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6화 〉후일담 : 나와 수진이의 커튼콜(7) (246/301)



〈 246화 〉후일담 : 나와 수진이의 커튼콜(7)

선생님과 처음으로 싸웠다.

선생님? 아니, 그 싸이코가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싸이코 짓을 했어.

솔직히 본인이 잘못했으면서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울컥해서 장난이 지나쳤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설마 그렇게까지  줄은 몰랐다.

솔직히 본인이 먼저 선 넘은 거 아닌가? 여친이 있으면 알아서 몸을 사렸어야지.

내가 화를 내고 좀 평소보다 심한 장난을 했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그렇게 화를 내는 사람이 어딨어?

천 년 사랑도 다 식을 뻔했다.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섹스할 때면 언제나 거칠어졌지.

 단추를 잘못 끼운 느낌이다.

선생님은 유부남이었으니까. 마음 한편에 두려움이 있었다.

혹시라도 선생님이 날 버리고 도망치면 어쩌지? 그년한테 돌아가겠다고 하면 어쩌지? 혹시 그년이 임신이라도 했다고 선생님을 붙잡으면?

그런 마음에 선생님에게 너무 물렀던 것 같다.

선생님은 내가  받아주니까 내가 좋아하는 줄 알고 폭주해버렸고 나 역시 결국 터져버렸다.

선생님한텐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결국 내 본성을 어느 정도 보여주고 말았다.

후회된다.

선생님이 내 본모습을 보고 실망해서 애정이 식어버렸으면 어쩌지?

혹시라도 나중에 역시 나와는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겠다는 말을 꺼내면 어쩌지?

그런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선생님은 선생님이었다.

결국, 다정 강사에게 우리의 관계를 다 설명하고 나를 대하는 태도가 더 부드러워졌다.

이전까지라면 본인이 연상이라서 날 리드해야하고 내가 연하답게 행동할 것을 조금 강요하는 느낌이 있었다면 이젠 나와 동등한 관계라고 생각해주기 시작했다.

그 예로 예전엔 머리를 만지거나 귀여워하면 은근히 싫은 기색을 냈었는데 이제는 별로 꺼리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만지려고 하면 만지기 편하게 다리를 살짝 굽혀주기까지 한다.

뭔가 진짜 강아지를 쓰다듬고 있는 느낌이라 은근히 기분이 좋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욕을 하며 싸운 게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엇나가고 있던 우리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니 나름 괜찮은 결말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

오라비에게 우리의 관계를 들키고 선생님은 엄마와 만나 단판 승부를 보신다고 하셨다.

솔직히 조금 걱정되기도 했지만, 평소에 털털한 엄마의 모습을 보면 내 등을 몇 번 때리긴 해도 결국 용서해주리라 생각했다.

혹시 몰라서 엄마에게 장난으로 40살 아저씨한테 반했다는 카톡을 보냈더니 미쳤느냐는 답장이 와서 호다닥 연예인 이름을 넣었다.

그랬더니 xxx이면 인정이지 라는 카톡이 왔다.

나는 그걸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연예인이랑 비교하면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선생님 정도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외모가 자산이라 매일 관리하는 사람과 눈에 띄는 부분만 신경을 쓰다가 이제서야 관리를 시작한 사람을 비교하는  곤란하니까.

아무튼, 엄마의 그런 태연한 반응에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에 불과했다.

선생님이 엄마에게 맞는 순간 머리가 멍해서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버렸다.

엄마가 그렇게 미친 듯이 소리 지르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다.

집을 나간 그 개자식이랑 불륜 문제로 다퉜을 때가 떠올랐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보다.

선생님이 엄마에게 뺨을 맞고 무릎을 꿇은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올  같았다.

나 때문에 누군가 다친다는 것은 정말 참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를 끌어안고 괜찮다고 다독여주셨다.

예전과 달리 산뜻한 향기가 느껴지는 몸.

한기가 스며들어 덜덜 떨리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그 온기가 마음의 불안을 씻어냈다.

따뜻했다.

불안함이 사르륵 녹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선생님은 어떻게든 해볼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선생님을 믿어보기로 했다.

집으로 다시 들어가니 엄마는 정말 굉장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무서웠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을 본 순간 반발심도 들었다.

내가 어렸을  그렇게 관심  달라고 옆에서 재롱을 부릴  방치했던 사람이 왜 지금에 와서야 엄마 노릇을 한다고 저렇게 나오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생각했으니까.

그렇잖아? 매번 오라비만 챙기던 사람이 이제 와서 왜 엄마인 척 하는 거야?

나, 이제 어른이야.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이유가 뭔데? 사회에서  벌기 전에 교육하는  아니야?

난 이미 돈 버는데? 어른이잖아.

근데 왜 그렇게 난리를 치는 거야? 선생님은 왜 때려?

이해를 못 하겠다. 부모로서의 행동? 부모로서  했는데?

내가 외롭다고 생각했을 때 나를 보살펴줬나? 아니잖아.

내가 알아서 잘한다고 방치했지. 엄마의 시선은 개자식과 오라비를 향해 있었잖아?

짜증이 올라와서 참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있다가 마주치면 순간 소리를 지를 것 같았으니까.

방에 들어가는 순간 오라비와 눈이 마주쳤다.

뭔가 좀 어색한 듯 눈썹을 긁적이는 모습을 보니 왠지 화가 나서 엉덩이를 한대 걷어찼다.

"야 이, 미친년아!"

"붸롱!"

내 눈앞에 있질 말든지!

***

학원에 전염병 확진자가 생기고 자가격리가 시작됐다.

수능이 코앞인 시기에 갑자기 이런 상황이 생기니 진짜 미칠  같다.

