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0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신혼여행(9)
* * *
베네치아 광장에서 시간을 보낸 우린 드문드문 돌아다니는 마차를 타보기로 했다.
마차 역시 AI가 운영하고 있었고 우린 목적 없는 마차 투어를 시작했다.
마차에 있는 창문을 통해 베네치아 광장의 흘러가는 풍경을 만끽하고 있자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아 왔다.
난 그런 선생님의 손에 깍지를 끼고 어깨를 기댔다.
“좋네요. 이렇게 마차에 타서 구경하는 것도.”
“그러게.”
보통 마차라면 조금 더 덜컹거리며 엉덩이가 아플 텐데 이건 그런 것도 없었다.
“서스펜션이 좋은 건가?”
“어쩌면 VR이라서 편의를 위해 그런 걸지도 모르고요.”
“VR은 무안단물이네.”
“언제적 무안단물이에요?”
나와 선생님은 서로를 바라보고 작게 웃다가 근처에 보이는 카페를 발견하고 마차에서 내렸다.
우린 AI 마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방금 발견한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의 문에 달려있던 종이 울리며 우리가 들어왔음을 알렸다.
카페는 한산했고 은은한 BGM이 흘러나와서 곡 나와 선생님이 만나던 그 카페가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나와 선생님은 커피를 주문하려고 했다.
“역시 이 날씨엔 아아인데….”
“이탈리아에 너무 많은 걸 바라진 말라고?”
가끔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해외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로 나온다.
요즘 사람들은 시간적 여유도 그리 많지 않고 주머니 사정도 여유롭지 않으니 낭비라는 이야기가 태반이다.
하지만 가끔 해외여행을 가보라는 사람도 있는데 그 이유가 견문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와 선생님은 당연히 작가니까 뭔가 이득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이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을 시켜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그래서 의외로 해외여행은 좀 다녀봤는데 그러던 도중에 알게 되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한국인들만 즐겨 마시는 거지 해외에선 잘 시켜 먹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는 건 상대를 모욕하는 수준이라고 여기는 정도라고 했을 땐 깜짝 놀랐었지.
이탈리아인이 에스프레소를 물에 타 마시는 미국인을 비웃기 위해서 만든 명칭이 아메리카노라는 설을 들었을 땐 정말 머리가 멍했다.
그걸 좋다고 마시는 나는 대체….
“어….”
“왜요?”
“있네. 아이스 아메리카노….”
“….”
나는 선생님이 가리킨 메뉴판을 멍하니 바라봤다.
정말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적혀있다.
난 당연하다는 듯이 아아를 주문했고 선생님도 나를 따라 같은 메뉴를 시켰다.
“그래. 생각해보면 이 정도 편의는 있어야지.”
“그렇죠?”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갔을 때 아아를 시키니 한국인이냐고 물어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기분이 참 묘했는데….
“근데 이런 문화차이 같은 것도 여행의 묘미인 건데 좀 아쉽네.”
“아쉬워도 불편한 것보다는 낫죠.”
“그건 그런데…. 뭔가 이렇게 절충안이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선생님에게 뭔가 답을 하려고 하는 순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선생님은 이것도 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우린 커피를 마시며 이탈리아가 아닌 다른 나라로 갔던 해외여행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괌에서도 한국인이냐고 물어봤었는데…. 기억나지?”
“당연히 기억나죠.”
괌은 한국인들에게 신혼여행처로도 유명한 곳이다.
우린 가족여행 겸 신혼여행의 기분을 내기 위해서 괌으로도 해외여행을 갔었다.
거기에서 나와 선생님은 얼마 걸리지 않아 한국인이냐는 질문을 받았었다.
고작 계란후라이 때문이었다.
나도 선생님도 날 것으로 먹는 건 기껏해야 회와 초밥, 육회 정도다.
그러니 계란도 노른자가 다 익는 완숙으로 먹는 편이다.
그래서 평소처럼 행동했다.
호텔의 식당에서 뷔페를 먹을 때였다.
베이컨에그에 토스트로 가볍게 아침을 먹으려고 하니 계란후라이는 즉석에서 구워주고 있음을 알게 됐다.
나와 선생님은 그곳에 가서 계란후라이를 완숙으로 익혀달라고 했다.
어려운 영어를 쓰지도 않았다.
그저 가볍게 손바닥을 보였다가 손등을 보이는 식으로 뒤집는 제스쳐를 취해 보였을 뿐이다.
그러자 그 요리사가 나와 선생님을 보고는 작게 웃으며 한국인이냐고 그랬었지….
계란후라이를 그렇게 익혀달라고 하는 사람은 대부분 한국인이라는 듯하다.
“좀 창피했었는데….”
“그래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되기는 했잖아?”
“그건 그래요.”
괌은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명성에 비해 그렇게 기억에 남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있었던 그 계란후라이 사건만큼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해외여행이란 선생님의 말대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문화차이에서 오는 그 묘한 경험을 즐기기 위해서 다니는 것이지.
그러니 이건 좀 바꾸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해요?”
“어? 어, 잊지 않게 적어두려고.”
“소설에 쓰게요?”
“어. 해외여행에서 편의를 제공해주는 건 좋지만, 해외여행의 묘미는 문화차이라고 적어두게.”
선생님은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메모하며 웃었다.
선생님은 메모를 끝냈는지 수첩을 집어넣고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베네치아 광장은 야경도 예쁘니까 야경도 둘러보고 예정대로 천사의 다리를 걸어서 돌아가자고.”
