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4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13)
* * *
선생님은 결국 선생님이었다.
다음날에도 선생님은 여전히 서로소를 쓰고 있다.
“어차피 남들도 볼 거라고 생각해서 쓴 거니까.”
그렇다는 게 선생님의 설명이었다.
예상했던 바다.
선생님은 입을 다물고 화면을 노려보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완전히 집중한 상태라 대략 1시간 정도는 저러고 있겠지.
턱을 괸 채 선생님을 빤히 바라봤다.
선생님의 외견은 18살의 고등학생이다.
그런데도 저 인상을 쓴 채 무언가에 집중한 모습은 38살의 그때 그 모습이 떠올랐다.
난 그런 선생님을 멍하니 바라봤다.
여기서도 소설을 쓰자는 선생님의 말에 따라 소설을 쓰고자 했다.
하지만 난 결국 소설을 쓸 수 없었다.
더는 소설을 쓰는 것에서 재미를 찾을 수 없었으니까.
오빠를 골려주려고 썼던 소설이 뜻밖에 성공을 거뒀다.
그 후로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 소설을 썼다.
시장을 분석하고 타겟을 정하고 익숙한 것에 생소한 것을 더한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내가 쓴 소설을 특별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난 그런 소설에 가끔 내 이야기를 적어넣으며 장난을 쳤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내게 있어 소설은 돈을 버는 수단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다가 선생님을 만났다.
돈이 되지 못하는 소설을 쓰는 사람.
자신이란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서 글을 쓰는 사람.
오직 나만을 위해 소설을 써주는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했다.
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소설을 쓰는 행위가 즐거워진 게 아니었다.
선생님과 함께 앉아 소설을 쓰는 그 시간과 분위기가 좋았던 거다.
그래서 결국 소설을 쓰는 건 포기했다.
그저 선생님이 나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
대략 1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선생님은 기지개를 켜며 나를 바라봤다.
방금까지 인상을 쓰고 있던 미간이 펴지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다.
뭔가 평소보다 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보아 기분 좋은 댓글이 달렸거나 오늘 쓴 내용이 만족스러웠다는 거겠지.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만은 알고 있다.
“수진아.”
“왜요?”
“우리 캠핑이라도 갈까?”
“캠핑이요?”
“그래. 글램핑으로.”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곤 노트북 화면을 보여줬다.
이런 세계에도 아직 캠핑이나 글램핑이 남아있는 것일까?
아, 어쩌면 이런 세상이기에 남아있는지도 모르겠구나….
2040~2050년을 기준으로 잡힌 세계니까.
세상이 너무 빠른 속도로 변화했다.
지금처럼 오감이 현실과 차이가 없는 VR이 아니라고 해도 이때도 VR이 보급되기 시작했지.
젊은 사람들은 쉽게 적응했지만 우린 아니었다.
우리만 그렇진 않겠지.
아마 여기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도 우리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집에서도 편하게 VR로 여행을 하던 세대와 우리 세대는 조금 다르다.
약간 불편하더라도 굳이 캠핑하며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을 테지.
바다와는 다르게 의외로 여긴 인기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요.”
“그럼 준비하자고.”
선생님은 방금 떠올린 즉흥적인 계획이면서도 착착 준비를 마쳤다.
내가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는 동안 벌써 준비를 마치는 모습이 굉장히 믿음직스러웠다.
가끔 이런 식으로 보여주는 남자다움이 묘하게 매력적이야.
“그럼 가자.”
“네.”
이 세계는 VR 세계다.
현실과 차이가 없으면서도 묘하게 차이가 나는 곳이지.
그래서 현실에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이곳에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편의와 즐거움만을 챙길 수 있는 것이지.
예약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수용할 수 있도록 수정될 것이며 애초에 그리 사람이 몰리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 공간도 있다.
우리가 가진 개인 서버와 이곳의 공용서버로 운영되는 모양이다.
텐트임에도 완전 방음이 달려있다.
역시 텐트에서 그렇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걸까?
“완전 방음이라….”
선생님은 뭔가 아득한 옛날을 떠올리는 사람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선생님과 처음으로 한 캠핑이 떠올랐다.
선생님과 막 결혼해서 신혼생활을 즐길 때 찾아갔던 캠핑.
초보라서 아무것도 모르던 우린 일단 텐트를 사고 캠핑을 떠났다.
글램핑이라는 편한 방식이 있는데도 텐트를 친다는 그 행위에 묘한 매력을 느꼈으니까.
생각해보면 캠프장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텐트를 치는 행위가 가장 즐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생님이 준비한 냉방기로 몸을 식히고 바비큐를 해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즐거웠지.
선생님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즐거웠다.
“선생님은 정말 한결같네요.”
“사람이 쉽게 변하면 죽는다더라.”
“이미 죽었거든요?”
“그러게?”
우린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강원도로 향했다.
***
“이젠 강원도도 나름 마음에 들죠?”
“그냥저냥이지.”
도대체 군대란 뭘까?
120살을 산 할아버지가 아직도 군대라면 치를 떠는 모습을 보니 그저 두려울 따름이다.
진수와 희진이가 태어난 후론 종종 글램핑을 오곤 했다.
강원도가 비교적 선선하고 캠프장도 두루 갖춰져 있어 자주 찾아왔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강원도에 대해 좋은 감정은 없는 것 같았다.
“라떼는 말이야… 군대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부조리가 심했다고.”
“언제적 라떼에요?”
“아니, 진짜 하….”
선생님은 도대체 군대에서 뭘 겪은 걸까?
굳이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저 엄청 괴롭고 힘든 곳이었다는 것만 알고 있다.
언제였더라?
선생님이 환갑을 지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 적이 있다.
