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11)
"아니, 그래서 도대체 뭔데 그러냐?"
"아빠는 나이 먹으면서 성격만 급해졌다니까. 엄마처럼 저렇게 진득히 있어봐봐."
"엄마도 궁금한데?"
"아니, 진짜 엄마랑 아빠는 이 나이가 되도록 죽이 착착 맞네!"
수진이의 생일인 5월 5일.
희진이는 아침부터 불쑥 찾아와선 우리를 차에 태우고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의문이 들어 몇번이고 왜 이러는지 물었으나 희진이는 비밀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생일이니까 적당히 서프라이즈를 하리라곤 생각하고 있으나 이 나이가 되어 더는 놀랄 것도 없는데 왜 이러는지 의문스러웠다.
수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희진이가 우리에게 안대를 넘겨줬다.
"이게 뭐야?"
"서프라이즈니까 안대 써!"
"어휴... 넌 이제 곧 40인 녀석이 아직도 이러냐?"
"아빠도 80이면서 아직도 그러면서?"
그래. 그러고보니 그렇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희진이가 준 안대를 썼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차가 멈춰서고 문이 열렸다.
"오빠는 아빠 좀 챙기고."
"어."
"뭐냐, 진수 너도 왔냐?"
"네, 아버지."
이 녀석들이 쌍으로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희진이는 수진이를 챙겼고 진수는 나를 챙기고 있는 모양이다.
나와 수진이는 안대를 쓴 채로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 턱이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그래."
눈을 가린채 도보로 2분 정도 걸었을까.
진수가 이제 괜찮다는 말을 꺼내 안대를 벗었다.
눈가에 스며드는 햇빛에 눈쌀을 찌푸리기도 잠시.
나는 눈앞에 나타난 건물을 보고 순간 말문이 막혀 멍하니 서있었다.
설마 이 나이가 되서... 놀랄일이 생길줄은 몰랐다.
"짜잔! 서프라이즈!!!"
희진이가 웃으면서 나와 수진이를 끌어 안아왔다.
그래. 서프라이즈다.
우리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수진이와 다녔던 그 카페였다.
"이게... 이게 도대체..."
그 건물은 수진이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 정말 완전히 똑같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 진수와 희진이를 쳐다봤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고 싶었다.
진수와 희진이는 아무말없이 웃으면서 우리를 가게 안으로 밀어넣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카운터와 좌석들.
그 모든 것들이 그대로였다.
수진이와 다녔던 그 카페를 완벽히 복원한 것일까.
돈이 많이 들었을텐데.
나와 수진이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아무말없이 늘 앉던 그 자리로 향했다.
서로 마주보고 앉아있으려니 희진이가 트레이를 들고 다가왔다.
"주문하신 카푸치노입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언제... 이런걸 준비한걸까.
"우리가 애들은 정말... 잘 키웠어요."
그리 말하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는 수진이.
그래. 정말 동감이다.
우리가... 아이들은 참 잘 키웠지.
그리 생각하며 카푸치노를 마셨다.
"응?"
뭔가 카푸치노 맛이 아닌거 같은데.
나는 뭔가 싶어 들고있던 컵을 내려다 보았다.
그러자 안에 들어있던 카푸치노가 어느새 아메리카노로 바뀌어 있었다.
"어때요! 깜짝~ 놀랐죠?"
희진이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이게 뭐야?"
그러자 희진이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주변의 광경이 변화했다.
나와 수진이가 앉아있던 곳을 제외하니 사방이 흰벽으로 된 공간이 나타났다.
"이게 요즘 유행하는 VR이야. 어때? 완전 똑같지? 엄마랑 아빠가 찍었던 사진을 기준으로 구현화한거야."
나와 수진이는 눈을 끔뻑이며 주위를 둘러볼 뿐이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네.
***
의학의 발달로 노화를 억제하고 수명을 늘려주는 수술이 결국은 나오고야 말았다.
그 얘기가 나오자마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수술을 받았다.
조금이라도 오래 살 수 있다면 더 오래 살고자 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니까.
하지만 수진이는 수술을 받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나는 몇번이고 수진이를 설득하려 했다.
수진이와 같은 날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녀가 없는 세상에서 1초라도 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먼저 죽는다면 수진이는 오래도록 살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수와 희진이 그리고 손주들과 되도록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다가... 천천히 따라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진이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수진아."
