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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8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1) (228/301)



〈 228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1)

"진수야."

"웅..."

"왜 이렇게 뚱해 있어?"


진수는 우물쭈물하며 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뭔가 말하길 꺼리는 느낌이다.


"아빠가 맞춰볼까? 엄마가 희진이한테만 신경 써서 그렇지?"

"아니야!"


진수는 정곡을 찔렸는지 제법 큰소리로 내가 한 말을 부정했다.


수진이가 희진이를 회임했을 때 동생이 생긴다고 알려주니 동생이 뭔지  모르면서 좋다고 하던 녀석이 이젠 동생을 상대로 질투하는 모양이다.

하긴, 아직 5살밖에 되지 않은 녀석이라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른다.


나는 진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진수야. 우리 진수는 엄마, 아빠한테 엄청 고마운 아이였어."

"그게 무슨 뜻이야?"


진수는 아이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진수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진수의 손을 붙잡았다.


진수의 돌잔치가 엊그제 같은데...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게 바로 어제 있었던 일들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컸다.

나름 남자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같은데 부모의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해서 외롭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희진이가 생각보다 몸이 자주 아파서 엄마가 마음고생이 심해서 그런 거야. 우리 진수는 그런 게 전혀 없었거든."


"어땠는데?"

"우리 진수는 또래 애들보다 덩치도 컸고 밥도 잘 먹고 병원 갈 일도 없을 정도로 튼튼했거든. 밤에 잠도 잘  깨고 푹 자서 고생도 안 하고 키웠어."


진수는 이렇게 튼튼한 아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병원에  일이 거의 없는 튼튼한 아이로 자라줬다.

하지만 희진이는 아토피 증상이 있고 고열로 몸이 펄펄 끌었던 적도 있어서 수진이가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희진이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그러니 진수에게 평소에 향하던 시선이 희진이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고 진수는 그게 못내 서운했던 모양이다.


"진수야, 엄마가 우리 진수를 키우면서 썼던 일기 한  읽어볼래?"


"웅..."

나는 진수를 내 다리 사이에 앉혀놓고 수진이가 썼던 육아 일기를 읽어주기 시작했다.

"`진수가 처음으로 걷기 시작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 학교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으려니 진수가 갑자기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거든. 너무 놀라고  한편으로 기뻐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는다고 한참 난리를 치다 보니 수업에 지각할 뻔했어!`"


"아빠. 엄마도 학교에 다닌 거야?"

"어. 엄마는 어른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녔었어."


나는 진수의 의문에 답해준 다음 계속해서 진수에게 수진이가 썼던 육아 일기를 들려주었다.

진수의 돌잔치.

처음엔 부모님과 수진이의 가족만 부르려고 하다가 친구놈들이 찾아와서 시끌벅적했다.


인한 강사 아니, 인한이는 강의가 있어서 축하를 못 해줬지만, 그날 밤 카톡으로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었지.

인한이는 내가 학원도 그만뒀고 근처에 살고 있으니 그냥 형이라며 준수 형이라고 부르고 있어서 나도 인한이라 부르기로 했다.

진수의 2돌이 되기 전.


진수에게 TV로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보여줬더니 춤을 추며 TV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옹알이를 시작했었다.

신기해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 수진이가 휴대폰을 꺼내 들고 동영상을 찍었었지.


신기했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녀석이 뭔가 옹알거리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니 언제 이렇게 컸나 싶었으니까.


진수가 3살이 되었을 때, 그때부터 진수와 대화를 할  있게 됐다.


대부분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진수와 말이 통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즐겁고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이제 알겠어? 엄마가 굉장히 즐겁게 써놨지?"


"웅."

"진수야. 엄마가 희진이를 임신했을 때 기억나?"


"웅."

"배가 어땠지?"

"배가 이만했어!"

진수는 그리 말하며 본인의 팔을 최대한 멀리 뻗어서 수진이의 배가 얼마나 컸는지 설명했다.


"그래. 아빠가 드는 무거운 아령 기억나지? 엄마는 그렇게 무거운 걸 배에 넣은 상태로 1개월이나 우리 진수가 태어나길 기다렸단다. 엄마가 진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지."


"웅..."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따라올 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진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처음엔 수진이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커 가면서 나를 닮아 오기 시작한 진수.


오늘은 진수랑 좀 재밌게 놀아줘야겠다.

***

"희진이는?"


"잘 자요. 아, 진수도 자네."


수진이는 놀다가 피곤해져서 잠이  진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고생했어."

"서방님도요."


수진이는 그리 말하며 소파에 앉아있는 내 옆에 앉아 내 어깨에 기댔다.

"진수가 엄청 손이 안가는 아이기는 했나 봐요. 희진이는 밤에 잠도 잘 깨고 가리는 음식도 많고 피부도 약하고."


"그렇지."


희진이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긴 하다.

낮잠을 잘 시간이 되어도 잠을 잘 못 자고 잠이  때까지 어르고 달래야 잠이 들곤 했으며 입맛도 까다로워서 처음 먹어보는 건   먹다가 바로 먹기 싫다고 고개를 돌려버려서 손이 많이 갔다.


수진이는 희진이가 그럴 때마다 혹시 몸에 문제라도 생길까 봐 마음고생도 심하게 했다.

"사람들이 육아를 힘들다 하는 건 원래 이런 느낌이겠죠?"