가위라도 눌렸냐는 내 질문에 선생님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군대에 재입대하는 꿈을 꿨어.’
선생님의 답변은 심플했다.
굳이 군대에 대해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딱 그 정도만 말하곤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그 후론 잠이 안 오는지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었지.
선생님이 군대를 다녔을 때만 해도 엄청 부조리한 일이 많았다고 했으니 아마 엄청 힘들었겠지.
“여긴 그래도 군대에 대한 꿈은 꾸지 않아서 다행이야.”
“선생님은 도대체 군대 꿈을 얼마나 꾸는 거예요?”
“많이는 아니고 몇 년에 한 번 정도는 꾸는데 진짜 와, 이렇게 막… 어후.”
선생님은 떠올리기도 싫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도착했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어느새 우린 강원도의 글램핑장에 도착했다.
“응?”
“왜?”
“생각했던 거랑은 조금 달라서요.”
“뭐가 다른데?”
“아니, 그….”
글램핑장은 우리가 다니던 그 글램핑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텐트가 다 쳐져 있고 전기도 통하며 화장실도 있어서 불편한 점은 요만큼도 없다.
콘도랑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 느낌의 공간.
이 정도면 꽤 많은 사람이 찾아올 거라 생각했는데 사람이 없다.
정말 요만큼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어째서?
다들 개인 서버로 접속한 상태인 걸까?
“우리가 너무 활동적인 거야.”
“네?”
선생님은 트렁크를 열어 무거운 짐을 들고선 척척 걸어 나갔다.
난 서둘러 짐을 챙겨 선생님을 따라 걸었다.
주차장에 차가 없었던 것처럼 이곳은 정말 텅 비어있었다.
“어서 오세요.”
관리하는 사람도 AI다.
여긴 우리가 전세를 낸 상황이었다.
우린 AI의 안내에 따라 한 텐트에 자리를 잡았다.
“다들 살 만큼 살다가 온 사람들이니까 말이야.”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텐트에 갖춰진 의자에 앉았다.
“뭐든지 할 만큼 했겠지.”
선생님의 말대로였다.
아무리 제2의 인생이니 환생이니 소리를 해도 전생의 기억이 그대로 이어진다.
그러니 색다른 맛이 전혀 없는 이런 곳은 오히려 사람들이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요즘은 이런 게 유행이라네.”
선생님이 보여준 휴대폰 화면엔 게임 방송이라는 제목이 달려있었다.
아무래도 VR로 누군가 게임을 즐기는 것을 실시간으로 업로드하는 모양이었다.
그건 이미 게임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의심스러운 광경이었다.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너무나 현실적인 광경에서 혈투를 벌이는 장면.
너무나 리얼해서 현실에서 일어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묵직했다.
영상이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 건 사람들이 들고 있는 검을 본 다음부터였다.
게임은 게임인지 판타지 소설에 흔히 나오는 오러 같은 이펙트가 있었다.
우린 글램핑장에 왔으면서도 의자를 붙여 앉아 그 영상을 멍하니 구경했다.
“몸이 늙어가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느라 바쁠 거야.”
몸이 늙으면 정신도 마모된다.
시대가 우릴 두고 떠난다.
그것에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그저 외면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게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면서.
새로운 자극에 거부감을 느끼고 달라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게 살다가 새로운 몸을 얻게 됐다.
예전과 달리 넘치는 힘이 생겨났으니 새로운 무언가에 적응을 해보려 한다.
그렇게 즐기다 보니 더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이다.
“와….”
“오.”
우리가 쓰던 판타지 소설처럼 땅을 박차고 5m를 뛰어올라 수십의 몬스터를 일격에 썰어버린다.
이런 걸 실제로 겪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런 자극적인 게 넘쳐나는 세상이다.
수영이니 글램핑이니 하는 것들이 너무나 지루하게 느껴지겠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린 좀 나중에 천천히 하자.”
“그래요.”
우리도 나름 이런 게임 종류를 즐겼다.
나이를 먹어가며 그런 것들에 보수적으로 되었을 뿐이다.
지금 이 게임들을 접하면 아마 정신없이 빠져들겠지.
선생님은 그게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아마 전생에서 못다 한 일들을 일단 다 해보자는 생각이겠지.
“음, 그럼 준비할까?”
“네.”
우린 휴대폰을 치우고 점심 준비를 시작했다.
점심은 당연히 글램핑의 묘미인 바비큐다.
우린 고기와 야채를 꼬챙이에 순서대로 꼽은 다음 바비큐 그릴에 꼬치를 얹었다.
치이이익.
바비큐가 익어가는 소리가 주변으로 퍼져간다.
“좋네.”
“그러게요.”
선생님의 휴대폰으로 본 그 광경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아마 직접 즐기기 시작하면 우린 정신없이 빠져들겠지.
하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아.
이미 9월인데도 울고 있는 풀벌레와 매미의 소리가 들려오는 글램핑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란히 앉아 바비큐를 구워 먹는다.
이 정도면 충분해.
“자, 다 익었다.”
선생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다 익은 고기를 내 그릇에 먼저 덜어준다.
그 자상함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선생님.”
“왜?”
“선생님도 사실 아까 그 게임에 관심 있죠?”
“있기야 하지.”
선생님도 게임을 좋아했으니까.
“그래도 지금은 필요 없어.”
나와 함께 즐기고자 했던 신혼생활.
선생님은 그 신혼생활을 조금 더 즐기고 싶다고 했다.
“사랑해요, 선생님.”
“나도.”
우린 뜨거운 바비큐를 호호 불면서 서로의 입에 넣어주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삶을 살자고 했으면서 우린 여전히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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