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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5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27) (225/301)



〈 225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27)

"대학교는 오랜만이네."

"어때요? 예전이랑 많이 다른 거 같아요?"


"거기서 거기 같은데?"

수진이의  등교일 때 같이 온 이후로 처음으로 오는 대학교.

조금은 달라졌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리 달라진 건 없었다.

애초에 나에게 대학교란 이력서나 명함에 한 줄 더 써넣을 스펙에 불과했으니까.

대학교에서의 추억이란 군대에 가기 전 동아리 활동을 하며 동기나 선배들과  파티를 벌이던 게 끝이다.


"근데  이상한 교양이네."


"그죠?"


수진이가 듣는 강의는 연애와 결혼이라는 주제의 세미나 형식의 강의라고 한다.


어떻게든 학점을 채우려고 끼워 넣었는데 생각보다 재밌고 알차다고 했던가.


그런데 강의가 연애와 결혼이라는 주제라서 기말과제 역시 연애와 결혼이라는 주제라고 한다.

"저를 위해 준비된 강의라니까요?"

그리 말하며 키득 이는 수진이.


하긴, 유부녀니까 연애와 결혼이라는 주제에 이 만큼 적임자가 없겠지.


"하아...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많이 걱정돼요?"

"당연하지."

"후훗. 선생님이 학원 강사 계속하고 계셨으면 어찌할 뻔 했는지 모르겠네."

수진이가 듣는 교양의 과제는 특이한 과제였다.


연인이 있거나 호감이 있는 이성과 데이트를 하며 사진을 찍고 사랑과 연애, 그리고 결혼이라는 주제로 리포트를 쓰는 것이 과제라는 듯하다.

그래서 진수를 장모님에게 맡기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수진이가 산후조리원에서 퇴원하고 우리 집으로 돌아온 날부터 나는 진수와 떨어져 본 적이 없다.

걱정된다.

이제 진수는 모유를 마시지도 않고 이유식도 먹고 있으며 엉금엉금 기어 다닐 수도 있어 아직 태어난  100일도 되지 않은 아이랑은 비교도 할  없을 정도로 튼튼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도 항상 붙어있던 녀석과 잠깐이라도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우리 집은 진수가 다칠 물건은 전부 치워뒀고 항상 손에 잡히는 물건을 입에 집어넣는 진수를 생각해서 손이 닿는 위치에 있는 물건은 전부 살균 소독을 마친 물건들이다.

하지만 수진이의 친가는 그렇지 않다.

혹시 입에 뭔갈 잘못 넣었다가 병이라도 걸리는 건 아닌지 어디 다치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쉬는 날인데 진수 때문에 쉬지도 못하시는 장모님께 죄송하기도 하고...

"그렇게 머릿속에 진수가 가득하신 분이 왜 그리 위험한 놀이를 하고 그러시지?"

"안 위험하다니까 그러네."


부천에 있는 친가에 들렀다가 올라오는 길에 장모님을 만나러 가자는 이야기를 꺼냈을 땐 설마 이런 일이 기다릴 줄은 몰랐다.


3월이 되어 수진이가 등교를 시작했을 때 엄마는 어디 갔느냐며 빼애액 하며 울던 진수가 떠오른다.


장모님은 나도 수진이도 없어 스트레스를 느낄 진수를 달랠  있으시려나.


"그렇게 걱정되면 빨리빨리 하고 끝내면 돼요."

"그래."

수진이의 말대로 얼른 끝내버리면 된다.


처음엔 진수와 떨어져야 한다는 점도 있어서 이 강의와 과제에 대해 적잖이 부정적인 생각을 했지.

수진이에게 이런 강의가 요즘 유행이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OT때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를 해줬다.


우리나라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율의 현주소를 보면  강의를 개설한 이유를 이해할  있을 거라며 수치를 보여주며 설명했다더라.


구체적인 수치를 말해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지.


근데 걸리는 점이 있긴 했다.

"근데 솔로거나 아는 이성이 없으면 어떡해?"

"그런 사람들은 그냥 가상으로 이런 사람과 연인이 되었다면~ 하고 리포트를 쓰거나 강의실에 있는 다른 이성에게 말을 걸어서 데이트하라던데요."


그것참 편파적인 과제로다. 솔로는 서러워서 살겠나.

아니, 애초에 연인이 없거나 아는 이성이 없는 사람은 이 강의를 듣지 않을 테니 괜찮으려나.

