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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3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신혼여행(12) (293/301)

〈 293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신혼여행(12)

* * *

아말피의 호텔에 짐을 옮기고 우린 가볍게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창을 여니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려니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왔다.

짭짜름한 바다내음을 담고 있어서 어딘가 시원하면서도 조금은 무겁게 느껴지는 바람이었다.

그렇게 밤바다를 즐기고 있으려니 밤하늘에 불꽃이 터졌다.

펑!

“뭘 그렇게 보고 있어?”

그 순간 샤워를 끝낸 선생님이 머리를 수건으로 벅벅 문지르며 다가왔다.

“불꽃놀이요.”

“불꽃놀이? 갑자기?”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내 근처로 다가왔다.

그러자 불꽃놀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펑펑!

불꽃이 터져나가며 밤하늘에 새로운 별을 수놓았다.

별들은 순간적으로 반짝이며 주위에 빛을 퍼트리다가 이내 사그라드는 것을 반복했다.

이렇게 사람이 북적이지 않는 곳에서 불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니….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 선생님이 내 어깨에 숄을 걸쳐줬다.

그리곤 내 어깨를 부드럽게 당겨서 살짝 끌어안았다.

“밤공기가 좀 차니까.”

선생님은 그리 말하곤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는 선생님은 힐끔 바라봤다가 다시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네요.”

시기도 애매하고 이곳 아말피는 다른 곳보다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아예 없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곳에서 불꽃놀이를 보고 될 줄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곳 에덴이 우리를 배려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생각하지 말자.

그저 이 순간을 즐기자.

이 세상엔 몰라도 좋은 것들이 존재하기도 하는 법이니까.

생각을 전환하고 멍하니 불꽃놀이를 보고 있으려니 옛날 생각이 났다.

“남에게 자랑하는 듯한 사랑만이 좋은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선생님도 그때를 생각하고 있는지 멍한 표정으로 그리 중얼거렸다.

“역시 남들에게 축복받는 편이 좋은 거죠.”

“그렇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난 그런 인간이었나 봐.”

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에요.

선생님은 이사를 왔다며 다른 집에 이사 떡을 돌리는 사람이다.

선생님은 진수와 희진이의 생일 때마다 유치원에 간식을 잔뜩 사가서 애들 기를 세워주는 사람이다.

선생님은 차 수리를 맡기러 갔다가 정비소 사람들이랑 친해져서 하루 만에 단골이 되는 사람이다.

몸과 마음에 여유를 되찾기 시작한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고….

“하객들이 많이 찾아오니까 즐겁기는 했어.”

“결혼식을 그렇게 즐기는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을걸요?”

“너도 재밌었잖아?”

“선생님만큼은 아닐 것 같은데?”

친구분들이랑 무대에 올라 같이 밴드 비슷한 무언가를 할 땐 진짜 웃겨서 죽을 뻔했다.

외형은 고등학생과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이 ‘브라보 마이 라이프!’ 이러고 있는데 진짜….

“너도 그 친구분이 와서 좋았잖아.”

“그랬죠.”

선생님만 내 곁에 있어 주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서윤이를 발견한 순간에 들었던 감정은 좀 특별했다.

어딘가 막아뒀던 둑이 터진 것처럼 눈물이 흘러넘쳤으니까.

그게 무슨 감정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냥 서윤이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와서 엉엉 울고 말았으니까.

“이제 내일이면 남부 투어도 끝나니까 서울로 돌아가겠구만.”

“그러게요.”

“가면 서윤 씨한테도 연락해주고. 결혼식 참석해줘서 고맙다고, 신혼여행 잘 다녀왔다고.”

“다 알아서 할 거랍니다~”

선생님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흘려보내고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어느새 불꽃놀이가 끝나버렸다.

생각보다 짧구나….

아쉬움과 섭섭함에 밤하늘에서 고개를 뗄 수 없었다.

잠시 그러고 있으려니 선생님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선생님도 이런 걸 좋아하는 편인데 오늘따라 반응이 좀 시큰둥한 느낌이었다.

펑!

“어?”

다시 밤하늘에 불꽃이 터졌다.

아, 잠시 시간을 두고 터지는 거였구나.

선생님은 다시 휴대폰을 집어넣고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우리 사랑은 저 불꽃놀이 같은 거지.”

“네? 아, 그거요?”

선생님과 처음으로 즐긴 불꽃놀이는 내 인생 최대의 일탈이었다.

엄마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집을 나와서 멋대로 외박했던 그 날.

난 선생님과 바다에서 불꽃놀이 세트로 작은 불꽃과 함께 추억을 만들었다.

그때 선생님은 우리의 사랑이 그 작은 불꽃놀이 세트 같은 무언가라고 생각한다고 서로소에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의 사랑을 축복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방송국에서 우리의 결혼식을 촬영하러 오면 안 되냐고 물어볼 정도로 말이다.

선생님의 말대로 저 밤하늘의 불꽃놀이처럼 가리려고 해도 가릴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작은 불꽃놀이도 좋은데 저것도 참 좋아요.”

“그러게.”

“남들에게 숨기는 것도 좋은데… 역시 숨기기만 하면 피곤하잖아요.”

“그렇지….”

나와 선생님은 서로에게 기댄 상태로 잠시 시간을 보냈다.

밤하늘의 불꽃놀이가 끝나고 이제 슬슬 침대에 누울까 싶었는데 떠오른 부분이 있었다.

선생님이 왜 굳이 그 상황에서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을까?

여기에 와서 선생님이 휴대폰을 꺼내 드는 건 휴대폰 알람이 울렸을 때와 시간을 확인할 때, 사진을 찍을 때뿐이었다.

그러니 선생님의 행동이 좀 의심스러웠다.

…설마?

