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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7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새로운 일상 (2) (297/301)

〈 297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새로운 일상 (2)

* * *

나는 선생님을 살짝 노려봤다.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가?

선생님은 변태다.

갑자기 착유기를 꺼내오고 모유를 무슨 성수처럼 생각한다.

코스프레로 관계를 맺을 때면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이성을 잃는다.

그런 선생님이 갑자기 새로운 뭔가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솔직히 믿을 수 없다.

지금은 한낮이니 괜찮으려나…?

선생님은 내 시선을 느꼈는지 한쪽 눈썹을 씰룩였다.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얀마…. 내가 항상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고 사는 놈이야?”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선생님을 쳐다봤다.

선생님은 어딘가 찔리는 부분이 있는지 고개를 살짝 돌리고 얼굴을 긁적였다.

“아니, 확실히 내가 좀 그렇긴 한데… 이번은 진짜 아니거든?”

“뭔데요?”

“너도 좋아할 거라고 믿습니다.”

믿습니까?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내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뭔가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던 진수가 떠오르는 눈빛이었다.

“뭔데요?”

“이거.”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휴대폰의 영상을 보여줬다.

거기엔 경차로 이곳저곳을 다니고 차 안에서 캠핑을 즐기는 그런 영상이었다.

정말 굉장히 오래전에 올라온 영상이었다.

나와 선생님이 신혼일 적에 올라온 그런 영상이었으니까.

잘도 이런 영상이 아직까지 남아있구나 싶은 그런 영상.

“이게 뭐예요?”

“이걸로 가자고.”

“자동차로 캠핑?”

“옙.”

“…캠핑카?”

“그렇지!”

선생님은 그제야 본인이 듣고 싶었던 말을 맞췄다며 즐거워했다.

난 선생님의 어깨를 살짝 밀어 선생님이 캡처한 캡처본을 살펴봤다.

그 캡처본엔 아버지와 함께 캠핑을 하러 자주 갔던 일에 관한 이야기도 적혀있었다.

이렇게 캠핑을 좋아하면 차라리 캠핑카를 사는 건 어떠냐는 어머니의 말씀에 캠핑카를 샀다는 내용이었다.

캠핑카를 타고 같이 여행을 다녔던 그 순간이 정말 행복했었는데 우리가 글램핑이나 캠핑을 자주 즐기는 걸 보니 공감이 됐다고.

선생님은 이걸 보고 혹했던 것 같다.

“캠핑카야.”

“캠핑카네요.”

“…사도 돼?”

“사고 싶으면 사는 거죠.”

난 저쪽 세상에 있을 때도 선생님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면 사는 것에 참견하지 않았다.

굳이 참견했다면 선생님이 옷을 살 때 정도?

그런데도 이렇게 의견을 묻는 건 캠핑카가 좀 고가이기 때문일까.

“같이 여행도 가줄래?”

“그럼 캠핑카를 샀는데 저만 두고 다니려고요?”

“고마워!”

선생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벼왔다.

그렇게 행복한 걸까?

난 선생님의 등을 살짝 토닥여줬다.

이 자세에선 선생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왠지 보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선생님을 80년간 보아왔으니까.

몸에 힘을 풀고 내게서 떨어진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18살이라 조금 더 장난기가 깊어진 그런 천진난만한 표정이다.

“그럼 찾아봐야지~”

선생님은 그리 말하곤 자리에 앉아 캠핑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난 그런 선생님의 곁에 커피를 한잔 놓아주었다.

선생님은 아마 한참 동안 고민할 테니까.

“고마워.”

선생님은 커피를 후후 불어 한 모금 마시곤 다시 모니터에 집중했다.

선생님의 캠핑카 선정 작업은 커피가 미지근한 커피가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

“참 묘하단 말이지.”

선생님은 서로소를 다 써서 올린 다음 인상을 팍 찌푸렸다.

“뭐가요?”

“보면 바로 고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야.”

