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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2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 (252/301)

〈 252화 〉 앙코르 : 나와 선생님이 2회차를 살아가는 방법♥

* * *

선생님… 아니, 준수와 함께 해안가를 걷기로 했다.

“수진아.”

“선생님이라고 불러야지!”

“…수진이 선생님.”

“무슨 일이니, 준수야?”

준수의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나를 향한다.

아직도 상황극을 할 생각이냐고 표정으로 묻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실은 평소처럼 지내고 싶었는데… 그 있잖니?

매너리즘이란건 정말 중요한 문제란다?

가끔은 이런 놀이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수진이 선생님은 변함이 없네요.”

너도 변한 게 없잖니!

의식적으로 준수보다 어른 행세를 하려고 하는 것은 생각보다 피곤했다.

준수와 연애를 할 땐 가끔 다투기도 했지만 결혼하고 나선 다툰 적이 없었다.

준수는 항상 나를 배려해줬고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줬으니까.

언제나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이젠 내가 연상이 됐으니 준수를 잘 이끌어줘야 할 텐데….

“수진이 선생님, 아침은 어떻게 할 거예요?”

“먹고 가면 되지 않겠니?”

“그래요?”

준수는 의외로 내 상황극에 어울려줄 생각인 듯했다.

역시 준수는 언제나 준수다.

난 준수의 팔을 살짝 끌어안았다.

“…선생님이 학생한테 이래도 되는 거예요?”

준수는 조금 심술궂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18살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선지 묘하게 건방져 보였다.

“내 마음이야.”

“음….”

준수는 인상을 찡그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선생님.”

“왜 그러니 준수야?”

“이건 언제까지 해야 해요?”

받아줄 생각이 아니었구나?

“왜?”

“어색해서요.”

…사실 나도 어색해.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수진아.”

준수는 갑자기 어른이 된 것 같은 표정으로 자리에 멈춰서서 나를 슬쩍 끌어당겼다.

나이를 먹어가며 시시각각 약한 모습을 보이던 준수와는 다른 박력 있는 모습이었다.

준수는 나를 가슴에 품고 내 등을 쓰다듬었다.

“으음… 의외로 질리지 않는단 말이지.”

“무, 무슨 소리니?”

“내가 너한테 질리기라도 할까 봐 그러는 거 아냐?”

준수… 아니, 선생님은 역시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눈치챈 것 같다.

80년이나 함께 살았으니 이젠 눈빛만 봐도 통하긴 하죠?

“아야.”

“으이구, 이 변태.”

시선이 내 가슴을 향해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인데도 날 여자로서 봐주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왜 이다지도 기쁜지….

처음 선생님과 사랑을 나누고 그 후로도 종종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선생님은 나이와 다르게 내게 엄청나게 열중했었지.

그땐 솔직히 말해서 무서웠다.

처음엔 상냥했던 선생님이 관계를 맺은 다음부터 변하기 시작했으니까.

평소엔 언제나 상냥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성관계를 맺을 때 만큼은 이기적이고 강압적이었지.

나중에 그걸로 싸우기도 했었고….

그런데 지금은 선생님이 내게 열중하는 것에 이리도 기뻐하고 있다.

나도 나이를 먹은 걸까?

음….

“남자가 변태가 아니었으면 이 세상의 인구는,”

쪽.

“헛소리 금지.”

선생님의 입술을 입술로 틀어막아 같잖은 변명을 막았다.

선생님은 항상 이런 식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는 사람이다.

참 간사한 혀를 가진 사람이다.

선생님이 이 혓바닥에 놀아나서 지금의 이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왜 웃어?”

“그냥요.”

선생님을 포기하려고 했었지.

처음엔 호기심이었던 관계였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상할 정도로 끌렸다.

엄마와 단둘이던 내 좁은 공간에 선생님이 어느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전염병이 만연해 학원과 집만 오가던 내게 선생님은 쉼터처럼 느껴졌다.

무례하게 발을 척척 들이밀지도 그렇다고 나를 내치지도 않았지.

그 소심하면서도 정중한 태도에 끌렸다.

어쩌면 외로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내겐 모든 것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으니까.

처음엔 엄마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여기와는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당시의 엄마는 이혼의 충격으로 많이 위태로워 보이셨으니까.

오빠는 당시에 수험생이라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도 없었고, 내 아군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난 주변인들과 담을 쌓고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했다.

그 괴로운 삶에 끝이 다가온 것은 오빠의 기행으로부터 시작됐다.

수험생인 인간이 폰으로 뭘 하나 싶었는데 소설을 보고 있었다.

그리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소설은 시작부터 엉망진창이라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는 작품이었다.

제국력 xxxx년으로 첫 문장이 시작된 소설은 주인공이 “낯선 천장이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분명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세계라는 설정이었다.

그때도 등장인물이나 설정, 스토리 전개가 엉망이라 인상을 찌푸렸던 기억이 난다.

웹소설 작가로 40년 가까이 글을 쓴 지금 생각하면 그 이상의 무언가였던 소설이다.

그걸 보고 나니 왠지 울컥해서 소설을 썼다.

내가 그 엉망인 소설보다 더 잘 쓰니 삽질하지 말고 공부나 하란 뜻에서 말이다.

아마 친구들에서 시달리던 스트레스를 오빠에게 풀었던 거겠지.

하지만 오빠는 내게 웹사이트에 올려보라며 권유를 했다.

난 그렇게 뜻하지 않게 작가가 되었다.

그것도 아주 성공한 작가가.

소설이 성공을 거두자 주변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돈이 생기자 가정에 여유가 찾아왔고 엄마의 표정에 평온이 찾아왔다.

