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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3화 〉후일담 : 나와 수진이의 커튼콜(4) (243/301)



〈 243화 〉후일담 : 나와 수진이의 커튼콜(4)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이 우산을 빌려준 그 강사에 대한 생각이다.


우산을 받고 헤어질 때 학원의 벽에 걸려있던 프로필을 확인했다.

팔짱을 낀 채로 서 있는 지금보다는 좀 젊어 보이는 그 남자.


이름은 김준수.

유부남인지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고 찍은 사진이었다.

하지만 아까 왼손을 봤을 때는 분명히 반지가 없었지.


살이 쪄서 반지를 끼지 못하는 걸까? 아니, 그렇진 않겠지.


이혼? 아니면 그와 비슷한 상황일까.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다.

그 사람의 몸에서 풍기던 담배 냄새와 썩은 동태눈이 자꾸 뇌리에 떠오른다.


갑자기 당황하며 허둥지둥할 때는  느낌이 달랐다.


 연예인을 봤다고 호들갑을 떨던 오라비가 떠오르는 모습.


연예인...?

혹시, 날 아나?

 휴대폰을 보고 내가 누군지 눈치채서 그렇게 당황했던 걸까.

...확인을 해보자.


왠지 못된 장난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정말로 날 알아서 저렇게 반응했던 걸까?

그런 알 수 없는 충동으로 작품에 살짝 장난을 쳤다.

처음이다. 상업으로 팔아먹는 소설에 장난을 친 건.


하면서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평소엔 잘 봤다는 댓글만 남기던 독자가 오늘은 좀 과몰입한 장문의 댓글을 남겼다.


보면서도 조금 웃음이 나왔지만, 그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니 아이디를 확인해봤다.

이야~ 설마 N이버 계정연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네.

바보 같다. 완전 틀딱이네.

아이디도 본인 이름의 옆에 83, 83이면... 38살?


와, 생각보다 동안이네.

그래도  꼰대 같은 시선이랑 태도는 좀 고쳤으면 좋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40대 같으니까.

아무튼,  댓글에 감사하다는 댓글을 남기고 즐겨가는 갤러리에서 놀고 있으려니 그 남자가 념글에 올라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뭔가 조금 불쌍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다음 날.


언제나처럼 온라인 수업을 받고 오후에 학원으로 향했다.

오늘도 따분하고 굴곡이 없는 국어 수업이 진행됐다.

아니, 조금은 달라.


자꾸 이쪽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니까.

이상하지. 남자들의 시선은 끈적하고 역겨운데 저 시선은 동경하는 연예인을 만난 사람 같은 느낌이다.


나이를 먹은 만큼 먹은 아저씨가 힐끔힐끔 바라보는 게 뭔가 웃겼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서 허둥지둥거리는 모습이 뭔가 귀엽다고 느껴졌다.

...내가 미쳤나 봐.

우산을 돌려주며  자꾸 힐끔거렸느냐고 물었더니 우물쭈물하며 비싼 우산이어서 그랬다는 궁색한 변명을 해왔다.

 그냥 받아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비싼 우산을 들고 다니지?

외견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타입인가? 그럴 거면 담배라도 끊지.


몸에서 풍기는  담배 냄새가 가장 비호감인데.

근데 비싼 우산은 경찰이 찾아준다라... 그럴싸하네?

***


재밌다.

어제는 그렇게 격렬한 댓글을 달았는데 오늘은 또 어떤 반응을 보일까.


소설을 업로드하고 자정까지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댓글 창을 확인해봤는데  시무룩했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평소 같은 재미없는 댓글이었으니까.

그래서 한숨을 쉬고 그냥 끄려고 했는데 어제 념글에 올라간 조리돌림 중에 글을 쓰는 하꼬 분충이라던 글귀가 적혀있는 게 떠올랐다.


혹시 몰라서 확인해봤다.

"진짜 썼네..."


진짜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올린 신작 소설을 눌러버렸다.

내용은... 윽.

이거 아무리 봐도 나지? 38살이나 먹었으면서 19살이랑 연애하는 소설을 쓴 거야?

너무 음습한데. 이거 그거 아닌가? 음습한 한남 자아.


내용은 뭐... 괜찮네.


생각보다  취향이었다.

근데 갑자기 왜 이런 소설을 썼을까? 갑자기 나랑 연애라도 하고 싶어졌나?


조금 역한데. 그래도 왠지 신경이 쓰였다.

내가 쓴 소설에 대해 비평을 한 어떤 리뷰가 떠올랐으니까.

ㅡ나는월억킥 작가의 주인공은 무조건 애비리스임.


그래. 난 우리 가족을 버리고 떠난 그 개자식을  소설에서 언급하기도 싫어서 의식적으로 배제했지.


 우리를 버리고 떠났다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잘해볼 테니 용서해 달라는 둥, 돈 좀 빌려달라는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럴 거면 있을 때 잘하던지.

그래. 확인해보자.


그 사람도 지금 이혼을 했거나 이혼에 가까운 상태일 거야.


나와 만나면서 그 사람이 겪는 그 감정의 변화가  소설 속에서 드러나겠지?

그러면 우릴 버리고 떠난 그 개자식을 이해할  있을까.

솔직히 조금 미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난 꼭 그 개자식이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었다.


내 소설의 완성도를 위해서도. 그리고  개자식을 잊고 살아가기 위해서도.


***

다음 날.

학원이 끝나고 그 남자가 한적한 카페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서 눈치를 살폈다.

