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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4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신혼여행(13) (294/301)

〈 294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신혼여행(13)

* * *

우린 살레르노의 야경을 마지막으로 남부 투어를 끝냈다.

이제 로마에서 돌아볼 곳은 다 돌아봤으니 조금 더 여유를 부리거나 서울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나와 선생님은 어떻게 할까 고민했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돌아가자.”

“네.”

나도 선생님도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 했으니까.

어쩌면 조금 더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간 부족한 느낌이 들 정도로 즐겨야 다시 왔을 때 즐거운 법이다.

우린 다른 신혼부부가 그러하듯 정해진 시간에 알뜰하게 즐기고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이곳 에덴은 현실 세계보다 조금 더 자유롭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해외여행은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 아쉬움이 들지도 않았다.

“돌아가면 한동안 좀 바쁘겠네.”

선생님은 돌아가면 이탈리아에서 있던 일을 서로소로 쓸 생각인지 벌써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럼 씻자.”

“네.”

우린 샤워기로 몸의 더러움을 닦아내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밤이네.”

“하고 싶어졌어요?”

“너랑 있으면 매번 하고 싶지만, 이번엔 좀 참으려고.”

“어째서?”

“좀 로맨틱한 밤으로 마무리하고 싶으니까?”

본인이 밤만 되면 로맨스에 ‘ㄹ’도 남지 않는 짐승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발언이었다.

그렇게 자기 객관화가 가능한 사람이 왜 그러는 걸까?

“로맨틱한 밤이 뭔데요?”

“글쎄… 사랑을 속삭이는 거?”

그건 관계를 맺을 때도 하는 일인데 말이야.

선생님은 거칠게 허리를 놀리고 말도 천박해지는 편이지만 항상 사랑을 입에 담는다.

사랑한다, 사랑해, 너만 사랑해, 내 눈엔 너만 보여 등등.

그러니 그냥 평범하게 사랑을 속삭일 거라는 선생님의 답변이 어딘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선생님을 조금 골려주기로 했다.

“기대할게요?”

“어? 어어…. 그리 말하니까 뭔가 부담스러운데?”

“그럼 기대하지 않을게요.”

“그건 그거대로 좀 복잡한 기분인데….”

기대했던 대로의 반응을 보이는 선생님을 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 곤란한 표정을 지을 때의 선생님이 정말 사랑스럽단 말이지.

나이가 있으니 분위기를 주도하려다가 멍하니 얻어맞는 모습이 귀여워 죽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선생님이 천천히 내 몸을 끌어안아 왔다.

보통 이쯤이 되면 가슴을 만지겠거니 싶었는데 의외로 가슴을 만지진 않았다.

“수진아.”

“왜요?”

“로마의 휴일은 어떠셨습니까?”

좋았다.

좋았는데 그렇게만 말하는 건 뭔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평생토록 제가 온 이 로마를 기억할 거예요.”

“….”

선생님은 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나를 껴안고 있던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내 말은 로마의 휴일의 마지막에서 나온 공주의 대사였으니까.

아직 내가 이 대사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감동과 복잡함이 선생님의 가슴을 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수진아.”

“네.”

“약속이란 게 참 묘한 거야. 언젠가 널 데리고 로마에 오겠다고 했는데 결과는 가족여행이 되어버렸고 말이야.”

“가족여행이라도 로마에 오기는 했으니 약속을 지키긴 한 거죠.”

“그래도 네가 바란 건 로마의 휴일처럼 연인이 오는 거였으니까….”

선생님은 내 목덜미에 이마를 대곤 조용히 중얼거렸다.

“80년 만에 약속을 지키게 됐네.”

“아직도 그런 사소한걸 신경 써요?”

이젠 그런 작은 일에 신경을 쓸 정도로 우린 어리지 않다.

그때보다 성숙해졌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으니까.

“그냥 내 작은 미련이지.”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원래 뭐든지 미련이 남는 법이에요.”

“그렇긴 하지.”

어디를 가든 어떤 방식으로 무언가를 하든 항상 미련이 남는다.

