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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1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20) (271/301)

〈 271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20)

* * *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유성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아, 별똥별.”

희진이는 양손을 모아쥐고 뭔가 소원을 비는 듯한 자세를 취해 보였다.

무슨 소원을 그리 빌려고 하는 걸까?

난 그런 희진이를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엄마는 안 빌어? 아, 또 다!”

에덴을 운영하는 AI는 우리를 배려했는지 몇 번이고 유성을 보여줬다.

소원이 많은 욕심쟁이도 모든 소원을 다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제법 긴 시간이었다.

소원을 다 빌었는지 후련해 보이는 희진이가 눈을 떴다.

“엄마는 좀 로망이 없는 것 같아.”

“왜?”

“별똥별이 떨어지는데 소원을 안 빌잖아? 여기가 에덴이라서 그런 거야?”

듣기에 따라선 죽었으니 소원을 빌지 않는 거라고 들리는 건 착각이 아니겠지?

내 딸내미지만 정말 어디서 이런 게 튀어나왔는지….

뇌가 둥둥도 그렇고 말을 할 땐 좀 조심해서 하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데 고쳐지질 않는다.

선생님이 너무 오냐오냐해서 이 모양이 된 거 아닐까?

좀 복잡한 심경이다.

“소원을 빌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

“이미 다 이뤄졌으니까.”

가족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진수와 희진이가 결혼해서 가정을 갖고 아이를 낳는 모습을 보고 싶다.

선생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 외에도 참 많은 소원이 있었다.

하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소원은 내 인생의 마지막까지 선생님이 함께해주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이미 그 소원을 이뤄줬다.

그러니 더는 빌 소원이 없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선생님과 이 세계가 끝나는 날까지 서로 사랑하고 싶다는 거지만….

난 선생님이 쓴 서로소의 최신화를 다시 살펴봤다.

몸이 젊어져서 그런지 수진이를 보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낯설고도 익숙한 감각을 다시 맛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런 몸이라면 수진이가 내게 질리는 그 순간까지 영원히 사랑할 수 있겠지.

이 세상은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세상이다.

“생각해보면 엄마 소원은 다 선생님이 이뤄준 거지 저 별님이 이뤄준 건 아니거든.”

“그러네. 아빠는 늙어서도 몸이 좋았지….”

내 소원을 이뤄준 것은 저 밤하늘의 별이 아닌 날 향한 선생님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더는 소원을 빌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엄마는 아빠밖에 모르는 바보야.”

“부부는 일심동체라잖니?”

“…내가 졌어.”

희진이는 여전하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별을 보고 있으려니 얼굴이 조금 붉어진 선생님이 찾아왔다.

희진이는 선생님을 발견하자 스르륵 몸을 물렸다.

선생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미안.”

“됐어요.”

“저분들도 고민이 많나 봐.”

“고민이요?”

“어.”

선생님은 남편분과 나눈 이야기를 들려줬다.

남편분이 한 이야기는 어제 우리가 느꼈던 그 감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남편분도 우리랑 생각이 똑같았나 봐. 조금 늦게 결혼하셔서 신혼생활을 그리 오래 즐기지 못했다고 하더라.”

“아.”

그럼 분명 우리처럼 행복한 신혼생활을 하자며 여기저기 돌아다녔겠지.

그러다가 결국 우리가 느꼈던 그 감각을 느끼지 않았을까?

“신기하죠.”

“뭐가?”

“진수가 태어났을 때 우리 엄청 힘들었잖아요.”

“뭐, 익숙해지기 전까진 그랬지. 근데 희진이에 비하면 진수는 천사였어.”

“그렇긴 해요.”

희진이는 정말 악마의 아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예민한 아이였으니까.

“희진이가 태어났을 땐 행복했는데 생각해보니 인생 최고의 고비였어요.”

“…고생했어.”

“선생님도요.”

