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2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신혼여행(11)
* * *
폼페이에서 AI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상당히 시간이 흘러있었다.
우린 폼페이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여기도 아아가 있어.”
“이제 여기가 한국인지 이탈리아인지 잘 모르겠네요.”
나와 선생님은 좀 무거웠던 점심의 기름기를 아메리카노로 씻어내며 소렌토에서 할 일을 정리했다.
“역시 소렌토는 전망대겠지?”
“그렇겠죠?”
전에 이곳에 왔을 땐 투어로 왔었는데 그때도 전망대를 들렀던 기억이 있다.
한번 봤던 곳이니 다른 곳을 찾아가는 것도 좋겠지만 일단은 익숙한 곳을 가보자는 이야기였다.
여행은 추억을 회상하는 것이기도 하니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가봐요. 가보면 뭔가 생각이 들지도 모르니까.”
“그러자.”
우린 평소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커피를 들이켜고 소렌토로 향했다.
소렌토에 도착하자 시원하면서도 어딘가 소금기가 느껴지는 바람이 우리를 반겼다.
“가을에 와서 다행이네. 여름이었으면 습도 때문에 좀 애매했겠어.”
“그러게요.”
선생님과 손을 잡고 걷고 있으려니 부드러운 바람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뭔가… 바다가 보고 싶네요.”
“그럼 바다로 먼저 가야지.”
나의 말 한마디에 즉흥적으로 여행코스가 변경됐다.
아마도 이게 계획이 없는 여행의 가장 큰 이점이겠지.
선생님은 내 손을 부드럽게 잡은 채 바다를 향해 척척 걸어 나갔다.
그렇게 척척 걸어 나가다 보니 우린 타소 광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쭈욱 걸으면 되나 보네.”
선생님은 주위를 둘러보며 어딘가 그립다는 듯한 느낌으로 걷고 있었다.
마치 아주 옛날에 방문해본 곳을 기억에 의지해 걷는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였던 것 같지?”
“네, 아마도?”
전망대로 버스를 타고 향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것 같다.
선생님은 긴가민가하면서도 쭈욱 뻗은 길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 나아가다 보니 아까보다 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근처에 있나 보다.”
“네.”
바닷바람은 이정표가 되어 조금의 불안을 느끼고 있던 우리에게 확신을 심어줬다.
우린 아까보다 더 당당한 걸음걸이로 길을 걸었다.
우린 머지않아 해안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렌토의 바닷가에 도착한 우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만끽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엔 모래사장도 있었지만 칼로 도려낸 듯한 절벽도 있었다.
“분명 저 근처엔 호텔이 있었지?”
“네. 그랬던 거 같아요.”
저 근처엔 보트를 타고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호텔이 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린 이곳에서 머물 생각이 없기에 예약을 하지 않았었지.
투어는 일정이 제법 촉박했으니까.
“우리 카프리로 가보자. 전망대는… 거기에도 있던 것 같으니까.”
“그럴까요?”
우린 결국 익숙함보단 새로움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우린 소렌토에서 카프리로 향하는 배편을 알아봤다.
배는 카프리의 선착장으로 향하는 배편이 있었다.
우리는 잠시 바닷바람을 만끽하며 카프리의 선착장에 도착했다.
“으음~!”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기지개를 켜고 있으려니 아나카프리라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아나카프리는 뭘까요?”
“분명 카프리와는 행정적으로 분리된 섬일껄? 해발 고도가 좀 높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뭐를 하든 필요 이상으로 준비하는 선생님의 TMI가 여기서 빛을 발했다.
몰라도 좋지만, 알면 좋은 정보를 전해 들으니 뭔가 기대감이 샘솟는 느낌이었다.
“그럼 아나카프리도 가볼까요?”
“좋지.”
나와 선생님은 근처에 정착해있는 버스를 타고 아나카프리로 향했다.
보통은 여기서 관광객을 더 태우고 출발하는 버스일 텐데 우리가 타니까 곧장 출발했다.
이게 현실과 VR의 차이겠지.
“웬만해선 이야기 안 하려고 했는데요….”
“뭐가?”
“이렇게 많은 것을 구현해놨는데 서버가 어떻게 버티는 걸까요?”
“엉? 그거야 그거겠지, 그거.”
그거가 뭔데요?
내 표정을 읽은 선생님은 얼굴을 긁적이며 추측을 늘어놓았다.
“가까운 건 포커스가 집중되니 선명하게 보이는데 멀리 떨어진 건 그럴 필요가 없잖아? 그러니 우리 눈에 들어오는 부분만 구현하고 있는 거겠지.”
“아, 그렇구나.”
확실히 그거라면 이탈리아라는 작지 않은 나라를 통째로 구현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다.
선생님의 TMI는 도움이 되는 TMI였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고 있으려니 우린 어느새 아나카프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린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장 유명한 곳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선생님은 조금 애매모호한 이탈리아어로 이곳에서 가장 좋은 곳이 어딘지 물었다.
AI인 사람은 선생님의 그 모호한 표현을 알아들었는지 몬테솔라로 가보라는 말을 꺼냈다.
“전망대가 있다네.”
“가봐요.”
소렌토에서 가보지 못했으니 이곳에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나와 선생님은 몬테솔라로 향하는 티켓을 샀다.
“음… 이것도 VR 세계의 배련가?”
“그렇겠죠?”
나와 선생님이 도착한 곳은 1인 리프트가 설치된 곳이었는데 우리가 도착한 순간에만 2인용 리프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딱 1개만….
“좋은 게 좋은 거지.”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리프트에 먼저 타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와 선생님은 몸을 딱 붙인 상태로 리프트에 타서 전망대로 향했다.
