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나와 수진이의 육아일기(16)
시간이란 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흐른다.
수진이의 회임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진수가 생후 4개월 차에 접어들었으니까.
진수는 9월 20일생.
지금의 계절은 겨울이다.
즉, 별다른 일이 없으면 수진이의 휴학이 끝나고 다시 등교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수진이는 나 혼자서 진수를 돌보는 게 걱정되는지 1년 더 휴학을 할까 하는 의견을 내비쳤지만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자퇴를 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수진이에겐 복학 신청을 하라고 일러뒀다.
수진이는 조금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조금 즐거운 듯한 표정으로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복학이 정해지고 수진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대학교에서 사귄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수진이가 저번에 말해줬던 로판을 쓰는 그 친구 말이다.
그래. 수진이는 복학을 해도 더는 혼밥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대학생이 되었다.
드디어 수진이에게도 같이 점심을 먹고 카톡도 하는 친구가 생긴 것이지.
역시 같은 작가로서 통하는 점이 있으니 그리 쉽게 친해진 걸까.
아무튼, 수진이는 복학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꺼낸 다음에 출산에 관한 화제가 나와서 친구에게 진수를 보여주겠다고 영상통화를 걸었다.
그리곤 나보고 진수를 안고 있으라고 한 다음에 나와 진수를 함께 친구에게 소개해줬다.
그렇게 어색한 인사를 나누려니 수진이가 나를 보며 "선생님, 좀 웃어봐요. 왜 이리 딱딱해요?" 라는 말을 하며 옆구리를 살살 찔러왔는데 그 순간 영상통화 속 여성이 "아!" 소리를 내며 손뼉을 쳤다.
왜 그런가 했더니 수진이의 첫 등교일에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 노트북을 두드리는 모습이 왠지 작가가 아닌가 싶던 여성이 수진이의 친구였나 보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던 수진이의 친구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곤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낸 것이다.
처음엔 카페에서 정장을 입고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길래 대학교수인가 싶어서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자 어떤 여자가 들어와서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뭔가 흠칫했다고 했던가.
그래도 그때의 경험으로 30대의 교수와 막 20살이 된 여대생의 로맨스 소설을 쓰는 영감을 얻어 어느 정도 팔리는 작가가 되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올 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엉겁결에 "아, 네..." 라고 답해버렸다.
들어보니 그땐 위치적으로 수진이의 등 밖에 보이지 않는 위치여서 수진이인 줄도 몰랐다던가.
알고 친해진 게 아니면 대단한 우연이긴 하다.
아니, 작가 지망생이나 현직 작가인 사람들이 모여드는 동아리에 갔으니 만날 법하긴 하지.
수진이의 복학 소식에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이 웃으면서 그럼 오랜만에 쇼핑이라도 함께 가자는 말을 꺼낸 친구의 말에 나를 돌아보며 살짝 불안한 눈빛을 보내오는 수진이.
이걸 가지 말라고 막는 남편이 어디 있나.
오히려 대학에서도 쓸쓸하게 지낼 거라 생각했는데 이리 친구도 사귀고 그러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선생님, 저 어디 이상한 데 없죠?"
외출 준비를 마친 수진이가 전신 거울에 몸을 이리저리 비춰보다가도 나를 돌아보며 그런 말을 꺼냈다.
"우리 부인은 언제나 미인이지."
"그럼 됐네."
수진이는 내 말에 그렇게 받아치곤 내 볼에 살짝 뽀뽀해준 다음에 진수에게 손을 흔들었다.
"찐수야~ 엄마 다녀올게!"
그리 말하고 손을 흔들며 집을 나서는 수진이.
저렇게 신이 나서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니 아직 22살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래도 조금 큰일이긴 하겠다, 그지 진수야?"
"아바바? 아우!"
아침에 착유기로 최대한 모유를 빼긴 했는데 가슴에서 모유가 나오니 그것도 신경 쓰일 테고 식사도 자극적인 건 최대한 피해야 하고 날씨도 춥고 집에 애도 있으니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일이 많긴 하겠다.
수진이가 모유를 먹이고 싶어 하면서도 고민한 이유가 이런 점도 있긴 하겠네.
...역시 대학에 다니고 하려면 모유 수유는 이쯤에서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쉽지만 꿈을 이뤘으니 여기서 만족해야겠지.
더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옹알이는 소리를 내며 수진이가 떠나간 곳을 바라보며 손을 뻗는 진수.
나는 그런 진수를 품에 안아 들었다.
내 아이라서 그런진 몰라도 정말 잘생겼단 말이야.
아니, 객관적으로 봐도 잘생겼나.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안겨도 울면서 짜증을 내지도 않고 참 착한 아이다.
민감한 아이는 엄마가 보이지 않기만 해도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며 운다고 하던데.
진수는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안겨있어도 울지도 않고 착실해.
내가 집을 나가지 않고 계속 함께 있으니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함께 있는 상황에 익숙해진 걸까.
아무튼, 손이 가지 않아서 참 좋은 아이다.
...1시간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응애!!!!!"
