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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1화 〉후일담 : 나와 수진이의 커튼콜 - 完 - (251/301)



〈 251화 〉후일담 : 나와 수진이의 커튼콜 - 完 -

수진이와 목욕을 끝낸 다음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해봤다.

자정이 넘어 오전 1시가 된 시각. 지금부터 출발하면 시간에 맞을 것 같다.

"아, 어딘지 알겠다."

"눈치만 더럽게 빨라요."

"후훗."

수진이는 내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어딜  생각인지 바로 눈치챈 모양이다.

하긴, 이 늦은 시간에 갈만한 곳은 거기 밖에 없긴 하지.

"그럼 가요. 약속은 지켜야죠."

"그래."

수진이와 처음 해돋이를 보러 갔을 때 매년 보러 가자는 말을 꺼냈었다.

하지만 마지막 해돋이는 끝내 볼 수 없었다. 그 마지막 해돋이를 지금이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죠."

수진이가 옷을 챙겨입은 다음 내 팔에 팔짱을 껴왔다.

우린 그대로 주차장으로 향해 차에 올라타고 강원도 하조대로 향했다.

"운전대엔 내가 앉겠다니까 기어코 앉았네."

"우리 쭌수는 지금 몇 짤?"

"...18살이요."

"그러니까 운전은 안~돼~"

 이런 거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네. 어이없는 녀석... 아, 그건가?

나와 수진이가 최초로 해돋이를 보러 갔을 때는 내가 운전대를 잡았었지.

수진이는 그걸 생각해서 날 조수석에 앉힌  같다.

그래. 확실히 수미상관이라서 뭔가 그럴싸하긴 하다.

이런 미묘한 부분에서도 의미를 찾는 게 수진이답다면 수진이 다운 거지.

"선생님."

"왜?"

"우리가 처음으로 해돋이 보러 갔을 때 떠올라요?"

"떠오르지. 처음으로 카섹스를 했던 날이고 그 불편함에 다시는 하지 않았던 날이니까."

내 말을 들은 수진이는 인상을 찌푸린 채 내 볼을 꼬집어왔다.

"아퐈."

"머릿속에 마구니만 가득해서 문제야. 120살이나 먹은 할배가 이래서 되겠어?"

"전 18살인데요?"

"입만 살아가 지곤 나중에 죽으면 입만 물에 둥둥 뜨겠어."

"이미 한 번 죽어봤는데 뇌가 통속에서 둥둥대긴 한다더라."

내 말을 들은 수진이는 조금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꼬집던 볼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먼저 죽어서 미안하다니까 그러네..."

그런 표정을 지으라고 했던 말은 아니었는데.

"솔직히 10번 정도 왔을 때부터  지루하긴 했어요. 괜히 오자고 했나 싶기도 했고."

"이제 와서?"

"선생님은 어땠는데요?"

"난 처음부터 별로였어."

"그럼 말하지 그랬어요. 괜히 계속 다니고 있었네..."

입술을 삐죽 내밀고 그리 말하는데 뭔가 오리 같아서 귀엽다.

그 입술을 엄지와 검지로 잡았더니 수진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내 손등을 꼬집어왔다.

"내가 80 넘어서였나? 그때도 말했었잖아. 해돋이를 보러 가는 게 지겹긴 해도 우리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거라고."

"그랬죠."

해돋이도 13번이면 지랄... 아니, 해돋이도  나이면 질린다.

그럼에도 다니고 있던 건 그만큼 그 약속이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매해 그 장소로 찾아가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다짐했었지. 올 한해도 반드시 살아남아서 수진이와의 약속을 지키겠노라고.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럼에도 해돋이를 보러 가는 건... 이 약속에 매듭을 짓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함이다.

"원래 해돋이는 새 출발을 다짐하면서 보는 거잖아. 우리도 그러자."

"네. 이제 새 출발이죠."

그래. 새 출발이지.

***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린 하조대에 도착했다.

아직 해가 뜨기엔 이른 시간. 우린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조금 쌀쌀한 것 같지만 마주 잡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 덕에 그리 춥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오늘은 1월 1일도 아니어서 해돋이를 보러오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조금 낯간지러운 이야기를 해도 부끄럽진 않겠지.

수진이가 생각하는 사랑에 관해 물어보자.

"수진아."

"왜요?"

"지금이라면 말해줄 수 있겠어? 네가 생각하는 사랑이 뭔지?"

"잊으신 줄 알았는데 그걸 기어코 물어보시네..."

늙은 사람이 주책맞다며 내 옆구리를 살살 꼬집었다.

늙은 사람이 주책이기는 하지. 그래도 듣고 싶다.

수진이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이미 그 메모장을 읽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알게 되는 것보다 직접 듣는 게 훨씬 더 의미가 있는 법이지.

"선생님. 우리가 결혼식 했을 때 선생님 지인분이 맹세서약 시켰던 거 기억나세요?"

"당연히 기억나지. '신랑 김준수는 신부 이수진을 신부로 맞아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아프거나 병들거나,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고 아낄 것을 맹세합니까?' 라고 해서 `네`라고 했지."

"역시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당연히 기억하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중의 하나니까 말이다.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는지 모르겠네.

"우린 어떤 상황일까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고 아낄 것을 맹세한다고 했는데 말이에요."

내 옆을 걷고 있던 수진이가 발을 멈춘 후 나를 올려다보았다.

조금 불안하면서도 애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모습에 가슴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았어요. 이젠 맹세의 효력도 끝났죠."

