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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9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신혼여행(8) (289/301)

〈 289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의 신혼여행(8)

* * *

아침에 눈을 뜬 우린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잘 잤어요?”

“어. 너도 잘 잤지?”

“네.”

시계를 확인해보니 아침 7시였다.

우리가 언제나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난… 응?

“왜 그래?”

“…묘하게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을 또 발견해서요.”

“뭐가?”

“여기 이탈리아잖아요? 그러니까 시차가 7시간 정도 나는 거로 알고 있는데 우린 언제나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네요.”

“아.”

그래, 그거다.

해외여행을 하면 가장 먼저 시차 적응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차 적응을 끝냈다.

아마 편의를 제공해주는 기능 중에 하나겠지.

솔직히 시차 적응을 못해서 잠을 못 자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까 그냥 그러려니 해야 하는데 발견하니까 묘하게 신경 쓰였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진수랑 희진이를 데리고 해외여행을 했을 땐 상당히 피곤했다.

아이들이라 그런지 시차 적응을 못해서 굉장히 피곤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니 선생님 말대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밥 먹으러 가자.”

“네.”

우린 가볍게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우리가 좀 일찍 온 것인지 식당엔 AI를 제외한 사람은 없었다.

“전세네~”

선생님은 그걸 그냥 콧노래 한 번으로 흘려넘기고 카페라떼와 크루아상, 잼을 준비해 자리에 앉았다.

나도 선생님을 따라 식탁에 앉았다.

“호텔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지 사람도 적고 시간대가 안 맞으면 더 없네.”

“그러게요.”

“뭔가 좀 쓸쓸한 거 같기도 한데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기도 하고.”

“언제는 신경 썼어요?”

내가 그리 말하자 크루아상을 씹던 선생님은 크루아상은 내려놓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곤 내 뺨을 쓰다듬은 후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신경을 안 쓰지는 않지. 사람들 앞에서 이러지는 않잖아?”

선생님은 내게 작게 웃음을 보이면서 카페라떼를 마셨다.

…당했다.

설마 이렇게 기습적으로 나올 줄 몰랐는데….

순간적으로 얼굴에 열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오~ 이런 게 취향이 신가?”

선생님은 좋은 구경을 했다며 아까보다 더 크게 웃었다.

난 선생님을 살짝 째려본 다음 크루아상을 거칠게 씹었다.

“그런 표정도 사랑스러워, 수진아.”

“콜록!”

아니, 이 사람이 아침부터 진짜 왜 이래!

진짜 적응이 안 된다.

간밤의 선생님은… 이래도 되나 싶은 변태였다.

신혼초야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코스프레 섹스를 주장했다.

거기에 모자라 머리에 젖소 머리띠를 씌우고 가슴엔 착유기를 달았다.

후배위로 하다가 갑자기 그쪽 구멍에 넣지를 않나 모유가 바나나맛 우유 같은 맛이라며 돈이 굳었다는 헛소리를 찍찍 뱉었다.

그런 정신 나간 짓을 저지른 사람인데 아침은 이 모양이다.

진짜 머리가 어질어질한다.

“수진아?”

선생님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내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난 고개를 숙이고 크루아상만 우물거렸다.

가끔 저렇게 훅하고 들어올 때가 있어서 방심을 못 하겠다.

아침을 먹으며 오늘 어디를 돌아볼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4명으로 이루어진 무리가 식당에 나타났다.

가족인 걸까?

“우리랑은 반대로 가족여행으로 오는 사람도 있나 보네.”

선생님은 멍하니 그 가족들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아마 저쪽 세상에 있는 진수랑 희진이를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선생님.”

“어? 어어. 아무것도 아니야.”

선생님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작게 웃었다.

내가 앞에 있는데 아이들을 생각하는 게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침 식사를 끝낸 우린 방에서 양치를 끝내고 짐을 챙겨 시내로 나왔다.

오늘 가볼 곳은 바티칸이다.

“가자.”

“네.”

선생님과 손을 잡고 거리를 나섰다.

