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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5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24) (275/301)

〈 275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24)

* * *

나와 선생님의 두 번째 웨딩 촬영이 시작됐다.

AI는 우리에게 여러 요구사항을 말해왔다.

서로 나란히 서서 웃으라느니 서로 행복하게 바라보라느니 하는 그런 요구.

전생이나 이곳의 AI나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사람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게 두 번째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가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 긴장이 되지 않았다는 점일까?

예전에 사진을 찍었을 때보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미소가 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나, 둘, 셋! 예~ 좋습니다.”

나와 선생님은 아주 자연스럽게 척척 사진을 찍어나갔다.

“옛날 생각나네.”

“뭐가요?”

“네가 사진 찍을 때 표정이 딱딱해서 내가 그랬었잖아.”

“아, 범하고 싶다?”

“크흠. 그래, 그거.”

선생님은 본인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으면서도 부끄러운지 얼굴을 긁적였다.

왁스로 이마를 드러내고 얼굴이 살짝 붉어진 상태로 뺨을 긁적거리는 턱시도를 입은 고2의 꼬맹이.

…귀여워.

뭔가 괴롭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서로 마주 본 상태로 이마가 닿을락 말락 한 위치에서 서로를 살짝 바라보는 자세를 취했다.

“좋습니다. 하나, 둘, 셋!”

난 사진이 찍히자마자 선생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읍?”

갑자기 입술을 빼앗긴 선생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빤히 바라봤다.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다.

왁스를 발랐으니 자제해야지.

내용물이 선생님인 걸 아는데도 이상하게 귀엽단 말이지….

선생님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눈에 묘한 열기가 느껴져서 조금 두려워지는 웃음이었다.

꼭 밤에 기대하라고 하는 듯한 눈빛이라 도저히 18살로는 보이지 않았다.

“자, 10분 쉬었다가 하겠습니다.”

때마침 휴식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나와 선생님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소파에 앉았다.

“후우.”

“괜찮아?”

“안 괜찮아요.”

웨딩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피곤한 건 여전했다.

내 사이즈에 딱 맞는 드레스라고 해도 웨딩드레스는 허리를 꽉 조여서 숨을 쉬기 힘들었으니까.

“그래도 예뻤어.”

“얼마나요?”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

“후훗. 그래 보였어요.”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모습이 귀여웠다.

사진으로 찍지 못해 아쉽다고 생각할 정도로.

“금방 끝나겠는데?”

“그러게요.”

결혼식을 또 올리는 것은 나름의 로망이 있는 일이다.

전생에선 특별한 날에 다시 결혼식을 올리는 부부도 있다고 했었으니까.

그래도 로망은 생각만 하기에 로망이다.

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해 들였던 노력을 떠올리면 쉽사리 할 수 없으니까.

나와 선생님이 생각만 하고 하지 않았던 이유가 다 있는 법이지.

그런데 여긴 그 로망을 충족하면서도 그리 피곤하지 않았다.

웨딩 촬영은 스튜디오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을 시간이 지나서까지 계속 이어진다.

그렇게 한참 동안 사진을 찍고 구도를 맞추고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여긴 진행이 굉장히 빨랐다.

점심을 먹고 찾아왔음에도 4시간 정도면 끝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4시간도 적은 시간은 아니지만, 전생에 들였던 시간에 비하면 엄청나게 빨리 끝나는 일이다.

거기에 한 달 동안 몸을 가꿀 필요도 없으니까.

선생님은 내게 물을 건네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요?”

“사복으로 찍은 웨딩 촬영 의상 가지러.”

“같이 가요.”

“아냐, 힘들었을 테니까 앉아서 쉬고 있어.”

선생님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떠나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리가 갈아입을 옷을 들고 돌아왔다.

“자, 이제 준비해오신 옷으로 갈아입고 사진을 찍겠습니다.”

“네~”

난 선생님이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었다.

선생님이 가져온 옷은 내가 저번에 선생님 앞에 입고 나타났던 그 옷이다.