"그래서 강의 분위기는 어때?"


"으음~ 그냥 그래요. 애초에 연애에 생각이 있는 사람만 듣는 강의라서요. 아, 근데 교수님이 그러더라구요. 요즘은 남학생들의 수강신청이 저조하다고."

"그래? 신기하네."


라떼는 여학생이 많이 참가하는 강의만 들으러 다니는 남학생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남자들이 연애에 더 소극적이래요.  N포 세대라고 하잖아요. 그냥 연애를 포기한다던데."

그것참 안타까운 세대다.


그럼 수진이가 듣고 있는 강의는 대부분 여자겠구나.

신기하네. 연애를 포기하는 남자들이 그리 많다면서 여자들은 연애를 많이 하나보다.


수진이는 나와 팔짱을 낀 상태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물론 학생증이 필요한 곳은 들어갈 수 없었지만, 수진이는 그냥 나와 함께 캠퍼스를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모양인지 얼굴에 웃음꽃이 환하게 핀 상태다.

"왜 오늘따라 그렇게 방긋 방긋이야?"

"대학생활이라고 하면 한 번쯤은 이런 상상도 해보고 그러잖아요."

수진이는 아무래도 그 CC인가 뭔가 하는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 대학생이면 누구나 다 한 번쯤은 CC에 대해서 꿈꾸곤 하지.

30이 될 때까지 모쏠이었던 나도 CC를 꿈꾸긴 했다.


"선생님이 가정형편으로 바빴던  군대에 있던 때라고 했죠?"


"그렇지."

"그럼 군대에 가기 전엔  솔로였어요? 그 사람이 첫 데이트라고 했으니까 모쏠이었던 거죠?"


"크흠."

고추 새끼들이랑만 놀다 보니 여자한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잘 몰라서 내가 슬슬 피했던 게 컸다.


아니, 그땐 뭐랄까... 그, 말로 표현하긴 힘든 병에 걸려있었다고 해야 하나.


주변의 대학 동기들은 여자랑 어떻게  돼서 모텔에 끌고 갈 생각이 만만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이게 연애인가 싶어 환멸을 했다.

섹스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의 교감을 이룬 다음에야 비로소 부산물로 딸려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앞뒤가 꽉 막힌 녀석이었다.

나도 참 어렸지.


지금은 어떻게 해야 수진이랑 야시시한 분위기에서 서로 물고  수 있을까만 생각하는 개변태가 됐는데 말이다.


"그럼 선생님도 CC하는 기분으로 즐겨주세요. 저만 즐거워하는 거 같아서 좀 그러니까."

"아냐. 나도 재밌어."

"그래요? 아닌  같은데..."


완전히 즐기고 있다고는 못하겠다.

나와 수진이는 캠퍼스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디저트를 사 먹기도 하며 연인들이 할만한 행동들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돌아다니고 있으려니 당연하다는 듯이 호기심과 질투, 비웃음이 담긴 시선이 날아오고 있었다.

수진이와 외출할 땐 우리 사이에 진수가 항상 있었다.


그러니 수진이가 좀 동안으로 보이는 아내고 나는 능력이 좋아 미인에 어린 신부를 잡은 남편이었지.

하지만 지금 우리  사이에는 진수가 없다.

그러니 사람들의 시선이 이렇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남자들의 시선은 조금 부럽다는 시선에 가까운 가벼운 질투지만 여성들의 시선은 호기심과 비웃는 듯한 느낌의 시선이 더 많았다.

진수가 빠진 것뿐인데도 이리 달라지는 걸까.

특이하긴 했다.

진수가 곁에 있을 때는 여성들에게서 느껴지는 시선은 뜨뜻미지근한 시선이었는데 진수가 없자마자 이렇게 달라지다니.


수진이를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며 피식거리는 여자들이 몇몇 보였다.


수진이도 그걸 눈치채긴 했는지 울컥한 표정을 지었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별꼴이야. 속닥속닥속닥속닥!"


"너도 20살 여자애가 40대로 보이는 사람이랑 연인처럼 팔짱을 끼고 노닥이면 호기심이 들긴 할  아냐?"

"옛날이면 몰라도 이젠 그러려니 하죠."

"그럼 그냥 이것도 그러려니 해. 아니, 오히려 과시라도 해주자고. 요즘 젊은 애들은 연애도 안 한다며?"


"그럴까요?"

