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6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새로운 일상
* * *
선생님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목표가 정해지진 않았는지 우린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희진이가 우리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보내왔다.
“뭐지?”
“글쎄요?”
희진이는 TV에 연결해서 보라는 말을 했고 우린 희진이의 말에 따랐다.
잠시 기다리자 TV에는 우리에겐 익숙한 그 방송이 흘러나왔다.
에덴에 관해 설명하는 그 방송이었다.
ㅡ 이번에 에덴에서 또 새로운 커플이 탄생했습니다.
ㅡ 그런가요?
ㅡ 네. 그것도 지원 씨에게 제법 익숙한 사람들이에요.
ㅡ 익숙하다고요?
ㅡ 바로 ‘서로소를 사랑한 아저씨’의 주인공인 두 사람의 결혼식입니다!
그리 말한 순간 화면엔 우리가 결혼식을 하며 찍었던 사진이 떠 있었다.
분명 방송국이 찾아오는 것은 거절했지만 사진이나 동영상 정도는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아 허락했었지….
TV에선 나와 선생님이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1주일 전에 있었던 일인데 뭔가 시간이 제법 지난 느낌이야.”
“그러게요.”
로마에서 보낸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았는데….
우린 서로 어깨를 기댄 채 멍하니 TV를 바라봤다.
ㅡ 제법 많은 사람이 찾아왔네요. AI는 아닌 것 같은데?
ㅡ 네. 무려 하객만 100명이 넘는 엄청난 규모의 결혼식이었어요.
하객 100명은 그리 엄청난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하객 100명이 결코 쉬운 숫자가 아니다.
그게 현실과 이쪽 세상의 차이지.
이 에덴을 알리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다른 결혼식도 하객이 30명을 넘지 않았었다.
ㅡ 이상하네요. 어떻게 이런 숫자의 하객이 있을 수 있을까요?
ㅡ 그건 바로 이것 때문이죠.
패널이 소개한 것은 서로소를 읽고 있는 독자에게 보내는 선생님의 청첩장이었다.
이렇게 다시 보니 여전히 장난기가 가득한 청첩장이었다.
하지만 그리 기분이 나쁘진 않은… 그런 묘한 문장이었다.
ㅡ 청첩장… 이군요?
ㅡ 네. 서로소를 읽어주는 독자에게 보내는 청첩장이죠.
ㅡ 신기하네요. 딱 잘라 말하면 작가와 독자에 불과한 관계인데….
ㅡ 아마 평범한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세상에서 가장 오랜 시간 연재가 되는 소설로 기네스에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으니까요.
“선생님… 기네스래요….”
“이건 좀 놀랐는데….”
설마 이런 이야기가 될 줄 몰랐는데….
“근데 죽었는데 상도 받을 수 있나?”
“그러게요?”
우린 어딘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패널들 때문에 정신이 멍해졌다.
우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패널들은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ㅡ 문장은 말로는 담아낼 수 없는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다는 표현이 서로소에 자주 나옵니다. 아마 우리에겐 조금 장난기가 섞인 청첩장이어도….
패널들은 선생님이 쓴 청첩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그 이야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말로는 담아낼 수 없는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다는 표현.
저건 선생님이 종종 서로소에 쓰던 표현이다.
솔직히 말하면 선생님이 작가의 말에 써놓은 청첩장 문구는 좀 아니다 싶을 정도로 장난기가 가득했다.
도저히 120살 먹은 할아버지가 썼다곤 믿을 수 없는 그런 문구였다.
하지만 그런 문구를 보고도 100명이 넘는 사람이 찾아와줬다.
그건 아마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있기 때문이겠지.
80년이나 쓴 소설이다.
이젠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일기에 가까운 무언가가 되어버린 그런 소설이다.
그 시작은 선생님이 우리 엄마를 설득하기 위한 도구였다.
하지만 선생님이 엄마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 스토리까진 분명 소설적인 재미가 있었겠지.
그 이후부턴 나와 선생님의 평범한 일상을 다룬 스토리가 이어졌다.
정말로 어디에나 있는 그런 뻔한 이야기가.
그런데도 그 이야기가 재밌어서 지금까지 읽어준 사람들이다.
그러니 선생님의 청첩장을 보고도 웃으면서 참가해 준거겠지.
TV에서 흘러나오던 영상은 앞으로도 서로소가 계속 연재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화제가 전환됐다.
우린 TV를 껐다.
그리곤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이거 제법 화제가 됐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게.”
선생님은 청첩장을 써놓은 부분과 오늘 올렸던 연재 부분에 달린 댓글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턱을 쓰다듬다가 이윽고 인터넷에 서로소를 사랑한 아저씨를 검색했다.
“그래도 되겠어요?”
“이젠… 괜찮지 않을까?”
선생님은 서로소에 대한 검색을 극도로 꺼렸다.
선생님이 우리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소설을 수필에 가깝게 썼다.
자신의 모든 것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는 뜻이다.
인생의 벼랑 끝에 몰려있던 선생님이 나라는 존재를 만나 변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글러 먹은 인간이다.
하지만 그래도 서서히 변화하는 자신을 지켜봐 달라.
그런 마음을 담아 모든 것을 드러냈다.
그렇다 보니 선생님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독자에겐 너무나 인상이 찌푸려지는 소설이 되어버렸다.
그 소설에 공감하는 사람은 너무 재밌다며 결혼식까지 찾아와 줄 정도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선생님을 엄청나게 헐뜯고 비난했다.
선생님은 그 비난을 보고 굉장히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었다.
ㅡ 내가 애새끼는 맞지. 그러니 부모님께 그렇게 못난 아들이었고 너한테 상처도 많이 줬으니까.
ㅡ 아니에요. 선생님이 왜 애새끼야….
