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7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26)
* * *
우린 서로 작성한 초청장을 스튜디오에서 받아온 양식에 입력했다.
“여기라도 종이는 안 되는 모양이네.”
“어쩔 수 없죠.”
초청장이 완성됐다.
이제 보내기만 하면 되는데… 과연 와줄까?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생님은 벌써 보내버린 모양이다.
“괜찮아. 와줄 거니까.”
“그럴까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잖아.”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얼른 보내라고 재촉했다.
난 결국 송신 버튼을 눌러버렸다.
난 멍하니 송신이 완료됐다는 화면을 들여다봤다.
“방금 보냈으니까 진정해.”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내 어깨를 부드럽게 주물렀다.
그래, 방금 보냈는데….
참 신기한 일이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오라비라 부르며 티격태격하던 사이였는데.
지금은 결혼식에 찾아오지 않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니.
“선생님.”
“왜?”
“다들 올까요?”
“일단 진수랑 희진이는 오겠지. 준범이랑 준호도 올걸?”
선생님은 본인이 쓴 청첩장에 그만큼 자신이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그렇게 괜찮을 거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문자가 왔다.
갈게.
너무 짧아서 기분이 묘해지는 문자였다.
“처남도 많이 바뀌긴 했네.”
예전의 오빠라면 이런저런 장난 치는 듯한 내용을 써넣었겠지.
하지만 지금의 오빠는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있으려니 전화가 왔다.
언니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언니?”
ㅡ 수진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는 어딘가 울먹이는 듯한 느낌이 가득했다.
ㅡ 수진이 맞지?
“네, 언니.”
ㅡ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도대체 무슨 일일까?
언니는 대략 1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나와 선생님이 죽었을 때 그 뒤처리를 한 건 진수와 희진이, 그리고 오빠와 언니겠지.
나와 선생님이 죽은 광경을 직접 봤을 테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언니와 오빠는 이 세계에 대해 좀 부정적이라 여길 쉽게 찾아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선생님과 진수가 고민하던 것처럼 여기에 있는 우리가 진짜인지 확신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보낸 청첩장을 받았다.
그랬더니 자신도 모르게 오겠다는 답장을 보내고 말았단다.
ㅡ 그동안 섭섭했지?
“괜찮아요. 저희도 정신이 없었거든요.”
ㅡ 그러니?
“네.”
선생님은 나와 언니가 대화하기 쉽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와 언니는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엔 나와 선생님의 근황에 관해 물어보던 언니는 그 후론 이곳에 관해 물어오기 시작했다.
요즘 에덴이 TV에 자주 소개되고 있다.
네 오빠는 그 내용을 보고 여기가 그리 좋은 곳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수명연장 수술을 받아서 아직 나중에 갈 예정이지만 좀 불안하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난 최대한 여기에서 보고 느낀 점을 말해줬다.
좋은 점도 많고 불편한 점도 많은 곳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랑하는 사람과 계속 함께 있을 수 있어 행복하다는 점이다.
내 말을 들은 언니는 가볍게 웃으며 내가 여전하다는 말을 해왔다.
“언니는 아직 오빠 사랑해요?”
ㅡ 그럼.
다행히 언니는 아직 오빠를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럼 괜찮지 않을까?
나와 언니는 그 후로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전화를 끊었다.
통화 시간을 확인해보니 대략 1시간이 흘러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긴 통화를 한 것 같다.
선생님과 함께 있어서 그런지 통화는 용건만 간단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휴대폰을 내려놓고 선생님을 찾으니 선생님은 멍하니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쯤 꾸벅꾸벅 하는 모습이 곧 잠들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졸리면 자요.”
“너랑 같이 자야지.”
선생님은 나와 같이 자고 싶어서 기다렸다며 작게 웃었다.
피곤해서 눈이 반쯤 감긴 표정이 귀여웠다.
우린 평소와 달리 침대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았다.
평소보다 따뜻하고 행복한 잠자리였다.
***
다음날.
선생님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노트북을 노려보고 있었다.
“왜 그래요?”
“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표정은 아니었다.
뭔가 사고를 친 사람의 표정이었으니까.
뭘까?
선생님이 뭘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보자.
우린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선생님은 이 시간에 보통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런데 저렇게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건 분명 소설에 문제가 있었다는 거겠지?
난 서둘러서 서로소를 접속해봤다.
여전히 조회수 100가량이 나오는 선생님의 보는 사람만 보는 소설.
거기에 평소보다 조금 많은 댓글이 달려있었다.
난 선생님이 어제 쓴 소설을 눌러봤다.
내용은 평범했다.
웨딩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로 향했고 거기서 바로 촬영을 시작했던 일.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가 예뻐서 넋을 잃었다는 내용.
내가 그랬던 것처럼 교복을 챙겨가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내용이었다.
나와 같은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적혀있었다.
선생님이 나이를 신경 쓰고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그렇게 읽어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다 읽어버렸다.
그렇게 작가 후기가 시작됐고 난 그제야 선생님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친구분들에게 청첩장을 쓴 것으로 모자라 소설에까지 그런 내용의 청첩장을 올렸다.
이 소설을 지금까지 사랑해주는 독자님들이 우리의 결혼식에 찾아와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선생님이 몸을 움츠렸다.
“선생님…?”
“그, 미안.”
평소엔 10개 남짓 달리는 댓글이 이번 화에만 50개였다.