희진이가 몸이 펄펄 끓어서 응급실로 달려갔을 땐 정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선생님은 그런 날 위로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었지.

선생님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아마 패닉에 빠져 희진이의 몸에 큰일이 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5살이나 차이가 나는데도 참 싸우기도 잘 싸웠죠?”

“원래 애들이 크면서 크는 거라잖아.”

“희진이가 이상할 정도로 진수한테 시비를 자주 걸었잖아요.”

“아마 내가 진수를 편애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겠지. 근데 그게 왜?”

“생각해보면 진수랑 희진이를 키우면서 참 어렵고 힘들었던 일이 많았잖아요?”

“그렇지.”

“근데 막상 떨어지고 나니까 이렇게 막, 뭔가가 도려내진 것처럼 마음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어요.”

“…나도 그랬어.”

나와 선생님이 어제 느꼈던 그 감정.

그건 공허함이었다.

행복한 꿈에서 깬 것처럼 갑자기 찾아오는 외로움에 우린 도망치듯 글램핑장을 떠났다.

이곳이 현실 세계도 아니고 2회차 인생도 아니며 환생도 아니라는 사실을 눈앞에 들이민 것 같은 불쾌함이 느껴졌으니까.

그대로 글램핑장에 남아있으면 무언가가 뚝 하고 끊어질 것 같은 불안감이 우릴 덮쳤다.

아마 선생님도 그런 감각을 느꼈겠지.

수명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제 느꼈던 그 공허함.

그 감각이 전신을 지배하는 순간 이곳에서의 삶을 포기하게 되겠지.

아마 TV에서 에덴을 열심히 광고하는 이유가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변하고 사는 세상이 변해도 외로움은 언제나 가장 무서운 질병이니까.

“아이란 건 참… 신기하죠?”

“그러게.”

난 선생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저도 남들처럼 꿀이 떨어지는 신혼생활이 해보고 싶다고는 생각했는데….”

선생님만 있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떠오르는 것은 우리 옆에서 쫑알거리며 뛰어놀던 진수랑 희진이의 모습이었으니까.

“결혼은 계약도 아니고 아이들은 의무감도 아니었다는 거지.”

“아.”

“결혼은 약속이야. 서로만을 사랑하고 아껴주겠다는 약속. 아이들은 그 사랑의 결실이지 의무감이 아니었던 거고.”

“그런가 봐요.”

“그런 거야. 사랑의 결실을 잃어버렸으니 이렇게 가슴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고.”

“선생님은 시인했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네요.”

“알잖아? 대한민국 순문학은,”

“알아요.”

“알면 됐고.”

선생님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작게 웃었다.

“왜요?”

“아니, 그냥 네가 너무 귀여워서.”

“…바보.”

“그렇게 옛날에 했던 이야기도 기억해주는데 얼마나 귀여워. 역시 머리가 좋아서 그런가?”

딱히 머리가 좋아서 기억하는 건 아닌데….

그냥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와 했던 일들이 잊히지 않을 뿐인데.

“선생님도 머리가 좋아서 다 기억하시나 봐요?”

“만약 치매에 걸렸어도 너랑 나눈 이야기는 잊지 않았을걸?”

결국 부부는 일심동체구나.

그걸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

숙소로 돌아오니 진수와 희진이가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선 이번에도 에덴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엄마.”

“왜?”

“여기 불편한 거 많아?”

“아니, 왜?”

“그럼 질려서 그런가?”

“왜 그러는데?”

“이렇게 연일 방송이 나오는 거 보면 에덴에 오고자 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거겠지?”

아마… 그렇겠지.

나와 선생님이 어제 느꼈던 그 감각.

외로움에서 피어난 공허함.

그 감각이 몸 전체에 퍼져나가면 더는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게 될 테니까.

이미 죽음을 경험해본 사람들이니 포기하는 것도 손쉬울 테니까.

시대가 변했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기보단 1인 가구로 사는 게 행복하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룰 정도였으니까.