아, 캠핑카 이야기구나.

선생님이 캠핑카를 사자고 이야기를 꺼낸 날로부터 사흘이 지났다.

선생님은 무려 사흘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캠핑카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이건 진짜 진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진수도 칭찬 스티커를 모아서 한참을 고민했었는데….

선생님은 진수가 자기보다 나와 더 닮았다고 했는데 하는 행동을 보면 판박이다.

“뭐가 문젠데요?”

“이것 봐봐.”

선생님은 나를 옆으로 앉혀 내 어깨를 왼팔로 끌어안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캠핑카에 눈이 돌아가서 과격해진 선생님이 좀… 남자답게 느껴졌다.

“이거이거.”

난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 선생님이 가리킨 화면을 봤다.

“예를 들어서 말이야….”

선생님은 캠핑카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캠핑카에도 종류가 참 많은 모양이었다.

일단 트럭이나 SUV에 달아서 끌고 다니는 식의 캠핑카가 있단다.

그걸 캐러밴이나 캠핑 트레일러라 부른다고 한다.

이런 종류는 일단 간편하다.

캠핑을 다닐 때만 붙이면 되는 형태라 우리 집에 있는 차에 부착해서 필요가 없을 땐 떼버리면 된단다.

우리 상황으로 비추어보면 이게 가장 맞는 형태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건 선생님의 취향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달고 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으니까.

“어떻게 생각해?”

“으음… 글쎄요? 딴 건 없어요?”

선생님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걸로 하자고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적당히 선생님에게 맞춰주기로 했다.

다음에 선생님이 소개해준 것은 모터홈이라는 형태의 캠핑카였다.

이건 우리가 흔히 캠핑카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런 형태의 캠핑카였다.

차체가 처음부터 ‘아, 이거 캠핑카구나.’ 싶은 그런 게 모터홈이란다.

기본적으로 가격이 비싸고 차 자체가 하나의 이동식 집으로 되어있다.

마을버스나 밴을 개조해서 만들어지거나 대형 버스를 개조해서 만든다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화장실이나 싱크대가 갖춰져 있고 잠자리도 쾌적하다.

하지만 그렇다 보니 덩치가 커다래서 제약이 생기는 것 같다.

선생님이 가장 끌리고 있는 건 이 모터홈이라는 녀석인 것 같다.

그런데도 고민하고 있는 건 아무래도 계속 캠핑카를 쓸 일이 있을까 싶어서 그러는 거겠지.

“다음은 이거.”

그다음으로 나온 것도 상당히 익숙한 물건이었다.

트럭의 짐칸에 얹어놓은 것으로 트럭 캠퍼라는 매우 직관적인 이름의 물건이었다.

선생님은 이것도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는 느낌이었다.

끌고 다니는 것과 그리 차이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거랑 캐러밴? 이랑 차이가 거의 없는데요?”

“아니지, 아니지!”

선생님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남자들이란….

“뭐가 다른데요?”

“이건 트럭에 싣는 거잖아? 트럭은 사륜구동도 있단 말이지. 험지도 갈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이젠 수명연장 수술과 VR 기술로 인해 죽음의 경계가 매우 희미해진 세상이다.

그런데도 그런 험지를 굳이 찾아가고 싶은 걸까?

선생님이 고민하는 종류가 뭔지 알 것 같다.

선생님의 마음은 모터홈으로 7할 정도는 기울어있다.

하지만 모터홈은 덩치가 커서 산지 같은 험한 지역에는 가기 힘들다.

우리는 캠핑과 글램핑을 자주 즐겼으니 익숙한 곳은 금방 물릴 수도 있다.

그러니 조금 색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선 산지 같은 험한 지역에 가야 한다.

그러니 3할 정도는 트럭 캠퍼에 마음이 기운다.

하지만 트럭 캠퍼는 캐러밴처럼 주거 공간에 제약이 있다.

그러니 저렇게 고민하는 거겠지.

