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17)
* * *
글램핑에서 돌아온 선생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미안해, 수진아.”
“뭐가요?”
“그냥, 여러 가지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글램핑장을 찾아갈 때만 해도 즐거웠던 우리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애써 무시하고 있던 현실을 맞이한 기분이었다.
“우리… 진수랑 희진이 부를까요?”
“응?”
“불러봐요.”
“…그럴까?”
“네.”
우린 신혼을 1년도 보내지 못한 부부다.
선생님의 나이가 있어 일찍 아이를 낳아야 했으니까.
선생님은 그걸 줄곧 신경 쓰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지금까지 참아왔던 거다.
이젠 인정해야만 한다.
나와 선생님은 서로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이 외로움은 우리 둘만으론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우린 진수와 희진이를 맞이했다.
“우리 왔어!”
“잘 지내셨죠?”
진수와 희진이는 우리의 나이를 배려했는지 초등학교 5~6학년 수준의 외모를 하고 있었다.
저쪽 세상에선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로 불리는 나이인데도 말이다.
“그래, 어서 와라.”
“어서 오렴.”
진수와 희진이는 외형이 바뀌어도 한결같았다.
진수는 뭔가 울먹거리는 느낌이었고 희진이는 그런 제 오빠를 놀리고 있다.
진수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울컥해서 희진이에게 잔소리를 시작했다.
희진이는 제 오빠를 피해 선생님의 등에 숨었다.
선생님은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이미 손주까지 본 녀석들이 어쩜 이리도 한결같을까….
하지만 그 한결같음이 너무나 반가웠다.
나와 선생님 사이에 있던 어색한 공기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너흰 어쩜 그리 변함이 없니?”
“엄마 딸내미니까?”
“네 엄마는 30살 넘은 다음부턴 처남이랑 안 싸웠어.”
“아, 또 엄마 편만 들고!”
희진이는 투덜거리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꼭 제집처럼 굉장히 자유분방한 모습이었다.
진수는 희진이랑 다르게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복잡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가서 앉아.”
“예, 아버지.”
선생님이 아이들을 그리워한 만큼 진수도 우리를 그리워해 준거겠지.
진수는 선생님과 많이 닮았으니까.
“수진아, 너도 앉아있어.”
“네.”
선생님은 부엌으로 향했고 진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꿈을 꾸는 느낌이네요.”
진수는 이 세상이 낯선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세상 참 좋아졌어, 그지 엄마?”
“그러게.”
그에 반해 희진이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자.”
선생님은 그 짧은 사이에 사과와 딸기, 참외를 접시에 담아왔다.
희진이는 즐겁다는 듯이 콧노래를 부르며 딸기를 입에 넣었다.
“맛도 다 나고 좋네.”
“화장실도 안 가고 살도 안 쪄.”
“여기 완전 천국이잖아?”
희진이는 그리 말하며 웃었지만 우린 좀 미묘한 표정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에덴이라는 이름답게 여러 가지로 행복한 곳이지만 부족한 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무슨 일 있으세요?”
진수는 나와 선생님의 표정이 애매한 것을 보곤 뭔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우리 눈치를 살폈다.
이건 말해야겠지….
“음, 어제 글램핑장을 다녀왔는데 말이야.”
선생님은 글램핑장에서 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추억이 깃든 곳에서 놀아보자는 생각에 신이 나서 짐을 챙겨 떠났던 일.
글램핑장에 도착해서 점심으로 바비큐를 해 먹고 식곤증이 와서 같이 잠을 잤던 일.
저녁을 먹고 밤하늘의 별자리를 올려다보다가 샤워를 마치고 다시 잤던 일.
아침을 먹은 다음의 이야기 등등.
우리가 밤새 몸을 섞었던 이야기를 제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재밌게 잘 놀았네.”
희진이는 그리 말하며 포크로 사과를 푹 찍어 입에 넣었다.
하지만 진수는 선생님이 한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았는지 조금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뭔가 예전 같지 않더구나. 분명 예전과 그리 다를 바가 없는 글램핑이었는데.”
아마 너희가 없어서 그런 거겠지.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작게 웃었다.
그러자 진수는 포크를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가죠.”
“응?”
“글램핑장.”
진수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또 글램핑이야?”
“시끄러워, 준비해.”
“뉘예뉘예~”
희진이는 투덜거리면서도 진수를 따라 글램핑 준비를 시작했다.
나와 선생님은 그걸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은 상당히 복잡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글램핑장은 더는 즐길 수 없을 것 같아서 다시는 가지 않으리라 다짐한 게 어제였다.
그런데 하루 만에 다시 떠나게 되니 참 복잡한 눈치였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글램핑이 질려버린 건지 진수와 희진이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는지.
아마 오늘 글램핑장으로 떠나보면 뭔가 알게 되겠지.
우린 어제 풀어놓았던 짐을 다시 챙기고 어제 향했던 그곳으로 다시 향하기로 했다.
운전대엔 선생님이 조수석엔 내가 앉고 아이들은 뒷좌석에 앉았다.
우리가 평소 글램핑장을 가던 그때의 그 모습이었다.
글램핑장에 도착하자 진수와 희진이는 그립다는 표정이 되었다.
“정말 변한 게 없넹~ 이런 건 좋다.”
“그러게.”
우린 아이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네요.”
“어, 이게 별로 인기가 없는 취미라더라.”
“오빠는 에덴 관련 영상 안 보는구나?”
“….”
진수가 에덴 관련 영상을 보지 않는 건 우리가 생각나서 그런 거겠지.