수진이는  말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팔을 안는 팔에 힘을 주고 척척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캠퍼스에서 조금 벗어나 대학가를 걸으며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데이트를 했다.


소프트콘을 하나 사서 나눠 먹거나 근처의 안경점에 들러서 서로에게 안경을 씌워주기도 하고 커플들이 데이트하는 코스를 돌아보기도 했다.

"아, 선생님 저거 어때요?"

"사격?"


군대를 전역한 지 벌써 20년은 됐는데 사격이라니 자신은 없는데...

그래도 이왕 왔으니 해보긴 해야지.

우리는 먼저 왔던 커플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계산을 마치고 서로 나란히 사로에 섰다.


"내기라도 할까요?"

"뭔 내기?"

"이기면 청소 당번 한 번 빼주기."

"콜."

"우리 여보야가 자신만만 하신 거 같은데... 벌써 20년도 더 됐는데 잘 되겠어요?  친구랑 종종 와서 자신 있다구요?"

비겁한 녀석.

어쩐지 갑자기 사격 이야기를 꺼낸다고 했네.

나는 조금 못마땅한 눈빛으로 수진이를 째려봤다.

그러자 수진이는 웃으면서 혓바닥을 내민다.


후우. 진정하자.

근데 이거 영점조절이나 그런 건 어떻게 되어있는지 모르겠네.


안내문에는 영점조절은 다 되어있다고 적혀있는데 영점조절이 되어있는 총이 어딨어?


사람마다 영점조절은  다르다고 배웠는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수진이와 사격게임을 시작했다.

비비탄 총알로 과녁을 맞혀서 최대한 많은 점수를 따는 게 목표인 모양이다.

위로 갈수록 과녁이 작아지고 점수가 커지고 밑으로 내려올수록 과녁이 커지고 점수도 작아진다.


처음엔 총알이 어디로 튀는지 확인하기 위해 밑의 커다란 과녁을 맞추는 거로 해야겠다.

나는 차분하게 숨을 들이쉬고 살짝 내쉰 상태로 숨을 참고 과녁을 쏘기 시작했다.

신기하다. 예비군도 끝난 아저씬데 아직도 몸에 익었는지 자세만큼은 안정적이었다.


첫발로 쏜 비비탄은 과녁이 커다래서인지 아주 쉽게 넘어갔다.

총알이 튄 부분은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두세 발 더 쏴보면 어디쯤으로 날아가는지 알 수 있겠지.


수진이가 쏘고 있는 과녁을 슬쩍 바라봤다.


수진이는 경험자긴 한지 밑에 있는 3개의 과녁을 다 맞힌 상태였다.

솔직히 청소 당번  번쯤은 대신 해줄 수도 있다.


근데... 왠지 내기라고 하면 지고 싶지 않단 말이지.

수진이는 내기에서 졌을 때 인상을 찌푸리고 얼굴이 빨개져선 볼을 부풀리는데 그게 그리 매력적이다.

오늘은 그 얼굴을 한번 보고 싶었다.

차분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비비탄을 쐈다.


 밑과 중앙은 손쉽게  넘어뜨렸는데 맨 윗줄로 넘어가자 5발을 쏴서 3개의 과녁을 넘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아무래도 탄이 왼쪽 대각선 위로 살짝 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것만 주의해서 쏘면 되겠지.

그 후로 우리는 장전된 총알을 모두 소비될 때까지 쏘고 또 쐈다.

수진이는 나보다 먼저 총을 내려놓고 기분 좋은 미소로 내 쪽을 돌아봤다.

나는  시선을 느끼면서도 차분하게 총을 쏘고 수진이보다  5초 정도 더 늦게 총을 내려놨다.

"...왜지?"

"뭐가?"

"왜냐구요! 아이 씨!"

나는 초반에 2발을 흘리고 후에 1발을 흘려 35발 중에 3발만을 흘렸는데 수진이는 한 10발은 흘린 것 같다.

그래도 여자치곤 잘 한 거라고 생각해.

조금 전에 있던 커플은 우리보다 훨씬 못했으니까.

"폼은 일시적이어도 클래스는 영원하다..."

"아그아그악! 청소 당번...!"


수진이는 한숨을 쉬다가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아, 저 표정은 또 처음 보네.

왠지 그 고양이 귀가 달린 여자캐릭터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울먹이는 표정을 짓는 디씨콘이 떠오르는 표정이었다.

그러게 도전할  도전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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