난 휴대폰을 꺼내 들고 로마의 아말피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그걸 발견해버렸다.

“선생님….”

“응?”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곳엔 아말피의 밤하늘에 불꽃놀이를 수놓아 가족과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소량의 돈을 제공하면 불꽃놀이를 밤하늘에 띄워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남부 투어를 계획한 건 선생님이었다.

그러니 이것도 사실은 계획되어 있었겠지.

화장실에서 샤워를 끝마치고 휴대폰으로 불꽃놀이를 시작하도록 한 거겠지.

내가 조금 짧게 끝난 불꽃놀이를 아쉬운 듯이 바라보니 다시 신청하느라 휴대폰을 꺼낸걸 테고….

선생님이 너무 사랑스럽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80년간 사랑한 사람에게 또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한 경험이다.

난 선생님을 사랑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지금은 조금 더 뜨겁게….

난 침대로 올라가 잘 준비를 시작하는 선생님의 가슴께로 손을 뻗었다.

“응? 무슨 일이야?”

뭔가 의아한 듯한 표정을 내비치는 선생님의 입술을 빼앗았다.

“읍?”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으면 뭔가 가슴이 울컥거려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 동안 선생님과 입을 맞추고 천천히 입술을 뗐다.

선생님은 벌써 흥분했는지 그 부분을 딱딱하게 세운 상태였다.

난 그런 선생님의 몸에 천천히 올라탔다.

“수진아?”

“선생님이 나쁜 거에요….”

이렇게 여자 마음을 들뜨게 만드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선생님은 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눈을 끔벅이다가 이내 힘없이 웃었다.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난 선생님의 몸에 몸을 포개고 선생님의 입술을 다시 빼앗았다.

포지타노는 그냥 거쳐 가는 곳이었다.

아말피도 그리 대단한 추억을 쌓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이런 추억을 주었으니까….

나도 선생님이 좋아하는 추억을 쌓아주고 싶었다.

이건 신혼여행이니까…♥

***

우린 평소에 7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아니, 많이 늦게 일어나버렸다.

아침을 거르는 수밖에 없었고 샤워를 하거나 짐을 챙기는 것도 빠듯한 그런 시간이었다.

우린 서둘러서 정리를 시작했고 다행히 12시 전에 체크아웃을 할 수 있었다.

11시 50분.

정말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우리 수진이가 서큐버스였던 건에 대하여….”

선생님은 오늘도 또 헛소리를 내뱉으며 혀를 끌끌 찼다.

본인도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왜 저런담?

단언컨대 어젯밤에 선생님이 보여줬던 흥분은 진짜 놀라울 정도였다.

기내에서 그렇고 그런 짓을 할 때처럼 반쯤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허리를 놀렸다.

그랬던 사람이 누가 누구보고 서큐버스라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서큐버스면 선생님은 인큐버스다.

어젯밤은 진짜 그런 밤이었다.

“여기가 VR이라서 다행이야. 현실이었으면 우리 방 청소하러 온 사람이 기겁했을 거니까.”

“네~ 네~”

낮과 밤은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존재들이니 이제 그만 언급했으면 좋겠다.

나와 선생님은 아말피의 해변으로 나와 사진을 찍기로 했다.

이곳은 건물들이 계단처럼 층층이 배치되어 있어서 사진을 찍기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으니까.

해변을 돌아다니던 AI에게 휴대폰을 맡긴 우린 사진을 몇 장 찍고 점심을 먹었다.

“한동안은 피자 먹고 싶지도 않겠다.”

“그럼 말하죠. 여기 일식도 있던데….”

“일식은 한국에서도 많이 먹었으니까.”

나와 선생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입가심을 하고 아말피의 해안가를 눈에 조금 더 담은 다음 살레르노로 향했다.

살레르노에도 광장이 있고 볼거리가 있기는 하다.

살레르노 대성당과 아레키 성.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봤던 다른 관광지에 비하면 조금 특색이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제법 좋은 느낌으로 관광을 즐기는 듯했다.

“왜 그렇게 좋아해요?”

“삼국지와 로마는 남자의 가슴을 뛰게 하는 뭔가가 있는 법이야.”

“그건 그냥 선생님이 틀딱이라 그런 거 아니고?”

“이 짜식이?”

“왜요? 틀린 말은 아닌데?”

“후우….”

“우리 오빠는 삼국지 내용 하나도 몰라요.”

“요즘 것들은 에잉….”

혀를 끌끌 차는 모습을 보니 진짜 18살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내가 한때는 로마뽕에 취해서 대역물을 그렇게 봤었는데 말이야.”

선생님은 “네가 로마 인빅타를 알어?” 라고 말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레키 성의 성벽을 손으로 만지며 이게 비잔틴 시대에 만들어놓은 성벽이니 어쩌니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진짜 웃겨서 혼났다.

18살짜리가 꼰대 같은 말을 하니까 진짜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귀여움이 있었다.

…귀엽진 않은가?

그냥 어제보다 오늘 더 선생님을 사랑하게 되었기에 이런 마음이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긴 원래 로마의 식민도시에서 시작된 도신데….”

선생님의 TMI를 들으며 살레르노의 경치를 구경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저녁이 찾아왔다.

아침에 호텔에서 늦게 나왔더니 이렇게 되어버렸다.

나와 선생님은 가볍게 저녁을 즐기고 야경을 뽐내는 살레르노의 거리를 바라봤다.

“솔직히 서울에 비하면 그리 밝지는 않은데 왜 이렇게 예쁠까?”

“네온사인이 없어서?”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여긴 형광등보다 백열등 같은 따뜻한 조명이 더 많으니까.”

우린 남부 투어의 마지막을 눈에 새기고 다시 우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즐거웠던 신혼여행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찾아오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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