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5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신혼여행(14)
* * *
약간의 헤프닝이 있었지만 그렇게 신혼여행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우린 12시가 되기 10분 전에 호텔을 빠져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놓고 온 물건은 없지?”
“네.”
“휴대폰 충전기도 챙겼고?”
“네~”
“그럼 가자.”
우린 때마침 근처를 지나고 있던 택시를 잡아 공항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금방 끝나버렸네.”
“그러게요.”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금방 끝나버렸다.
하지만 그게 여행의 묘미라는 거겠지.
“돌아가면 바로 서로소 쓸 거예요?”
“음… 일단 진수랑 희진이한테 돌아왔다고 연락 정도는 남겨야겠지. 아, 그리고 준범이랑 준호한테 잘 다녀왔다고, 결혼식 참석해줘서 고맙다고 문자도 보내고.”
아, 그렇네.
나도 서윤이한테 잘 다녀왔다고 문자 정도는 보내야겠구나.
서울에 돌아가서 할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어느새 우린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비행기 출발까지 대략 1시간 정도가 남은 시간이었다.
“여기서 인천까지 가면 대략 12시간 걸리고 한국은 이탈리아보다 7시간 앞서니까 으음… 대충 아침이겠네요.”
“그렇겠네.”
우린 인천과 똑같은 절차를 통해 항공권을 탑승권으로 바꾸고 안내방송에 따라 비행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비행기엔 우리가 왔을 때처럼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니, 그냥 없다고 봐야 하는 수준이었다.
고작 3명뿐이었으니까.
해외여행이란 마지막 순간까지 만끽하고 싶은 법이다.
그러니 설령 돌아가는 사람이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그 순간을 늦추겠지.
이 시간에 돌아가는 사람이 있는 편이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다.
우린 자리에 앉아 로마에서 즐긴 휴일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막 대단한 건 없었는데 재밌었네요.”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여운 와이프가 옆에 있었으니 그렇겠지.”
능글맞은 사람 같으니….
“그러게요. 능글맞은 구렁이 같은 사람이 있어서 심심하진 않았어요.”
“구렁이가 이걸 말하는 건가?”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성희롱을 해왔다.
정말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선생님과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방송이 들려왔다.
본인은 이 여객기를 맡은 누구며 이제 곧 출발하겠으니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달라는 이야기였다.
우린 방송에 따라 안전벨트를 매고 가만히 기다렸다.
그러자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하늘로 떠올랐다.
귀가 약간 먹먹한 느낌이 들어 침을 조금씩 삼키고 있으려니 이내 안전벨트 모양의 불이 꺼졌다.
난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해 먹먹한 귀를 해결하고 돌아왔다.
“이건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단 말이지.”
“그러게요.”
이 묘한 감각이 비행기를 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좀 불쾌한 기분이라 이런 건 제외해줬으면 싶기도 한데….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선생님이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아 왔다.
“오늘 밤을 기대해도 되는가?”
“…꿈 깨요.”
“후우….”
신혼여행을 올 땐 저녁 이후였기에 다들 잘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낮인 상황이라 도착할 때까지 다들 깨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저번 같은 일은 이제 없다.
애초에 그땐 뭔가 좀 심하게 들떠있는 상황이라 그런 상황이 연출된 것뿐이니까.
“해외여행의 힘을 빌리면… 수진이가 언젠가 또 그런 짓을 해주지 않을까?”
선생님의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듣고 있으려니 몸에 힘이 쫘악 빠졌다.
그와 동시에 정말로 우리의 여행이 끝났다는 실감이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했는데요….”
“응?”
“역시 좀 아쉽네요.”
선생님과 로마를 돌며 이런저런 곳에 다니는 시간이 상당히 즐거웠다.
우린 기본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고 그 시간을 지루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역시 선생님과 뭔가를 하는 시간이 조금 더 즐겁게 느껴졌다.
선생님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어딘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제법 진지한 표정인 거로 보아 기내에서 관계를 맺는 방법 같은 망상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리 돌아가면 이번엔 좀 활동적으로 살아볼까?”
“활동적이요?”
“이렇게 새 삶이 시작됐으니 전생에 못 했던 것들을 해보는 것도 좋잖아?”
서로소는 자기 전에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어디에 있든지 노트북만 있으면 쓸 수 있으니 굳이 집안에만 있지 말고 여러 가지를 경험해보자는 이야기였다.
난 여러 가지 활동을 해도 그 근간은 집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뭔가 내 마음을 읽는 힘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딱 내가 바라는 말을 해주니까.
“그래요.”
“으음… 뭐로 해볼까….”
선생님은 다시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굉장히 즐거워 보이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렇게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눈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술을 마시고 밤새 뭔가 일이 있었긴 있었는지 몸에 피로가 쌓인 느낌이었다.
우린 서로 손을 잡고 아주 잠깐만 눈을 감기로 했다.
그렇게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어느새 우린 인천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으읏~!”
“후우.”
우린 서로 기지개를 켜다가 서로를 보고 작게 웃었다.
“이제 정말 신혼부부네.”
“그러게요.”
