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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3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6) (233/301)



〈 233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6)

진수가 8살이 되고 희진이가 3살이 되었다.


희진이는 이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졌고 진수는 초등학생이 되어 더욱 활발해졌다.

차이점이 있다면 예전엔 주말마다 나와 수진이에게 같이 놀러 가자는 이야기를 꺼냈었는데 이제는 친구들과 놀러 간다고 놀러 가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일까.

어느 날을 축구교실에 다니는 친구들과 놀다 오고 또 어느 날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 또 어느 날은 초등학교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놀다 오기 시작했다.


그래. 진수는 수진이나 나와는 다르게 굉장히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의 아이로 자라버렸다.

진수와 캐치볼도 하고 농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싶었으나 어느새 친구들과 노는 걸 더 즐거워하는 진수를 바라보는 마음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아이가 커서 기쁜 마음도 있고 너무 빨리 자라버려서 아쉬운 마음이 공존한다.


"결국에 얼마 쓰지도 못했네요."

"그러게."


야구 글러브.


아직 어렸던 진수에겐 너무 커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같이 캐치볼이나 할까 해서 산 물건인데 진수는 나랑 노는 것보다 친구들이랑 노는 걸 더 좋아해서  일이 없어 보였다.

"쓸쓸해요?"

"그렇지. 아이들은 진짜 순식간에 커버리네."

"아빠, 쓸쓸해?"

"아니. 우리 희진이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이제 어설프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희진이.


아파서 병원도 자주 가고  먹는 것도 재우는 것도 일이었던 희진이가 어느새 자라서 우리랑 말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꿈만 같다.


희진이는 진수랑은 완전 딴판이라서 동물원에 갔을 때도 문제였다.

설마 입구에 있는 새들을 보고도 울어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지.

나도 수진이도 희진이를 달랜다고 진땀을 뺏다.

어쩌면 진수가 칭찬 스티커로 놀이공원이나 동물원에 가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것엔 희진이의 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 오빠는?"


"오빠는 학원 끝나면 돌아올 거에요~"

"학원?"


"응. 학원은 오빠가 공부하는 곳이야."


희진이는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다음부터 세상 모든 것들이 다 궁금한 모양인지 계속해서 뭔가를 물어왔다.


그런 모습은 진수와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이제 희진이도 내년이면 유치원에 보내야겠네."

"그러게요. 이제 희진이도 유치원에 가면 좀 느긋해지겠어요."

"시간 참 빨라. 이제 수진이도 30줄이 코앞이네."

"큭! 벌써 30이라니!"


앞으로 2년만 있으면 수진이도 30대가 된다.


시간이 참 빠르긴 빠르지.


"우리 서방님은 곧 50대네?"

"그러게. 이제 50대네."

하루가 다르게 나이를 먹어감을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아무리 무거운 무게를 들 수 있어도 신체 자체가 약해지는 건 어쩔  없는 문제인지 요즘따라 몸이 무겁게 느껴지고 있다.


잠도 적어지는 기분이고 말이다.


하지만 수진이에게 그걸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수진이는 내 나이와 수명에 관한 내용에 제법 민감하게 반응을 하니 되도록 신경 쓰지 않았으면 했으니까.

주기적으로 건강검진도 받고 있고 의사의 말로는 내 신체나이는 30대 수준으로 매우 건강하다고 한다.

근력이나 체력 같은 건 오히려 30대보다 건강하다고 하니  더 오래 살 수 있겠지.


식습관도 바꿨다.


근육을 위해서 육식 위주로 하던 식단에서 채식과 어류를 중심으로 먹는 식단으로 바꿨고 빨리 먹는 습관을 버리고 천천히 먹게 되었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1년이라도  오래 살  있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그러고 보니 진수 공개 수업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네. 이번 달 말에 한다고 했어요."

진수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최초로 하게 되는 공개 수업이 3월 마지막 주에 예정되어 있다.

다른 말로 학부모 참관 수업.


요즘 진수는 학원을 다녀온 다음엔 곧장 본인의 방에 틀어박혀서 공개 수업에 발표할 내용을 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나도 수진이도 일단은 글로 먹고사는 직업이라 진수에게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꺼내봤지만, 진수는 이것만큼은 본인이 하겠다며 우릴 방에서 쫓아냈었다.


진수는 도대체 뭘 하고 싶길래 저리 숨기는 건지.

"진수가 쓴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진수가 쓴 거?"

"네."


"글쎄..."

진수가 쓴  그거겠지.


"아마 장래희망이 아닐까 싶은데."

"왜요?"

"원래 그 나잇대의 아이들을 데리고 학부모 참관 수업을 하면 거의 100퍼센트 장래희망부터 튀어나오게 되어있지."

"그럼 진수는 뭐가 되고 싶다고 썼을까요?"

"음... 축구선수라고 쓰지 않았을까? 축구교실 다니는  즐거워하잖아."


"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수진이는 어린이용 퍼즐을 맞추며 놀고 있는 희진이를 힐끔 바라본 다음에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가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이다.


"넌 뭐라고 생각하는데?"

"당연한 거 아니에요? 작가죠."

그게 어째서 당연한 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수진이는 진수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내기라도 할까?"

"콜! 내용은?"

"소원권 한 장으로 합시다, 부인."


"좋죠. 딴말하기 없기?"

"없기."

그렇게 축구를 좋아하는데 축구선수라고 하겠지.


그 나잇대의 남자애들이 장래희망이라고 하면 대통령, 과학자, 의사, 경찰, 축구선수 뭐 이런 거지 작가가 나오진 않는다니까.


***

수업 참관 일이 되었다.