"네."
"정말로 다시 생각해봐. 진수가 그렇게 사정사정 했잖아."
"우리 약속했잖아요. 선생님은 120살, 나는 100살까지 함께하다가 가기로요."
약속을 하긴 했지.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1분 1초라도 더 살아주길 바라는건... 당연한 마음이리라.
"그래. 네 고집을 누가 말리냐."
"그래요. 오히려 다행이죠. 선생님은 확실하게 120살까지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니까."
수진이는 그리 말하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래. 이것으로 최소한 수명이 30년은 더 늘어나게 되겠지.
아마... 거의 확실하게 120살까지는 살 수 있으리라.
나보다 더 젊은 수진이는 수술의 효과를 더 확실히 받아 150살까지는 살게 되리라.
받는다면... 말이지.
결국 수진이는 나와 함께 눈을 감는 것을 택했다.
어쩌면 수진이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도 모르지.
내가 수진이가 없는 세상에서 하루라도 더 오래살고 싶지 않은 것처럼 수진이도 내가 없는 세상에선 하루라도 더 오래살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수진이의 선택을 존중할 수 밖에 없었다.
***
"시대가 이상하게 변하긴 했어."
"그러게요."
나와 수진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요즘은 이게 유행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투덜거리지 마세요~"
희진이는 우리에게 손가락을 흔들며 그리 말해왔다.
우리 목덜미에 삽입된 칩.
뭐라더라... 뭔가 복잡한 설명이었는데 아무튼 자녀들이 우리의 건강에 대해서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는 칩이라는 설명이었다.
이게 요즘의 효도 방식이라던가.
시대가 이상하게 변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도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하고 어울려주기로 했다.
자녀들이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했다는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리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그렇게 하셨어야 했어요?"
진수는 우리들의 손목에 채워져있는 팔찌를 보며 그리 물어왔다.
나는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린 서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버지랑 어머니는... 왜 이리 자식 가슴에 못을 박는 겁니까?"
진수는 우리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수진이의 손목에 채워져있는 팔찌는 서로의 심박수를 체크해서 상대방의 심장이 멈추면 얼마후에 차고있는 사람의 심장도 멈추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안락사 기계라고 할 수 있다.
그래. 세상이 변했다.
수명을 돈을 주고 살 수 있으며 수명을 돈을 주고 버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지.
나와 수진이는 한날한시에 눈을 감자고 서로 맹세했다.
그리고 그건... 진수의 말대로 자식의 마음에 못을 박는 행동이지.
희진이는 우리의 선택을 존중해줬지만 진수는 수진이가 수명을 늘리는 수술을 받지 않은 것에도 화를 냈고 우리가 같은 날에 죽겠다고 한 것에도 반대를 했다.
미안했다.
이 나이가 되서 자식 마음에 못을 박을지는 몰랐는데 말이다.
"미안하다, 진수야. 그래도... 우린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어쩔 수가 없어."
"그래. 엄마는 아빠랑 항상 함께니까 우리 진수가 참아야지~"
"하아... 네. 맘대로 하세요."
"으이구! 오빠는 진짜 파파보이, 마마보이라니까!"
"닥쳐, 이년아!"
진수와 희진이의 투닥거림을 보며 우리는 쓴웃음을 지은채 그 뒤를 따라갔다.
"고맙네. 뭔가 이런 식으로 약속이 지켜질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요. 시대가 변하는 것도 나쁘지 만은 않아요."
죽을때까지 수진이의 옆을 지킨다는 그 약속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서럽기만 했는데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수진이와 나누었던 약속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어떻게 될지 한치앞도 알 수 없는게 세상사라던데 딱 그말이 어울리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
봄이 오면 꽃구경을 가고 여름이 오면 계곡이나 바다로 드라이브를 가고 가을이 오면 단풍축제를 즐겼고 겨울이 오면 지난 계절을 돌이켜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가는 곳엔 항상 수진이가 있었고 수진이가 가는 곳엔 항상 내가 있었다.
가끔은 진수와 희진이도 우리가 가는 곳에 따라왔고 손주들도 따라와 우리의 이야기에 어울려 주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아무리 즐거운 소풍이라도... 언젠가는 돌아가야할 순간이 찾아오고야 만다.
그리고 그건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평소처럼 잠에서 깬 어느 날.
