서 막힐 줄 몰랐네.”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며 냄비를 휘저었다.

오늘의 메인메뉴인 닭도리탕이 타지 않도록 하는 거겠지.

“원래 그런 법이에요.”

“솔직히 내 눈엔 거기서 거기였는데.”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한다구요.”

“옙.”

차체와 옵션, 외형을 고를 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순식간에 이야기가 진행되어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내부 인테리어에서 막혀버렸다.

막아버린 건… 나다.

캠핑카가 이동하는 집이라는 생각이 들자 내부 인테리어가 하나 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생님은 내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고 하는 걸 보며 작게 웃으며 천천히 생각하자고 했다.

나와 선생님의 입장이 반대가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다 됐어.”

“네. 저도 준비할게요.”

밥솥의 밥을 뜨고 국을 그릇에 담아 식탁으로 옮겼다.

선생님은 닭도리탕을 접시로 옮기고 식탁에 내려놓았다.

““잘 먹겠습니다!””

우린 나란히 인사를 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뭔가 일을 하고 식사를 하는 것 같은 묘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보다 조금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일한 듯한 느낌이야.”

선생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것 같다.

“밥이 평소보다 꿀맛이네요.”

“그러게.”

이 정도면 여기에서 일하며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우린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있으려니 우리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캠핑카로 향했다.

“내부 인테리어는 좀 생각해봤어?”

“일단 너무 화려한 건 캠핑카에 어울리지 않으니까….”

난 선생님에 나름 고민한 것들을 들려주었다.

일단 샤워실이 있으면 편하다.

캠핑카에 욕조를 바라는 건 사치니 그건 제외하고 생리현상이 없으니 좌변기도 필요 없겠지.

샤워기와 세면대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

빽빽하게 채워 넣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가령 트럭 캠퍼처럼 루프 부분을 침실로 활용하는 방식을 도입해보자.

그럼 침실로 쓰는 공간의 아랫부분이 남는다.

거길 꾸미면….

근데 그렇게 하면 또 문제가….

난 중얼중얼 내가 고민하는 문제를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새 나와 선생님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흐으…. 역시 어렵구만.”

선생님은 별다른 생각이 없는지 닭도리탕을 먹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뭘까?

남자들이란~ 이러면서 좀 방관자의 위치에 서 있었는데 어느새 이러고 있다.

…선생님한테 너무 물들었나?

“진수나 희진이가 찾아오는 것도 좀 고려를 해봐야겠지?”

“네. 그래야죠.”

그래서 침실에 이렇게 고민하는 거니까….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면서도 계속 캠핑카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근데 그건 좀 여기랑 너무 닮지 않았나?”

“이동식 집이니까요.”

“조금 색다른 느낌도 괜찮지 않을까?”

“그건 그런데….”

이곳 에덴에 와서 선생님과 보냈던 삶을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선생님과 아무렇지도 않게 보낸 일상도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니까.

끝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에게 새로운 삶이 찾아왔는데 싫을 리가 없다.

하지만 어딘가 조금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예전엔 그저 선생님이 소설을 쓰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어딘가 나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조바심이 태어나는 것도 있기는 했다.

그런 내게 캠핑카는 조금 특별한 존재로 다가왔다.

선생님은 순수하게 캠핑카라는 녀석의 매력에 푹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난 조금 다르다.

캠핑카를 고민하며 우린 예전처럼 무언가를 같이 하고 있다.

그게… 그저 좋았다.

선생님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설을 쓸 때 나도 노트북을 꺼내 소설을 썼었다.

난 그런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그때 그 감정이 다시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너무 좋아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린 캠핑카라는 것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건 진수와 희진이의 의견도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네요. 내일 한 번 물어봐요.”

“그러자.”

부부가 공동으로 할 일이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다채로운 느낌이 들었다.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고민하고 서로 딱 붙어 있으려니 우린 평소보다 서로를 가깝게 느꼈다.

“수진아….”

그건 분명 나만의 착각은 아니겠지.

선생님의 뜨거운 시선이 그리 말해왔으니까.

은은하게 방안을 비추는 달빛과 함께 우린 몸을 포개었다.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달이 떠오르는 것과 함께 늑대가 되었지만, 평소보다 더 따뜻하고 상냥한 느낌이었다.

우린 그렇게 서로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

“오늘은 조금 사람다웠어요.”

“내가 짐승이라고?”

“아니에요?”

“…틀린 말은 아닌 듯한?”

“아하하!”

선생님은 나를 부드럽게 끌어안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랑 이렇게 다시 뭔가를 하니까 굉장히 즐거워.”

“그래요?”

“어. 내심 네가 다시 소설을 써주지 않을까 싶었거든.”

선생님도 나와 함께 소설을 쓰는 그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소설을 쓰며 스트레스를 받은 것도 알고 있어서 강요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무언가를 같이 하고 있으니 너무나 즐겁다고 한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더니….

“저도 사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

선생님은 웃으면서 나를 끌어안았다.

“부부는 일심동체지.”

신혼여행만 두 번을 다녀온 우린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특별한 부부가 되어버렸다.

“진수랑 희진이도 좋아하려나?”

“좋아하겠죠.”

진수는 당신을 쏙 빼닮았으니까.

희진이도 나름 좋아할 것 같다.

집순이지만 캠핑이나 글램핑은 좋아하던 녀석이었으니까.

“내일은 꼭 정했으면 좋겠네.”

“네. 그래요.”

나와 선생님은 서로를 얼싸안은 채 서로 사랑을 속삭이다가 잠이 들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달콤한 밤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