진수는 엄마가 옆에 없어도 조용하게 잘 지내는 아이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수진이가 1시간 정도 집을 비우자 결국엔 울음을 터트리며 수진이를 찾아 울기 시작했다.
처음엔 기저귀인가 싶어서 살폈는데 멀쩡했고 다음엔 배가 고파서 그런 거라 생각해서 입에 젖병을 물려도 먹지를 않았다.
신기했다.
진수는 일단 젖병을 들이밀면 대부분 물고 봤는데 이번엔 전혀 물지를 않고 손으로 쳐낸 다음 계속 울어댔으니까.
생각해보니 진수가 엄마와 떨어져 있던 시간은 애를 낳은 직후와 수진이가 산후조리원에 입원했던 아주 잠깐의 시간뿐이다.
그 이후엔 항상 수진이가 곁에 붙어있었다.
그리고 나도 함께 있었지.
진수는 주변에 엄마와 내가 있어서 무덤덤했던 거지 엄마가 없는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나는 진수를 달래기 위해 진땀을 빼야만 했다.
이렇게 목이 찢어지라 우는 행동은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아기 때 받은 스트레스는 커서도 영향을 줄 정도로 민감한 문제라고 들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울음을 달래야만 했다.
...그리고 너무 소리가 커서 듣고 있는 내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가 다시 내려놨다.
진수를 달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엄마였으니까.
수진이가 필요한 상황이기는 했다.
하지만 친구를 만나러 가는 엄청 평범한 일에도 신이 나서 화장대에 앉아 1시간 동안 화장을 한 수진이다.
그렇게 기대하고 나간 수진이를 아이가 우리 집으로 돌아와 하고 부를 수는 없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진수를 달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진수를 품에 안아 어르고 달래면서 휴대폰으로 아이가 울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배가 고픈건 아닌지 기저귀를 살펴봐야 한다든지 하는 기본적인 정보부터 잠이 오지 않아서 짜증을 부리는 경우나 깜짝 놀라서 우는 건 아닌지, 집에 낯선 사람이 찾아와서 우는 건 아닌지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다.
이런 거 말고 다른 건 없는 건가.
조금 더 뒤져보니 아이에게 청소기 소리를 들려주면 우는 걸 멈춘다는 영상이 있었다.
이게 말이 되나?
이건 옛날에 유행하던 무슨 무슨 파동을 이용해서 머리를 활성화한다 어쩐다 했던 그거 같은 느낌인데.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1시간짜리 청소기 소리가 담겨있는 백색소음을 틀었다.
그렇게 시끄러운 소리가 방안을 채우기 시작하자 진수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처음엔 청소기 소리에 진수의 울음소리가 묻히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울음을 그치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눈을 끔뻑이며 바라보는 게 통하긴 하나보다.
신기하네.
나는 진수에게 백색소음을 들려주며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봤다.
결과는 생각보다 놀라웠다.
청소기 소리가 엄마의 배 속에 있을 때의 소음과 비슷해서 아이에게 진정의 효과를 준다는 모양이다.
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겨있을 때 그 익숙한 심장의 고동 소리에 안심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는데 청소기는 또 처음 듣네.
말을 할 수는 없어도 감각적인 부분은 민감한 걸까.
진수를 계속 쳐다보고 있자 울다가 지쳤는지 눈이 천천히 감기기 시작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진수의 얼굴에 묻은 눈물을 물티슈를 사용해서 살짝 닦아주었다.
아내가 없이 아이를 혼자서 키우는 남편들이 얼마나 큰일인지 알 것 같다.
마누라가 집을 나가서 혼자 애를 키우고 있는 준호는 도대체 얼마나 고생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러니 친구한테 일러 1장에 70만원이나 받아 처먹는 거겠지.
혈마주식도 이 녀석한테 일러를 부탁했었는데 이번에도 70만원이나 요구했었지.
친구 세일이라며 본인의 원래 가격은 100만원이라고 하는데 정말 혀가 내둘러졌다.
지금이야 소설로 월 천만원을 벌고 있지만 내 전작의 구매수로는 세금을 떼고 나면 월 100만원 정도의 수입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준호 저놈이 한 달에 그림을 2~3장만 그리는 것도 아닐 테고.
도대체 돈을 얼마나 쓸어 담는 거야.
"하아..."
수진이가 없으니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젠 수진이가 없으면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군.
수진이와 연인이 된 건 38살에 8월 1일이었다.
지금이 41살에 1월 30일.
2년 하고도 6개월의 가량의 시간이 흘렀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시간이었다.
내 40년 인생에서 가장 자극적이고 많은 변화가 있던 기간이지.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도 수복하고 하꼬로 살다가 연중을 하고 그대로 평범한 사회인이 되어버렸을 인생에서 이젠 글로 먹고산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가가 되었다.
그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일까.
보통 한 사람과 사귀고 나서 3년의 세월이 흐르면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식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수진이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수진이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진수야. 아빠 큰일이다. 엄마가 없으니까 손에 뭐가 잡히질 않네."
글도 써야 하는데.
이제 다시 수진이가 복학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벌써 수진이가 없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