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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6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18) (216/301)



〈 216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18)

2월 13일.

오늘은 수진이가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하여 초콜릿을 만들 거라면서 팔을 걷어붙였다.


평소라면 저녁도 먹었으니 같이 소파에 앉아서 느긋하게 차를 마실 시간.


수진이는 도마 위에 초콜릿을 올려놓고 칼로 썰고 있다.

매해 발렌타인이 될 때마다 저렇게 직접 만들어서 선물해줄 생각인 걸까.


"선생님은 단 거 좋아하니까 밀크 초콜릿으로 할게요."

수진이는 그리 말하고는 콧노래도 흥얼거리기 시작하며 중탕으로 녹인 초콜릿을 휘젓기 시작했다.

수제 초콜릿은 어떤 걸로 만드는지에 난이도가 다르지만, 수진이가 만들려는 초콜릿은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그냥 초콜릿을 사와 잘게 쪼개고 중탕에 녹인 상태로 틀에 부어 굳히면 되는 거니까.

우유도 거품이 살짝  정도로 데운 다음에 녹인 초콜릿에 섞으면 밀크 초콜릿이다.

수진이는 냉장고를 열고 우유를 꺼내려고 했다.


밀크... 초콜릿...

여기서 모유를 넣어서 만들어 달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수진이가 기겁하고 날 미친놈 취급하지 않을까.

이미 날 변태로 취급하고 있으니 그냥 부탁해도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이 이상 이상한 부탁을 하면 천년사랑도 식어버리는  아닐까 하는 약간의 두려움에 쉽사리 입을 열 수는 없었다.

"모유 초콜릿 같은 헛소리 하면 죽을  알아요."

싱긋 웃으면서 나를 살짝 돌아보는 수진이.


웃고 있는  같은데 웃지 않는 거 같다.


수진이는 그대로 중탕한 초콜릿을 검지로 살짝 찍은 다음 나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

나는 수진이의 손가락을 살짝 빨아보았다.

음. 그냥 달달한 초콜릿 맛이네.

"이제 초콜릿이랑 우유랑 섞고 굳히면 끝~"


수진이는 그리 말한 다음 뒷정리를 시작했다.


아쉽네.

역시 모유 초콜릿은 수진이 기준으론 선을 넘는 것일까.

모유플도 해줬으면서... 조금 아쉽다.

"진짜... 우리 찐수가 먹을 거 다 뺏어 먹고 못된 아빠다 그지?"

수진이는 내 품에 안겨서 딸랑이를 흔드는 진수를 바라보며 그리 말해왔다.


진수는 뭔가 달콤한 향기에 취한  내가 입에 넣었던 초콜릿 맛을 본인도 맛보고 싶다고 손을 뻗어왔다.


아이에게 초콜릿은 위험할지도 모르니 최대한 피해야 한다.


그러니 날 뛰지 마라 진수야.


"아우! 아! 아!"

"봐요. 진수도 아빠가 못됐다고 그러잖아요?"

그냥 초콜릿 맛보고 싶다고 그러는 거라니까.


수진이는 초콜릿을 냉장고에 넣은 다음 손을 씻고 앞치마를 벗은 다음 나에게서 진수를 받아 안았다.

"후우, 우리 진수 많이 무거워져서 이제 들지도 못하겠어."


진수는 무럭무럭 자라서 또래 애들보다 5cm 정도는 더 크고 몸무게도 제법 나갔다.

이젠 수진이가 들기에는 무거운 무게가 되어버렸을 정도다.


그런데도 수진이는 진수를 능숙하게 품에 안고 얼굴을 비빈다.


"우응~ 우리 찐수~ 너무 귀여워~"


진수는 수진이가 얼굴을 비벼오자 뭐가 그리 좋은지 꺄르륵 하면서 웃기 시작한다.


"이제 개학도 2주 남았네?"

"그러게요."

수진이는 조금 조심스러운 분위기로 나의 안색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왜?"

"정말... 괜찮겠어요?"