수진이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살짝 들어 나를 바라본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젠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20대 중반이 되었으며 대학교도 졸업한 수진이.


풋풋하면서도 요염한 느낌이 나던 여성에서 이젠 풋풋한 느낌은 사라지고 요염한 느낌만이 남은 수진이.

어느새 수진이도 어른이 되어 있었다.


"진수가 많이 외롭나 봐."


"진수가 우리 서방님 많이 닮았다. 그죠?"


"그러게. 나도 니가 옆에 없으면 언제나 외로운데."

"히힛."

수진이는 진수가 우리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게 됐다.

이제 곧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에 다닐 진수가 선생님이라는 표현에 헷갈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제는 서방님이나 여보, 남편 같은 표현을 쓰는 수진이.


가끔은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던 그때가 그립다고 느껴진다.

"이제 진수도 어린이집에 다니고 유치원도 다니고 그러겠네."


"시간 참 빨리 가네요. 희진이도 그럴까요?"

"그렇겠지."

수진이는 내 손에 깍지를 껴왔다.

그리곤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감았다.


나는 수진이의 입에 입을 맞췄다.

"갑자기 외로워졌어?"

"어떻게 아셨지?"


수진이는 짐짓 놀란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나는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수진이의 입에 입을 맞췄다.

"나도 우리 애들이 훌쩍 커버린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씁쓸하네. 기쁘면서도 또 한편으론 외롭고."

"역시 사랑은 서로가 닮아가는 거라니까요?"


수진이는 그리 말하며 싱긋 웃었다.

그립다. 수진이가 대학 과제를 하며 사랑은 무엇인가를 조사할  했던 그 말이다.


나는 수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래. 그것도 맞는 것 같으니까.


"쓸쓸하네요. 이렇게 작았던 진수가 어느새 이리 커버려서 엄마 엄마하고..."

"그래도 너무 그렇게 쓸쓸해 하지는 말고."

"왜요?"

나는 나를 살짝 올려다보는 수진이의 뺨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진수랑 희진이가 커서 독립을 해도 난 옆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쓸쓸하면... 알지?"

"치~. 그럴 힘은 있으신지?"

"진짜로 셋째도 가져보실래?"


"꺄악!"

수진이가 작게 앙탈을 부리며 소파에 누웠다.


나는 그대로 수진이와 셋째를 만들려고 하다가 거실에서 잠이 든 진수가 생각나서 손을 움츠렸다.

아이가 자라는  좋은데 이건 또 문제가 생기는구나.

***

"자, 진수야!"

5월이 되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봄날.


우리는 소풍을 나왔다.


수진이는 돗자리를 펴고 앉아 나와 진수가 캐치볼을 하는 모습을 보며 웃고 있다.


수진이의 곁에는 곤히 잠이 든 희진이가 누워있다.

"아빠!"


"그래."

진수가 던진 공을 받는다.

처음 진수와 이리 공을 주고받을 땐 대부분 내 머리를 넘기거나 바닥에 떨어지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제법 그럴싸한 공을 던져온다.

"우리 진수. 커서 야구 선수도 하겠는데!"

그리 말해주자 진수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씨익 웃으면서 공에 힘을 줘서 던져왔다.


너무 힘을 줬는지 컨트롤이 엉망이라 잔디에 튕기고 데굴데굴 굴러오는 공.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 공을 주웠다.

"아직 멀었네!"


"아니야!"


"싸우지 말고 와서 밥이나 먹어요!"

나와 진수는 수진이가 부르는 소리에 돗자리로 가서 앉았다.


"자요."

수진이가 건네준 물티슈로 손을 닦고 젓가락을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준비한 보람이 있는지 진수는 맛있다는 듯이 먹기 시작했다.

"어때? 맛있지?"

"응! 아빠 최고야!"

"그래. 아빠가 최고지."

나는 진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다음 조금 서둘러서 김밥을 입에 집어넣었다.


희진이가 잠에서 깨어 희진이의 점심도 챙겨야 하는데 수진이가 희진이를 챙긴다고 밥을 먹지 못하고 있으니 얼른 먹어서 희진이를 챙겨줘야지.

내가 급하게 밥을 먹고 있으려니 진수도 나를 따라서 급하게 밥을 먹다가 밥이 목에 걸렸는지 켁켁 거리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서 진수에게 물을 주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천천히 먹어야지. 아빠는 어른이라서 괜찮은데 아이는 아직 안돼."


"여보도 천천히 먹어요. 난 괜찮으니까."

"아니야. 이제  먹었어. 희진이 이리 줘."

나는 수진이에게서 희진이를 받아 품에 안고 젖병을 물렸다.


희진이는 맘마를 먹을 때도 우리의 눈치를 보며 입에 젖병을 물었다 뗐다 하며 장난을 친다.


"꺄으으, 아!"


"그래그래. 아빠예요. 아빠. 맘마 먹자."


희진이는 양손과 양발을 흔들며 장난을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배가 벌써 부른 건가.

젖병에 든 분유는 아직 절반이나 남았다.

아무래도 장난이 치고 싶은 모양이다.

"공주님. 맘마 먹어야죠. 아~ 하세요. 아~"


희진이는 젖병을 피해 고개를 돌리고 장난을 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젖병을 물었다.

"진수가 진짜 편했네."

"그러게요."


우리는 웃으면서 느긋한 소풍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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