성적 문제? 아니. 그냥 선생님이랑 만날 수 없는 게 미칠 것 같아.

준비는  만큼 했다.

이제 중요한  컨디션을 잘 관리하는 것뿐.

가장 특효약은 선생님을 만나는 거다.

요즘은 머릿속이 선생님뿐이다.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참 편해진다. 느긋해진다고 해야 하나.

시야에 오로지 나만을 두고 있는 사람.

모든 일의 중심이 나를 기준으로 돌아가는 사람이다.

내가 선생님을 생각하는 만큼 선생님도 나만을 생각하시겠지.

그게 너무 기쁘다. 그래서 의외였다.

별일이 없으면 매번 자기 전에 잘 자라는 인사를 해오던 선생님이 전화하지 않게 되었다.

의아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오랜만에 글을 써서 약간 무리를 했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솔직히 좀 걱정이었다.

선생님이 올린 소설? 좋았다. 너무 좋았다.

솔직히 내용이 좀 암울하고 칙칙했다.

하지만 읽을수록 천천히 변화하는 모습이 드러나서 선생님이 나와 만나면서 이렇게 변해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으니 뭔가 뿌듯하고 가슴이 근질거렸다.

선생님을 생각하니 왠지 몸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나가 거실에서 물을 따라 마시며 방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찾았다.

주변은 조용했다. 소리가 안 나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잠갔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몸이 달아올라서 참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꾸 애달픈 맘에 안 좋은 짓을 하게 된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한 적이 없던... 이런 짓도 하게 된다.

이게 다 선생님 탓이야.

선생님한테 더럽혀져서 그런 거야. 내 탓이 아니야.

"흐읏..."

선생님을 생각하니 몸이 뜨거워진다.

빨리 선생님이 보고 싶다.

***

100일이 지났는데 선생님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건... 이건 뭔가 이상하다.

그 선생님이다. 그 선생님이라구?

이상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으나 목소리가 잠겨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소설을 쓰는데 굉장히 난항을 겪는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쓴 소설을 봤을까? 봤겠지?

난생처음으로 장편 소설을 쓰며 컨디션을 망치고 있을 선생님을 응원하는 방법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소설에 담아냈다.

 소설을 읽으며 조금이라도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서 썼다.

선생님에게 내 소설이 닿았으면 좋겠는데.

뭔가 불안했다. 빨리 자가 격린지 뭔지 끝났으면 좋겠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왠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런 예감.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자가 격리가 끝이 나고 나는 아침부터 집을 튀어나갔다.

2주 만에 보게 되는 선생님.

불안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선생님에게 전화는 걸었다. 하지만 전화가 걸리지는 않았다.

전화도 받을  없는 상태. 설마... 아닐 거다. 아닐 거야.

불안한 마음에 집으로 뛰어들어가니 앉아있던 선생님이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놀래서 소리치며 선생님께 달려갔다.

창백한 안색과 방안을 떠도는 담배 냄새.

너무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침착해. 침착하자. 여기서 내가 당황하면 더 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나는 일단 선생님의 머리를 내 허벅지에 올려뒀다.

얼굴을 옆으로 뉘어 코에 박혀있던 휴지를 빼냈다.

코피까지 흘리시다니... 마음이 아팠다.

진짜 큰일이 나는 거 아닌가 싶어 구급차를 부르려고 했더니 선생님이 드르렁거리며 코를 골기 시작했다.

울컥했다.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너무 피곤하셔서 기절하듯이 잠드신 것 같다.

나는 차분하게 선생님이 잠에서 깨어나길 기다렸다.

선생님은 참 나쁜 사람이다. 선생님 때문에 도대체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진짜 고약한 사람이야. 난 왜 이런 사람을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만남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

선생님은 그리 말하며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으니 우리 엄마를 설득하겠다고 하셨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그렇게 말하는 모습이 미련해 보였지만 한편으론 멋있어 보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와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할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선생님과 함께하는 결혼생활은 필시 행복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

선생님이 쓴 소설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다녀왔느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엄마에게 가서 선생님이 쓴 소설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선생님이 쓴 소설. 읽어줘."

"됐어."

"읽어 달라니까."

"됐어. 너희끼리 알아서 살아. 나 신경 쓰지 말고."

엄마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손을 휘젓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는 완고한 면이 있다.

내가 소설로 수익을 벌기 시작해도 일을 계속 다니며 나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 다던지 말이다.

그러니 평범한 방법으론 아마 읽게 할 수 없겠지.

이럴  아버님, 어머님 찬스다.

엄마도 사돈이 되실 분들이 찾아오면 안 보겠다곤 못하시겠지?

그렇게 가벼운 생각에 아버님과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지금 이런저런 상황으로 곤란하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아버님과 어머님이 직접 올라오신다고 하며 주소를 알려 달라 하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런 사태가 일어날 거라곤.

아버님이 머리를 조아리시고 엄마에게 제발 한 번만 선생님이 쓴 소설을 읽으라고 하셨다.

엄마가 당황해서 왜 이러시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버님을 말렸다.

아버님은 천천히 선생님과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이야기하는 내내 당신의 잘못을 고할 뿐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하는  모습에서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다.

불안에 떠는 나를 끌어안고 괜찮을 거라며 위로하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불안에 흔들리던 몸이 조금 진정되기 시작했다.

조금 차분한 마음이 되어 엄마를 바라보니 엄마는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어르신 찬스가 확실하구나!

솔직히 무릎까지 꿇고 그러실 줄 몰라서 많이 당황했지만 이제 어떻게든 될 것 같다.

선생님의 소설을 읽으시면 엄마도 반드시 우리의 관계를 허락하겠지.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지났고... 나와 선생님은 떳떳한 약혼 관계가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