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25)
진수가 제법 무겁다 보니 품에 안은 상태로 이동하는 건 상당히 체력을 소모하는 행동이었다.
체력도 회복할 겸 유모차에 진수를 내려놓으니 진수는 동물들이 보이지 않는 것에 심술이라도 났는지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고집이 이렇게 세니 문제다 문제.
수진이는 잠깐 본인이 안고 있겠다는 말을 꺼냈지만, 진수를 품에 안고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진수를 유모차에 내려놓았다.
"찐수야... 엄마가 미안행~ 찐수가 너무 무거워서 못 들겠어."
진수는 수진이의 말이라도 알아들었는지 양손으로 샷건을 치기 시작했다.
"아우! 아! 바바바! 아그, 응애!"
뜻대로 되지 않자 결국은 울음을 터트린 진수.
수진이는 진수가 울자 눈에 띄게 당황해서 주변의 안색을 살피며 진수를 품에 안고 달래려고 했다.
나는 오른손으로 수진이의 어깨를 살짝 안아주고 왼손으로 수진이의 손을 잡았다.
"선생님?"
"진정해. 다들 가족 나들이를 나왔으니 어느 정돈 이해해줄 거야."
방금까지 진수를 안고 있다가 팔이 저려 내려놓았던 녀석이 다시 진수를 안으면 사고가 날지도 모르는데 당황해서 허둥지둥거리는 모습이 아직은 초보 엄마다웠다.
하긴, 진수랑 밖에 나오는 경우는 대부분 병원이었으니 당황할 만하지.
나는 진수를 품에 안은 상태로 조금 격하게 몸을 움직였다.
"이야! 진수야. 롤러코스터다 롤러코스터!"
진수를 품에 안은 상태로 좌우로 조금 힘을 주어 흔들고 위아래로 들었다 놨다 하자 진수가 금세 울음을 그쳤다.
"아우! 아!"
남자애라서 그런진 모르겠는데 제법 스릴있는 걸 좋아하나 진수다.
엄마는 어디 갔느냐고 빼애액 하며 울 때마다 청소기 소리를 틀어주니 내성이 생겨서 계속 울길래 여러 방법을 시도해봤는데 이 방법이 최고였다.
물론 수진이는 이 모습을 오늘 처음 봤다.
내가 진수를 품에 안고 몸을 이리저리 격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본 수진이는 깜짝 놀라서 내 등을 두드려왔다.
"진수가 다치면 어쩌려구 그래요!"
"내가 한두 번 해본 줄 알ㅡ"
"미쳤어요?! 떨어뜨리면 어떻게 하려고!!!"
내 홀딩은 한국 아빠 중에서 제일인데... 절대 떨어뜨리지 않는데...
수진이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눈에 쌍심지를 켜곤 내 등을 팍팍 두드려왔다.
이 녀석아. 니가 두드리는 게 더 위험하겠다.
나는 진수를 품에 안은 상태로 수진이의 등짝 스매시를 피해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이리 안 와요?!"
수진이는 내 등에 여래신장을 먹여야지만 멈출 생각인 것 같았다.
수진이가 평소에 장난을 칠 때 날려오는 냥 펀치와는 급이 다른 아픔.
헥토파스칼 여래신장.
초속 23m의 등짝 스매시가 날아온다.
나는 진수를 품에 꼭 끌어안은 다음 수진이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했다.
"진수야! 너 만큼은 내가 목숨을 걸고 지켜줄게...!"
"야, 김준수! 밖에서 개소리 좀 하지 말라고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수진이는 날 붙잡고 등에 여래신장을 다섯 차례나 먹이고서야 진정을 했다.
오늘 밤은 아파서 엎드려 자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나에게서 진수를 빼앗아 들고 나를 노려보는 수진이.
그와 반대로 진수는 우리가 놀아줬다고 생각했는지 해맑게 웃기 시작했다.
"아우! 아! 꺄르륵!"
수진이는 진수의 웃음소리에 조금 진정이 된 느낌이다.
"아..."
진정하고 나니 주변에 시선을 깨달은 수진이.