그러니 그렇게 복잡한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는데….
“어서 오세요.”
글램핑장을 관리하는 AI는 그대로였다.
AI는 우리를 기억할 법도 한데 딱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AI의 안내에 따라 우리가 머물 곳이 정해졌다.
우린 가져온 짐을 풀었다.
“점심은 바비큐 해줘!”
희진이는 움직일 생각이 없는지 소파에 드러누워 바비큐를 해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나와 선생님은 조금 복잡한 기분이었다.
또 바비큐?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희진이의 그 떼쓰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결국 바비큐를 하겠다며 방을 나섰다.
“제가 할게요.”
“됐다, 너는 희진이랑 놀고 있거라.”
진수는 본인이 바비큐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선생님은 진수에게 쉬고 있으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난 선생님에게 다가가 바비큐 준비를 도왔다.
“뭔가 이상하네요.”
“응?”
“어제랑 똑같은데… 뭔가 즐거운 것 같아서요.”
“그러게.”
초등학교 5~6학년 외형을 한 아이가 2명 늘었다.
그 실상은 손주도 본 할아버지, 할머니고.
그런데도 즐겁다.
마치 진수가 중학교에 올라가기 전에 갔던 글램핑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그리움이 있었다.
“한동안은 다시는 안 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선생님은 꼬치에 고기와 채소를 끼우며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게요.”
그저 아이들이 따라온 것만으로 글램핑은 이상할 정도로 재밌게 느껴졌다.
***
“제가 할게요.”
바비큐 준비를 마치고 선생님이 고기를 굽고 있자 진수가 초조한 표정이 되었다.
선생님이 바비큐를 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죄송스러운 마음이 드는 모양이었다.
“오빠. 우린 지금 초등학생이야. 그러니까 여기 와서 앉아.”
“그래, 가서 앉아라.”
“…예.”
진수는 복잡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엄마도 이렇게 쉬고 있는데 오빠도 편하게 있어.”
“이 화상은 왜 나를 걸고넘어져?”
“아 왜~! 엄마도 쉬는 거 맞잖아!”
글램핑장에 오면 바비큐는 선생님 담당이었다.
그게 뭔가 남자답다고 좋아하셨지.
“왜 애들처럼 싸우고 있어?”
선생님은 웃으면서 우리 앞에 바비큐를 내려놓았다.
“잘 먹겠습니다!”
희진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젓가락을 바삐 놀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아.
이게 희진이 나름대로 우리를 배려하는 일이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진수도 선생님의 모습에서 뭔가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딱딱한 표정을 풀고 바비큐를 먹기 시작했다.
“엄마, 아~”
희진이가 내게 쌈을 내밀어온다.
난 그 모습을 빤히 지켜봤다.
희진이는 손 떨어진다며 얼른 받아먹으라고 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
희진이는 입을 삐죽이곤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에게 쌈을 내밀었다.
선생님은 행복한 표정으로 쌈을 씹었다가 그대로 벌레를 씹은 표정이 되어 희진이를 노려봤다.
“아하하하하하!”
희진이는 배를 붙잡고 껄껄거리기 시작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이 화상.
선생님의 표정이 시시각각 썩어가기 시작했다.
인상을 찡그린 채 희진이를 노려보던 그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마치 희진이가 널 닮아서 이 모양이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난 잘 모르겠다는 듯한 느낌으로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이건 눈치 없이 날름 받아먹은 선생님의 잘못이니까.
선생님은 한숨을 쉬고 머리를 뒤통수를 긁적이더니 다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수도 그 모습을 봤는지 얌전히 바비큐를 먹고 있을 뿐이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에게 고개를 내밀었다.
“자, 앙~ 하세요.”
“쌈이었으면 안 먹었을 거야.”
선생님은 내가 내민 바비큐를 먹으며 그런 소리를 했다.
난 장난기가 발동해 선생님의 뒤로 돌아갔다.
선생님의 등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그 귀에 작게 속삭였다.
“나는 밤마다 그 씁쓸하고 비린 걸 먹어주는데?”
“…그 엄마에 그 딸이야.”
선생님은 할 말이 없어졌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런 선생님의 옆구리를 간지럽히며 선생님을 괴롭혔다.
진수와 희진이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뭔가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120살, 100살 먹은 부모님이 젊은 모습으로 신혼처럼 장난을 치는 모습이 보기 괴로운 거겠지.
그래도 싫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뭔가 그리운 것을 발견한 듯한 표정이었으니까.
***
식사를 끝낸 우린 뒷정리를 하고 수박을 먹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이상하게 행복한 기분이었다.
수박을 먹던 진수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
“왜?”
“오랜만에 캐치볼이나 할까요?”
“캐치볼? 좋지.”
진수는 언제 챙겼는지 글러브와 공을 챙겨온 상태였다.
선생님은 여기에 사람이 많이 없어서 다행이란 이야기를 하며 진수에게 공을 던졌다.
나와 희진이는 그늘에서 수박을 먹으며 둘이 멍하니 바라봤다.
“엄마.”
“왜?”
“많이 외로웠어?”
희진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리 물어왔다.
“지금까진 괜찮았어.”
“그래?”
“그런데 여기에 오니까 좀….”
“그렇구나….”
휘익 퍽.
“좋아!”
선생님의 표정이 환하다.
어제와 같은 장소에 있는데도 선생님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종종 찾아올게.”
“그러렴.”
풀벌레가 우는 따사로운 가을의 글램핑장.
분명 어제만 해도 지루하고 따분한 공간이 너무나 즐겁게 느껴지는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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