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0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19)
* * *
선생님은 고기를 구우면서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감상이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진수는 입을 다물고 먼 산을 바라봤고 희진이는 나를 보며 히죽거렸다.
“이런 행복을 내게 전해준 수진이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역시 수진이와 만난 일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러브레터를 누군가가 빼앗아서 읽어주는 느낌이었다.
얼굴에 열이 올라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으려니 조금 얼굴이 달아오른 선생님이 고기를 가지고 왔다.
“다 익었어.”
“아빠, 얼굴이 왜 그래?”
“더워서.”
선생님은 숯불의 열기 때문이라고 둘러댔지만 분명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
이렇게 될 걸 알았으면서도 참….
사랑은 담아두기만 해선 전해지지 않는다.
아마 그걸 실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입으로 꺼내기엔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라도 글로는 전부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엄마.”
“왜?”
“울 남편도 아빠를 좀 닮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래?”
“응.”
선생님을 닮기는 힘들걸?
이 나이가 돼서도 날 몸도 마음도 사랑해주는 사람이니까.
내가 그토록 찾았던 나만 생각하고 나만 바라봐주는 사람이니까.
희진이는 내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었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입술을 삐죽였다.
그제와 오늘까지 합쳐서 바비큐만 4번째다.
물리고 지루할 만도 한데 더 맛있고 즐겁게 느껴지는 건 분명 착각이 아니겠지?
“자, 앙~”
“또 안에 뭐 넣었냐?”
“이번엔 안 넣었어.”
“네 엄마도 이렇게 말해 놓곤 또 집어넣었었지.”
“아, 진짜라니까? 속고만 살았어?”
“너한텐 항상 속고만 살았던 거 같은데?”
“아~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해!”
선생님은 투덜거리는 희진이가 귀찮았는지 희진이가 내민 쌈을 덥석 물었다.
“윽.”
“헤헤.”
“어쩜 하는 행동이 똑같냐?”
선생님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쌈을 꼭꼭 씹어 삼켰다.
다 구워진 고기를 옮겨주러 올 때 슬쩍 맡아진 향으로 보아 마늘을 잔뜩 먹은 것 같다.
유전자가 정말 무섭구나.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배운 건지 아니면 같은 피가 흘러서 그런 건지….
선생님은 아마 알면서도 당해 준거겠지.
은근히 희진이에게 무른 부분이 있으니까.
저렇게 장난을 쳐도 받아주니까 희진이가 아직도 이 모양인 건데.
“왜?”
“아냐.”
“또 이 화상이~ 라든가 이 못된 년이~ 라든가 생각하고 있지?”
“알면서 왜 그래?”
“아빠도 은근히 좋아하거든?”
이년은 선생님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렇게 소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좀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던 일가족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그, 헤밍웨이 선생님…?”
아무래도 선생님이 쓴 소설을 읽으신 모양이다.
“반갑습니다, K헤밍웨이입니다.”
“아!”
남편분은 마치 연예인이라도 만난 사람 같은 반응을 보였다.
선생님은 그게 기분 좋았는지 입꼬리가 씰룩이고 있다.
나잇값을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그게 묘하게 귀여워 보여서 큰일이다.
“이왕 이리된 거 같이 드시겠습니까?”
“아,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선생님은 내게 괜찮냐며 시선으로 물어왔다.
저렇게 좋아죽겠다는 표정을 짓는데 어떻게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
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남편분과 달리 아내분은 우리가 어색하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아주셨다.
난 아내분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내분도 나를 보며 조금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이셨다.
아마 내가 선생님에게 느끼고 있는 감정과 비슷하시겠지.
선생님은 기분이 얼마나 좋으신지 맥주까지 꺼내든 상태였다.
남편분과 건배를 외치며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이 썩 시원해 보였다.
“엄마.”
“왜?”
“아빠도 은근히 오지랖이 있지?”
‘은근히’가 아니지.
아,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서 머리가 아파져 온다.
“왜 그래?”
“네 아빠가 오지랖을 부려서 싸웠던 일이 떠올라서.”
“응?”
