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1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신혼여행(10)
* * *
바티칸 구경을 끝내고 천사의 다리를 건너 호텔로 돌아왔다.
우린 같이 목욕탕에 들어가 욕조에 물을 받고 같이 몸을 담갔다.
하지만 대략 5분 정도 지났는데도 선생님이 장난을 쳐오지 않았다.
신기할 따름이었다.
욕조에 떠 있는 내 가슴을 볼 때마다 그렇게 행복하다고 말하곤 했었는데….
“선생님?”
“어? 어어…. 물이 따뜻하고 좋네.”
아무리 생각해도 영혼이 여기에 없는 것 같다.
낮에 내가 했던 이야기 때문인 걸까….
“무슨 생각을 그리하세요?”
“그냥 음, 아버지나 어머니가… 조금만 더 오래 사셨으면…. 그런 생각 중이었지.”
이 세계는 조금 부족하지만 그만큼 풍족한 것도 많다.
어릴 적 가지 못했던 놀이동산을 그때 그 모습으로 다녀볼 수 있다.
우리 가정에 힘쓴다고 함께 다니지 못했던 여행도 가볼 수 있다.
선생님은 그런 상상을 하는 듯했다.
“그러게요. 조금만 더 오래 살지….”
선생님이 그리 고민에 빠져있으니 나도 엄마 생각이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엄마랑 선생님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도 않았다.
그러니 조금만 더 오래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와 선생님은 따뜻한 물이 받아진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 가슴 한편이 차가워지는 그런 느낌을 느끼며 조용히 몸의 더러움을 씻어냈다.
그렇게 평소와 달리 조금 조용한 목욕을 마치고 나와 선생님은 침대에 누웠다.
평소라면 여기서 야릇한 일이 시작되겠지만 오늘의 선생님은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 것 같았다.
난 그런 선생님의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선생님은 나를 힐끔 바라봤다가 그대로 손에 힘을 주었다.
“희진이가 그랬었는데.”
“뭐가요?”
“네가 밤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져도 소원을 빌지 않았다고. 이제 빌 소원이 없는 상태라고 말해서 엄청 로맨틱했다고.”
걔는 또 쓸데없는 이야기를….
“그랬었죠.”
“근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소원을 빈 거야?”
“글쎄요…? 맞춰보세요.”
난 그리 말하며 붙잡은 선생님의 손에 깍지를 끼고 검지로 손등을 살살 간지럽혔다.
선생님은 인상을 조금 찌푸리고 고민에 빠졌다.
소설을 쓸 때나 책을 읽을 때처럼 뭔가 집중할 때 드러나는 표정이다.
끙끙거리며 뭔가 고민하던 선생님은 나름대로 결론이 났는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여길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뜻인가?”
“…어떻게 알았어요?”
“사랑의 힘이지.”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나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난 선생님을 마주 끌어안은 상태로 선생님의 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원래는 여기가 신혼여행의 1순위였잖아요.”
“그랬지.”
“그러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기도 나름 좋은 곳이다.
결혼식도 올렸고 신혼여행을 오기로 했던 곳에 단둘이서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니 여기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맹세나 약속, 소원을 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은 나를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선생님?”
“앞으로 내가 힘내야겠어.”
“네?”
“예전부터 네 소원을 이뤄주는 건 신의 역할이 아니고 내 역할이었잖아. 그러니까 내가 힘내야지.”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나를 안은 팔에 힘을 살짝 풀어 나를 놓아주었다.
그리곤 자기 가슴을 손으로 퉁퉁 두드리곤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믿지?”
“언제적 오빠 믿지에요?”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는 법이야. 그래서 믿어, 안 믿어?”
“당연히 믿죠.”
“처음부터 그럴 거였으면서 짜식이.”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내 양 뺨을 붙잡고 찰흙처럼 쭈물거리기 시작했다.
꼭 귀여워서 못 참겠다는 감정이 양손을 통해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믿을게요.”
내가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그리 말하니 선생님도 조금 진지한 표정이 되어 내 이마에 이마를 붙였다.
“그래. 앞으로도 힘낼게.”
“네.”
“너는 어디 가지 말고 딱 붙어있어.”
“알았어요.”
우린 서로를 끌어안은 채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렇게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잠에서 깬 우린 가볍게 몸단장을 마치고 아침 식사를 끝냈다.
그리곤 방으로 돌아와 고민에 빠졌다.
“자, 어떻게 할까?”
“으음… 어떻게 하죠?”
“내가 물었잖아….”
나와 선생님이 고민하는 문제는 로마의 남부를 어떻게 여행할까에 대한 이야기였다.
로마에서 즐길 거리는 1, 2일 차에 대부분 즐길 만큼 즐겼다.
이제 남은 것은 남부를 돌아다니며 로마 여행을 끝내는 것인데 이게 좀 고민이다.
로마의 남부는 치안이 별로 좋지 않다.
편견이 아니라 가족여행을 왔을 때도 이미 그걸 눈으로 확인한 다음이라 뇌리에 새겨져 있는 상태였다.
로마의 남부는 숙박비가 제법 나가는 편이다.
그렇기에 대부분 투어로 여행을 하는데 가끔 용감한 사람들은 투어가 아닌 직접 여행하기도 한다는 듯했다.
여기서 가족여행을 하는 동안 그 용감한 사람들과 잠깐 말문을 트게 됐는데 그 계기가 돈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냐며 발을 동동 구르는 아내분과 얼굴이 창백해진 남편분을 보다 못한 선생님이 오지랖을 부렸다.