"...그렇지."

"죽었으니까 법적으로 부부도 아니에요."

그래. 죽어버렸으니 더는 법적으로 부부가 아니긴 하지. 근데 그런 식으로 들어버리니 조금 거절당하고 있는 기분이라 뭔가  묘하다.

"한 번쯤 생각해 봤어요. 선생님과 이렇게 오랫동안  붙어 있었던  결혼을 하며 나누었던 그 맹세 서약 때문인 건 아닐까 하고 말이에요. 우리 사이에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를 키우면서 생긴 의무감이 서로를 향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 말이에요."

그럴 리가 없잖아. 진수랑 희진이가 이곳에 없다고 하더라도  향한  마음이 바뀌지는 않는다.

너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너에게 빠져들었고 그 순간부터 널 향한 내 마음이 바뀐 적은  한 번도 없다.

네가 나보다 먼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순간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같았으며 너와 다시 만나게 된 순간엔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의무와 맹세로 엮인 관계 따위가 아니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요. 그냥 그렇게 생각해 보기도 했다는 거니까."

수진이가 내 손을 놓고 내 뺨을 양손으로 붙잡은 다음 부드럽게 입을 맞추어왔다.

"저요... 죽는 순간까지 `아, 내가 이대로 죽어버리면 선생님이 굉장히 슬퍼하시겠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내가 죽는 것보다 날 떠나보내고 슬퍼할 선생님이 먼저 떠오르더라구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면 죽어도 만날  있다고 말해주지 그랬냐? 이 양아치 같은 녀석.

내가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수진이가 쓴웃음을 지으며 내 양 볼을 꼬집어왔다.

"자기 자신보다 상대방을  위하고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내 반신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고통스럽고 결혼이란 이름의 법적 의무가 사라져서 내가 질렸다고 말하며 떠나가면 어쩔지 걱정하는 이 마음. 뭐라고 잘 표현은 못 하겠는데요... 이게  선생님을 향한 사랑이에요."

수진이는 그리 말하며 다시  번  입에 부드럽게 입을 맞춰왔다.

"선생님. 선생님은 약속을 다 지켰으니까... 언제든지 말만 해요. 제가 지겨워지면...  옆에서 떠나도... 뭐라고... 안, 할게요..."

새벽이라서 그런 걸까. 수진이의 목소리가 너무나 애절해서 숨이  막혔다.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 조금 강하게 꼬옥 끌어안았다.

"바보야. 아직도 나를 그렇게 몰라?"

"알아요... 아는데... 80년 동안 사랑했다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는 말,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붙잡지 않을게요."

"수진아."

"네..."

내 품에서 감정적인 상태가 되어 조금 훌쩍이고 있는 수진이를 좀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내 마음이 이 몸짓으로 수진이에게 전해지도록 좀 더 강하고 듬직하게.

그렇게 잠시 안고 있으려니 수진이의 몸에서 떨림이 잦아들었다.

지금이라면 내 말을 침착하게 들어줄  있겠지.

"이제  해가 뜨니까 말이야. 이제 새롭게 시작하자고. 이젠 법적인 의무가 아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붙어있는 거야. 네가 나한테 질릴 때까지."

"전... 선생님이 변태에 또라이라도 안 질리는 데요?"

"잘됐네. 나도  질리는데."

그렇게 서로 주고받고 있으려니  멀리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해돋이다.

"이제 이걸 마지막으로 여기에 다시는 안 오려고 했는데...  매년 와야겠어."

"저도 같은 생각 하고 있었어요. 근데 선생님. 그거 알아요?"

"뭐가?"

수진이는 해돋이를 바라보며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요. 해돋이가 진짜 싫었어요. 10번쯤 왔을 때부터 느꼈거든요. `아, 선생님이 늙어가고 있구나. 날 내버려두고 먼저 가버릴 순간이 다가오고 있구나.` 그렇게 느꼈어요. 매년 해돋이를 보러 올 때마다 선생님이 살아서  곁에 있다는 것에 행복했고 또 선생님이 1년 나이를 먹어 내 곁에서 멀어질 순간이 다가오고 있구나... 싶어서 괴로웠어요."

나는 씁쓸한 감정을 토해내는 수진이가 안쓰럽게 보여 뒤에서 살짝 끌어안았다.

수진이는 입가에 웃음을 띠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젠 해돋이를 진정한 의미로 즐길 수 있을  같아요. 그러니까... 질렸어도 앞으로 100년 정도는 저랑 같이 해돋이 보러  주실래요?"

"100년이든 1,000년이든 네가 나한테 질리지만 않으면 언제든지 보러 와야지."

내 말을 들은 수진이의 입가에 웃음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가끔가다 미친놈처럼 행동하니까 질릴 수가 없는데?"

"역시 알파 메일 김준수지?"

"이것 봐요. 이러니까 질리지 않지."

우리에게 해돋이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행사였으며 서로 헤어질 시간을 준비하던 행사였다.

하지만 이젠... 서로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는 행사가 되었다.

"신랑 알파 메일 김준수는 신부 이수진을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아프거나 병들거나, 이 세상이 진짜로 소멸해서 우리의 존재가 지워지는 그 순간까지 영원히 사랑할게."

"풉! 아하하! 아~ 진짜!"

수진이는 한참을 웃다가 눈가에 떠오른 눈물을 닦은 다음  뺨에 가볍게 뽀뽀를 해왔다.

"사랑해요. 앞으로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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