나와 수진이는 불현듯 우리에게도 끝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수진이가 내 손을 꼬옥 잡아왔다.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 내린 첫눈처럼 머리가 하얗게 변한... 곱게 늙은 수진이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채 나를 올려다 보았다.
"선생님."
"어."
"이제... 말해주실 때 됐죠?"
"뭐가?"
"잊으셨어요? 죽을 때 되셨다고 노망이 나셨네."
"100살 먹은 할망구한테 들을 이야기는 아니야."
"호호. 얼른 말해주세요."
"그래, 말해줘야지."
수진이가 바라고 있는 이야기는 언젠가 수진이가 나에게 물어왔던 질문에 대한 답이리라.
수진이가 아직 대학을 다닐때 과제로 나왔던 사랑이란 것에 대한 질문.
나는 그 질문을 미루고 미뤘다.
그때는 차마 수진이에게 사랑이 뭔가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지금도 사랑이 뭔지 능숙하게 설명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나도 수진이도 이제 길지 않다.
그러니 이제는 들려줘야만 한다.
"수진아."
"네..."
"미안해. 나는 사랑을 뭐라고 표현할지 모르겠어.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사랑에 대해서 고민했어도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너무 어렵네."
"후후, 선생님 답네요..."
"그래도 너라면 알겠지. 내 사랑을 너라면 알거야. 내가 살아오며 너에게 했던 모든 행동이 다 사랑이야. 너를 바라보는 시선, 너에게 건네는 말, 너를 생각하는 마음, 진수와 희진이를 사랑하는 마음. 그 모든 것이 너를 향한 사랑이었어."
"네..."
"38살 철없던 아저씨로서 너를 만난 그 순간부터 노인네가 되어 네 곁이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어. 정말 많은 것들이 변했지."
"네..."
"즐겨가던 카페도 망했고 우리가 처음으로 만든 커플 머그컵도 깨졌어. 세월이... 많은 것을 빼앗아갔지.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어."
"네..."
"너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너를 향한 내 마음. 너를 사랑했다는 마음 만큼은 변하지 않았어. 수진아... 나랑 결혼해줘서... 가족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워."
"..."
"수진아?"
"..."
"바보야... 100살에 죽겠다면서 왜... 벌써 눈을 감아... 아직 1년 남았는데... 난... 너와 한 약속... 다 지켰는데... 왜... 아직... 새해도 못 봤잖아..."
추욱 늘어진 수진이를 품에 안았다.
나보다 작고 연약했지만 언제나 날 든든하게 지탱해주던 수진이.
수진이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흘러가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던 순간, 처음으로 싸웠던 순간, 장모님에게 우리의 결혼을 허락받은 순간, 결혼식을 올렸던 순간, 신혼여행을 간 순간, 진수의 회임소식을 들었던 순간, 진수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 진수가 어린이집에 들어간 순간, 희진이가 태어난 순간, 진수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그 모든 순간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져갔다.
내가 떠올린 모든 순간 속엔 항상 수진이가 함께했다.
이젠... 수진이가 없다.
그걸 깨달은 순간 가슴이 미어질 것같고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끊임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경고음을 내며 붉게 점멸하고 있는 팔찌를 내려다 보았다.
이제 몇분의 시간이 흐르면... 수진이가 떠나간 곳으로 갈 수 있다.
"천천히 쫓아오라고... 했더니... 먼저 가면... 어떡해... 하여튼... 승부욕은 알아준다니까..."
나는 잠을 자듯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수진이를 품에 안았다.
"만약... 내세가 존재하면은... 그때도 너를 만나서... 함께하고 싶어... 그 정도로 사랑해 수진아..."
수진이를 끌어안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점등하던 팔찌의 불빛이 꺼지고 무언가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수진이를 따라갈 수 있겠지.
다행이다. 이제 다시 수진이를 만날 수 있어.
"아버지!!!"
이제 눈을 감고 편해지려는 순간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수였다.
진수는 얼굴이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상태로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으윽... 크윽..."
진수는 그대로 우리를 끌어 안았다.
"미안하다, 진수야..."
"아버지이..."
"사랑한다 진수야. 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웠다."
진수가 나를 부르며 울부짖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더는 그 부름에 아무런 말도 들려줄 수 없게 되었다.
그대로 나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졌다.
미안하다 진수야.
아빠는... 먼저 간 엄마를 만나러 가야겠어.
나의 의식은 그렇게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