그래서 그 신혼부부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그 신혼부부는 남부를 여행하는 동안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영화에서나 보던 품으로 손을 넣어 지갑을 빼앗는 그런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내분과 남편분의 가방이 칼로 그은 것처럼 쫙 찢어져 있는걸 봤을 땐 정말 어안이 벙벙했었지.
선생님은 일단 진정하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남편분은 조금 진정이 됐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려줬다.
남부를 여행하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게 됐는데 만원이었다.
그래서 아내분과 떨어져 벽에 딱 달라붙어 있었는데 부욱하고 뭔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단다.
그리곤 가방에 들어있던 물건을 그대로 도둑맞았다고 했다.
대낮에 아주 대놓고 물건을 훔쳤다는 이야기였다.
남편분은 여권을 잃어버리지 않았는데 아내분은 여권까지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사관에 연락을 취해 아내분에게 단수여권 발급을 권했다.
거기에 더해 돈까지 빌려주고 연락처도 주고받는 모습이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헤프닝이었다.
“그때 선생님이 버스 투어한다고 했었잖아요.”
“그랬지.”
“그땐 솔직히 좀 아재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자식이?”
“그게 그렇잖아요….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여행을 가면 패키지로 투어하는 느낌?”
“…부정은 못 하겠는데 그건 진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그랬던 거야.”
“알아요.”
그렇게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에서 이혼할 위기에 빠지는 걸 직접 두 눈으로 봤으니까.
“해외여행은 식견이 넓어지긴 하는데 여러모로 실망하는 부분도 컸죠.”
“으음… 파리?”
“어떻게 알았어요?”
“네가 로마 다음으로 가고 싶다고 했던 게 유럽 여행이니까. 유럽 여행하면 프랑스 파리지.”
선생님의 말대로 사랑의 힘은 사랑의 힘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걸 전부 맞추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프랑스 파리.
누구나 한 번쯤은 해외여행을 하면 꼭 떠올리는 곳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상 파리를 가니 상당히 실망스러웠지….
“한국이 땅이 작아서 그런지 공중화장실이 참 잘 되어있어. 지하철도 깔끔하고. 치안도 괜찮고….”
선생님이 하는 말 그대로였다.
한국은 뭐가 문제고 이래서 안 된다느니 저래서 안 된다느니 했었는데 막상 해외여행을 다녀오니 한국이 좋아지는 기적을 맛봐야 했다.
그 정도로 다른 나라는 불편한 것투성이였다.
선생님은 해외여행을 준비하며 간단한 외국어를 공부하고 영어도 능숙하게 사용하는 수준이 되어 의사소통에 불편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그냥 음….
박물관 입장권을 사는 이유가 화장실 때문이라고 하면 비웃는 사람이 있으려나?
해외여행은 그런 것이었다.
화장실이 급하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에 들어갔다가 3분 만에 나왔을 때 경비병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너보다 내가 더 실망했을 거야.”
“왜요?”
“라떼는 파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가 유행했었거든?”
선생님은 드라마의 줄거리를 읊으며 파리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당시에 내가 느꼈던 실망을 아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나와 만나기 전까진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고 하던 선생님이다.
그런 선생님이 드라마 운운을 할 정도면 상당히 유명했던 드라마였겠지.
나도 이름만 얼핏 들었었는데….
“아무튼 그래서 고민이야.”
“고민이긴 하네요.”
그 신혼부부처럼 남부를 직접 여행할지 패키지 투어를 할지에 대한 고민.
일단 그 신혼부부처럼 묘한 일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여긴 현실 세계가 아닌 VR 세계니까.
하지만 조금 고민이 있기도 하다.
나와 선생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남부를 투어로 생각하고 있다가 여기에 와서야 이곳이 VR 세계라는 실감을 얻은 상황이니까.
이 상황이 되고 나니까 막상 남부를 버스로 투어하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한참을 끙끙거리다가 이내 결단을 내렸다.
“걍 가보자.”
“그래요. 뭐… 죽기야 하겠어요?”
이미 죽었는데?
나와 선생님은 웃지 못할 농담과 함께 남부로 출발했다.
처음으로 향한 곳은 폼페이란 이름의 지역이었다.
이곳은 화산재로 인해 사람 형상의 화석이 발견되는 것으로 유명한 그곳이다.
보통 여기서 버스 투어를 하게 되면 소렌토, 포지타노, 아말피를 거쳐 살레르노로 향한다.
거기에 조금 더 돈을 쓰면 카프리란 이름의 섬도 다녀오는 코스도 있고.
우린 그 어렴풋한 기억을 토대로 폼페이에 도착했지만, 막상 뭘 해야 할지는 좀 막막한 기분이었다.
“…폼페이는 그냥 투어로 하자.”
“…그러는 게 좋겠어요.”
폼페이에서 시간을 보냈을 땐 분명 설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었지.
우린 어쩔 수 없이 폼페이의 유적에 대해 설명을 해줄 AI를 찾았다.
우린 AI가 설명해주는 이야기를 듣다가 조용히 웃었다.
호기롭게 여행을 나선 결말이 결국은 이런 모양이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이것도 여행의 묘미지.”
“그렇죠.”
일반적인 부부가 신혼여행에서 이런 상황에 부닥쳤으면 싸웠을지도 모른다.
신혼여행은 정해진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을 잘 배분해서 일정을 세우는 거니까.
보통 항공권을 왕복으로 예매하니 실패하면 신혼여행은 안 좋은 기억만이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선생님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외형은 젊지만 100여 년을 산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런 신혼부부와는 받아들이는 것도 다르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서로를 상처 주는 어리숙한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상대에게서 흠결을 찾기보다 장점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들이 되었으니까.
이 헤프닝은 우리에게 있어 조금 특별한 경험으로 남을 뿐인 그런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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