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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1화 〉후일담 : 나와 수진이의 커튼콜(2) (241/301)



〈 241화 〉후일담 : 나와 수진이의 커튼콜(2)

"솔직히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흥! 선생님도 쑤셔드려요?!"

"죄송합니다..."


수진이는 승부욕이 강하다. 언제까지 도망친다고 해서 화가 가라앉지도 않기 때문에 붙잡혔는데 이대로  죽어버리는 줄 알았다.

예전에 수진이한테 SM플레이를 했다가 욕을 바가지로 처먹고 물렸을 때와 비견갈 정도로 신나게 맞았다.


맞으면서 깨달았다. 이 세계는 배변 활동 같은 굳이 있을 필요가 없는 기능을 제외하면 다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

근데 진짜 얼얼한데. 엉덩이에 발차기를 먹이고 옆구리는 꼬집고 이빨로 물어오고 완전 투기견이다 투기견.


귀여운 수컷 강아지... 아니 암캐 녀석.

나중에 진짜로 항문에 박아서 앙앙 소리를 나게 해줘야지.

"근데 이거 가게에 가면 밥은 알아서 나오나?"

"AI가 있어서 가게에 들어가면 요리  해줘요. 우리가 있는 이 공간은 서버에 할당된 용량이 작아서 AI가 조금 부자연스러운 것도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생활하는 서버로 옮기면 진짜 사람이랑  차이도 없대요."

"그럼 이 세계에서 일한다는 사람들은 여기서 가게에 취직도 하고 요리도 만들고 그런다는 거네?"

"네. 그리고 여기서 게임해서 인터넷 방송으로 송출하고 그러는 사람도 있다던데요?"


완전 납골당이구만 그래.

수진이와 근처에 보이는 가게에 들어갔다.


나와 수진이가 데이트하고 처음으로 찾아갔던 가게. 김천.

"여자랑 데이트하는  분식집에 데려오는 사람이 어딨어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한테 배운 건데?"


"그것참 저렴한 사람이네요?"

"그 사람이 그러던데. 본인이 명품이라서 굳이 명품백 같은 사치품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고."


"..."


수진이가 이제 그만하라는 눈치로 얼굴을 붉히고 노려본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얼굴을 살짝 꼬집고 자리에 앉았다.


 점원도  AI란 말이지. 이걸 어떻게 구분하지?

"참고로 이런 개인 서버 말고 공용 서버에선 AI가 옷에 어떤 배지를 달고 있어서 AI라는  바로 알아볼 수 있게 되어있대요."

"아, 그건 좀 편하네."

아무래도 이런 개인 서버는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으니 굳이 AI와 사람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이겠지.


본인과 초대된 사람을 제외하면 다 AI일 테니까.


"이거 결제는 어떻게 하는 거야?"


"밥 먹고 나가면 알아서 결제된다던데요?"

"그건 참 편리하네."

수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밥이 오길 기다렸다.

그사이에 내 맞은 편에 앉아 턱을 괴고 방긋방긋 웃고 있는 수진이를 빤히 바라봤다.

내 기억 속의 수진이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모습.


정말 22살쯤의 수진이로 보이는 외모다. 이것도 다 설정이 가능한 건가?

그러면 나도 내 체력이 피크를 찍었을 때로 체력을 돌려보고 싶은데.

"이거 설정이나 그런 거 어디까지 가능한 거야?"


"외모는 본인 얼굴에서 크게 바꾸지는 못하구요 바꾸고 싶으면 그것도 DLC, 체격도 DLC, 그리고 체력도 인외로 설정하는 건  안 돼요. 일단 이 세상도 나름의 규정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다 DLC네 써글."

돈 없는 사람들은 어디 억울해서 살겠나.

나는 혀를 끌끌 차며 요즘 세상이 참 각박해져서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으이구 틀딱! 120살 틀딱은 입에서 꼰대 냄새가 솔솔 난다니까?"

"나 118살에 죽었고요, 할망구. 넌 99살이잖아?"


"제가 어딜 어떻게 봐서 99살이지? 이렇게 예쁜 99살  적 있나?"


방긋방긋 웃음을 짓다가 팔짱을 끼곤 가슴을 부각해 보인다.

그 탄력적인 가슴이 강조된 모양새가 자꾸 정욕을 자극한다.

눈웃음을 흘리며  반응을 살피는 수진이.

그래. 외모는 젊어졌어도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은 수진이다.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다 아니까 계산된 동작으로 유혹을 하는 거지.

뭔가 꼴릿해서 식욕보다 성욕을 먼저 채우고 싶은 기분이다.