"괜찮아."


진수가 다른 아이들처럼 젖병을 입에 물기 싫어하는 아이였다면 나도 고민을 좀 했겠지만, 우리 진수는 젖병이든 뭐든 입에 댈 수만 있으면 쪽쪽 빠는 아이라서 큰 문제는 없다.


저번처럼 엄마가 어디 갔느냐고 울기 시작하면 청소기 소리라도 틀어주면 되겠지.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많아 아이를 낳고 바로 출근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이번 수강신청은 어때?"


"음~ 조금 미묘하긴 한데 저녁은 집에서 먹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차도 끌고 다닐 거고."

"잘됐네."

수진이가 달라진 점이라면 일반인 코스프레를 포기한 일이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대학생이라면 주변에서 어려운 시선으로 볼까 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했는데 이젠 그냥 차를 끌고 다니겠다는 말을 해왔다.


대중교통보단 조금 빨리 집에 도착할 수 있을 테니 나는 그러라고 했다.

어차피 난 밖에 자주 나가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진수가 옆에 있는데 누가 부른다고 해서 나갈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나저나 우리 부인은 정말 시선이란 시선은 다 모으고 다닐 사람이네.

대학생인데 유부녀에 아이까지 있는 마망이고 등하교를 자차로 직접 운전까지 하니까 말이야.

대학교는 넓은 듯하면서 좁다.


수진이 정도의 외모와 화제성이라면 소문이 줄줄이 따라 다닐지도 모르겠다.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같이 놀 수 있는 친구가 있으니 괜찮겠지.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찐수양~ 엄마 다녀올게~"

내 입에 살짝 입을 맞추고 그다음에 진수의 볼에 살짝 뽀뽀한 수진이는 활짝 웃으면서 집을 나섰다.

3월이 시작되고 수진이의 대학교 2학년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두근두근하며 가방에 짐을 챙기던 수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계속 함께 지내고 있어서 잠깐씩 깜빡할 때가 있는데 역시 수진이는 대학생이다.

"아우!"


"그래. 엄마는 대학생이라서 공부하러 갔어요."

"아? 아우우 마마마! 마!"


진수는 엄마가 떠나간 자리를 바라보다가 눈을 껌뻑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2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수진이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진이가 눈에 보이지 않자 결국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나는 저번처럼 청소기 소리를 틀어주며 진수의 울음을 달랬다.

나도 진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진이가 옆에 없는 것만으로 외롭다는 생각이 드니까.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이제 수진이가 잠깐 자리를 비워도 다른 것에 열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겠지.

그건 진수. 바로 내 아이다.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손이  가는 듯하다가도 어느 때는 다른 애들보다 더 손이 가는 일도 있는 아이다.

내가 잠깐 소파에서 졸기라도 하면 어느새 내 시야에서 사라져선 저 멀리 순간이동  있는 것이 진수다.

소설을 쓰며 진수에게 뭔가 사고라도 나는 게 아닌지 살펴보다 보면 수진이가 없는 시간은 금방 흘러가겠지.

한창 청소기 소음을 들으며 가만히 있던 진수가 몸을 뒤집으며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저렇게 잘 구르거나 비비적거리는데 왜 기어 다니는 건 아직 못하는 걸까.

신기한 아이다.

진수는 영유아 장난감으로 산 말랑말랑한 공을 손에 들더니 바닥을 향해 열심히 내려치기 시작했다.

"아우 아우 아! 아바바!"

터치다운이라도 하는 걸까.

진수는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양손에 공을 야무지게 붙잡은 상태로 공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드럼이라도 치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진수가 움직이면 바로 눈치챌 수 있도록 진수를 시야에 담은 상태로 주식계좌를 확인해봤다.

장기투자 목적으로 샀던 종목이라 딱히 부정적인 기사도 없었고 변동이 크지도 않았다.

나는 잠시간 주식을 확인하고 있다가 HTS를 끄고 메모장을 열었다.