교생 선생님이라고 거짓말을 했을 때 입고 있던 그 옷.

선생님은 은근히 오피스룩을 좋아한다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옷을 갈아입은 선생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그게 뭐예요?”

“18살에 어울리는 복장.”

“하….”

선생님이 입고 있는 옷은 내 옷과 맞춤인 옷이었다.

그래, 교복.

선생님은 18살 당시에 입었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손엔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교복까지 들려있었다.

저 흐뭇한 표정, 아주 작정했구나?

내가 웨딩 촬영을 했을 당시에 교복을 입고 찍었던 일을 아직도 담아두고 있었던 걸까?

귀엽다고 해야 할지 유치하다고 해야 할지….

난 짧은 한숨을 쉬고 선생님과 사진을 찍었다.

난 교생 실습을 나온 선생님이고 선생님은 학생이라는 느낌으로.

뭔가 위험한 느낌이 드는 사진을 찍어나가다 보니 선생님이 옷을 갈아입고 왔다.

그리곤 내게도 옷을 내밀었다.

“이걸로 갈아입어.”

그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교복이었다.

이건 또 언제 준비한 걸까?

뭔가 그립다고 생각하며 옷을 입으니 묘하게 부끄러워졌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고등학교 때 입은 교복을 입는다고 생각하니까 역시 좀….

선생님은 잘도 이걸 입었구나 싶었다.

외형은 18살이라도 일단 내면은 120살인데 부끄럽지 않은 걸까?

“다 입었어?”

“네.”

옷을 갈아입고 커튼을 걷으니 똘망똘망 초롱초롱 눈동자로 날 바라보는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의 얼굴에 꽃처럼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선생님은 조심스레 내 근처에 서선 내 손을 잡아 왔다.

뭔가 분위기가 조금 묘했다.

손에는 안 흘리던 땀까지 흘리고 있어서 걱정될 정도였다.

“왜 그래요?”

“한 번쯤은… 너랑 같은 시선에서 살아보고 싶었으니까. 이제 그 소원이 이뤄지는 것 같아서.”

아, 그렇구나….

선생님은 가끔 그런 말을 하곤 했었는데.

나와 동갑이고 같은 학교에 다녔으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는 그런 이야기.

나와 부천으로 첫 데이트를 떠났던 이유도 학창 시절을 나와 보내고 싶어서 그랬다고 했었지.

선생님이 한층 귀엽게 느껴졌다.

그래서 선생님의 손과 깍지를 꼈다.

“응?”

“이게 연인 같고 더 좋잖아요. 그죠?”

“…어, 그러네.”

얼굴을 살짝 붉힌 채 부드럽게 웃는 선생님.

그렇게 좋은 걸까?

평생의 소원히 하나 이뤄졌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난 선생님과 함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AI는 제법 고성능인지 우리가 입은 옷을 보고 스튜디오를 정비했다.

홀로그램이 떠오르더니 우리가 있던 스튜디오의 배경이 살짝 바뀌었다.

“이건….”

“학교네요.”

이쪽 AI는 제법 센스가 좋은지 우리 교복에 맞춘 배경을 만들어줬다.

우린 한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의자 역시 책상에 맞는 의자로 변경되어 정말 고등학교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입고 있으니까 뭔가 조금 성숙한 선배 같은 느낌이네.”

“선생님은 뭔가 연상 앞에서 자랑하고 싶어서 발돋움한 연하 같네요.”

“그래? 좀 별론가?”

아뇨, 귀여워요.

“자, 편한 자세를 취해주세요.”

한 책상을 사이로 두고 의자를 뒤로 돌려 마주 본 자세.

고등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친한 친구들끼리 자주 이렇게 앉아 웃고 떠들곤 했지.

난 그걸 보며 시간 낭비를 한다거나 시끄럽다고 생각했었다.

“좋네.”

하지만 이젠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선생님은 책상 위에 올려진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왔다.

매일 밤, 나를 그렇게 괴롭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소심한 동작이었다.

