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3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22)
* * *
설거지를 끝낸 선생님은 진수에게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캐치볼이나 마저 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진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나갔다.
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희진이의 옆에 앉았다.
“서운해?”
“뭐가?”
“아빠가 오빠랑 놀아서.”
“그게 뭐가 서운해?”
“흐응?”
내가 이 화상이랑 할 말이 많은 것처럼 선생님도 진수랑 할 말이 많은 거겠지.
나와 희진이는 TV를 틀어놓고 그걸 멍하니 구경하기 시작했다.
TV에선 요즘 인기인 VR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VR 세계에서 VR 게임에 대한 방송을 보니까 뭔가 묘한 기분이네.”
희진이의 말대로 여긴 가끔 이런 부분이 몰입을 깰 때가 있다.
아마 이쪽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방송을 다시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되겠지.
애써 2회차니 환생이니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이 현실을 마주 보게 되는 방송이 아닐까 싶다.
희진이는 날 배려하기라도 했는지 TV를 꺼버렸다.
“우리 그냥 아빠랑 오빠가 캐치볼 하는 거 구경이나 할까?”
“그래.”
차라리 그게 더 나을 것 같다.
우린 밖으로 나가 선생님과 진수가 하는 캐치볼을 구경했다.
선생님은 어제 몇 번 공을 던지고 벌써 요령을 잡았는지 진수가 끼고 있는 글러브에 공을 던져줄 정도가 된 상태였다.
“와… 아빠는 여전하네.”
“몸이 젊어졌으니까.”
“엄마는 젊어졌어도 저건 못하잖아?”
“….”
선생님은 진수랑 자주 했으니까 그런거고….
선생님과 진수는 공을 주고받으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리가 제법 있어서 그런지 대화 내용은 들려오지 않았다.
“뭐라 뭐라 하고 있는 거 같은데?”
희진이는 궁금하다는 듯한 분위기를 내비쳤다.
내가 가까이 가자고 하면 기꺼이 따라나설 분위기였다.
난 희진이의 손을 잡아 일어서지 못하도록 막았다.
“엄마?”
“어차피 소설에 쓸 거야, 선생님이라면.”
“아.”
우리 눈치가 보여서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진수는 이 화상과 달리 좀 섬세한 아이니까.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뭐가?”
“이렇게 막, 이 화상이~ 하는 듯한 시선인데?”
감도 좋은 년.
예전엔 그렇게 귀여웠는데….
갓난아기였을 땐 아프다고 우는 모습에 가슴이 미어지는 줄 알았는데.
하아….
“또 또 이상한 생각하지?”
난 입을 다물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이 글램핑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면 곧 결혼 준비를 해야 하니까.
초대할 사람은 없다.
웨딩 촬영을 위해 살을 빼거나 피부관리를 받을 필요도 없다.
지금의 나는 내 전성기의 외모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이번엔 한 달도 걸리지 않아 끝날 것 같다.
결혼식도 사람들이 없으니 조촐한 곳을 찾으면 되려나?
의외로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이 없으니 싸게 들지도 모르겠다.
돈은 많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최대한 아끼는 게 맞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
점심을 먹으면 집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제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땐 얼른 돌아가고 싶다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좀 더 남아있고 싶은 기분이다.
그래도 돌아가는 게 맞겠지.
언제까지고 여기에 남아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니까.
결혼식 준비도 해야 하고.
“재밌었어.”
희진이는 오랜만에 젊은 몸이 되어 즐거웠다고 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20대의 몸으로 여길 구경하고 싶다고.
진수도 선생님이랑 오랜만에 캐치볼을 해서 즐거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도 흐뭇한 표정이 되었다.
역시 글램핑은 가족끼리 단체로 와야 재밌다고 실감한 순간이었다.
“자, 정리하자.”
점심을 먹고 뒷정리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친해진 남편분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이런 면에서 참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좋은 의미로.
“안 챙긴 건 없지?”
“네.”
“가자.”
우린 타고 왔던 차에 올라타 집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희진이는 피곤했는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진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너도 졸리면 자.”
“선생님도 졸리면 자요.”
“난 영 익숙해지지 않는단 말이지. 이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싶어서.”
“여긴 사고 날 일도 없잖아요.”
“그렇긴 한데….”
선생님은 아직도 저쪽 세계에 있을 때의 버릇을 버리지 못한 상태였다.
AI가 발전해서 자율주행 차량이 보급됐다.
일반 운전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성능이라 사고가 잘 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항상 운전대를 붙잡는 손을 놓지 않았었지.
혹시라도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라며.
