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1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30)
* * *
결혼식을 올린 다음에도 당사자들은 좀 바쁘다.
하객분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챙겨야 하고 와줘서 고맙다고 인사도 해야 한다.
그리고 예식장을 우리만 쓰는 것도 아니라 비워주기도 해야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이 예식장에서 결혼을 하는 건 나와 선생님밖에 없다.
한마디로 반쯤 전세를 낸 상태다.
그러니 이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자, 다들 잔 들었습니까?!”
ㅡ 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신랑·신부를 위하여!”
ㅡ 위하여!
준범 씨의 선창으로 결혼식 피로연이 시작됐다.
자그마치 1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식사하는 자리라 뭔가 굉장해 보였다.
“우리도 먹자.”
“네.”
우린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진수랑 희진이를 찾았다.
“음.”
“아.”
진수랑 희진이가 앉아있는 자리엔 윤서와 김서방이 함께 앉아있었다.
윤서와 김서방은 아이들까지 데려왔는지 공간이 제법 좁아 보였다.
이걸 어쩌지?
그렇게 멍하니 서 있으려니 준범 씨가 우리를 불렀다.
“여기로 와!”
그곳엔 준범 씨와 준호 씨, 그리고 서윤이가 앉아있었다.
우린 그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이열~ 운동 좀 했나 보다? 생각보다 잘하더라?”
“시끄러, 이 짜식아.”
선생님은 준범 씨의 어깨를 주먹으로 살짝 툭 하고 때렸다.
그러자 선생님과 친구분들이 작은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수진아.”
“왜?”
“어떤 기분이야?”
“결혼?”
“응.”
“글쎄?”
어떤 기분인지 딱 잘라서 뭐라고 설명하기 좀 힘들다.
어딘가 그리운 기분이 들기도 하면서 새롭기도 하다.
행복한데 어딘가 약간 부족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굉장히 복잡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행복하지?”
“당연하지.”
그것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행복해.
이렇게까지 나만을 바라보며 아껴주는 사람과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다는 거니까.
“너희 그래서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냐?”
김밥을 집어 입에 넣은 준호 씨가 그리 물어왔다.
“로마로 가려고.”
“로마?”
“그래.”
“여기서 로마로는 어떤 방식으로 가는 거냐? 비행기 타면 그냥 갈 수 있나?”
“뭐 개인 서버처럼 변경하고 어쩌고 했던 거 같은데 그게 중요하냐? 그냥 로마 비슷한 곳에 갈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
“하긴 그러네.”
선생님의 말대로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나와 선생님에게 있어 로마는 조금 특별한 곳이다.
선생님과 처음으로 본 영화였던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그 로마.
선생님은 그 영화에 나를 빗대어 고백했다.
나는 선생님의 그 고백에 용기를 얻고 연인이 됐다.
그 후에 우리에게 있어 로마는 하나의 로망이자 목적지였다.
가본 적은 없지만, 머릿속에 막연히 그려지는 그런 멋진 장소.
우린 그곳에 언젠가 가보자는 약속을 했지만 결국 가족여행으로 가게 되었다.
전염병이 유행해 갈 수 없었고 진수와 희진이가 태어났으니까.
아이들이 있으니 그쪽으로 신경이 너무 신경 쓰여 제대로 된 여행도 할 수 없었고.
이젠 가족이 아닌 서로를 위한 여행이다.
이걸로… 진정한 의미로 나와 선생님이 했던 모든 약속이 이루어진다.
언젠가 로마에서 영화처럼 연인 같은 데이트를 했지만 끝내 이루진 못했으니까.
가족여행과 연인끼리 데이트를 하러 가는 건 좀 다르니까.
“벌써 로마로 떠났니?”
서윤이는 웃으면서 연어를 한입 먹었다.
“근데 수진이한테도 친구가 있는지 몰랐네.”
난 울컥해서 준범 씨를 살짝 노려봤다.
선생님 친구분 아니랄까 봐 놀리는 포인트가 똑같았다.
준범 씨는 내 표정을 보더니, 어깨를 움찔하고는 농담이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선생님한테 내가 제법 성깔이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선생님은 그런 부분 때문에 질리지 않는다며 오히려 웃어 보였다.
“우리 수진이가 성깔이 있기는 했지.”
“너도 만만찮았어.”
“그런가?”
“그래, 이 기지배야.”
“아~ 왜 흉내 내고 그러는 거니? 이 기지배야.”
나와 서윤이는 서로를 잠깐 노려봤다가 다시 웃었다.
아, 이제는 알겠다.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는 선생님이 친구들만 만난다 하면 그렇게 즐거운 표정으로 집을 나서는 이유를.
나와 서윤이는 정말 별것도 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학교 때 그 강사가 어쨌느니, 그 교수님이 어쨌느니 같은 정말 사소하고 별 볼 일 없는 그런 이야기.
하지만 어딘가 그립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그런 이야기를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그걸 안 했네.”
“그거?”
“그거 있잖아. 결혼식 축가.”