선생님은 정말 한참 동안 인상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졌다.

아무래도 쉽게 결론이 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면 일단 모터홈이랑 트럭 캠퍼가 마음에 든다는 거죠?”

“일단은 그렇지?”

“그럼 그 둘을 고른다는 가정을 하고 내부부터 좀 살펴봐요. 그러다 보면 뭔가 정리가 될지도 모르잖아요.”

“…우리 아내는 천잰가?”

“네~ 네~ 천재랍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둘 다 사면 되지 않을까 싶다.

좀 재수 없게 들릴진 모르겠지만… 우린 돈이 많으니까.

그 정도 사치는 부려도 될 정도로 말이다.

애초에 이쪽 세상은 현실 세계랑은 다르게 폴리곤으로 만드는 데이터 덩어리라 가격도 싼 편이었고.

그런데도 난 굳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선생님은 이 끙끙거리며 고민하는 시간조차 즐기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하아….”

선생님은 캠핑카 내부의 이미지를 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요?”

“종류가 너무 많아서 결정장애가 와버렸습니다, 부인.”

오늘의 선생님은 정말 귀찮은 사람이었다.

이번엔 내부 장식이 문제란다.

…그래도 선생님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었다.

나도 보면서 결정장애가 올 것 같았으니까.

캠핑카는 제법 역사가 긴 만큼 내부의 구조도 참 다양했다.

아무래도 캠핑카가 싼 취미도 아니며 이동하는 집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개성이 드러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뭔가 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계속 신경이 쓰였다.

가령 선생님이 보고 있는 내부는 트럭 캠퍼의 내부인 것 같다.

트럭 캠퍼는 트럭의 위에 볼록 튀어나온 부분이 침실로 되어있었다.

나머지는 캐러밴 같은 구조로 되어있었는데 모터홈을 보고 오니까 약간 부실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역시 모터홈의 싱크대와 화장실이 있는 편의는 이길 수 없는 것 같은데….

선생님은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더니 휴대폰을 꺼내 뭔가 하기 시작했다.

“뭐해요?”

“머리가 하나라도 더 많으면 도움이 될까 싶어서.”

선생님은 친구분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문자를 주고받고 있으려니 이젠 전화를 시작했다.

“아, 그러니까….”

언성을 높이기까지 했다.

도대체 선생님에게 있어 캠핑카는 무엇일까?

난 좀 시큰둥한 느낌으로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휴대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화가 좀 길어질 것 같다.

선생님은 전화가 길어지면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처음엔 가볍게 걷다가 냉장고 문도 열어보고 침대에 몸을 던져서 굴러다니다가 소파의 팔걸이에 앉기도 한다.

좀 정신 사나운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선생님이 뒤져보던 캠핑카에 대해서 좀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선생님은 아무리 생각해도 2020 ~ 40년 사이에 멈춰있는 것 같다.

이 세계는 일단 VR 세계라서 여러 가지 자유가 많은 편인데 왜 이렇게 고민을 할까?

트럭 캠퍼가 좋은 점은 좀 험한 곳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모터홈이 좋은 점은 편의성이다.

…그럼 그 둘을 합치면 되는 거 아닐까?

VR 세계니까 그런 것도 가능할 텐데….

난 그런 생각에 캠핑카를 처음부터 직접 생산하는 방법에 대해 찾아보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찾을 수 있었다.

밴이나 마을버스 같은 걸 개조할 필요가 없이 처음부터 직접 제작이 가능한 그런 차량이었다.

선생님이 바라는 대로 4륜 기어가 있도록 만들고 모터도 튼튼한 거로 쓰면 오지에 가기도 쉽겠지.

전기를 쓰는 거니까 전기를 수급하는 장치도 달아보면 어떨까?

난 그렇게 생각하며 여러 가지 옵션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후우… 뭐해?”

“없으면 만들면 되잖아요?”

“엉?”

그렇게 우리의 새로운 일상이 시작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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