그때 그 모습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저번엔 운전대에서 손 떼고 있더니 왜 또 그러는 거예요?”
“아이들이 차에 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때 생각이 나서 그런가 봐.”
“아.”
그렇구나.
선생님은 이런 모습이 참 멋있단 말이지.
나와 가족을 지켜주고자 하는 그 모습이 참 듬직했다.
“돌아가면 짐 정리를 하고, 소설을 쓰고….”
선생님은 중얼중얼 앞으로 할 일에 대해 늘어놓더니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괜찮지?”
“네.”
“수진이의 웨딩드레스라… 좋네. 이참에 아예 하나 살까?”
“….”
웨딩드레스 관리가 얼마나 힘들고 몸매 관리는 또 어떤지 잔소리가 흘러나올 뻔했다.
그럴 필요는 없는데.
이 세계는 그런 쪽에선 현실과는 다르니까.
웨딩드레스라….
어차피 아이들이 사는 방은 비었고 창고로 쓰는 곳도 여유가 좀 있으니 괜찮으려나?
“그래요, 그럼.”
“좋아.”
선생님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핸들을 잡은 손으로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어찌 여자인 나보다 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여전하시네요.”
진수는 나와 선생님이 즐겁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며 그립다는 표정으로 그리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선생님은 웃으면서 그 이야기를 받았다.
뭔가 묘한 분위기가 흐른 것 같았는데?
착각인가?
우리를 태운 차는 그대로 아무 문제 없이 집에 도착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갈게!”
“그래. 나중에 시간 나면 또 찾아와.”
“예.”
“그럼 진짜 간다!”
진수와 희진이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떠나갔다.
“…있다가 없으니까 좀 많이 조용하네.”
“그러게요.”
그래도 이게 우리가 맞이한 새로운 일상이니까.
선생님은 터벅터벅 걸어가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아무래도 글램핑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쓸 생각인 듯했다.
난 선생님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 산만하던 선생님의 태도가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대략 3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선생님은 미간을 찌푸린 채 화면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닥.
아주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선생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선생님은 내 시선을 느끼지도 못하는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저 모습으로 보아 1시간이면 글이 한편 만들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난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선생님이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 컵에 담긴 얼음이 전부 녹아 사라지면 선생님이 기지개를 켜며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이겠지.
***
대략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선생님이 기지개를 켰다.
상당히 만족스러워 보이는 표정으로 보아 제법 느낌이 좋은 내용이 써진 것 같다.
선생님은 다방 커피에 얼음을 넣은 다음 천천히 마시며 내 눈치를 살폈다.
어서 읽어보라고 은근히 보채는 듯한 느낌이었다.
귀여운 사람이야, 증말.
난 선생님이 쓴 소설을 읽어보기로 했다.
처음 내용은 우리가 글램핑장에서 보낸 2일 차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난다는 시작이었다.
그렇게 무난하게 시작하는 내용이었다.
왜 굳이 이렇게 보라고 한 걸까?
그 내용은 중반부부터 시작됐다.
선생님과 진수가 캐치볼을 시작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뭔가 평소보다 조용하던 진수는 선생님과 캐치볼을 하며 질문을 했다.
자신이 늙어서 그런 건지 나와 선생님이 이곳에 살아있다는 것이 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예전에 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가 있잖은가?
진수가 시작한 이야기는 스웜프맨에 대한 이야기였다.
스웜프맨.
늪지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는데 늪지에서 나와 완전히 같은 기억과 모습, 사고를 하는 존재가 태어났다.
그 존재는 과연 나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자아의 탐구영역이다.
진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가 그 스웜프맨이 아닌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것 같다.
선생님은 죄송스러움과 민망함,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로 얼굴이 비뚤어진 진수에게 웃으면서 공을 던졌다.
선생님은 솔직히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진수는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괜히 자신이 꺼낸 이야기로 선생님에게 상처를 줬다고 판단한듯했다.
“진수야.”
“예, 아버지.”
“네 말대로 우린 스웜프맨일지도 모르지. 뇌가 둥둥이든 칩이 둥둥이든 아무튼 그런 상황이니까.”
“죄송합니다, 아버지….”
“근데 말이다.”
나는 진수에게 공을 던졌다.
진수는 손쉽게 내 공을 잡았다.
“내가 네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예.”
“혹시 기계가 만들어낸 착각이 아닌가 싶어 추억이 깃든 곳으로 발걸음을 향했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득히 먼 곳까지 걸어왔다.
그렇게 멀리 와버리니 놓치고 온 부분이 많다는 생각에 다시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렇게 걷다 보니 알게 되었다.
