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12)
* * *
화장실로 도망쳤던 선생님이 돌아왔다.
세수를 몇 번이나 했는지 머리카락과 상의가 다 젖은 상태였다.
분명 얼굴의 열을 식히겠다고 그렇게 한 거겠지.
그 행동이 너무 귀여워서 더 골려주고 싶어졌다.
“왜 그렇게 부끄러워해요? 어차피 누가 보라고 쓴 소설 아닌가?”
“….”
선생님은 한숨과 함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딴 곳을 바라보며 얼굴을 긁적였다.
“볼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 하지만… 일단 네가 볼 거라고 생각해서 쓴 거니까.”
아, 그러니까 입으로는 털어놓을 수 없는 고백을 했다 이건가요?
귀여우셔라.
“저거 쓸 때만 해도 막 이렇게 어? 막, 넘쳐흘렀다고.”
선생님은 얼마나 당황했는지 뭔가 말이 안 되면서도 되는 미묘한 말을 시작했다.
얼굴은 식었지만, 아직도 곤란한 느낌이었다.
“지금 무슨 기분이에요?”
“…쯧.”
선생님은 내가 놀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떤 기분인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선생님이 쓰고 있는 서로소의 외전은 나와 다시 만나 너무나 행복하다는 이야기로 다시 시작했다.
좀 과한 내용이 적혀있었지만, 요점만 정리하면 다시 만난 아내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다 해주고 싶다로 정리가 가능하다.
애초에 내가 읽을 것을 고려해서 말로 할 수 없는 고백을 쓴 것이지.
선생님 나름의 러브레터다.
누군가가 읽을 거라곤 생각했다.
선생님은 그것도 나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거다.
선생님이 서로소를 쓰는 이유도 남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잘 산다고 약간 과시하고 싶은 음습한 욕구를 드러내는 행동이니까.
그런데 이건 아닌 거다.
지금 상황으로 따지자면 전 국민이 볼 수 있는 방송에서 선생님의 러브레터가 공개된 거나 마찬가지다.
내가 선생님이었으면 어떨까?
…난 화장실에서 못 나온다.
얼굴을 식히고 여기에 돌아온 것만으로도 선생님이 대단하다고 생각될 지경이다.
“그래도 다들 로맨틱하다잖아요?”
“….”
선생님은 TV에서 그런 방송을 봤다는 사실 자체를 없던 일로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선생님은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쉬며 눈을 질끈 감을 뿐이었다.
위험해.
진짜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다.
어째서?
18살 남고생이 어떤 존잰가?
징그럽고 성욕만 앞서서 난리를 치는 질풍노도의 시기잖아?
나도 겪어서 안다.
얼굴도 모르는 생판 남이 갑자기 좋다고 고백을 해온다.
왜? 무서워.
그래서 거절한다.
상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일단 사귀고 본다는 그 마인드를 이해할 수 없으니까.
상대방은 차이고 터벅터벅 떠나간다.
그리곤 별로 좋지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떠올리니 점점 불쾌한 기분이었다.
이미 상당히 시간이 지났음에도 추억이 되지 않은 무언가로 남아있는 기억.
난 이 나이대의 남자가 싫다는 것을 떠나 좀 꺼림칙하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귀여워서 미치겠다.
얼굴이 막 엄청 귀엽거나 그런 건 아니다.
18살 남고생이 귀여운 게 더 이상하니까.
그런데 귀엽다.
아무튼 귀여워.
선생님이 연애 초기에 날 그렇게 귀여워하면서 장난을 치던 그 기분을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그러니 좀 아쉽다.
이 에덴이라는 곳을 홍보하는 저 영상에서 선생님의 소설을 주기적으로 다뤄줬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이런 상황을 겪고도 결코 펜을 꺾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 펜을 꺾을 정도였으면 우리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그런 짓을 하진 않았을 테니까.
선생님에게 있어 소설은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 아니니까.
편결 작품은 몰라도 서로소만큼은 결코 아니니까.
모든 작가는 아닐 테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소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SNS에 자신의 이야기를 올리는 것의 연장이지.
그러니 선생님은 오늘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글을 쓸 거다.
그리고 그 소설이 계속 방송된다면?
선생님은 매번 오늘 같은 매력적인 표정을 보여주겠지.
화나고 짜증 나고 부끄럽고 그러면서도 묘하게 만족하고.
“야.”
“왜요?”
“너 이 짜식아, 하.”
선생님은 내 표정에서 뭔가를 읽었는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으으… 정말 귀여워.
뭔가 머리를 쓰다듬고 싶어지는 기분이었다.
***
선생님은 집으로 돌아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아는 사람처럼 좀처럼 집으로 가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왕 나왔으니 데이트 좀 하자고.”
데이트하자고 하면서도 어딘가 꺼림칙한 표정이 많은 것을 알려준다.
함께 살아온 세월만 언 80년.
이젠 그 작은 동작만으로도 선생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강 알 수 있다.
“이거 괜찮네.”
마음에도 없는 말이다.
“음.”
이건 제법 고민해볼 만한 문제다.
“….”
이건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말 한결같은 사람이지.
나와 선생님이 와있는 곳은 성인용품점이다.
2040~2050년 배경인데 왜 아직 이런 곳이 남아있는지 궁금한 가게.
선생님은 왜 아직도 이런 게 남아있냐는 말을 하며 차를 세웠다.
분명 호기심이 8할 정도는 되는 느낌이었는데 가게에 들어오니 눈이 돌아갔다.
콧김이 묘하게 뜨거워서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 것 같다.
선생님이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물품은 러브젤이다.
분명 내가 해줬던 파이즈리가 상당히 만족스러웠던 거겠지.