우린 오늘 이름 없는 기자와 말괄량이 공주가 된 느낌으로 관광을 즐기기로 했다.

선생님은 좀 가벼운 가을 정장을 입고 있고 난 원피스를 입은 상태다.

이 정도면 로마의 휴일 같은 느낌이 날 것 같았다.

우린 베네치아 광장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엔 아주 적은 차량만이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드문드문 보였다.

“차가 적네요.”

“그러게.”

베네치아 광장은 광장이라는 이름과 달리 생각보다 드넓지는 않다.

여의도광장보다도 작다.

차도 돌아다니고 때아닌 마차도 있었으며 오토바이도 돌아다니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그 특유의 분위기가 생기고 그랬는데 그 차가 돌아다니지 않는다.

기껏해야 AI가 운전하는 택시와 마차 정도였다.

“나중에 마차나 타볼까?”

“그래요.”

그때와는 조금 다른 풍경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이것도 나름 괜찮은 느낌이었다.

적어도 주위를 신경 쓰느라 피곤해질 일은 없었으니까.

진수랑 희진이가 흥분해서 달려 나갔다가 차에 치이면 큰일이니 신경을 곤두세웠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건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는지 멍하니 도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아, 음… 자꾸 애들 생각이 나서, 미안.”

“미안할 게 뭐 있어요? 저도 똑같아요.”

아이를 가진 부모란 아마 이런 게 아닐까?

아이들은 이미 아이들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나이다.

한 가정을 이루고 할아버지, 할머니 소리를 듣고 있으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신경이 쓰이고 떠오르고 그러는 게 참… 이상하지.

“생전에 어머니가 그러셨지. 부모는 자식이 몇 살을 먹더라도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던 아기 때의 모습으로 보이신다고. 참 이상해, 그지?”

선생님은 그리 말하곤 볼을 긁적였다.

“그래도 그게 좋은 거 아닐까요?”

“엉?”

“아이들이랑 싸워서 얼굴도 보기 싫다고 하는 것보다 그렇게 아이들 생각이 나는 편이 낫죠.”

“그건 그래.”

선생님은 어딘가 켕기는 부분이 있는지 한숨을 쉬며 그리 말했다.

난 그런 선생님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선생님.”

“왜?”

“이제 와서 말하는 감이 있기는 한데… 저, 아버님이랑 카톡 했었거든요.”

“음? 그랬었지?”

“그냥 카톡 말고요. 좀 자주 했었어요.”

“…그래?”

“아버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선생님이 싫어할 수도 있으니 이건 비밀로 해달라고….”

“비밀인데 왜 밝히는 거야?”

“선생님이 싫어할 것 같지도 않고 아버님도 이제 용서해주시겠죠.”

내가 그리 말하자 베네치아 궁을 바라보고 있던 선생님의 시선이 조금 복잡해졌다.

그리곤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나를 빤히 바라봤다.

듣고 싶지는 않지만 들어보겠다고 각오를 다진 표정이었다.

난 그 표정을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처음엔 어머님이었어요. 선생님이 다 잘 먹는데 기름진 거 좋아하니까 조심하라고 하셨거든요.”

선생님은 돈까스나 갈비 같은 고기 요리를 정말 좋아한다.

그러니 영양이 치우치지 않게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머지않아 아버님이 카톡을 보내오셨다.

“고부갈등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니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

“네. 전 괜찮다고 했죠.”

그다음부터였다.

아버님이 종종 카톡을 보내오셨다.

처음엔 내가 부담스러워한다고 생각하셔서 조심하셨던 아버님이지만 점점 내게 마음을 여셨지.

“싫은 아이였으면 그렇게까지 관심을 보이진 않으셨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선생님은 아버님을 떠올리는지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난 그런 선생님에게 아버님과 나눴던 카톡에 대해 들려줬다.

“진수랑 희진이가 좀 크니까 아버님이 놀이동산에 꼭 가보라고 하셨어요.”

“놀이동산?”

“네. 놀이동산.”

아버님은 공장을 운영하느라 매우 바쁘셨다.