그와 동시에 내 마음속에 오만함이라는 이름의 씨앗이 심어졌다.

그 씨앗은 담으로 자라났고 나와 주변을 분단시켰다.

그 담은 내 소설이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더욱 높고 견고해졌다.

난 그 담에 올라 나를 무시하던 인간들을 내려다보았다.

남의 가정사를 가십거리로 사용하여 웃고 떠들던 이들이 너무나 한심하고 작게만 보였다.

어딘가의 메이커에서 만든 옷이 너무 예쁘다는 이야기로 1시간을 떠드는 머저리.

어떤 화장품을 사용했는데 피부가 좋아졌다고 떠드는 여드름투성이 못생긴 년.

등골브레이커라고 부르라며 패딩 자랑을 하는 멍청한 남자까지.

내 또래의 인간들이 떠드는 이야기는 너무나 보잘것없고 한심했다.

난 그들을 철저히 무시하기로 했다.

꼭 대화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저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다행히 고등학생이 되어 수험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내게 쏠리는 이목은 줄어들었다.

물론 그 시선이 전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 성적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이상할 정도로 불쾌한 시선을 보내오는 인간도 있었으니까.

대놓고 날 따돌리려고 하는 인간들도 있었고 말이다.

결국은 전부 내 손으로 해결했다.

돈이라는 것은 그런 존재였다.

당장 쓸 일이 없어도 내게 무한한 자신감과 우월감을 가져다줬다.

내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반장? 난 반장이 평생 벌어들일 돈을 벌고 있는데?

내 외모를 질투하는 걸레? 네가 좋아하는 남자는 내게 고백했었는데… 누구였더라?

그렇게 철저히 나를 가두고 착한 이수진을 연기하며 살아왔다.

고3이 되어 그 병이 만연하고 전면 비대면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 세상이 나를 돕고 있구나.

정말 나를 돕고 있어.

그리 생각하며 학원과 집을 오가던 중에 선생님을 만났다.

위에서 내려다본 선생님은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였다.

늙고 냄새나고 뭔가 질척거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를 올려다보는 그 시선에서 느껴진 강렬한 빛만큼은 주변인과 달랐다.

어딘가 나를 동경하는 듯한 그 눈빛은 처음 보는 눈빛이었다.

난 그 눈빛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렇게 선생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더는 담벼락에 올라 선생님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선생님이 날 올려다보는 그 눈동자가 너무 반짝여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업신여기는 내 표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난 담벼락으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꾸며낸 목소리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달랐다.

억지로 내 담벼락을 기어올라 다가오려고 하던 끈적이는 또래와는 달랐다.

그저 내게 미움받지 않으려는 듯 행동했다.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저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그 행동에 난 무심코 끌리고 말았다.

꾸며낸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선생님이 점점 궁금해져 가기 시작했다.

아마… 처음 접하는 부류의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바란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함께 웃어주는 사람.

취미가 같은 점도 포인트였다.

선생님이 쓴 소설은 상업적인 가치는 없었지만 내겐 조금 특별히 다가왔으니까.

선생님을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담벼락에 구멍을 뚫었다.

우린 그 구멍을 통해 서로를 조심스레 엿보는 관계가 되었다.

그 구멍이 차츰차츰 넓어졌고… 난 선생님한테 붙잡히고야 말았다.

신사 같던 선생님의 팔엔 털이 숭숭 나 있었고 어느새 늑대가 되어있었다.

난 늑대에게 붙잡힌 빨간 망토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래서 지금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조금만 더 점잖은 사람이었다면 내 곁에 없었을 테니까.

“수진아.”

“왜요?”

“우리 이왕 여기까지 나온 거 부천까지 가볼까?”

“부천이요?”

“어.”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내 손에 깍지를 껴왔다.

선생님은 그 후론 별다른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의도가 뭔지는 잘 알고 있다.

“좋아요.”

선생님에게 있어 부천은 특별한 곳이다.

선생님이 나고 자란 곳이니까.

우리가 처음으로 데이트를 했던 곳이기도 하고, 진수가 태어나 나들이를 갔던 곳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종종 아쉽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나와 선생님이 동갑이었다면 거기서 조금 풋풋한 느낌으로 데이트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말이다.

난 그것도 괜찮았을 거라며 웃어넘겼지만 아마 동갑이었으면 가지 않았을 거예요.

애초에 난 연애나 결혼 따위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우리 엄마와 그 인간이 결혼한 것은 그 인간의 열렬한 고백 때문이었다고 했다.

엄마는 자꾸 결혼해달라며 다가오는 그 인간이 처음엔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하지만 줄곧 자신만을 사랑하겠다며 다가오는 그 인간의 끈기에 졌다고 했지.

먼저 사랑한다고 죽을 때까지 아껴준다던 인간이 먼저 배신했다.

내게 있어 연애 감정이나 사랑은 그런 부류의 것이었다.

결국은 식어버려 상대를 배신하는 행위.

그러니 소설의 소재로 삼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면 선생님과도 관계를 맺지 않았을 거다.

우리는 어딘가 서로에게 필요성을 느껴서 만난 거다.

한마디로 말하면 운명.

그러니 그 운명을 부정하는듯한 ‘만약’이라는 말을 꺼내는 선생님이 바보처럼 생각됐다.

오히려 세간의 비난과 비웃음을 감내하고 죽어서도 나를 사랑해주는 이 모습이 얼마나 멋진데….

선생님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바보다.

그리고 그 바보를 죽어서도 사랑하는 난… 바보 중의 바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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