“아~”
여러모로 생략된 결혼식이었지.
양가 부모님이 안 계시는 결혼식이었으니까.
그래서 그것도 생략하긴 했는데….
“남편분이 노래를 그렇게 잘 부르신다며? 한 곡 뽑으셔야지~”
“오, 그거 찬성.”
갑자기 준호 씨가 서윤이의 말을 받았다.
그러자 준범 씨도 좋다며 그 이야기를 받았다.
선생님은 밥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게 되었다.
선생님이 선곡한 노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 노래였다.
선생님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웃고 떠들던 하객분들도 선생님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뭔가 분위기라고 탔는지 아까와 달리 제법 힘찬 느낌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다음부턴 노래자랑이 시작됐다.
나이를 먹은 노인들이 으레 그러하듯 우린 순서대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이게 결혼식인지 뭔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재밌고 행복해서 방금까지 느꼈던 조금 씁쓸한 부족함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엄마가 없어도 내겐 선생님과 아이들 그리고 친구가 있으니까.
이렇게 우리의 사랑을 축복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
우리의 결혼식 피로연은 저녁까지 이어졌고 우린 결국 예정대로 밤에 신혼여행을 떠나게 됐다.
모든 사람이 떠나가고 마지막에 남은 건 진수와 희진이, 서윤이와 준범 씨, 준호 씨였다.
“그럼 신혼여행 잘 다녀오세요.”
“잘 다녀와!”
“그래, 오늘 찾아와줘서 고마워.”
진수와 희진이가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거 뭐냐? 우리도 나중에 와야 하니까 여기가 어떤 느낌인지 알려주고.”
“신혼이라고 너무 무리하다가 골병 얻지 말고 새끼야.”
준범 씨와 준호 씨도 떠나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서윤이었다.
서윤이는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종종 보러올 테니까 행복하게 살고 있어.”
“응.”
“휴대폰 번호도 주고.”
“그래.”
나는 서윤이와 휴대폰 번호를 교환했다.
“신랑분이 기다리시는데 이젠 보내줘야지.”
서윤이는 그리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신혼여행 다녀오면 전화 좀 해. 이 기지배야.”
“응…. 응….”
나와 서윤이는 다시 포옹했고 서윤이는 내가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떠나갔다.
남은 것은 나와 선생님뿐이었다.
“그럼 이제 정리하고 돌아갈까?”
“네.”
축제가 끝난 다음의 그 특유의 허무함과 안타까움이 남았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서서히 신혼여행의 기대감이 채우기 시작했다.
이제 곧 선생님과 신혼여행을 떠나게 된다.
선생님과 떠나는 신혼여행은 분명 저번보다 신나고 재밌겠지.
나와 선생님은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향했다.
“저녁은 안 먹어도 되지?”
“네.”
“이 세계에 와서 다행인 거 같기도 하네.”
선생님은 흘러가는 경치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런 말을 꺼냈다.
“너랑 죽기 전에 로마 정도는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가네.”
선생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여기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축복받을 수 있고 못다 한 일들을 할 수 있으니까.
“난 네가 옆에 있어 주면 어디든 괜찮은 거 같아.”
이렇게 조금 부끄러운 말을 해주는 남편도 옆에 있어 주니까.
우리를 태운 차는 막힘 없이 도로를 달려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다.
선생님은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내렸다.
“왜 이렇게 캐리어가 커요?”
분명 이렇게 크진 않았던거 같은데….
“그럴 필요가 있어서?”
난 선생님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이거 설마?
“웨딩드레스 어쨌어요?”
“음.”
선생님은 장난을 치다 들킨 아이처럼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웨딩드레스를 대여한 게 아닌 사버린 것 같다.
선생님은 정말 한결같구나.
“나 턱시도도 샀거든. 그러니까 말이야….”
“네~ 네~”
턱시도를 입은 선생님은 좀 귀여웠으니 그런 플레이도 나름 괜찮을 거 같기도 하고….
“가자.”
“네.”
캐리어가 우리를 따라오도록 지정하고 먼저 걷기 시작했다.
주위엔 AI가 대부분이었지만 우리처럼 사람도 몇몇 있었다.
우린 예약한 항공권을 탑승권으로 교환하고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
“왜?”
“고마워요.”
선생님이 또 결혼식을 하자고 했기에 이런 행복을 느끼고 있는 거니까.
설마 이 나이가 되어서까지 감동을 하게 될 줄 몰랐다.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야.”
“그래요?”
“어. 네 웨딩드레스 차림이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절반쯤은 진심인 거 같은데….
“그래도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거 보니 역시 하길 잘했어.”
선생님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더니 다시 나를 바라봤다.
“수진아.”
“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웃었다.
어딘가 부끄러운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행복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나와 선생님은 이곳에서도 결혼하여 다시 부부가 되었다.
이 세상이 언제 끝을 맞이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까지 나와 선생님의 평범한 일상은 계속해서 이어져가겠지.
그게 인생이라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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