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17)
"다녀왔습니다!"
수진이는 저녁 시간이 되어 손에 뭔가를 가득 들고 돌아왔다.
"뭐야 그 짐은?"
"헤헤, 우리 남편한테 줄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좀 미리 사 왔어요."
"벌써?"
오늘이 1월 30일이니 14일이나 일찍 사 왔네.
"제가 집 밖으로 잘 안 나가잖아요. 그러니 미리 샀어요. 작년엔 제가 초콜릿 냄새도 싫다고 해서 발렌타인 못 챙겨드렸잖아요. 그래서요."
"고마워."
수진이는 짐을 식탁 위에 올려둔 다음 나를 향해 웃음을 보이며 양팔을 벌렸다.
아무래도 허그를 해달라는 것 같다.
나는 수진이의 몸을 살포시 끌어안은 다음 입에 짧게 키스를 해줬다.
"히히. 아, 진수는 별일 없었어요?"
나는 진수가 엄마는 어디 갔느냐고 빼애애액 하며 울었다는 이야기를 꺼내려다가 말았다.
혹시 이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수진이가 대학 복학에 대해 불편함 마음을 가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크흠."
"응? 왜요?"
"아니, 별건 아니야."
뭔가 상황이 반대가 된 게 아닌가 싶어서.
꼭 집에서 애를 혼자 돌보는 전업주부가 남편이 출근하고 집에서 혼자 남편을 기다리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예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도 조금은 수진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옷부터 갈아입어."
"아, 맞다. 잠시만요~"
수진이는 뭐가 그리 즐거운 일이 있었는지 입이 근질거리나 보다.
아이가 있는 집이니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바로 손발을 깨끗이 씻고 옷도 갈아입는 게 좋지.
수진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 진수를 살짝 바라본 다음 우르르르 까꿍~! 하는 소리를 낸다.
"아우!"
진수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수진이는 그 모습을 보며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은 다음 내가 준비한 따뜻한 유자차를 한 입 마셨다.
"후우~ 그래서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수진이는 친구와 만나서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별로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평범하게 만나서 평범하게 카페를 가서 수다도 떨고 같이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부르고 백화점에 들러서 쇼핑도 하고 영화관에서 영화도 보고 왔다는 이야기.
시간 순서가 아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즐거웠던 순간들을 툭툭 내뱉듯이 이야기한다.
정말 평범한 이야기뿐이었다.
그런데도 이리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정말 친구가 마려웠구나 싶다.
수진 마망은 친구가 없어...
"아우, 아, 바바, 바바...응애!!!"
수진이의 이야기는 진수의 울음과 함께 중단되었다.
"잠깐만."
나는 진수를 품에 안고 기저귀를 확인해보았다.
역시 지금쯤이면 한번 나올 때가 됐긴 했지.
난 서둘러서 진수를 눕히고 기저귀를 벗긴 다음 새 기저귀를 엉덩이에 깔아주려고 했다.
"아우, 아! 바바! 바바바!"
그러자 진수는 뒤집기를 하여 내 손에서 벗어나서 멋대로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했다.
"진수야, 기저귀 갈자. 얌전히 있어야지."
"아우, 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저귀를 갈아주면 또 싸는 바람에 난처하게 만들었던 진수.
이젠 그런 일이 줄어서 좋아했는데 이번에 뒤집기를 배운 다음부턴 아예 기저귀를 입으려고 하질 않는다.
"아우, 으아!"
그리곤 손에 닥치는 대로 붙잡아서 입에 넣으려고 하니 문제다.
방금 갈았던 기저귀까지 손에 쥐려고 하다니.
우리 진수는 스캇러였어?
"지지야 지지."
"아우!"
나는 진수와 묘한 신경전을 한 다음 진수의 손에서 기저귀를 빼앗았다.
"우우, 으으..."
진수가 울먹이며 울음을 일발 장전한 모습.