선생님의 고민은 국내산과 수입산이었다.
분명 어떤 게 더 좋았었는지 머릿속으로 비교하고 있는 거겠지.
선생님은 한참을 고민하다고 좀 비싼 수입산을 골랐다.
국내산은 조금 끈적끈적하고 수입산은 미끌미끌했다.
선생님은 그 미끌미끌한 감촉이 더 좋은 것 같다.
난 선생님을 빤히 바라보았다.
“크흠.”
선생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러브젤이나 고르는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헛기침을 했다.
변한 듯 변하지 않는 이 모습이 참 선생님답다.
“으음.”
선생님은 내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이리저리 시선을 피했다.
선생님은 은근슬쩍 내게 파이즈리를 해주지 않으련? 하고 물어오는 거다.
이런 귀찮은 사람.
처음 관계를 가진 순간부터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변태가 아닐까?
여기에 와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내 거기에 삽입하는 일이었으니까.
용케 죽는 그 순간까지 그 음습함을 참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린 성인용품 매장을 들어와서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다른 사람들이 눈에 띄진 않았다.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저 사람도 AI다.
아, 그런가.
여기에 사람이 있으면 오히려 더 무섭다.
이곳 에덴에 있는 사람은 9할 이상이 수명이 다해 도착한 사람들이니까.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 성인용품점에 들어서 데이트를 하는 모습은 상상도 못 하겠다.
우리가 정말 이상한 상황이구나….
“음.”
선생님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코스프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얼씨구?
이번엔 고양이 코스프레를 시키고 싶은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애널플래그에 관심이 좀 많으셨지.
진~짜 한결같은 사람이네.
보통은 이런 모습을 보이면 사랑이 식어야 하는데 또 그렇지도 않은 내가 신기하다.
선생님이 가끔 그러는 것처럼 나도 사실은 즐기고 있는 걸까?
근데 애널플래그라….
난 주변을 둘러보다가 좀 특이한 물건을 발견했다.
팬티처럼 생긴 물건에 남성기가 붙어있는 물건이었다.
아마 이걸 페니스 밴드라고 부른다지?
분명 그렇고 그런 취향의 여성들이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다.
참 신기한 물건들이 많단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선생님이 기겁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안았다.
“가, 가자!”
선생님은 식은땀을 흘리며 주변을 힐끔거리며 날 계산대로 끌고 갔다.
뭔가 굉장히 초조해 보인다.
왜 이러지?
전화나 문자가 온 것도 아니고 주변에 사람이 들어온 것도 아니다.
설마… 내가 페니스 밴드로 엄한 짓이라도 할까 봐 이러는 걸까?
“선생님.”
“응?”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애널 섹스에 관심이 많으셨죠?”
“예?”
선생님은 그 자리에 딱 멈춰서서 날 멍하니 바라봤다.
‘설마 너 그런 취미가 생겼니?’
‘내가 좀 막 나가긴 했었는데 그렇다고 그건 좀.’
‘내가 게이도 아니고.’
‘아니 근데 내가 평소에 저지른 짓이 있는데 음….’
‘그래도 그건 아니야!’
약 2초 정도 날 멍하니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속 심정은 대충 이런 느낌이 아닐까?
“살까요?”
“아, 아니!”
선생님은 기겁하곤 절대 살 필요가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애초에 살 생각도 없었는데 말이야.
선생님도 내가 이걸 진심으로 살 생각이 없음은 알고 있다.
내가 선생님을 아는 만큼 선생님도 나를 아니까.
그런데도 만약이라는 가능성을 버리지 못하는 거다.
혹시라도 내가 저걸 써보겠다고 하면 어쩌지?
난 선생님한테 항상 쌤쌤을 강요했다.
선생님도 그리 거부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부부란 같은 길을 걸어가는 존재라서.
그러니 내가 애널 섹스를 해줬으니 너도 당하라고 쌤쌤을 주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당황해서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애초에 선생님도 아니고 그런 곳엔 별로 관심이 없다.
분명 거기로 하면 아프다고 했는데 별로 아프지도 않았다.
아마 바다에서 호흡할 수 있었던 것처럼 아픔에 대해 어느 정도 제어가 되는 거겠지.
이미 죽어서 도착한 곳이니 다시 죽거나 아픔을 느끼면 곤란하니까.
그러니 선생님도 어쩌면 내가 거길 공격하면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좀 그래….
선생님은 낮에는 이렇게 당해도 밤에는 좀 야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더 좋아.
예전엔 마냥 무서웠지만 그게 선생님 나름의 애정이고 관심이란걸 아니까.
선생님이 80년간 나만 바라보며 그래왔다는 것을 아니까.
그러니까 굳이 선생님한테 그런 미묘한 장난을 칠 생각은 없다.
다만 경고는 되겠지.
너무 선을 넘으면 내가 저걸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경고가.
선생님은 성인용품점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탈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차에 올라타 짐을 내려놓고 차가 출발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선생님에게 다시 장난을 쳤다.
“음음… 여기가 음, 여기구나?”
난 휴대폰으로 이곳의 위치를 메모했다.
선생님은 내 행동이 두려운지 다시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업보는 돌고 돌아서 돌아오는 건가?’
‘남자니까 그 정도는 궁금해할 수도 있지.’
‘근데 솔직히 그리 대단한 기분은 아니었는데.’
‘진짜면 어쩌지?’
대충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난 굳이 선생님에게 장난이라는 말을 건네진 않았다.
저렇게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이 오늘따라 너무 귀여웠으니까.
ㅡ 제 엄마한테 못된 거만 배워선.
선생님의 그 말은 너무나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다.
선생님도 알긴 알잖아요?
나 원래 성격 이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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