눈앞에 나타난 음식들이 한 10분만 더 늦었으면 정말로 수진이를 먹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거 우리의 개인 서버면 아무 데서나 박아도 되는 건가? 공연음란죄 성립이 되지 않는 거요?

그럼 아무 데서나 팬티 벗기고 박을 수 있다는 건가? 남자의 로망이로구나.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입꼬리가 음흉하게 씰룩거리지? 이거 완전 변태 새끼라니까."

"네. 저 변탭니다."


분식을 입에 넣으며 수진이와 어떤 플레이를 해볼까 하다가 이제부터 뭘 하고 살아야 할지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수진아."

"넹?"


수진이가 우물우물 떡볶이를 씹으며 나를 바라본다.

귀밑머리를 뒤로 넘기며 떡볶이를 먹는 모습이 뭔가 펠라를 해줄 때가 떠올라서 흠칫한다.


노리고 하는 거면 진짜 대단한 녀석으로 커버린 거 같은데...


"우리 뭐 하고 살지?"

"뭐하긴 뭐해요? 그냥 사는 거지."

"나 환갑하고 나서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았잖아."


"그렇죠."

돈은 충분히 많이 벌었다. 충분이라고 할 정도가 아니라 엄청 벌었지.


나와 수진이는 희진이를 결혼시키고 나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즐겁게 두 사람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죽은 나이가 118이니 거의 일생의 절반을 놀면서 지냈다는 뜻이지.


이제 와서 젊어졌다고 해서 뭘 하면서 놀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 설마 죽은 다음에도 일할 수 있게 배려한 게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그런 거죠. 죽어서도 소설을 쓰는 자. 고스트 라이터..."


"너도 나 닮아서 개소리가 늘었어."


"..."

수진이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볼을 긁적이며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니, 아무튼 소설. 그래. 여기는 시간적 제한이 없는 곳이다.

몸이 늙어서 멀미 때문에 하지 않던 그 가상현실 게임도 해볼 수 있고 할 건 많겠지.

"야 수진아."


"왜요?"


"너 근데 끝까지 로맨스 소설은 안 쓰더라? 난 한 편 정도는 쓸  알았는데."

수진이는 끝까지 기성 작가로서 안정적으로 작품을 내고 절필을 했다.


다 판타지 소설로 완결을 냈고 좀 덜 팔리고 더 팔리고의 차이는 있었지만  안정적인 엔딩을 내서 끝까지 믿고 보는 월억킥으로 불리며 은퇴했지.


하지만 난 수진이가 언젠가는 로맨스 소설을  거라고 생각했다.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여성에 작가면  번쯤은 로판에 도전하는 거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수진이가 굳이 로맨스 소설을 쓰지 않던 이유는 글을  때만 해도 연애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진이의 외모 특히나 가슴이나 엉덩이를 보고 침을 질질 흘리는 변태 같은 남자들 때문에 신물이 나서 연애에 관련된 로맨스 소설을 쓰고 싶지 않았다고 했지.


그래도 나와 만나 결혼을 하고 심경의 변화를 겪으며 뭔가 로판이나 로맨스에서나 쓰일 법한 소재들을 정리하는  같기도 했는데 판타지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히로인이랑 꽁냥거릴 때나 집어넣지 직접적으로 로판이라 불릴만한 소설은 단 한 편도 쓰지 않았다.

"그, 뭐, 뭔가 부끄러워서  쓰겠던데요? 그것보다 선생님은 소설 뭐 쓸 건데요?"

뭔가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을 한 것도 아닌데 이상할 정도로 당황해서 화제를 돌리려고 하는 모습이 수상하다.

혹시 나 몰래 로맨스 소설을 한 번 썼다가 습작처리라도 한 것일까?


나중에 희진이한테 좀 알아보라고 해야겠다.

여기서 뭔가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추궁하면 희진이에게 선수를 칠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내가 선수를 잡아야 하니 그냥 어울려 줘야지.

"내가 처음에 썼던 소설이나 종종 갱신해봐야겠어."


"`서로소`요?"

"그래. 너와 함께하고 있으려니 뭔가 그런 생각도 들어서. 우리의 일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찰나를 소설에 담아낸다. 뭔가 낭만적인  같지 않아? 사진을 찍는 느낌으로 우리의 일생을 적어내는 거야."


"말로 하니 그럴듯한데 그냥 머릿속에 소재가 안 떠오를 뿐이면서."

날 너무  아는 구만.

수진이와 식사를 끝내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자꾸 주머니가 허전한 기분이라 뭔가 불편했다.