리프트와 바닥은 그리 높이가 높지 않았고 주변의 경치도 좋아서 정말로 관광을 즐기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여기 안 왔으면 아쉬울 뻔했네요.”
“그러게.”
굳이 투어를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 이런 재미를 맛볼 수 있었겠지.
조금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도 역시 나쁘지 않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리프트를 타다 보니 금세 전망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망대는 제법 괜찮은 경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제주도가 떠오르는 건 내 착각이겠지?”
“…말하지 말아욧!”
난 선생님의 등을 살짝 두드렸다.
선생님의 말대로 어딘가 제주도가 떠오르는 광경이었으니까.
경치는 아름다웠다.
바다는 시리도록 푸른빛을 내뿜고 있어서 굉장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경치가 어딘가 낯이 익었다.
선생님의 말처럼… 여긴 어딘가 제주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과 신혼여행을 떠났던 그때 그 제주도가….
제주도는 여행코스 대부분이 산책코스에서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는 거다.
그래서 다리가 아파 끙끙거릴 정도로 돌아다녔었지.
그때 봤던 경치랑 똑같다….
“우리가 감수성이 좀 메말랐나?”
“아뇨, 그냥… 으음….”
나와 선생님은 주변 경치를 좀 더 구경하다가 카프리로 향하기로 했다.
오자마자 바로 돌아가는 것도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다시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커피만 벌써 두 잔째야.”
“호텔에서 조식으로 마셨잖아요.”
“아, 세잔인가? 이제 그만 마셔야겠네.”
“어차피 여긴 커피 많이 마셔도 잠 잘 오는데?”
“그런가?”
나와 선생님은 커피를 마시며 주변의 경치를 구경했다.
신기하지….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려니까 또 묘하게 주변의 경치가 달라 보인다.
“여기서 요트투어를 하면 이 근처를 요트로 돌아다닐 수 있나 본데?”
“그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일단은 카프리지?”
“네.”
나와 선생님은 일단은 카프리부터 둘러보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우린 자리에서 20분가량 커피를 마시고 다시 리프트를 탔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흘러왔던 곳으로 돌아온 우린 카프리로 향하는 택시를 탔다.
“오픈카 택시네요.”
“오픈카라고 하긴 좀 애매한데?”
우린 그리 말하며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는 어딘가 픽업트럭 같은 느낌으로 되어있었는데 조금 개조되어 뒤에도 사람이 앉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나와 선생님은 그 자리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카프리로 향했다.
“어쩌면 아까 그 택시가 가장 즐거웠을지도 모르겠네.”
“저도 그건 좀 재밌었어요.”
“왠지 사람들이 오픈카를 타는 이유를 알겠더라.”
“우리도 살까요?”
“아니, 그건 아니고….”
나와 선생님은 카프리에서 가장 유명한 것을 찾았다.
그리고 그건 곧 발견할 수 있었는데 카프리에서 가장 유명한 건 동굴이란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라고.
우린 동굴이 있는 위치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동굴에 도착한 우린 동굴탐험을 시작했는데….
“어?”
“야이 씨….”
동굴이 생각보다 엄청 짧아서 금방 끝나버렸다.
선생님은 이 정도라면 국내에서 가봤던 동굴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낼 정도였다.
“어, 음….”
“…가자.”
우린 조금의 씁쓸함을 뒤로하고 다시 카프리섬을 돌아다녔다.
여기까지 온 거 그냥 쇼핑이라도 즐기자는 취지였다.
우린 병이 S자로 굽이치는 레몬 첼로라는 이름의 술을 몇 병 사선 다시 육지로 향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동굴은 가지 말걸.”
선생님은 다 좋았는데 동굴이 좀 NG였다며 혀를 찼다.
“그래도 이런 것도 여행의 묘미잖아요.”
“그건 그렇지.”
기대하고 갔는데 실망한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즐겁다.
그게 여행의 재미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좀 달갑지 않은 헤프닝도 즐길 수 있다.
“그래도 혼나온 게 아니라서 재밌게 느껴지긴 하네.”
“그렇죠?”
그건 분명… 당신이 곁에 있으니까.
선생님과 함께라면… 이것도 즐거운 추억이 되는 법이에요.
***
우린 육지로 돌아와 포지타노로 향했다.
택시를 타니 생각보다 금방이어서 그리 피곤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포지타노도 이탈리아는 맞는지 건축물이 어딘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익숙한 경치다.
가족여행으로 왔을 때도 이런 느낌을 받았었지.
“여긴 해수욕이었지?”
“네. 그때는 사람이 많았는데 여긴 한산하네요.”
포지타노엔 분명 큰 해수욕장과 작은 해수욕장이 있었다.
하지만 여긴 그 어디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제법 쌀쌀한 가을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역시 VR이라서 그런 거겠지.
우린 포지타노에선 가볍게 경치만 즐기고 곧장 아말피로 향했다.
우리는 남부 투어를 1박 2일로 정해서 잠은 아말피에서 자기로 계획했으니까.
“그래도 여름에 왔으면 제법 재밌었을 것 같기는 해.”
“제 수영복을 볼 수 있어서요?”
“어떻게 알았지?”
“하여튼 엉큼하다니까….”
“내가 엉큼하지 않았으면 너도 씁쓸했을걸?”
그리 말하니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굳이 그걸 티 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대충 이야기를 돌리고 아말피를 향해 출발했다.
남부 투어는 아말피, 살레르노로 끝이다.
즉, 이제 곧 남부 투어가 끝이 난다는 뜻이다.
남부 투어가 끝난다.
그 말은 우리의 신혼여행에도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뜻하기도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