그래서 선생님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그런 아버님에게 있어 놀이동산은 하나의 상징적인 존재였던 것 같다.

친구분들 중에 좀 여유가 있는 분들은 자녀분과 놀이동산에서 놀고 사진도 찍었다고 자랑을 했었는데 그렇게 부러웠다고.

아버님은 바쁘다는 이유로 선생님과의 시간을 보내지 못한 당신의 삶을 마지막 순간까지 후회하셨다.

그래서 내게 놀이동산에 가보라고 권유하셨다.

“…그래?”

“네.”

그것 말고도 많았다.

가령 진수와 희진이가 좀 길게 쉬는 방학이 찾아오면 아버님은 여행을 다녀보라고 종종 카톡을 보내셨다.

선생님도 아이들과 밖에서 노는 것에 흥미를 보였기에 우린 바다도 가고 산도 가고 캠핑과 글램핑도 즐겼다.

“선생님이 군대에 있을 때… 집이 많이 어려워지셨잖아요. 아버님은 아직 그걸 잊지 못하셨나 봐요.”

남자들에게 있어 가장 괴로우며 잊지 못하는 순간이 군대다.

그런 군대에서 잠시나마 마음의 안식을 취하는 시간이 휴가다.

부모님들은 그때만큼은 다른 것도 잊고 자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해주려고 한다.

하지만 아버님은 그것도 하지 못하셨다고 후회하셨다.

선생님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보증으로 인해 가세가 기울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휴가 동안에도 알바를 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그때부터 선생님과 아버님의 사이엔 커다란 골이 생겨버렸다.

아버님은 이미 20여 년이 지나셨어도 그걸 잊지 못하셨다.

그래서 그 미련을 툭툭 흘리셨다.

마음에 실금이 가서 슬픔과 미련, 미안함이 흘러 넘쳐버리셨다.

난 그런 아버님을 위해 여행을 다니고 사진을 찍어 카톡에 올렸다.

아버님은 선생님이 정말 좋은 아내를 만나 행복하겠다며 이상한 이모티콘까지 올리며 웃으셨다.

“….”

선생님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종종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었는지는 몰랐던 것 같다.

“아버님에게 선생님은 그런 존재에요. 저랑 선생님이 진수랑 희진이를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지 말지 그랬어.”

“네?”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선생님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더 못난 자식이 돼버렸잖아….”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입술을 깨물며 뭔가를 억눌렀다.

아… 그럴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

우리가 아이들을 아끼는 것처럼 아버님도 선생님을 많이 사랑하셨다고 말하려던 거였는데.

뜻하지 않게 선생님의 마음에 또 상처를 준 느낌이었다.

난 그런 선생님을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미안해요.”

“네가… 뭐가, 미안해…. 고마워, 고마워… 수진아.”

선생님은 약간 물기를 띤 목소리로 내게 감사를 표하며 내 등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너와 결혼해서… 정말 다행이야.”

ㅡ 그 아이가 너와 만나서 정말 다행이구나.

선생님은 알까?

아버님도 내게 그런 말씀을 하셨었는데.

이건… 내 마음속에만 담아둬야겠다.

선생님을 이 이상 울보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선생님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감정을 추스르고 내 손을 잡아당겼다.

“아직 구경할 게 많이 남았잖아.”

적당히 해도 되는데….

우린 엠마누엘 2세 기념관도 구경하고 남쪽으로 이동해 진실의 입에 도착했다.

나와 선생님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진실의 입에 손을 집어넣었다.

당연히 진실의 입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우린 그걸 보며 작게 웃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선생님의 얼굴에 평온이 찾아왔다.

난 그런 선생님을 보며 다시 진실의 입에 손을 집어넣었다.

“선생님은… 조금 어긋나긴 했었지만 분명 좋은 아들이었어요.”

진실의 입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때요? 얘도 진짜라고 하는데요?”

“하하….”

선생님은 내겐 못 당하겠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어딘가 나이가 들어 보이기도 하고 어려 보이기도 한 묘한 웃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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