남자들이 카페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는진 잘 모르겠는데 30분은 보내겠지?

저길 들어갈까 말까.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왠지 자꾸 신경 쓰인단 말이지.


결국, 한참을 고민하다 편의점을 나섰고 카페까지 왔는데 여기서 또 고민이 되었다.


진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개자식의 심정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했다.


그렇게 밖에서 10분 정도 망설이고 있으려니 창가에 앉아있던 그 남자가 일어나서 나가려고 했다.

나는 당황해서 카페에 들어가 버렸다.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이곳이 단골인 척을 했다.

카페의 사장이 날 보고 고개를 살짝 갸웃했지만 별말은 하지 않고 넘어갔다.

저질렀어! 저질렀다!


잘 모르겠는데 일단 뭔가 이야기는 꺼내야지.

뭔가 우왕좌왕하면서도 어떻게든 대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샤워하며 생각에 잠겼다.

정말 의외의 사람이다. 생긴 것과 다르게 생각보다 험하게 살아왔구나.


뭔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민? 동정? 비슷할지도 모른다.


조금 불행한 가정사에 공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조금 신경 쓰였다.

샤워를 끝내고 밥을 먹으니 이미 소설을 쓰긴 늦은 시간이 됐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휴재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오늘은 갤러리에 가지 말아야지.


날 욕하는 글이 한가득할 테니까.

대신 그 사람이  글을 확인해봤다.

아직은 안 올라왔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혹시 모르니까 구독은 눌러놓자. 연재되면 알림이 오겠지.

오늘은 할당량만 끝내고 자야지.

***

솔직히 놀랐다.


소설이 올라온 시간대에서  번 놀랐고  내용에  놀랐다.

새벽 감성이라는 거겠지?


뭔가 이렇게 자신이 느낀 감정을 여러 은유와 직유를 사용하여 아름답게 포장하고 있기는 한데... 이거 아무리 봐도 러브레터지?

솔직히 좀  깨야 하는 부분이긴 한데... 이상하게 자꾸 읽게 된다.


내용이 너무 따뜻했으니까. 건드리지 않고 조심스럽게 바라만 보겠다는 느낌이 느껴지는 소설의 내용에서 왠지 어렸을  자상하던 개자식의 모습이 떠올랐다.


...개자식과 이 사람을 엮지는 말자.

아니, 이 사람도 아니지. `선생님`이라고 하자.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좋아하시던 거 같은데 그렇게 불러드려야지.


그나저나 진짜 신기하네. 여고생을 좋아하는 망상이 담긴 소설인데도 왜 이렇게 읽으면서 따뜻하다는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냥 소설의 내용이 계속 머릿속을 돌아다녀 오늘 하루는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 몽실거리는 마음을 소설에 녹여버렸다.


내가 생각해도 뭔가 몽실몽실하고 애틋한 기분이 잘 담겼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히로인의 마음을 섬세하게 묘사한 건 오랜만이라 뿌듯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선생님이 도망치기 전엔 말이지.


***


1주일이나 내 앞에서 도망칠 줄은 몰랐다.

내가 뭘 잘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도망치니까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아직 그 개자식의 마음이 뭔지도 모르겠고 선생님이 쓰던 소설의 뒷내용도 궁금하다.


왜 자꾸  내버려두고 도망치는 거지?

짜증이 났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우리 가족을 버려두고 도망쳤던 그 개자식이 떠올랐다.


선생님도  버리고 떠나는 거야?

아, 그렇구나.

 외로웠던 거였어. 오랜만에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이랑 이야기도 주고받고 소설로 답변도 주고받고 하다 보니 뭔가 즐거웠던 거야.

이제 내 곁에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엄마는 바쁘고 오라비는 군대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으니  뭔가 어리숙한 사람과 나누는 짧은 대화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소설에 살짝 담아내어 장난을 치는 그 시간이 즐거웠던 거야.

아직이다.

아직  개자식이 무슨 심정으로 우리 가족을 버리고 떠난 지도 모르겠는데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아.


...그리고 뭔가 자꾸 신경이 쓰여서 그 사람을  더 알아보고 싶은 기분이야.

그런 마음에 그 사람이 즐겨가는 카페로 향했고 거기서 그를 붙잡았다.


선생님에게 내가 월억킥이고 당신이 헤밍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은 멍한 표정으로 그대로 굳어버렸다.


흔들리는 눈동자는 굉장히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는 듯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포기한 것 같던 동태눈 같은 눈동자에 이채가 서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위의 시선이 신경 쓰여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나 가게의 출입문에서는 바로 보이지 않는 카페의 구석진 자리.


우리는 그곳에서 서로 노트북을 꺼낸 상태로 서로의 소설을 쓰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선생님은 서로 마주 본 상태로 앉아 있으면 혹시라도 우리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날지 모른다며 서로 다른 테이블에 앉아 서로 등진 상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소설을 쓰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뭔가 불륜을 저지르는 듯한 느낌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지금까진 하지 말라는 짓은 절대 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갑자기 이런 못된 짓을 하려니 뭔가 가슴이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나쁜 짓을 한다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과 죄책감보다 이 심장의 소란에 따라야 한다는 예감이 들었다.

 예감이 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가 시작될듯한 이 예감은 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난 예전부터 감은 좋았으니까.

선생님과 만나며 별것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소설을 쓰다 보면 내 소설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 보충할  있겠지.

그리고  뭔가 몽실거리는 감정의 의미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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