“네 엄마와 신혼 때 처음으로 캠핑을 떠났지. 솔직히 별건 없었는데 이상하게 재밌더구나.”
군 생활을 하며 밤하늘을 올려다볼 땐 정말 지옥 같은 곳이라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수진이와 함께하는 강원도는 즐거웠다.
“그때 그 기억이 너무 행복해서 너희가 태어나도 종종 글램핑장을 찾았지.”
애들에겐 글램핑이 캠핑보다 더 나을 테니까.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가슴이 텅 비어버린 듯한 느낌이더구나.”
처음엔 그 감정이 뭔지 몰랐다.
후에야 그 감정이 외로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너무 급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놓친 것들이 많았다.
가령 수진이의 청춘을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보내게 했다는 점이겠지.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다해 수진이만 바라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결국 아이들을 여기로 부르는 사태로 이어졌다.
“네 엄마만 바라보고 살려고 했어. 일단 우린 죽은 거니까. 너희와 엮이는 건 나도 좀, 그렇다고 생각했지.”
진수는 나와 닮았다.
이 세상이 반쯤은 가짜가 아닌가? 내가 스웜프맨은 아닌가에 대한 생각을 똑같이 하고 있었으니까.
“신경 쓰지 않으려고. 난 그냥 눈을 감았다가 뜨니 이 세상에 있던 것과 똑같은 기분이니까. 아침에 눈을 뜨면 네 엄마가 옆에 있어.”
난 습관처럼 수진이의 머리를 어루만진다.
“아침잠이 많은 네 엄마 대신 부엌에 서서 요리를 하다 보면 네 엄마가 배시시 웃으면서 식탁에 앉아.”
같이 아침밥을 먹으며 오늘 할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있었던 일들을 소설로 써 내려가며 하루를 마치지.”
수진이가 오늘도 좋았다고 말해주면 충실한 하루를 보낸 기분이 든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과 전에 쓰던 소설이 다르냐?”
“아뇨, 똑같아요.”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마음이 다를까?”
“아뇨….”
“수진이를 사랑하는 내 마음도 달라지지 않았어.”
난 천천히 말을 고르고 골랐다.
“난 여전히 수진이가 사랑스럽고 네가 자랑스럽고 희진이가 소중해.”
“…예.”
“이곳에서 너희와 웃고 떠들며 지낸 시간이 보물같이 느껴져.”
“예….”
“그거면 된 거 아니겠냐? 인생은 긴 것 같은데도 짧으니까. 너희를 아끼고 사랑하는 시간도 부족한데 그런 사소한 일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그거면 됐다.
이 세상이 뭐든 내가 누구든 그건 중요치 않다.
난 여전히 수진이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한다.
그거면 충분한 게 아닐까?
진수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글러브에 든 공을 힘차게 던져왔다.
외형은 초등학교 고학년인데 성인처럼 빠른 공이었다.
어딘가 미련을 벗어던진 것 같은 시원한 공이었다.
“예. 단순하게 생각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되는 거지.”
나와 진수는 한동안 말없이 공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 시간이 답답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도 분명히 존재하니까.
나와 진수는 걸어왔던 길을 뒤돌아보고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진수가 고등학생이 되어 고민이 있다고 상담해왔을 때.
진수가 중학교 때 내 소중한 머그컵을 깨 먹었을 때.
진수가 초등학교 백일장에서 상을 탔을 때.
항상 진수와 캐치볼을 했다.
우리는 공을 주고받을 때마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되었다.
진수는 공을 던져오며 그때 그 순간을 기억하냐고 물어왔다.
난 진수의 공을 받으며 그땐 그랬지라며 공을 돌려주었다.
말은 없었다.
말은 없어도 우리는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부자의 대화는 그걸로 충분했다.
네가 기억하는 걸 나도 기억하고 있다.
네가 소중히 하는 걸 나도 소중히 한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널 사랑한다.
그런 생각을 담아 공을 던졌다.
우린 서로가 던진 공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공을 주고받았다.
수진이와 희진이가 그만하고 돌아오라고 외칠 때까지 끝없이.
그걸로 충분했다.
진수의 기억 속에 있는 나와 지금의 나는 같다.
그러면 된 게 아닌가?
내 기억 속에 있는 진수와 여기에 있는 진수는 같다.
그걸로 충분하다.
선생님이 쓴 소설은 그걸로 끝이 났다.
“음, 뭔가 고민을 좀 하셨나 보네요?”
“어.”
솔직히 좀 신기했다.
나와 희진이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의외로 섬세한 사람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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