수진이는 진수의 재롱잔치에 갔을  만큼 몸에 이것저것 찍고 바르며 열심히 준비했다.


나 역시 이번에는 조금 신경을 써서 꾸몄다.


재롱잔치는 몰라도 공개수업부터는 굉장히 신경을 써야 하니까 말이다.

이 나잇대의 아이들은 순수한 만큼 잔혹하다.

수업 참관을  부모가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왕따가 된다는 이야기도 나오니까 말이다.

라떼는 부모님이 공개 수업에 와주시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는데 이제 부모님 외모로 왕따를 하는 세대라니 정말 안타깝다.


테스형, 테스형. 나라 꼬라지가 말이 아니야.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공개수업이 시작되기 20분 전.

미리 학교에 도착하고 보니 얼굴을 아는 몇몇 학부모들이 있어 인사를 나누었다.

그 중엔 혁진이의 어머님도 있었다.

회계사는 1~3월이 가장 바쁜 걸로 알고 있는데 3월 말이라도 이곳에 오신 것을 보면 굉장히 무리하셨겠지.


3개월간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셨는지 화장으로 다 가리지 못한 피곤함이 얼굴에 묻어나와 있었다.


"엄마!"

하지만 그 피로에 찌든 얼굴은 곧 환한 미소가 되었다.

온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잘 찾아오지 않은 엄마가 공개수업을  것을 확인한 혁진이가 엄마를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그래. 저 환한 미소를 보기 위해서면 고생도 참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진수야~"

"엄마!"


이번엔 진수가 우리 쪽으로 뛰어와선 나와 수진이를 끌어안았다.

우리는 진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잘하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희진아. 오빠 잘하세요, 해야지."


"오빠. 잘 하세여."

"고마워, 희진아!"


진수는 희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다음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선생이 들어왔다.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곤 수업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 건지 설명하는 담임.

내용은 내 생각대로 장래희망에 대하여 발표하는 형식인  같다.

교사는 창가에  번째 자리에 앉아있는 아이부터 발표를 시켰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단순했다.

역시 대통령이나 의사나 축구선수나 기타 등등.


 예상했던 수준의 발표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진수가 발표할 차례가 되었다.

진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발표할까.


"저의 장래희망은 작가가 되는 겁니다!"

"내가 이겼넹~"

"젠장."

진수는 수진이랑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작가가 되고 싶다는 장래희망을 발표했다.

이럴 수는 없는데... 그렇게 축구를 열심히 하던 녀석이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말을 하지 않은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저는 아빠랑 엄마가 정말 좋습니다. 주말에 놀고 싶다고 하면 놀이공원도 데려다주고 동물원도 데려다줍니다. 그런데 신경 쓰이는 게 있었습니다. 친구들 아빠는 다 바빠서 잘 놀아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는 엄마에게 아빠는 왜 일하러 가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아빠가 작가여서 집에서 일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작가가 뭐냐고 물었는데 집에서 글을 쓰며 돈을 버는 직업이라고 합니다."

"부인."


"왜요?"


"솔직히 이건 치사한 거 아니냐?"


"푸풉! 이게 정보화 시대라구요?"

치사한 녀석.


 녀석은 진수가 어떤 장래희망을 적을지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 내기를 걸어온 건가.


우리가 티격태격하는 동안에도 진수의 발표는 계속되었다.

"아빠는 작가라서 저랑 놀아주면서도 돈을   있다고 했습니다. 저도 아빠처럼 가족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진수는 그리 말한 다음 자리에 앉았다.


그래. 진수는 작가가 되고 싶구나.


어차피 초등학생의 장래희망이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 바뀌게 되겠지.

그런데도 진수가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나의 일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는 것에서 오는 묘한 감동이 있었다.

"저의 꿈은 회계사입니다!"

그리고 그건 혁진이의 어머님도 똑같았나 보다.


혁진이는 부모님이 회계사라서 회계사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들은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회계사가 뭔지 잘 모르나 보다.


혁진이도 회계사가 뭔지는 잘 모르는  같지만, 부모님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어떻게든 엮어 만든 이야기를 발표하며 회계사가 왜 되고 싶은지에 대해 마무리를 지은 다음 자리에 앉았다.

혁진이의 어머님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박수를 치고 계셨다.

회계사. 되기도 어렵지만 되고 나서도 바쁘고 피곤한 직업이지.


그런 직업을 갖고 싶다고 하는 아이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게 느껴지시겠지.


가장 특이한 발표는 진수와 혁진이의 발표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으로 발표한 아이가 가장 특이했다.


"저의 장래희망은 공무원입니다!"


여기서 공무원이 나올 줄은 몰랐지.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발표한 여자애는 상당히 똑 부러진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왜 공무원이 되고 싶은지 제법 논리적인 발표를 이어나갔다.


신기했다.


 아이의 부모가 누군지 궁금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아이는 발표를 끝내고 우리 쪽을 짧게 힐끔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무래도 부모가 오시지 않은 아이인 듯하다.


저 아이의 조숙함은 가정환경이 만든 것일까.

그 모습이 대견해 보이면서도 조금 안타깝게 느껴졌다.


"여보~ 소원권은 밤에... 알지?"

"..."

 남자들이 의무방어전을 무서워하는지 알겠다.

이젠 수진이가... 무섭게 느껴졌다.


***

"아빠."


"응?"

"아빠 도둑질했어?"


"무슨 소리야?"

"내 친구들 부모님이 아빠를 도둑이라 불렀대."


"아하하!"

수진이는 진수가 들려준 말에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도둑이기는 하지.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면..."


수진이는 진수를 앉혀놓고 내가 왜 도둑이라 불리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이거 진수의 장래희망이 작가에서 도둑이 되는  아닌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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