방금까지 진수가 울어서 주변의 반응을 살폈는데 제대로 저질러버렸다.
수진이는 얼굴이 벌게져서 진수를 유모차에 내려놓은 다음 화장실로 도망쳤다.
오~ 화장실로 도망치다니 오랜만이네.
"진수야, 엄마 참 귀엽다. 그지?"
"아우! 아바바마마!"
꺄르륵 웃는 진수의 뺨을 콕콕 찔러주는데 주변에서 뭔가 뜨뜻미지근하면서도 약간 울컥한 것 같은 시선이 향해온다.
나는 제리가 되어 주변을 향해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뭔가 뜻하지 않게 다른 남편분들에게 염장을 지른 기분이다.
뜨뜻미지근한 시선은 아내분에게서 향해져 왔고 울컥한 것 같은 시선은 남편분들에게서 향해져 온 느낌이다.
아내분들은 신혼을 떠올리며 우리도 저런 때가 있었지~ 하는 느낌이고 남편분들은 시선은 조금 따갑다.
나는 주위의 시선이 불편해서 사람이 비교적 몰려있지 않은 구석으로 이동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이제 곧 오후 3시가 된다.
그러고 보니 30분 간격으로 동물해설을 해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수진이가 돌아오면 해설을 들으러 가보자고 이야기해야겠다.
약 1분 정도 지나자 수진이가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하며 돌아왔다.
"으으, 진짜!"
"잘못했어."
"아버님이랑 어머님한테도 다 이를 거야."
"아니, 그건 좀..."
진수만 보면 눈에 넣어도 안 아파하실 분들인데 수진이가 MSG를 조금만 첨가하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두렵다.
아니, 진수가 다치지 않도록 꽈악 붙들고 있는데 왜 이리 호들갑이지.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닌데...
진수가 기침만 하면 호들갑이라고? 아니지. 아니야.
수진이가 더 호들갑을 떠는 것 같다.
나는 면목이 없는 것처럼 고개를 살짝 숙이고 미안하다고 화를 풀라고 말한 다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제야 수진이는 한숨을 쉬며 나를 용서해줬다.
나는 수진이에게 하이주에서 곧 동물 해설을 해줄 테니 그거나 들으러 가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수진이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다음 내 등을 살살 문질러왔다.
당황해서 내 등을 때렸는데 이제 와서 미안해진 모양이다.
나는 수진이가 때려서 피부에 피멍이 든 것 같다고 나중에 호~ 해주지 않으면 덧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수진이는 내 옆구리를 꼬집으며 멀쩡한가 보다며 웃었다.
내가 폭력적이니 뭐니 했는데 누가 폭력적인지 모르겠다.
폭력 히로인은 옛날에 유행이 지났는데 웹소설 작가가 트렌드도 모른다니 쯧쯧.
"아우!"
너도 그리 생각하지 진수야?
걱정 마라. 롤러코스터는 언제든지 태워줄게.
어차피 수진이는 주중엔 대부분 학교에 있어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말이야.
나와 진수의 비밀이다.
"또 저 몰래 하고 그러면 진짜 혼나요?"
"알겠다니까 그러네."
예리한 녀석.
***
동물해설 프로그램은 30분 간격으로 반복되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몰리진 않았다.
우린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사육사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첫 번째로 체험하게 된 동물은 스컹크.
사육사는 내가 진수를 안을 때처럼 능숙한 자세로 스컹크를 품에 안은 상태로 털 결을 따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진수가 스컹크를 보곤 흥분했는지 샷건을 치기 시작했다.
짜식. 언제나 호기심이 왕성하네.
그래도 다행이다.
아까 진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아이를 안고 있던 부부는 아이가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입구에서 달래느라고 진땀을 빼던데 차라리 이렇게 호기심이 왕성한 게 훨씬 낫지.
진수를 품에 안아 들고 스컹크를 향해 서자 진수는 곧장 스컹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사육사는 진수가 귀여웠는지 진수에게 스컹크를 만져보라며 스컹크를 내밀어 왔다.