이전까진 주식투자가 본업이었지만 이젠 나도 웹소설 작가라고 할 정도로 버는 상황이 되었으니 이쪽이 본업이다.


주식투자는 복리로 돈을 불릴  있어서 나중엔 글로 먹고사는 것보다 더 큰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역으로 돈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무리하지 않고 초조함을 버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

준범이도 그리 말했었으니까.

주식 혈마를 쓰고 있으니 주식 이야기가 떠오르고 준범이가 떠오르네.


 자식은 지금 뭐 하고 살려나.

"아우!"


공을 가지고 노는 게 질렸는지 바닥에 공을 내려놓고 딸랑이를 흔들며 놀기 시작하는 진수.

"아! 바바바바! 바~!"

"그래그래."


 살겠지.


내가 결혼한 다음부턴 연락도 뜸해졌다.


이제 그 녀석과 배그를 한 것도 언제였는지 까마득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혼자서 잘 살아오던 녀석이다.

알아서 잘 살겠지.

"바바바! 아우!"

진수는 딸랑이에 질렸는지 이번에는 엄지를 빨기 시작했다.

지금 시간은... 아, 점심이 가까워졌네.

진수도 밥을 먹을 시간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진수의 맘마를 준비했다.

이제 진수가 모유를 마시는 것도 다음 주로 마지막이다.

수진이의 본격적인 등교가 시작됐으며 진수가 생후 6개월 차가 되었으니 이제부턴 분유를 먹이며 이유식을 먹일 시기가 다가온다.

모유도 계속 짜줘야 나오는 거라서 아이에게 수유를 멈추면 머지않아 모유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던가.


신기하지.

"맛있어?"

진수는 젖병을 손으로 꽈악 잡고 꿀꺽꿀꺽 맘마만 먹고 있을 뿐이다.

그래. 맛있으니까 이렇게 열심히 빨아먹겠지.


수진이 마망의 모유가 조금 특별한 맛이긴 하다.


그리고 이젠 맛보지 못할 맛이기도 하고.

"아우!"

진수는 잘 먹었다는 듯이 젖병에서 입을 떼고 웃기 시작했다.

잘 먹고  자고 잘 웃고 잘 놀고.

우리 진수는  잘하네.

나는 진수를 트림시켜준 다음 입가를 닦아주었다.

그리고 진수는 머지않아 눈을 껌뻑이기 시작했고 이내 스스륵 잠이 들었다.

이젠 수면시간이 어느 정도 규칙적으로 변해 점심을 먹으면 스르륵 눈을 감는 진수.

이때는 나도 진수를 따라 한숨 눈을 붙일  있는 시간이다.

아이를 돌보는 건 생각보다 신경을 많이 쓰는 일이라 체력을 소모하니까.

밥을 먹은 다음엔 나도 잠깐  좀 붙여야지.


이전에 수진이가 집을 비워서 혼자 시간을 보낼 때는 그리 시간이 안 갔는데 이제는 이 시간마저 훅훅 지나간다.

이게 진수가 우리 집에 찾아왔기 때문이겠지.


아이를 키우는 마음이 이런 건지는 몰랐다.

만약, 정말 만약이지만 나와 혜정이도 아이를 낳았었다면 다른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을까?


...만약은 만약일 뿐이다.

어디선가  엇박자가 나기 시작해서 아이 때문에 이혼도  하고 전전긍긍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진수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내 아이라는 점도 있지만, 수진이의 아이라는 점도 크게 한몫을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그 여자의 피가 흐르는 아이.

 온전히 그 아이를 사랑하지 못했겠지.


새근새근 잠든 진수를 조심스럽게 안아 아기용 침대에 눕혀주고 살짝 바라보았다.


진수야.  네가 내게 와줘서 너무나 행복하단다.


배가 고프면 울고 기저귀가 축축하면 울고 수진이가 보이지 않으면 울어서 날 곤란하게 하지만 그래도 나는 네가 정말 사랑스럽다.

부디 아프지만 않고 튼튼하고 씩씩하게 커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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