“네.”
우린 로마에 왔으면서 로마에 관한 이야기보다 다른 곳에서의 추억을 더 입에 담는 것 같았다.
선생님도 그걸 의식했는지 이젠 이곳에 관한 이야기와 앞으로 할 일들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난 선생님의 이야기에 어울려주며 느긋하게 커피를 마셨다.
뭔가 마음이 온화해지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커피를 마시고 조금 휴식을 취할 겸 시내를 걷다가 식당에 들러 식사를 마쳤다.
“이탈리아는 점심이 너무 헤비해.”
“그런 면이 있기는 하죠.”
이럴 줄 알았으면 점심 먹기 전에 마셨던 커피를 후식으로 마셨어야 한다며 선생님은 혀를 찼다.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엉?”
“한국인이 아아를 좋아하는 이유요.”
“아, 그거?”
한국은 맵고 짜고 기름진 음식을 좀 자주 먹는다.
그러다 보니 입가심을 위해 커피를 마셔서 아아를 많이 먹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덤으로 다른 나라보다 업무량이 좀 많은 편이니 에너지 드링크로 마시는 느낌도 있고.
생각해보면 죽어서도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으니….
“서울 중심부에는 AI 말고 사람이 일하는 곳도 있겠죠?”
“있기야 하겠지.”
“무슨 기분일까요?”
“죽어서도 일하는 기분?”
“네.”
“네 앞에도 있잖아?”
선생님은 자신을 손으로 가리키며 웃었다.
“선생님 소설은 무료로 바꿔서 돈도 안 되잖아요. 후원도 막아뒀으면서….”
“그렇긴 한데….”
“의외로 즐기고 있을지도 몰라.”
“일을?”
“그래.”
사람은 무언가 할 일이 없으면 쉽게 늙는다.
영혼이 병든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느낌이 아닐까?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만족감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한번 찾아보던지. 뭔가 있겠지.”
“네.”
난 커피를 마시며 AI 대신 일을 하는 사람들에 관한 내용을 검색했다.
음….
“의외로 다들 만족스럽다는 것 같네요.”
“그지?”
“성질을 긁는 거지 같은 상사가 없다, 블랙컨슈머가 없다, 야근도 없다….”
알바처럼 몇 시간 일을 하지 않아도 여유롭다.
자신이 뭔가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뿌듯하다.
그런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
솔직히 좀 복잡한 기분이었다.
처음은 죽어서까지 일하는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이었다.
다음에 든 생각은 일하지 않으면 할 게 없다는 이 세상이 좀 좁고 갑갑한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또 묘한 기분이었다.
일하는 게 즐겁다니….
이게 한국인의 종특인걸까?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니까. 재혼율이 10%도 안 된다면서?”
“네.”
“그러니 일하는 것도 나름 괜찮은 자극이겠지. 다른 사람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게 되니까.”
“왜?”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렇게 생각이 깊은 사람이 밤에는 그렇게 된단 말이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또 묘한 기분이 든다.
점심을 먹고 조금 걷다 보니 젤라토를 파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혼자서 하나를 먹기엔 좀 그런데….
“하나로 둘이서 나눠 먹을까?”
“네.”
선생님은 내가 젤라토를 먹고 싶어 하면서도 뭔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곤 내가 바라는 걸 바로 맞췄다.
역시 난… 당분간은 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내겐 다른 사람이 아닌 ‘남편’이 항상 곁에 있으니까.
“무슨 맛으로 할래요?”
“네가 먹고 싶은 맛으로 해.”
이렇게 스윗하게 배려해주는 선생님이 역시 최고지….
그런 생각이 드는 오후였다.
***
태양이 저물고 노을이 지기 시작한 베네치아의 광장.
우리는 저녁을 먹고 걸었던 거리를 또다시 걷고 있다.
그런데도 묘하게 질린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베네치아의 광장은 낮과 밤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랐다.
밤은 어딘가 조금 몽환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나와 선생님은 손을 잡고 베네치아의 광장을 걸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성 베드로 광장이었다.
“줄이 없네.”
“그러게요. 이것도 현실이랑 같았으면 좋겠어요?”
“그럴 리가.”
성 베드로 광장은 방문객으로 줄이 만들어질 정도로 로마 여행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없었다.
우린 성 베드로 광장을 밝히는 조명의 인도에 따라 성 베드로 대성당에 도착했다.
“역시 웅장하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거대한 성 베드로 대성당은 종교가 없음에도 보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기 충분했다.
규모도 외형도 도저히 성당이라고 하기 힘든 그 화려함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우린 그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전생에 왔던 것처럼 딱히 입장료를 받지는 않는 것 같다.
안으로 들어가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는 피에타란 이름의 조각상이었다.
“여기서 희진이가 저걸 보고는 다리 아프다고 찡찡거렸던 거 기억나요?”
“그래서 내가 업고 다녔었지.”
“진수도 어딘가 부러운 눈치였는데 말이에요.”
“진수는 제법 나이가 있었으니 해달라고는 안 했잖아?”
“희진이도 그땐 나이가 제법 있는 편이었는데요?”
“…그렇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어떻게 안 해줘?”
“딸바보 같으니라고.”
“난 너만 바라보는 바보야.”
그냥 바보면서 입만 살아가지곤….
그래도 그리 나쁜 기분이 들지 않는 아부였다.
나와 선생님은 성 베드로 성당에서 작게 기도를 올렸다.
앞으로도 이런 온화하고 행복한 시간이 계속되게 해달라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