"잠시만요~"
수진이는 혹시라도 진수가 스컹크의 털을 잡아당길까 걱정했는지 진수의 손을 살짝 잡았다.
"아우! 아! 아으아!"
진수는 수진이에게 손이 붙들린 상태로 아주 조심스럽게 스컹크를 만졌다.
"아우! 아! 아부부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꺄르륵 거리며 웃기 시작한 진수.
사육사는 진수의 웃음이 전염됐는지 얼굴에 영업용 스마일이 아닌 진심 100%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리 진수가 한 귀염 하긴 하지.
진수가 물러나자 다른 가족들도 스컹크를 만지는 체험을 했다.
사육사는 스컹크를 품에 안은 상태로 스컹크가 어떤 동물인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내용은 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생각보다 흥미로운 사실도 있었다.
스컹크의 냄새가 엄청 지독하다고 알고들 있는데 한국인들은 스컹크의 방귀 냄새를 맡아도 그러려니 한다는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청국장이나 마늘 냄새가 훨씬 더 강해서 스컹크 냄새는 오히려 구수하게 느껴질 정도라나.
스컹크는 밀림의 왕마저 놀라서 기겁하게 하는 냄새를 풍긴다고 들었는데 그럼 한국인은 도대체...
그다음에도 몇몇 동물들의 해설이 이어졌다.
피카피카하고 우는 전기너구리 녀석의 모델이 되는 친칠라와 인터넷에서 짤방으로 유행하는 미어캣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그리고... 그 타임이 오고야 말았다.
"서, 선생님이 하세요."
"너 사진 찍는 거 좋아하잖아. 니가 해."
"선생님이 먼저 하시라니까요?"
"레이디 퍼스트."
도대체 동물해설 프로그램에 뱀을 목에 두르는 이벤트는 왜 넣어둔 지 모르겠네.
나와 수진이는 뱀에게서 멀찍이 떨어져서 체험을 진행하는 부부들을 지켜보았다.
"쫄보."
"응, 반사."
"반사에 반사."
"오늘따라 무지하게 유치하네."
"누가 할 말인데요?"
우리는 뱀이라는 녀석 탓에 뜻하지 않은 언쟁을 나누었다.
역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요사스런 동물이다.
우리는 제법 진지하게 언쟁을 주고받고 있다고 느꼈는데 주변에선 그리 보이지 않았는지 또 뜨뜻미지근한 시선이 날아왔다.
나는 이 불편한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큰 맘을 먹고 진수를 품에 안았다.
"간다."
"역시 우리 서방님이야~"
"시끄러. 사진이나 잘 찍어."
"넹~"
나는 진수를 품에 안은 상태로 사육사에게 다가갔다.
사육사는 무서우면 굳이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꺼냈지만 저기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는 수진이가 있는데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씨발. 취소 취소 취소!
뱀... 뱀은 생각보다 엄청 크고 미끈거려서 기분이 더러웠다.
저러다가 입을 확 벌리고 깨물기라도 하면 어떡하느냐는 생각이 들어 등에 식은땀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진수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만약 이 뱀이 미쳐버려서 아가리를 벌리면 진수 대신 내 팔이 물려야 하니까.
나는 긴장으로 몸을 딱딱히 굳힌 상태로 뱀을 목에 둘렀다.
진수는 뱀의 감촉이 이상한지 뱀을 툭툭 건드려본다.
진수야... 기다려.
이놈은 위험하다.
나는 혹시라도 진수가 뱀을 공격해서 일어날 사고를 대비하여 몸에 힘을 빡 준 상태로 사진을 찍었다.
체험이 끝나고 목에서 징그러운 뱀을 떼어내자 수진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헤실헤실 웃고 있는 수진이가 오늘따라 얄미워 보인다.
이 녀석도 한 번 뱀을 목에 둘러봐야 하는데...
"잘 찍혔죠? 풉, 아하하!"
수진이가 보여준 휴대폰에는 긴장으로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나와 해맑게 웃고 있는 진수가 찍혀있었다.
...다시는 동물원에 안 와야지. 만약에 다시 온다 해도 뱀 만큼은 사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