나는 기저귀는 갈아야겠고 울음은 멈춰야겠고 이 녀석이 자꾸 움직여서 못 움직이게도 해야겠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찐수야~ 엄마에용~ 우르르르 까꿍~!"
"마마마? 아우!"
진수는 수진이의 까꿍이 그리도 즐거운지 해맑게 웃으며 수진이를 향해서 손을 뻗는다.
난 그 순간에 순식간에 진수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데 성공했다.
100일 전에 기저귀를 갈아주면 한 번 더 오줌을 싸던 때가 더 편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우르르 까꿍~! 을 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데 수진이가 하면 저리 좋다고 하며 웃고.
아이를 키우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이다.
손이 덜 가는 아이라도 말이다.
진수의 기저귀를 다 갈아주고 나자 진수는 전신 거울 속에 자신의 모습을 보곤 뭐가 그리 재밌는지 한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손에 딸랑이를 쥐여주니 한참을 흔들며 리듬을 타다가 이내 입에 물고 빨기 시작했다.
츄릅 츄릅.
아주 열심히 빨아서 다 닳아버릴 정도였다.
"진수가 아빠를 많이 닮았네. 그죠?"
수진이는 진수가 딸랑이를 빠는 모습을 보며 그리 말해왔다.
그냥 들으면 그냥 닮았다고 말하고 넘어가는 모습이지만 저렇게 딸랑이를 빨고 있는데 이런 말을 꺼내니 역시 그런 뜻이겠지?
"그럼 나도..."
"됐거든요. 저 씻을게요."
수진이는 나에게 혀를 살짝 내밀며 메롱을 하곤 곧장 씻으러 들어갔다.
나도 맘마 주고 가 수진아...
"엄마가 참 야속하다. 그지 진수야?"
"마마? 바바!"
진수는 입에 물었던 딸랑이를 다시 손에 쥐고 흔들면서 나를 격려하는 듯한 동작을 보여줬다.
물론 내 눈에만 그리 보이는 거겠지만.
진수가 뒤집기를 시작한 다음부턴 진수와 함께 있을 때 더욱 조심하게 되었다.
기어 다니지는 못하면서 뒤집기를 배운 다음부턴 데굴데굴 굴러서 어느새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가있는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잠버릇도 고약해서 아기용 침대가 아닌 우리가 쓰는 침대에 올려놓으면 순간이동을 해있는 경우가 있다.
눈에 보이는 건 모두 입에 넣고 싶어 해서 손에 닿는 위치에는 색소가 묻어나오지 않는 물건과 살균세척을 시킨 물건만 두게 되었다.
행동만 바뀐 건 아니었다.
덩치도 커져서 키를 재보니 70cm나 된다.
진수는 정말 쑥쑥 크기 시작했다.
수진이와 함께 있을 때는 시간이 빨리 흘러도 나중에 흘러간 시간을 보고 와~ 시간이 이리 빨리 지나갔구나 싶은 정돈데 진수와 함께 있으면 그 시간이 체감된다.
아이는 이렇게 빨리 크는구나.
이제 몇 개월 지나면 기기 시작하는 걸까.
기기 시작하면 보행기도 준비해야겠지.
보행기를 타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테지.
아이는 참 신기하다.
이리 작은 손과 발을 가지고 있는데도 어떻게 걸을 수 있는 걸까.
"아으, 아!"
진수가 딸랑이를 손으로 흔들다가 다시 입으로 쪽쪽 빨기 시작했다.
저렇게 오랜 시간 딸랑이를 빨기 시작하면 배가 고프다는 신호다.
냉장고에서 수진이의 모유를 꺼낸 후 데워서 젖병에 담고 온도를 확인한다.
음. 이 정도면 진수가 먹기에 문제가 없을 온도네.
진수의 입으로 젖병을 가져다 대자 진수는 곧바로 젖병을 입에 물었다.
꿀꺽꿀꺽.