"왜 자꾸 그렇게 안절부절이에요?"


"니가 준 지갑이 없으니까 뭔가 허전해서."

"진짜  사람은 왜 모쏠이었는지 모르겠다니까?"


수진이는 내가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내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고 연신 뽀뽀를 해왔다.


귀여운 녀석.


수진이에게 뽀뽀를 받고 있으려니 주머니에 들어있던 휴대폰으로 생각이 미쳤다.

원래 없었던 건데 멋대로 뿅하고 나타났었지. 그러면 그 3D프린터 같은 거로 원래 세계에 있는 물건들을 스캔해서 이쪽 세계로 보낼 수 있는  아닌가?

"잠깐만."

난 수진이에게 잠깐 떨어져서 희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희진이의 번호기는 한데 이쪽에서도 전화가 가긴 가겠지? 일단 이곳도 네트워크로  하나의 서버니까 연결이 되리라.

잠깐 전화가 연결되는 음이 들리고 잠시 후 희진이가 전화를 받았다.


`아빠?`

"어. 잠깐 시간 되냐?"


`갑자기 딸내미 얼굴이 보고 싶어졌어?`

"내 아내보다 늙은 딸내미 얼굴은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우씨! 아빠는 나한테만 맨날 지랄이야!`

"니가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노는 재미가 있기는 했지."


희진이는 이제 70대다. 늙을 만큼 늙었다고 볼 수 있지.

하지만 수명을 늘려주는 수술을 받아 젊어졌고 거기에 노화도 억제된 상태라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이다.

저렇게 젊은이 같은 말을 해도 뭔가 어울린다. 예전에 장모님이 나에게 장난을 치셨을 때도 약간 저런 분위기셨지.


`그래서  전화했어?`

"내 지갑 여기로 보내줄 수 있나?"

`그 지갑?`

"어."


 말을 들은 희진이는 얼굴에 복잡한 표정을 띄웠다.


뭔가 부끄러우면서도 어딘가 근질근질하고 또 한 편으론 눈부신 것을 보는 듯한 그런 시선.

`잠깐만 기다려봐.`


희진이가 자리를 비우려고 한다.

"야, 희진아."

`왜요?`


나는 희진이를 불러세운 다음 수진이가 내 쪽을 살피고 있는지 확인했다.

수진이는 딱히 희진이와 나눌 말이 없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풍경을 확인해보고 있다.

 학창시절 때의 풍경이니 뭔가 낯설고 신기하기는 하겠지.

아무튼, 좋은 기회다.

"수진이 컴퓨터에 있던 자료 파일들이나 USB 같은 거 정리해서 내 단말로  보내줘."


`...그건 왜요?`

희진이가  사람이 또 뭔 짓을 하려고 이러는 거지? 같은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았다.

"니 엄마가 평생 로맨스를 쓴 적이 없는데 왠지 궁금하지 않냐? 뒤져보면 하나쯤은 나올 것 같은데?"

내 말을 들은 희진이의 눈빛이 변했다.


입가에 히죽하며 수진이를 닮은 짓궂은 미소를 띤다.


`콜!`

희진이는 알겠다며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말과 함께 통화를 끊었다.


내가 통화를 끝내고 주머니에 휴대폰을 집어넣자 수진이가 주위를 둘러보던 것을 멈추고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뭔 얘기를 하는데 그렇게 속닥속닥 해요?"

"진수가 많이 울었느냐고 물어봤어."

"진수한테 많이 미안하네요. 희진이 그년은 우리가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던데 진수는 진짜 엉엉 울어서..."

"희진이랑 진수가 죽음에 대해 받아들이는 게 다른 거지. 왜 우리 희진이 기를 죽이고 그래?"


"당신이 그렇게 희진이한테 오냐오냐하니까 저 나이가 되어서도 푼수지!"

"..."


순간적으로  닮아서 그렇다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억지로 쑤셔 넣고 입을 닫았다.


나도 마조는 아니다. 내뱉고 나서 얻어맞을 말을 굳이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튼, 수진이의 반응으로 볼  무조건 로맨스  비슷한 걸 썼겠지.

수진이는 적었던 내용이 아무리 별로라도 그때 떠오른 영감이 사라지면 다시 떠오르지 않으리라 생각해서 대부분 메모장 같은데 적어두고 잘 지우지 않는다.


소설을 쓰다가 실패를 하고 습작을 했더라도 어딘가에 꼭꼭 숨겨뒀다가 까먹었으면 까먹었지 지우진 않았겠지.

희진이가 보내올 데이터가 너무나 궁금하다.


과연 수진이가  소설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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