이 세상 모든 일은 선택의 연속이니까.

그러니 선택한 일을 두고 후회하고 미련을 품기보단 그 순간의 기쁨에 취하는 편이 더 나은 게 아닐까?

우린 우리 둘만의 삶을 선택하기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택했다.

그 결과 아이들이 우리를 아직 사랑해주고 아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여기에서 다시 만날 수 있던 것은 아이들이 우리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우리를 꼴도 보기 싫다고 여겼다면 우린 그대로 최후를 맞이했을 테고.

그러니 미련을 느낄 필요는 없다.

난 그런 뜻을 담아 느긋한 어조로 선생님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그런 거지.”

선생님은 어깨의 짐을 조금은 덜어낸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그렇게 조금 훈훈한 느낌으로 목욕을 마치고 나와 침대에 누웠다.

“그래서 그 로맨틱한 밤이 뭐예요?”

“어?”

선생님은 이대로 나를 끌어안고 사랑을 속삭이며 잠자리에 들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가볍게 잽을 먹여줄 생각이었는데 그대로 턱을 때려버린 것 같다.

선생님의 눈동자에 규모 7.0의 지진이 생겨났다.

“그… 잠깐만 있어 봐.”

선생님은 우리가 남부 투어를 하며 사놓은 물건이 들은 봉투를 뒤적였다.

그리곤 어떤 병을 꺼내 들었다.

S자 모양으로 굽이치는 병에 담긴 무언가.

분명 카프리 섬에서 샀던 레몬 첼로라는 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선생님은 그 레몬 첼로를 따고 2개의 잔에 술을 따라 하나를 내게 건넸다.

“우리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

선생님에게 있어 이게 로맨틱함이에요?

그런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니 선생님은 조금 괴로운 듯한 표정이 되었다.

이제 적당히 괴롭혀야 할 것 같다.

“짠.”

난 선생님이 들고 있던 잔에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외쳤다.

그리곤 잔에 든 술의 향을 맡고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레몬 첼로라는 이름답게 술에선 레몬의 향이 느껴졌는데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의외로 괜찮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는 거니 상당히 호평인 거겠지.

생각해보니 선생님과 이렇게 같이 앉아서 술을 마신 적이 있기는 한가?

…없지?

선생님은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서 내 곁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80이 넘은 나이가 되도록 운동했고 식습관도 고쳐나갔다.

술은 기껏해야 맥주가 전부였으니 선생님과 술을 마신 적은 이게 처음이라고 할만한 수준이었다.

“80년이란 세월이 길면서도 짧아요.”

“엉?”

갑자기 무슨 소리냐며 날 바라보는 선생님을 힐끔 바라보고 다시 잔으로 고개를 돌렸다.

“80년이나 같이 살았잖아요.”

“그렇지?”

“그런데도 아직 안 해본 게 있는 것 같아요.”

난 그리 말하며 손안에 있는 잔을 가볍게 돌렸다.

“아, 그러고 보니 너랑 이렇게 술을 마시는 것도 처음… 인가?”

선생님은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술잔을 바라봤다.

“그러네. 80년간 같이 살았으니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못해본 게 더 많은 것 같아.”

선생님은 인생은 긴 듯 하면서 짧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이거 돌아가서 해볼 게 참 많을 것 같은데?”

“그래요. 해봐요.”

가끔 웹소설에 불로불사인 존재의 고뇌를 담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허무함과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여러 기행을 저지르곤 하지.

이젠 좀 알 것 같기도 하다.

80년은 긴 시간이지만 의외로 짧은 시간이었다.

일하고 취미를 즐기고 서로를 사랑하기만 하기에도 벅찬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새 삶을 시작하니 알 것 같다.

우리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잔뜩 있었다.

“흠.”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18살인데 벌써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모습이 참 선생님답다고 생각했다.

“이 꼰대.”

“예?”

“인상 좀 펴요.”

난 선생님의 미간을 손으로 꾹꾹 눌렀다.

“무슨 생각을 그리했어요?”