오늘도 엄청난 속도로 모유를 빨아먹기 시작한 진수.
이젠 본인의 양손으로 젖병을 꽈악 쥐고 있다.
분명 1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젖병을 꽈악 잡고 마시진 않았는데.
수진이가 하루 동안 진수를 관찰하며 육아 일기를 쓰면서 생각보다 재밌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1달 사이에도 이리 휙휙 바뀌니 나중에 몰아서 읽어보면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 테니까.
"아우!"
진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젖병에 들어있던 수진이의 모유를 비워버렸다.
나는 진수를 품에 안고 능숙하게 등을 두드려 트림을 유도해줬다.
진수의 트림을 들은 다음엔 곧장 입근처에 토해내진 모유를 닦아주었다.
진수는 배가 불러 기분이 좋아졌는지 딸랑이를 손에 잡고 신나게 흔들기 시작했다.
"아우! 아! 아바바! 바!"
뭔 노래라도 따라부르는 걸까.
뭐라고 옹알거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즐거워 보인다.
"후우~ 아, 맘마까지 먹였어요? 고마워요."
"아냐. 우리도 저녁이나 먹자."
"네~"
수진이는 요리를 준비하는 동안 진수가 사고를 치지 않도록 품에 안아서 아기용 침대에 내려놓았다.
모빌을 돌리고 뮤직박스를 틀어주자 신이 나선 웃기 시작하는 진수.
이런 싸구려 노래도 좋아하는 거 보니 역시 진수는 예체능 계열이야.
"오늘 하루 동안 고생하셨으니까 쉬셔도 되는데."
"그런 점들이 하나둘 쌓이면 불만이 될 수도 있으니까."
"으~ 고지식."
그리 말하면서도 수진이는 기분이 좋은지 방긋방긋 웃는다.
아, 진수가 꺄르륵 거리며 웃는 표정이 수진이랑 조금 닮은 것 같다.
"저녁까지 먹고 오라고 할 걸 그랬다."
"왜요?"
"아까 많이 즐거워 보였거든."
"즐거웠어요. 그래도 저녁은 될 수 있으면 가족이랑 먹어야죠."
이제 엄마가 다 됐네.
수진이 마망...
"지금 속으로 수진이 마망... 이런 생각하신 거 아니죠?"
"아니야."
나는 최대한 평범한 표정을 지으며 요리를 했다.
날카로운 녀석.
"선생님."
"응?"
"생일이 2개월 정도 남았는데 뭐 받고 싶은 거 없어요?"
"글쎄?"
수유대딸 플레이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수유대딸 말고요."
아니. 진짜 너무 날카로운 거 아닌가.
내가 조금 흠칫한 느낌으로 수진이를 바라보니 수진이가 손가락을 흔든다.
"쯧쯧. 제가 선생님을 모를까 봐 그래요? 은근슬쩍 시선이 은근슬젖하고 있던데."
은근슬젖이라니...
"그래서 진짜 가지고 싶은 거 없어요?"
"나중에 생각나면 말할게."
"제발 이번엔 정상적인 걸로 해주세요."
"알았다니까."
수유대딸은 정상적인 플레이가 아니라는 말일까.
수진이 기준의 정상적인 플레이는 도대체 뭘까.
아니, 애초에 플레이가 아닌 물건을 선택하길 바라는 걸까.
저번엔 외투를 사줬었는데 아무런 요청이 없으면 이번에도 옷을 사주는 걸까.
옷... 옷이라.
이번에는 코스프레로 섹스를 해달라고 부탁해볼까.
관장약...
그러고 보니 동물 귀에 애널플래그를 끼워서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꾸민 상태로 뒤에서 박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
내가 수진이를 힐끔 바라보자 수진이는 뭐라도 느낀 사람처럼 몸을 살짝 떨었다.
"으으, 뭐지, 감긴가?"
정말 촉이 좋은 아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