ㅡ 애새끼였으니까 19살 여고생이랑 눈이 맞은 거겠지. 내가 정상인이었으면 19살 여고생이랑 눈이 맞을 리도 없으니까.
ㅡ 이 못된 입으로 내 사랑을 헐뜯지 말아 줄래요?
ㅡ 후우….
그날 이후로 선생님은 인터넷에 서로소를 검색해보지 않았다.
자신을 응원해준 사람보다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의 날이 더 날카롭게 가슴을 후벼파는 느낌이라 글을 쓰고 싶지 않아진다나 뭐라나….
그런 경험을 해봤으면서도 선생님은 굳이 다시 검색해보려고 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머님껜 전해졌으니 다행이겠지….”
“또 또!”
“네 사랑을 헐뜯지는 않을 거야.”
그걸 또 기억하고 있네….
그러니까 이렇게 검색하면서 손을 부들부들 떠는 거겠지.
“이렇게 부족한 인간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변했다. 난 앞으로도 변할 거다. 너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다… 그런 의도를 담아 쓴 글인데 말이야.”
“그래요.”
“히로인을 구원하는 서사는 좋아하는데 주인공이 구원받는 서사는 너무 일렀던 걸까?”
“그냥 나이 차가 현실적이었으니 그렇겠죠.”
선생님은 그때 그 감정이 떠올랐는지 인상을 팍 찌푸린 채 조심스럽게 마우스를 움직였다.
그리곤 서로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글을 클릭했다.
다행히 처음에 찾은 내용은 긍정적인 내용이었다.
38살이 19살을 만난 건 좀 그런데 120살이 100살과 어울리고 있다고 생각해보니 19살 차이도 별거 아닌듯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밑에 긍정하는 댓글도 부정하는 댓글도 있었지만, 긍정이 대다수였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세대엔 흔했던 일이니 이 정도는 문제없지 않느냐는 댓글.
의사는 기본 30대 중반 이상에서부터 의사로서 취급받고 결혼하는 여자도 기본 13살 연하부터 시작하는데 19살이 뭔 문제냐는 댓글도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것들을 쓰윽 훑어볼 뿐이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악플에도 별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
선생님의 시선은 그 밑에 있는 제목으로 향해있었다.
ㅡ 오늘 작가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그런 제목으로 되어있는 글이었다.
글을 눌러보니 우리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독자가 쓴 글이었다.
오늘 내가 읽던 소설의 작가가 결혼식을 올려서 아버지와 다녀왔다.
내 나이 60.
이젠 수명 연장을 받아 중년이라고도 부르기 애매한 나이니 틀딱이라 하지 말고.
아무튼 이 소설은 좀 특별한 소설이다.
아버지가 이 소설의 애독자였거든.
처음엔 줄거리만 보고 안 보던 소설이었음.
소설이 아버지를 나타내는 것 같이 너무 적나라했거든.
아버지가 의사신데 어머니랑 나이 차가 14살이었음.
그래서 소설에 당신을 이입하시며 보는 느낌이라 꺼려졌거든.
근데 나이를 먹다 보니 좀 궁금해져서 읽어봤는데 취향에 맞더라.
그래서 읽다 보니까 어느새 나이가 60이 되어버렸네.
아버지는 지금 에덴에 살고 계시는데….
……
…
그래서 다녀오니 참 많은 생각이 들더라.
처음엔 담담하게 적던 내용이 철학적인 내용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내가 잠깐 고민했던 기억의 연속성과 스웜프맨… 그런 이야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에덴에 살게 되어 고민에 빠졌던 거겠지.
하지만 결론은 에덴에 사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생각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즐겁게 웃으시는 아버지를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는 내용이었다.
선생님은 그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눈가를 손으로 덮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울어요?”
“울긴… 누가 울어….”
목소리가 좀 잠긴 느낌인데….
“소설이란 그런 거지.”
그 잠깐 사이에 마음을 추슬렀는지 선생님은 제법 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누구나 재밌어하는 소설은 없어.”
그 사람이 태어난 환경에 따라 가치관이 형성된다.
가치관이 다르니 취미와 취향도 갈리니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소설이란 없다.
“갈매기의 꿈도 20번은 퇴짜맞은 소설이고….”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그 글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듯이 캡처를 뜨기 시작했다.
“그러니 누군가는 욕해도 누군가에겐 의미 있는 소설이 되기도 하는 법이지.”
선생님은 캡처 뜬 파일을 폴더에 저장까지 하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걸로 충분해.”
선생님은 그 글에 달린 댓글만 읽어보곤 그대로 창을 꺼버렸다.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것도 이렇게 전해졌으니 됐지.”
“그렇죠. 계속 쓸 거죠?”
“당분간은 계속 써야지. 가장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알면 됐어요.”
선생님은 웃으면서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선생님을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소설을 쓰는 일은 피곤하다.
나름 기성작가라고 불린 나조차 두 작품을 쓰면 한 작품은 유료연재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
유료연재 성적이 나와도 혹평하는 리뷰나 댓글이 달리면 칼에 찔리는 느낌이다.
숨이 턱 막혀오고 그날 하루는 식욕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걸 극복하는 건 그만큼 좋은 성적이 나오는 지표를 확인할 때다.
그런데 서로소는 그런 것도 없다.
거기에 더해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아마 상당히 괴로웠겠지.
다시는 인터넷에 서로소에 대해 찾아보지 않겠지.
선생님은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그 캡처 본에 적힌 내용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곤 턱을 쓰다듬으며 뭔가 고민에 빠졌다.
“왜요?”
“새로운 일로 해볼 게 생각나서.”
그리 말한 선생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까까지 보였던 눅눅한 느낌이 없는 해맑은 표정이었다.
뭘 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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