서로소에는 그 강사에 관한 이야기가 좀 많이 생략되어 있다.
그러니 이런 반응을 내비치는 거겠지.
“네 아빠랑 결혼하기 전에 처음으로 싸운 적이 있었거든.”
“아, 혹시 그 은혜 강사? 그거 픽션 아니었어?”
“진짜야. 이름이 으음…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무튼 선생님이 진짜, 하.”
선생님은 남편분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이쪽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이 원래는 오지랖이 좀 있는 사람이었거든. 아니, 원래 그 나이대의 사람들이 다 그랬다고 하더라.”
“그래?”
“아버님과 어머님이 공장을 하셔서 선생님이 혼자 집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거든? 그러니까….”
난 선생님이 들려줬던 이야기를 희진이에게 들려줬다.
희진이는 옆집의 아줌마가 아이들 맡아주고 간식을 준다는 이야기에 눈을 동그랗게 뜨곤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요샌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시대니 당연한 반응이겠지.
“그래서 아빠도 원래는 오지랖을 부리고 다녔다고?”
“어. 근데 삶이 힘들어지니까 삼간 거지.”
그러다가 나를 만나고 서서히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머리에 총이라도 맞았는지 갑자기 딴 여자한테 잘해주기 시작했지.
그때만 떠올리면 아직도 머리가 딱딱 아프다.
내가 용케 선생님을 용서해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 선생님이 첫 남자여서 그랬겠지.
그땐 선생님이랑 헤어지면 세상이 끝장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혹시라도 다른 사람과 연애 경험이 있었더라면 그대로 헤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정도로 선생님에게 크게 실망하기도 했고 마음도 아팠으니까.
그래도 그때 이후론 달라진 모습을 보였으니 헤어지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그랬다고?”
“어, 그랬었어.”
“그게 오지랖이 맞나? 맞긴 맞는 거 같긴 한데, 음….”
희진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껄껄거리는 선생님을 바라봤다.
진수도 조금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도 선생님이랑 결혼해서 다행이야.”
“우리가 태어나서?”
“아니, 너무 편해서.”
“이 여사,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엄마한테 이 여사가 뭐니?”
“엄마도 엄마의 엄마한테 안 그랬어?”
“오빠가 그랬었지, 난 안 했어.”
“근데 너무 편한 게 뭐야?”
서로소는 결국 글이다.
선생님이 내게 했던 모든 행동을 다 묘사할 수는 없었다.
서로소는 수필적 소설이지 일기는 아니었으니까.
“진수를 임신했을 때 선생님이 그렇게 지극정성이었는데.”
“어땠는데?”
세상 어디에 임신한 아내를 위해 매일같이 머리를 감겨주는 남편이 있을까.
세상 어디에 임신한 아내를 위해 매일같이 집안일을 다 해주는 남편이 있을까.
선생님은 본인이 작가라서 참 다행이라는 말을 하며 내가 민망할 정도로 배려해줬다.
진수를 태어난 후엔 매일같이 육아에 관한 자료를 모으며 호들갑이었지.
“우리 아파트에 살던 아주머니들이 선생님 뒷담을 참 많이 했었는데 말이야.”
“진짜?”
돈이 많다느니 도둑놈이니 소리를 참 많이 들었었지.
그것도 3년 정도 지나니 쏙 들어가 버렸다.
오히려 아주머니들이 우리 선생님 같은 남자랑 결혼을 해야 했다고 한탄을 늘어놓았었지.
“아빠가 엄마 만나서 새로 태어났다고 그랬는데 그 정도면 인정이네.”
그래도 이게 선생님의 본 모습일 거야.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조금 오지랖이 있고 가정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넓고 얇게 사귀는 것보다 좁고 깊게 사귀는 사람.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다만 조금 길을 잃고 헤매다가 나를 만났을 뿐인 거고.
“역시 대인기 작가님은 표현도 남다르네….”
“너희가 누구 덕분에 이렇게 컸는지 알아? 선생님의 소설은 세 번째고 주식은 두 번째에 불과해.”
“그게 뭐야?”
“아.”
이런 세대 차이.