갑자기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축하를 받게 되었다.
난처했다.
선생님은 내 눈치를 살피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난 그 모습을 보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이 반쯤 장난으로 이런 짓을 한 건 알고 있다.
결혼식은 혼자서 올리는 일이 아니니 상의를 하지 않고 이런 짓을 벌여서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래도 선생님에게 화를 낼 기분은 아니었다.
어쨌든 선생님과 나의 이야기를 지금까지 따라와 준 사람들이 이렇게 많고, 우리를 축복해주기 위해 찾아온다는 사실이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스몰 웨딩이란 개념이 없는 곳이라 제법 큼지막한 예식장을 빌렸는데 공간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선생님.”
“그… 미안.”
“한마디 말은 했어야죠….”
선생님은 자세를 고쳐 앉고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되도록 많은 사람한테 축복받고 싶어서. 뭔가 외롭잖아?”
결혼식은 일종의 새 출발이다.
그런 경사스러운 행사니까 되도록 많은 사람이 축하해줬으면 했다.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 말하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니까….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점잖아졌지만, 선생님은 어딘가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는 어른이었다.
서로소에서 본인을 종종 ‘어른이’라고 표현했는데 정말 딱 맞는 표현이다.
그런 사람이니까 이렇게 한결같은지도 모른다.
오빠도 세월에 흐름 속에 많이 변해버렸으니까.
결혼식을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선생님의 휴대폰이 울렸다.
선생님은 휴대폰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왜요?”
“처남이 여기 온대. 괜찮겠어?”
청첩장 때문이겠지.
언니와 통화하면서 오빠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아마 상당히 큰 결심을 하고 찾아오는 거겠지.
“괜찮아요.”
그러니 나는 전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모습을 보여줘야겠지.
그로부터 2시간이 흐르고 오빠와 언니가 이 세계에 찾아왔다.
“오랜만이야, 수진아.”
“어서 와요, 언니.”
오빠와 언니도 진수와 희진이처럼 젊었을 적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찾아왔다.
언니야 여자니까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빠는 의외였다.
“….”
오빠는 나를 빤히 보면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오랜만이야, 오빠.”
“…그래, 오랜만이네.”
그 표정은 굉장히 복잡해 보여서 뭐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반가움과 슬픔, 기쁨과 실망 등등이 묻어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랜만이네, 처남. 그 모습으로 올 줄 몰랐는데.”
“오랜만이네요, 매형. 잘 지내셨습니까?”
오빠는 외형은 20대였지만 말투와 분위기가 노인네의 그것이었다.
우리와 달리 외형에 맞는 생활을 하는 느낌이었다.
오빠가 우리에게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건 나이에 걸맞지 않은 언행을 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난 차를 타서 소파로 가져갔다.
“수진아, 수진아.”
언니는 내게 손짓을 하곤 나를 부엌으로 따로 불러냈다.
“왜요, 언니?”
뭔가 싶어서 부엌으로 가니 언니는 여기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오빠가 선생님에게 할 말이 있는 걸까?
“정말… 수진이니?”
“저예요, 언니.”
“….”
언니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지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언니가 오빠 좋아한다고 상담했었잖아요.”
“…그걸 기억하니?”
“오빠가 여친이랑 헤어지면 연락해달라고 휴대폰 번호도 알려줬잖아요.”
“그, 그랬었지….”
“오빠한테 괜찮은 날이라고 말해도 오빠가 말을 안 들으니까,”
“여기까지 하자.”
“네.”
“뭔가… 옛날 생각이 나네. 외형이 젊어져서 그런가?”
언니는 내가 외형에 맞게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난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이 여긴 제2의 세계고 환생을 한 거라고 그랬거든요. 외형도 젊어졌으니 이왕이면 젊게 살자고 했어요.”
“그래?”
난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늙은이들이 으레 그러듯이 추억을 논하는 게 주된 이야깃거리였다.
예전에 오빠가 어쩌고, 내가 어쩌고, 언니가 어쩌고….
그런 이야기를 하며 우린 자연스럽게 과거로 돌아갔다.
언니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새 예전의 언니로 돌아가 있었다.
오빠를 10년이 넘게 짝사랑했고 결국엔 오빠와 결혼까지 성공한 다부지면서도 약삭빠른 언니의 모습으로.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거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오빠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이가 걱정을 많이 했거든.”
“걱정이요?”
“이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가짜가 아닌가 하면서 말이야.”
내가 죽고 나서 오빠는 상당히 쓸쓸해 했다고 한다.
엄마와 내가 떠나가니 세상에 홀로 남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그런데 내가 살아있다고 하니 반가우면서도 내가 가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서 찾아올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내가 청첩장을 보낸 것을 보고 굳은 결심을 했다는 것 같다.
나와 언니는 거실로 향했다.
오빠는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너도 여전하네?”
그 말투는 어딘가 그리움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쓸데없이 무게 잡는 건 그만뒀어?”
“매형. 이런 녀석이 뭐가 좋다고 재결합을 한답니까?”
“저런 모습이 매력적인 거야.”
“매형은 참 특이하네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런가?”
“예.”
오빠와 선생님이 웃으면서 떠드는 모습을 보니 명절마다 한자리에 모여 웃고 떠들던 기억이 떠올랐다.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되찾은 듯한 느낌이 드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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