솔직히 신혼부부라고 하기엔 좀 나이가 있기도 했고 양심도 찔렸지만… 괜찮겠지?
“자, 신혼집으로 돌아가자고.”
“네.”
우리의 신혼여행은 그렇게 끝을 맞이했다.
***
여행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면 당연히 짐 정리다.
캐리어에 있는 짐들을 꺼내서 세탁하고 사 온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분주하게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정오가 되어있었다.
“점심은 배달 음식으로 하죠.”
“그래.”
우린 당연하다는 듯이 배달 음식을 시키고 소파에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냈다.
“이 느낌도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여행을 마친 다음에 오는 이 특유의 현타에 가까운 느낌.
정말 오랜만이다.
아직 여행의 여운에 젖어있는 느낌인데 짐을 정리하려니 정말 끝났다는 실감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아, 정말 끝났구나….
그런 생각에 몸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몸에 체중을 싣고 추욱 늘어지고 있으려니 선생님은 작게 웃으며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80년이면 우리도 슬슬 바뀔 때가 됐나보다.”
“뭐가요?”
“이제 우리도 집돌이와 집순이를 벗어날 때가 됐다 그 말이지.”
선생님은 집에서는 웬만한 것들을 다 해봤으니 이제 밖으로 돌아다니자는 이야기를 꺼내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밖으로 돌아다니며 보낸 건 음… 캠핑이나 글램핑 정도?
여름에는 해수욕을 즐겼고 가을에는 등산을 좀 즐겼던 것 같다.
가끔 가족이랑 해외여행을 다니기도 했고.
그 외에 또 즐길 게 남은 걸까?
구체적으로 뭘 해볼 생각이냐고 물어보려고 하니 배달 음식이 도착했다.
“크흐… 역시 느끼한 거 먹은 다음엔 이렇게 매콤한 걸 먹어줘야지.”
아무래도 뭘 꾸미고 있는지는 알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니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내 의사를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니 준비가 되면 알려주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 우린 예식장에 와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전화를 돌렸다.
우선은 진수와 희진이에게 잘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ㅡ 즐거웠으면 됐어!
“그래, 별일 없지?”
ㅡ 우리가 뭐 별일이 있겠어? 나중에 사진이나 좀 보내봐~
“그래.”
진수와 희진이는 여전히 평소와 같은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다시 휴대폰으로 친구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서윤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ㅡ 여보세요, 수진이니?
“응, 서윤아. 잘 다녀왔어.”
ㅡ 으이구~ 이 기지배. 그렇게 즐거웠어?
“응?”
ㅡ 목소리에서 다 티가 나는데?
정말로 그런 걸까?
ㅡ 나중에 사진이라도 좀 올려봐.
“알았어.”
어딘가 희진이랑 나눴던 이야기와 비슷한 느낌의 대화가 오갔다.
서윤이는 로마엔 뭐가 재밌는 데 가봤냐며 여러 질문을 해왔고 난 그 말에 동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뭔가 서로가 아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니 멀어졌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ㅡ 그럼 나중에 또 보자~
“응, 결혼식 찾아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ㅡ 그래~ 잘 살아!
“응.”
서윤이와의 통화를 끝내니 선생님이 내게 머그컵을 내밀었다.
“마셔.”
“고마워요.”
선생님은 어느새 통화를 끝내고 내가 통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고 있던 것 같다.
“친구가… 참 좋지?”
“…그러게요.”
난 선생님이 타준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손으로 감쌌다.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머그컵은 제법 차가워서 멍했던 머리가 서서히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저, 욕심쟁이인가 봐요.”
“이제 와서?”
“….”
“크흠. 농담이니까 계속해봐.”
“선생님이랑 가족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서윤이랑 통화를 하니까 그… 뭔가….”
“알아. 나도 그러니까 아직도 그놈들이랑 연락하고 사는 거니까.”
오히려 이 나이가 되어 그런 말을 하는 내가 특이하다며 웃는 선생님이었다.
난 헛기침을 해서 주제를 돌렸다.
“선생님도 얼른 결혼식에 와준 하객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야죠.”
“그래야지.”
선생님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노트북을 가져왔다.
그리곤 심호흡을 한 다음 짐에서 수첩을 꺼내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정리를 끝냈는지 선생님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 되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선생님의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선생님은 놀랍게도 1시간 만에 5천 자를 써내곤 맞춤법 검사를 끝낸 다음 팔짱을 꼈다.
“왜 그래요?”
“친구 놈들이 아니니까 어떻게 써야 할지 좀 고민이네.”
“고민할 게 있어요?”
“엉?”
“그냥 솔직하게 예식장에서 하객분들이 찾아와줬을 때의 그 감사한 마음을 담으면 되는 거죠.”
“…우리 와이프는 천잰가?”
“네~ 네~ 천재입니다.”
선생님은 웃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꺼내곤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작가의 말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우리의 결혼식에 찾아와줄 정도의 사람들이다.
감사의 마음만 담겨있다면 어떤 방식이든 좋아할 텐데 왜 이렇게 고민을 하는지 모르겠다.
난 선생님이 쓰고 있는 작가의 말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제 정말 신혼여행이 끝나고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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