마치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만지는 듯한, 동경의 대상을 접한 듯한 반응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웃기면서도 귀여워서 선생님의 손에 깍지를 꼈다.

나와 선생님은 서로를 바라보며 엷게 웃었다.

“좋습니다~”

우리가 웃는 모습이 상당히 좋았는지 셔터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우리 웨딩 촬영 중이었구나.

뭔가 멍해서 웨딩 촬영 중이라는걸 잠깐 잊었다.

선생님도 분명 나와 같은 생각이겠지.

어쩌면 선생님이 바라던 건 이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사진을 찍은 다음 선생님은 스태프분에게 다가가 뭔가를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휴대폰을 꺼내 보였는데 어딘가 전화라도 할 생각인 걸까?

그리 생각하고 있으려니 스튜디오의 무대가 다시 한번 바뀌었다.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었다.

나와 선생님의 이야기가 시작된 그곳, 이미 사라져버린 카페였다.

난 그 카페를 멍하니 바라봤다.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데도 뭔가 배경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 느낌이었다.

커피가 없는데도 어딘가 그리운 향기가 맡아지는 느낌도 들었다.

나와 선생님은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립지?”

처음부터 이런 걸 생각하고 있던 걸까?

정말… 선생님은 선생님이라니까.

이 나이가 되어서도 날 감동시킬줄 몰랐는데….

가슴이 너무 따뜻해져서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수진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신부 화장도 했으니까 참아야지.

오늘은 선생님한테 두 번째로 예쁜 모습을 보여야 하는 날이니까.

나는 그때처럼 등을 지고 앉으려고 했지만, 선생님은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 카페에서 함께 등을 맞대고 있는 시간은 좋았는데 말이야…. 사실은 너와 이렇게 당당하게 마주 보고 싶었어.”

이젠 그럴 수 있으니까 좋네.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스태프분이 가져온 소품용 머그컵을 양손으로 잡았다.

저도 사실은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우린 약간 사정이 있는 관계였으니까 참았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되겠네요.

선생님.

여긴 좀 외로운 곳이에요.

현실과는 약간 다른 그 부분이 여기가 현실이 아니라는 걸 계속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화장실을 가지 않는 건 편하지만 그만큼 내가 살아있지 않다는 걸 알려주죠.

바닷속에서 숨이 쉬어지는 건 낭만적이지만 여기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려줘요.

추억이 깃든 곳을 찾아가면 묘하게 전과는 달리 변해있고, 가장 즐거웠던 곳을 찾아가면 뭔가 허전하죠.

그런 곳인데도… 좋네요.

선생님과 이렇게 못다 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현실과는 다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네요.

선생님한텐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게 쉽지는 않았죠.

선생님은 그런 절 사랑한다고 해주셨지만 좀 부끄러웠어요.

이젠 선생님한테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네요.

아이들이 없으니까 허전했어요.

갑자기 외로움이 사무쳐 선생님이 옆에 있는데도 우울했어요.

그래도 이젠 괜찮네요.

아이들이 우릴 잊지 않고 여전히 찾아와주니까.

어딘가 부족해도 부족한 만큼 장점이 있어요.

마치 우리들의 관계 같은 곳이네요.

어딘가 다른 부부와는 달라도 우린 행복했잖아요.

지금도 행복하고.

그러니 여긴 외로운 곳이 아닌 따뜻한 곳이에요.

에덴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는.

아마 저 혼자 찾아왔더라면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았겠죠.

선생님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먼저 떠나갔다면 전 이곳에 왔어도 다음날에 삶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고마워요, 선생님.

항상 나만 바라봐줘서.

항상 나만 사랑해줘서.

말로 하기엔 부끄러워서 말하진 못하지만… 항상 사랑해요.

선생님의 손이 내 손을 살짝 잡아 왔다.

“사랑해, 수진아.”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부드럽게 웃으며 사랑을 고백하는 선생님.

누군가는 우리의 관계를 보며 혀를 차겠지만….

난 이 사람과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그렇게 생각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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