선생님이라면 알아듣고 받아줬을 텐데.
“아빠도 은근히 능력자라니까? 소설도 나름 잘 쓰고 주식도 잘하고.”
“너희 아빤 못하는 거 찾기가 더 어려울걸?”
은근히 뭘 하든 금방 익히는 요령이 좋은 사람이다.
본인 말로는 다재무능이라고 했었는데 솔직히 좀 재수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을 정도다.
“왜 나는 아빠의 재능이 아닌 엄마의 재능을 타고나서… 아! 왜 때려!”
나도 주위에서 천재 소리 듣고 자랐거든?
“근데 왜 다재무능이야?”
“선생님 말로는 뭘 하든 정상이 될 수 없어서 그렇다더라.”
“으음….”
희진이는 뭔가 감을 못 잡겠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요령이 있어서 남들만큼은 할 수 있는데 그 이상은 못 한다는 뜻이야.”
“아~ 그러니까 빵점에서 80점까진 금방 찍어도 100점은 힘들다는 거구나?”
“그래, 그거.”
“그래도 좀 부럽네. 오빠는 아빠를 닮아서 그런… 아, 진짜! 그만 때려!”
이젠 엄마가 왜 그리 나와 오빠에게 잔소리했는지 알 것 같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더니….
***
술이 들어간 선생님은 평소보다 조금 더 말이 많아진다.
선생님은 가족 동반으로 글램핑을 왔다는 사실도 잊었는지 남편분과 아직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무래도 나이가 엇비슷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했던 거겠지….
오늘은 선생님을 좀 자유롭게 해주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가 야외벤치에 앉아있으려니 희진이가 다가왔다.
“아빠는 아직도 그러고 있어?”
팬을 만난 사람은 원래 그런 법이니까.
오늘 하루 정도는 놔둘 생각이다.
난 하늘에 떠오르기 시작한 별을 멍하니 바라봤다.
“여긴 별이 예쁘네.”
“아무래도 밤하늘이 잘 보이도록 조절하나 봐.”
“완전 현실적인 것보다 이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네.”
우린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밤하늘엔 은하수처럼 별이 반짝여서 너무나 아름다웠다.
마치 선생님과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던 그때 그 하늘처럼.
“엄마.”
“왜?”
“엄마도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소원 빌고 했어?”
“했지.”
“그래?”
“엄마도 여자야.”
“누가 남자래?”
“이 입이 문제지.”
희진이의 툭 튀어나온 입술을 손으로 붙잡으니 희진이가 “웁웁!” 거리면서 난동을 부렸다.
그 입술을 놓아주고 희진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엄마?”
“넌 어렸을 때 몸이 많이 약했거든.”
진수는 뭐든 잘 먹고 튼튼했다.
그래서 아무런 걱정도 없이 키웠건만 희진이는 몸이 많이 약했다.
아토피 증상도 있었고 가려먹는 음식도 많았으며 예민해서 잠도 자주 깨는 아이였다.
그래서 희진이만 보면 선생님의 표정이 어두워졌었다.
어쩌면 희진이가 오래 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지….
“네가 5살이 됐을 때 글램핑장에 찾아왔었는데 기억나?”
“그게 기억나면 천재지.”
“그래, 넌 바보니까.”
“아, 이 씨!”
“별이 엄청 아름다운 밤이었어.”
나와 선생님은 희진이를 건강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밤하늘의 별에 기도했었다.
선생님은 반쯤 울먹이기까지 했었지.
“선생님은 우리 희진이 대신 아파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었어.”
“아빠가?”
“응.”
심장 빼고 다른 장기가 필요하면 이식까지 해준다고 했었지.
나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고 심장만큼은 안 된다고 그랬었는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등을 때렸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럼 내가 5살 지나고서는 어떤 소원을 빌었어?”
“선생님이 오래 살게 해달라고.”
“아….”
내가 바라는 건 선생님이 마지막까지 함께해주는 것뿐이었다.
선생님은 끝끝내 약속을 지켰다.
그러니 오늘 밤 정도는 용서해줄게요, 선생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