선생님은 눈동자를 빙글빙글 돌리더니 고개를 살짝 돌렸다.

“네 생각?”

“또 야한 생각 했구나?”

“거기서 야한 생각이 왜 나와?”

날 보면 야한 짓만 떠올리니까 그런 거죠.

내가 빤히 바라보자 선생님은 한숨을 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생각이 없지는 않았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어.”

아, 그런 생각을 하긴 했구나?

참….

“한결같은 선생님을 위하여~”

“…위하여.”

난 다시 선생님과 건배하고 술을 마셨다.

안주가 없어도 의외로 술이 잘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이것도 이쪽 세계 나름의 배려인 걸까?

그렇게 술을 마시고 있으려니 몸에서 땀이 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방 온도가 좀 더운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도 그런데 머리가 좀 멍한 느낌이다.

취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취했다고? 무슨 소리야… 그거 좀 마셨다고 취할 리가 없잖아?

“괜찮아?”

“괜찮아요….”

내 어딜 봐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걸까?

난 괜찮다.

가령 취한 사람이면 머리가 복잡해서 아무런 생각도 못 하잖아?

하지만 난 멀쩡하게 생각을 할 수 있다.

1, 2, 3, 4, 5, 6, 7, 8, 9, 10.

숫자도 제대로 셀 수 있다.

선생님의 이름은 김준수. 내 신랑.

첫째 아이는 김진수. 내 아들.

둘째 아이는 김희진. 내 바보 같은 딸.

으음, 역시 난 멀쩡해.

“선생님… 얼굴이 왜, 그렇게에 빨게에 요오?”

술을 한 병 다 마시고 나니 선생님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게 눈에 들어왔다.

왠지 토마토 같다는 생각에 선생님의 볼을 쿡쿡 찌르니 볼이 조금 뜨겁게 느껴졌다.

“나 원래 술 조금만 마시면 얼굴 붉어지는 거 알잖아?”

“후후~”

18살짜리가 저러고 있으니 좀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난 선생님의 얼굴을 손으로 주물럭거렸다.

“…취했어? 얼른 자자.”

“취하긴 누가 취했다고….”

본인이 취했으면서~

난 선생님의 얼굴을 주물럭거리면서 침대로 누웠다.

“으이구… 강한 척만 하구우….”

여자 앞에서 강한 척을 하는 게 멋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바보 같아서 귀여워어….

난 선생님을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뭔가 복슬복슬해서 기분이 좋다.

“으음… 근데 뜨거워….”

그런데 묘하게 몸이 뜨거워서 조금 불편한 느낌이었다.

난 근처에 있던 리모컨으로 에어컨을 틀었다.

에어컨에서 흘러나오는 조금 찬 바람이 얼굴에 닿자 조금 시원한 기분이 되었다.

난 그제야 선생님을 다시 끌어안을 수 있었다.

“후훗.”

잘 모르겠는데 뭔가 행복한 기분이다.

난 그렇게 선생님을 꼬옥 끌어안고 뺨을 손으로 콕콕 찔렀다.

“샤회 생활을 안 햐니까 이렇게 술이 약햔거 아니에요오?”

“이건 체질이야.”

“그래요오?”

선생님은 복잡한 표정으로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동작이 미묘하게 신경 쓰였다.

“왜요오?”

“아무것도 아니야.”

“아, 알겠다~”

사실은 나와 하고 싶었으면서 참고 있었구나?

귀여운 사람 같으니….

난 선생님의 가슴에 손을 얹고 천천히 입을 맞췄다.

그리고 선생님의 귀에 천천히 속삭였다.

“하고 싶으면… 해도 돼에….”

그리 말하며 천천히 손을 내려 선생님의 물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니면… 내가… 빼줄까아?”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

“기억 안 나?”

“…기억 안 나요.”

“정말?”

“아, 진짜 기억 안 난다니까요?!”

…술이 원수지.

여기서도 술은 되도록 입에 대지 않도록 해야겠다.

“‘선생님의 밀크… 너무 마시써~’”

“기억 안 난다고!”

정말 원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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