1인 가구는 편하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필요도 없으니 피로나 앙금이 쌓이지 않는다.

하지만 서서히 고독감에 빠져들어 간다.

젊어서는 몰라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고독감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다가온다.

아플 때 간호해줄 사람이 없는 그 서러움이 뼈에 사무친다.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이 에덴에서의 새로운 삶을 기다리진 않겠지.

“그러고 보니 준범 씨는 여기에 올까요?”

“준범이? 아, 아마 걔는 올걸?”

“그럴까요?”

“그 녀석은 혼자서도 잘 먹고 잘사는 좀 특출난 놈이니까.”

하긴 그런 분이긴 했지.

그래, 준범 씨 같은 사람도 있으니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

굳이 우리가 이 세계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만약 이 세상이 내일 끝난다고 할지라도… 선생님이 함께라면 별로 두렵지 않으니까.

“여기가 아쉬운 건 녀석들이 없기 때문인 것도 있으니까.”

선생님은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사색에 잠겼다.

오래전에 이별한 친구분들을 떠올리고 있는지 조금 아련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이런 세상이 기다릴 줄 알았다면 놈들도 몸 관리를 좀 하고 살았으려나.”

선생님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슬픔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나와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난 다음부턴 친구분들과 만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1년에 한번은 꼭 만나던 모임도 2년, 3년으로 늘어나서 언젠가부터 만나지 않게 될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그리워하고 슬퍼하는 것일까.

“진수랑 희진이는 저한테 맡기고 다녀오지 그랬어요?”

“내가 만나고 싶다고 해도 다들 가정이 있으니까. 결혼한다는 건 그런 거잖아.”

“그렇긴 하죠.”

결혼을 한다는 것은 그런 일이지.

자기 자신보다 어느새 가정을 더 생각하게 되니까.

“담배만 안 피웠어도 다들 좀 더 오래 살았을 텐데, 그게 아쉬워.”

그리 말한 선생님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들어가자.”

“네. 근데 자기 전에 샤워하세요.”

“…예, 마님.”

선생님은 그대로 샤워실로 들어갔고 난 침대에 앉아 선생님을 기다렸다.

친구라….

나도 오빠나 희진이처럼 좀 살가운 사람이었으면 친구들이 많이 생겼으려나.

오빠는 뭘 하고 있으려나.

그리 멍하니 생각하고 있으려니 샤워를 끝낸 선생님이 나타났다.

제대로 씻기는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순식간에 샤워를 끝냈다.

아직 5분밖에 안 지났는데….

선생님은 수건을 사용해 머리를 팍팍 털어내곤 헤어드라이어를 30초 정도만 사용해 머리를 대강 말렸다.

그 모습이 진짜 오빠와 닮아서 조금 그리운 기분이 됐다.

그럴 거면 헤어드라이어는 왜 쓰냐고 그랬었는데….

“왜 그래?”

“누가 좀 생각나서요.”

“음… 처남?”

“어…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네가 떠올릴만한 남자 중에서 친한 사람은 처남이 끝이잖아.”

틀린 말은 아닌데 기분이 오묘했다.

왠지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은 기분이다.

“칫.”

“아, 미안.”

사과받으니까 더 비참한 기분이야.

난 어색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이는 선생님을 침대로 밀쳐서 그 어깨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하하! 오랜만이네.”

선생님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마 한창 신혼일 때를 떠올리고 있는 것 같다.

“처남은 알아서 잘 살겠지.”

“그렇겠죠.”

“아쉽네. 아이들이 온건 좋은데….”

“선생님은 진짜 한결같네요.”

“사람이 휙휙 바뀌면 죽을 날이 가까운 거라잖아.”

“이미 죽었는데요?”

“그러니까 안 바뀐다는 거지.”

“휙휙 바뀌어도 된다는 뜻으로 한 말인데?”

나와 선생님은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편안하고 잠이 솔솔 오는 밤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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